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04
제304화. 보석의 행방
“블라스터해 말씀하십니까? 대사막 끄트머리에 닿아있는, 그 바다요?”
“예. 요즘 해적이 출몰한다는 소문에 물류가 꽉 막혔답니다. 동방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거기밖에 없으니, 원. 덕분에 사막 건너서 가이아 대륙으로 들어오는 무역상이 조금 늘어났어요.”
“아아. 그렇군요. 루스웨나가 하완국과 맞닿아 있으니, 아무래도 소식이 빠르겠습니다. 클리포포드는 정식으로 사막까지 올라간 경우가 없어요.”
“버고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측에는 클리포포드가 있고, 위로는 내란 지역이라. 하하.”
“클리포포드가 있는 게 무슨 문제라도 됩니까? 하하하. 저희가 없어도 가기 힘드셨을 겁니다. 사막을 누가 지배한단 말입니까?”
“오, 이런.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버고스의 기후는 사막과 좀 닮아있지요. 이렇게 맛있는 포도주를 내는 곳에서 사시는 분들이라면, 사막이 힘들 만도 합니다!”
루스웨나와 클리포포드 그리고 버고스의 사절단들은 한데 어울려 각국의 정보를 공유하는 중이었다.
드문드문 날 선 대꾸가 오갔지만, 모두 개의치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적당히 술에 취한 탓도 있고, 다들 왕을 모시고 타국으로 차출된 인재들이다 보니 정보 공유의 가치를 중히 여긴 탓이다.
게다가 공공연하게 세 나라의 동맹이 확실시되는 상황. 바리엘의 관료들이 끼어있었으나 은근히 저들끼리 뭉치는 분위기를 지울 수 없었다.
스윽.
난간에 서서 그걸 지켜보고 있는 이안.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마법사와 담당자들에게 눈짓으로 지시하며 만찬에 부족함이 없도록 이끌었다. 곧 클리포포드가 진상하여 올린 술이 모든 테이블에 올라갔다.
이안은 진을 돌아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하. 만찬의 목적은 단 두 가지입니다.’
‘응. 알고 있네. 버고스의 왕에게 경고하는 것과 3국 동맹의 균열.’
만찬에 오르기 전, 진은 마차에서 나눴던 대화를 상기하며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소문대로, 버고스에서 수입한 비료의 질이 상당했습니다. 평년 대비, 동일 작물 재배 기간이 일주일 정도 줄었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이것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몇 년 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요.”
에리포니가 버고스에서 수입한 비료에 관한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탁.
황자가 나이프를 내려놓으니,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진 쪽을 바라봤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다.
시선이 모두 집중되었으나,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음료로 목을 축이며 싱긋 웃었다.
“버고스의 비료가 그리 훌륭하다니, 몰랐군. 클리포포드에서도 포도 농사를 지을 때 버고스의 것을 사용하나?”
포도주 생산국인지라, 저쪽도 농사가 필수였다. 그러니 인접국에 괜찮은 비료가 있다면 당연히 수입해서 썼을 터.
노아 왕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예. 선대부터 이어오던 거래입니다.”
진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 우선 그리 일렀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3국 동맹 건수를 물고 늘어지며 거래에 의문을 제기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클리포포드와 버고스의 사이가 냉랭하다 해도, 인접한 국가인 만큼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아마, 버고스에 유통되는 포도주 세 병 중 하나는 클리포포드에서 넘어간 것일 터이니.
“그렇군. 그래서 클리포포드의 음료가 이리 맛난가 보오. 나도 포도주를 좀 먹어보았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들려오는 대꾸는 무해하다. 진이 이안을 돌아보며 그리 이르자, 이안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송구하지만 저하, 아니 될 말씀입니다.”
“알고 있네. 그저 아쉬워서 그러하지. 아래층에서 포도주가 진미라 이르고, 왕들께서도 잔 비우기를 멈추지 않으니.”
“…하면, 미리 주문을 넣어두시는 건 어떠하십니까?”
“주문?”
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이미 맞추었던 대사였지만, 아주 자연스럽다 못해 능청맞지 않나? 아마 로만드로가 봤다면 감격하여 어쩔 줄 몰랐을 것이라.
이안은 슬며시 올라오는 미소를 감추며 노아 왕자를 돌아봤다. 무슨 논의가 오갈지 몰라 바짝 긴장한 태가 역력해 보였다.
“왕국에서 관리하여 보관 중인 포도주가 있을 것입니다. 저하의 성년식 날, 최상의 맛을 내는 술을 미리 주문하심이 어떠십니까?”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어때, 노아 왕자. 왕국에 괜찮은 것이 있는가?”
괜찮은 것? 그리 이른다면 섭섭할 정도다.
고급 포도주로 유명한 나라의 왕실이다. 귀하디귀한 것들이 지하 창고에 즐비하여 왕실의 재산을 이루고 있었다.
“매년 왕국 축제에 맞춰 100년산 포도주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저하의 성년식 날 그만한 고급주를 진상하라 전하겠습니다.”
“100년산? 참으로 엄청나군. 하지만 진상은 되었네. 황가의 일원이 성년을 맞이했다고 하여, 타국의 진상을 받은 전례는 없어.”
“하오나…….”
“그렇지 않은가? 이안 경?”
“맞습니다. 드문 일이지요. 황제 폐하를 제외하면.”
진과 이안의 대사가 틈 없이 단단하게 섞여들었다.
당최 의중을 알 수가 없다. 에리포니는 엘더트와 눈빛을 교환했고, 다몬은 덤덤한 시선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그래. 값을 치르는 게 응당 옳다. 그대들은 나의 임명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손님들이니, 답례 또한 단단히 하는 것이 바리엘의 격에 알맞지. 다들 들으시라.”
다들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라 예상하지는 않았다만, 그것이 무슨 형태로 손에 쥐어질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굳건한 동맹의 믿음일지, 아니면 지지부진하게 서로 미루어왔던 계약의 체결일지, 그것도 아니면 바리엘 황실에서 챙겨주는 소정의 답례품일지.
맨 마지막의 경우만 있다면, 분명 최악의 일정이었노라 평가될 것이었다.
“각국에서 올린 왕실 진상품에 한하여, 바리엘에서 수출 및 수입 가능한 부분을 선정, 한 해 동안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겠네.”
“……!”
“……!”
노아와 에리포니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노아는 왕실의 악기인 브라쿠이, 에리포니는 활을 올리지 않았던가. 메이가 놀라서 왕자에게 속삭였다.
“왕자님. 지금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다면, 브라쿠이 제작에 사용되는 물품 중 하나를 선정하여, 수입‧수출 세금을 제해 주겠다 한 것입니다.”
“응. 나도 그리 들었다.”
이어서 엘더트. 그 역시 에리포니에게 귀를 바짝 붙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전하. 은을 말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활이 은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까? 루스웨나가 바리엘에서 수입하는 은이 전체의 3할을 차지합니다. 세금이 제해진다면, 같은 금액으로 사올 수 있는 양이 훨씬 늘어납니다.”
“흑보석은? 활에 보석이 장식되어 있다. 그것은 수입 없이 수출만 하는 것이라, 세금이 제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득이다.”
“보석과 은은 효용성이 남다릅니다.”
루스웨나와 클리포포드가 열심히 이런저런 의견을 나눌 때, 티모시는 난감히 다몬을 힐끔거렸다. 진이 덧붙인 조건 때문이었다.
‘왕실 진상품에 한하여.’
이는 왕실에서 직접 제작하여 올린 물건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니, 버고스에서는 해당할 만한 게 없었다. 이는 귀족의 손을 빌려 준비했다는 걸, 면전에서 경계하는 것이라.
티모시는 바짝 타는 목을 물로 축이며 이안을 돌아봤다. 그가 진에게 고개를 숙여 뭔가를 이르고 있었다.
“아, 에리포니 왕이시어.”
“예, 저하.”
진은 정정한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보이며 그녀를 불렀다. 엘더트와 조곤조곤 조율하던 에리포니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루스웨나의 진상품은 새로이 제작하여 올리기로 하였으니, 활이 다시 도착하면 그때 품목을 정하는 것으로 하지. 서두르는 게 좋을 터. 기간의 시작은 나의 임명식부터 한 해까지만 헤아릴 것이니. 클리포포드 역시 이 자리에서 당장 정할 것 없소. 만찬을 즐기기에도 모자란 밤인걸.”
면세 기간은 당장 며칠 내부터 시작할 것이지만, 루스웨나만큼은 다시 진상품을 받기로 하였으니, 그때부터 시행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귀여운 것이 귀엽지 않게 구는군.’
도발의 대가가 이리도 클 수 있나?
에리포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받들겠노라 고개를 숙였다. 별궁으로 돌아가면 다시금 엘더트의 잔소리가 쏟아질 게 분명했다. 괜한 세 치 혀로 면세의 기회를 반쯤 놓쳐 버렸다고.
“기다리고 있겠네. 면세를 알리면, 국민들 역시 참으로 반길 것이라.”
잔을 들어 올리며 면세의 즐거움을 누리자고 이르는 와중에도, 진의 시선은 다몬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세 나라 중 왕실의 진상품을 올리지 않는 것은 버고스 뿐이니, 그 방자한 태도가 가져온 손해를 단단히 지켜보라. 그리고 혹, 지금이라도 머리 숙일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진상품을 다시 가져다 바쳐라.
루스웨나 또한 새로이 바치기로 했으니,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하게 해준 것 아니겠나? 내 기다리고 있겠다.
‘귓가에 생생하군.’
어찌나 단호하고 선명한지, 다몬은 아이의 눈빛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챘다.
기회를 주는 것이다. 버고스의 태도가 시건방졌지만, 대국이니만큼 바리엘이 아량을 베푸는 것이라고. 지금이라도 원하는 면세 품목이 있다면 그것으로 진상품을 꾸려 바치라는 회유였다. 받아들이면, 고작 일 년 치 관세에 무릎 꿇고 기어들어 가는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다몬은 포도주를 마시며 노아를 힐끗거렸다. 그때, 적절히 치고 들어오는 이안.
“저하. 면세는 대국의 답례이지만, 100년산 와인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따로 진행하심이 맞겠습니다.”
“그렇지. 왕국의 축제에 쓰는 귀한 것이니, 값이 대단할 것이라. 노아 왕자. 당장 국고에서 내어줄 수는 없고, 원한다면 담보를 맡기고 싶은데.”
“담보 말씀입니까?”
노아는 재빠르게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되물었다. 뭔가 조금 불안했다. 친구 간에도 납득 안 되는 거래는 찜찜하기 마련.
하물며 상대가 바리엘의 유일한 황자이다 보니, 촉이 바짝 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관례가 없다 하지만, 진상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무상으로 줄 수 있는 술 아니던가?
“그래. 계약을 거래 증표로 들고 있다가 십 년 후, 거래할 때 반환하는 조건으로.”
“음, 송구하오나 무엇을…….”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로 귀하고 소중하며, 값어치를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걸 내어주겠네. 그리하면 괜찮은가?”
아니요. 부담스러운데요.
노아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꾸역꾸역 삼키며 고개를 조아렸다.
“과분합니다. 저하.”
“합당하네. 왕국의 축제에 쓰이는 것 아닌가? 왕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대의 국민들 즐거움 일부를 내가 사는 것이네. 이것이 과분한가?”
국민까지 걸고 넘어가니, 노아 왕자도 별수 없다.
진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다몬에게 물었다.
“다몬 왕이시어. 내 아직 연식이 어려, 온전히 내 손에 들어온 재물이 많지 않아.”
“무슨 말씀입니까. 미래의 바리엘이 저하의 것인데요.”
“미래는 미래. 하지만 지금은 지금이지. 모두 황제 폐하의 것이니, 내가 쥐고 있는 것은 오늘 그대들이 준 선물밖에 없군.”
무덤덤하게 대꾸하던 다몬이 멈칫거렸다. 지금 진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아챈 것이다.
그가 고개를 틀자, 순수하게 웃고 있는 아이와 그 뒤를 단단히 지키는 이안이 눈에 들어왔다.
“그대의 귀족들이 올린 보석을 클리포포드에게 담보로 넘겨주려 하는데, 혹 서운해할까 봐 미리 이르네.”
말도 아니다. 진상한 것을 당일, 타국으로 넘긴다니. 이는 실로 무례한 처사였지만, 그 시작이 버고스였으니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이미 보석에 관한 모든 처분 권한은 진이 갖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노아 왕자. 부디 보석을 잘 보관해 주시게. 버고스에서 아주, 아주 어렵게 준비한 귀품이거든.”
상황 자체가 문제다.
버고스의 귀족들, 정확히는 가보를 내어놓은 자들은 바리엘의 황실 문이 열리면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거취가 타국으로 넘어간다면?
바리엘로의 집중을 계속해서 이끌어낼 수 있나?
“아, 저기. 저하.”
“왜 그러지, 노아 왕자? 문제가 있는가?”
노아 왕자 역시 당황하여 다몬과 메이를 돌아봤다. 진 황자가 제 입으로 소중한 것이라 이르렀으니 함부로 반출할 수 없을뿐더러, 버고스에 되돌려주는 순간 바리엘에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바리엘과 버고스의 기 싸움에 끌려들어 간 클리포포드. 에리포니는 술을 홀짝이며 그 모습을 가만 지켜봤다.
‘이것들 봐라?’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했으니.
만찬의 분위기가 더더욱 무르익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