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02
제302화. 마법의 맛
“아, 포도주를 많이 만들어요?”
“품질이 좋다고.”
“그러면 어쨌거나 포도 나라 맞네! 역시역시!”
“하, 클리포포드가 포도면, 바리엘은 바바나인가?”
“우- 유치해. 뭐라는 거야.”
“시작은 네가 먼저 했잖은가!”
노아의 별궁, 침실로 들어서려던 이안이 멈칫했다. 그 뒤에 서 있던 로만드로 역시 마찬가지.
왕자의 침실에서 들려올 만한 대화의 수준이 아닌 것이라. 왕자가 그사이 베릭에게 물든 게 분명했다.
똑똑.
끼이익.
“실례합니다. 왕자님. 이안 히엘로 장관입니다.”
“오! 어서 오시오! 잘 왔어! 제발, 이자 좀 데려가!”
“에헤이, 왜 이래요? 우리 좋았잖아. 이안아, 내가 왕자님 말동무해 드렸다.”
“말동무는 무슨, 헛소리! 사사건건 바보 같은 말만 해대니, 내 정신이 혼미하다!”
이안을 보자마자 냅다 달려드는 두 짐승. 노아는 이제 수인인 것을 숨길 생각이 없는지, 귀와 꼬리 따위를 대놓고 드러낸 상태였다.
두 사람이 이안을 두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로만드로가 베릭의 목덜미를 잡는 것으로 겨우 멈추긴 했다만.
“하아.”
메이 사절의 한숨이었다. 그녀는 좌절한 것처럼 이마를 짚은 채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안 그래도 저주 때문에 이성이 조각났는데, 베릭에게 물들어버린 것이라. 우리 왕자님은 저런 분이 아니라고, 메이는 연신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왕자님 우선 진정하고 앉아주십시오.”
“베릭 저자만 아니면 내 흥분할 일이 없지!”
“어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왕자님. 정원 나가서 뒹굴뒹굴하는 거, 내가 굴려줬잖아! 재밌다며!”
몇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건지, 원. 이안이 투명한 크리스털 병을 탁자에 올려두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방긋방긋, 두 사람에게 눈짓으로 앉으라 재촉했다.
왁왁거리며 노아와 떠들어대던 베릭. 이안의 시선을 알아채고 슬그머니 의자에 앉았다.
“왕자님. 뭐 해요? 혼자 서 있네.”
“너……!”
마지막까지 노아 놀려대는 것을 잊지 않는 모습이다.
이안은 시간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촉박한 것이, 조금 서두르는 게 낫겠다.
“노아 왕자님. 만찬 시간이 정해졌습니다. 저녁 일곱 시, 본궁 연회장에서 열릴 것인데, 각국의 입장 순서는 입궁한 순서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버고스 사절은 아직도 짐마차를 풀고 있거든요.”
“버고스의 왕이 도착했나?”
“예. 무탈하게요.”
무탈하게. 그 안에는 진 황자와의 대면 역시 포함하고 있었다. 세 나라 중 오직 클리포포드만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못한 것이라. 이를 깨달은 메이가 다시 한번 난감하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스윽.
“진 저하께서 왕자님의 상태를 전달받으셨습니다.”
“무, 무어라 하셨습니까?”
“별말씀 없으셨습니다.”
“…정말입니까?”
“그저 알겠다고만 하셨지요.”
당연히 거짓말이다.
노아가 수인이라는 것을 전했을 때, 아이의 눈이 어찌나 동그래지던지. 자중하려는 듯 보였으나, 흥분하여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어, 어쩌면 좋소? 노아 왕자가 수인이라니!’
‘아주 잘 되었지요. 보아하니, 왕실 자체의 내력인 것 같았습니다. 왕궁 내에서도 최측근만 아는 일급비밀이라, 필시 바리엘에 상당한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베릭이 오랜만에 기특한 짓을 하였어요.’
이안이 베릭을 힐끔거렸다. 테이블에 놓인 간식을 입에 밀어 넣더니, 이내 눈치 보며 시치미를 뚝 뗀다. 양쪽 볼이 불룩하게 튀어나왔으나, 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표정이다.
“하면, 이것이 나를 도와줄 물약인가?”
그때, 노아가 크리스털 병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연한 감청색 액체가 절반 넘게 들어있었다. 딱 봐도, 맛없어 보인다는 베릭의 평가.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이쪽에 특화된 마법사가 병가로 출궁 중인지라, 그 아래 마법사들이 제조한 것입니다. 효과는 분명하지만, 부작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합니다.”
“부작용?”
노아와 메이의 미간이 동시에 찌푸려졌다. 의심이 순식간에 피어오른 것이다. 말로는 쉬이 부작용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노아의 숨통을 끊어놓을 줄, 누가 안단 말인가?
부작용이라는 단어 하나에 두 사람은 잔뜩 경계하여 눈빛을 차갑게 했다.
“그렇게 보실 것 없습니다.”
“그런 말씀은 안 하셨잖습니까. 왕자님은 클리포포드의 후계자이십니다. 문제 될 만한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사양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마차를-”
“타국에서 이런 상황이라 예민하신 줄은 알지만, 성급하시군요. 메이 사절. 누가 보면 그대가 저주에 걸린 줄 알겠어요.”
저주에 걸리면 이성이 무뎌진다고 하였지? 네가 지금 그러하다. 이안은 차분하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메이를 자중시켰다.
“몸에 좋다는 약재도 부작용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클리포포드 당국에서도 ‘저주’라 부르는 현상을 일시적으로 지워 버리는 것인데, 부작용이 없다 하면 그것이 거짓이지요.”
스윽.
로만드로는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간단히 적혀있지만, 일종의 계약서였다. 아래에는 이안의 서명이 확실하게 찍혀있는.
“제조한 마법사들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원치 않는 신체적 특성을 감출 수는 있지만, 효과가 떨어진 후 그것이 두 배에서 세 배 이상으로 돌아왔다가 본디의 상태로 나아진다 합니다.”
“그, 그 말은 귀나 꼬리가 두 개, 세 개로 난다는 것인가?”
노아가 제 귀를 덥석 잡으며 질색했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괴물 같은데, 귀가 더 늘어난다니!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기 싫다.
“아니요. 그것이 아니라, 털의 풍성함이나, 노아 왕자님께서 겪고 계신 이성 유지 따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유지 시간은요?”
“정할 수 있습니다. 물약을 모두 마시면 일곱 시간. 대신 부작용은 그에 상응하여 두어 배 늘어납니다.”
“최대 스물한 시간이라 치면….”
메이는 손끝으로 일정을 헤아리며 계산했다. 아. 다행이다. 임명 본식에는 문제없이 참석할 수 있겠다.
“이것 외 오한과 발열 및 구토감 따위가 느껴질 수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특화된 마법사가 출궁 중인지라.”
“그러면 그자를 잠시 입궁하라 명하면 안 되겠나?”
“송구하지만, 루스웨나 발의 드래곤 이상 반응으로 나간 것입니다. 전염의 위험이 있기에, 그것은 불가합니다.”
노아의 귀가 뾰족하게 섰다. 루스웨나.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다 그쪽 때문에 시작되었다.
도대체 용 사육장을 어찌 관리하였기에 이전에 사라진 전염병이 새로 생긴단 말인가? 그것만 아니었어도 검사니 뭐니, 애초에 들킬 염려가 없었다.
“하면, 이 계약서는 무엇입니까?”
“지금 말씀드린 부작용을 서로 인지하였다는 걸 합의했다는 계약서입니다. 이것 외, 다른 신체적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물약 때문이 아니라 노아 왕자님 개인의 문제라는 뜻이지요.”
혹여, 노아가 과한 이상 반응을 제기하여 딴지를 걸어올 수 있지 않나.
물약이 바리엘의 마법부에서 제조된 이상, 탈이 난다면 외교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이를 미리 방지하고자 내민 계약서였다.
물론, 클리포포드는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3국 동맹의 첫 모임, 두 번 연속 바리엘에 결례를 범하는 것. 문제만 없다면 약을 먹고 참석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긴 하나…….’
뽕.
메이가 고민하는 동안, 노아는 망설임 없이 코르크 마개를 뽑아 액체 냄새를 맡았다.
생각보다 달착지근한 냄새가 난다. 노아의 눈매가 가늘어지고, 꼬리는 경계하듯 천천히 좌우로 움직였다.
“이안 히엘로 장관. 마법사의 맹세를 걸고, 말한 것 외에 수작이 없을 것이라 말해주게.”
오호. 마법사의 맹세를 아는구나.
의외였다. 극소수의 마법사가 존재하는 루스웨나와 달리, 클리포포드 쪽은 십 년 전 죽은 자가 마지막이라 들었으니까.
이안은 손을 들어 보이며 맹세한다는 뜻을 보였다.
“왕자님. 마법사의 맹세를 걸고, 물약은 문제없이 만들어졌습니다. 왕자님 또한 클리포포드를 걸고 맹세해 주십시오. 바리엘의 호의를 악용하지 않을 것과, 진 황자 저하의 임명식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실 것을요.”
노아의 꼬리가 바닥을 탁탁, 거세게 쳐댔다. 저도 모르게 기분을 드러내는 듯한데,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좋아. 나 또한 약조하겠어.”
노아는 망설임 없이 물약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놀란 메이가 말리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어차피 맨 처음, 이안에게 정체가 들켰을 때 죽으려고 했다. 스스로 땅 파서 관에 기어들어 갈 생각을 했는데, 이만하면 밑져야 본전이고, 저에게는 둘도 없을 기회다.
“펜!”
“여기 있습니다.”
노아가 계약서에 서명하려는 순간, 약물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났다. 풍성했던 꼬리가 점점 줄어들고, 봉긋 솟아있던 귀가 뒤로 눕듯이 납작해졌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베릭이 신기하다는 듯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와, 사라진다. 귀랑 꼬리 없어진다! 대박!”
“뭐? 벌써? 지금 이러면 어떡해?”
서명을 마친 노아가 손끝으로 머리와 엉덩이를 더듬어댔다. 진짜다. 진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미묘하게 감각이 남아있으니, 참으로 기묘했다.
“이거, 일곱 시간 간다며?”
“…왕자님. 저는 지금 드시라는 말,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쿠웅. 노아는 충격받았는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성이 돌아오지 않는 왕자는 얼마나 천방지축인가. 이안이 메이를 돌아보자, 그녀는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노아는 조심스레 메이의 허리춤을 더듬거리며 회중시계를 찾았다.
“마, 만찬까지 몇 시간 남았다 했지?”
“두 시간이요.”
“헉.”
다섯 시간? 좀 아슬아슬한데…….
이안은 볼일 다 보았다는 듯, 계약서를 안주머니에 넣으며 일어났다.
“만찬 때 뵙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물약을 더 준비하도록 하지요. 베릭은 어찌할까요? 두고 갈까요?”
“아니! 데리고 가시게!”
“헐. 왕자님, 실망임! 내가 얼마나 열심히 굴려줬는데! 꼬리도 빗겨주고, 응? 맛있는 것도 주고!”
“꼬리 빗겨주다 말고 물어버렸잖아! 그리고 맛있는 것은 황궁에서 준비한 것인데, 왜 네가 생색을 내?”
“통통하니, 뭔가 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리고 먹을 건-”
“시끄러워! 이안 경. 데리고 가시게.”
“…송구하옵니다.”
이안의 눈짓에 로만드로가 베릭의 목덜미를 질질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노아의 침실. 그는 침대에 벌러덩 누우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아.”
“몸은 좀 어떠십니까, 왕자님? 문제없으세요?”
“응. 괜찮아. 아무런 느낌도 안 나.”
메이의 물음에, 노아는 제 머리를 연신 어색하게 쓰다듬었다.
마법이라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나? 기원부터 이어왔던 왕실의 저주. 이를 숨기기 위해 선대들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뚝딱 만들어낸 물약이 이런 효과를 내다니…….
“메이. 이것이 마법의 참맛인가 봐. 돌아갈 때 마법사 몇몇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메이 역시 테이블을 대충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버고스 왕이 그리 제안한 것 아니겠습니까. 황궁이 열리면 마법사들이 쏟아질 것이라. 그들이 가져올 과육만큼 단것이 없을 것이라고요. 만찬 때는 어찌하실 것입니까? 일이 좀 꼬여 버려서…….”
“그것보다, 내 상태가 이상한 게 문제지.”
“좀 놀라긴 했습니다. 과도기가 막 지나갈 때라 그런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혹 압니까? 마법의 힘이긴 하지만, 수인의 특성이 사라졌으니, 판단력 또한 돌아올지.”
“그러면 곤란한데. 효과가 끝나고 두 배 이상 바보 같아진다는 거잖아. 아마 베릭보다 더할 것이라. 그건 사양이야.”
노아는 베개에 얼굴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퍽 잘 마시었다며, 메이가 덧붙이려다 말았다.
“그만 일어나십시오. 두 시간 후에 만찬이니, 슬슬 준비하셔야지요.”
“응. 그래.”
노아가 여우처럼 기지개를 쭉 켜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모습만 바뀌었지, 이성은 돌아오지 않은 듯하다.
커튼 너머로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지고, 완연한 밤이 내려앉을 때. 황궁은 낮보다 화려하고 화사한 빛을 낼 것이라.
3국과 바리엘의 첫 만찬, 왕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