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10
제310화. 부디 열 걸음만
“황태자 전하, 만세!”
“축하드립니다. 전하, 여기를 봐주세요.”
“바리엘에 영광을! 태자 전하에게 영광을!”
중앙 도로를 천천히 누비는 황금 마차.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서 진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금관의 무게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이다.
고귀한 자가 세상을 굽어보듯, 고개 숙이는 일 따위도 없었다. 진은 연신 오른손을 흔들었고, 간혹가다 황태자 봉을 들어 보이며 제국민들의 화답을 끌어냈다.
“와아아! 전하! 전하!”
“잘 부탁드립니다. 황태자 전하!”
며칠 동안 웃고 즐겼던 게 바로 지금을 위해 달려온 것 아니겠나? 군중은 진에게 꽃을 날리며 연신 축하를 전했고, 그것은 바람인 척하는 마법 보호막에 휩쓸려 허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하니, 진정 사방이 별천지고, 꽃 천지다.
부우우- 부우-
물소뿔 우는 소리가 행렬 끝에서 울렸다.
반환점을 돌아 황궁으로 돌아간다는 신호다.
제국민들은 아쉬워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진의 모습을 눈에 담고자 마차를 따라 움직였다. 군악대와 거리 악단의 기묘한 화음 속에서, 빙글빙글 춤추는 자들이 늘어났다.
“이안 님.”
“준비해.”
이안의 지시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진을 중심으로 거대한 어둠이 생겨나고, 이는 마차가 왔던 길과 나아갈 길을 따라 순식간에 뻗어갔다.
모든 걸 지워버릴 것처럼 새까만 색이라.
지켜보고 있던 군중들이 웅성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우앗, 저기, 밑에 봐봐!”
“중앙 길이 전부 검게 변했어!”
“아빠, 안아줘요! 무서워요!”
“괜찮아. 마법사님들이 멋진 걸 보여주시려나 보다.”
지이잉! 지잉!
파앗!
마법사들이 어둠을 만들어내고, 이안은 별을 만들어냈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가 순식간에 은하수로 변모하는 순간.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대낮에 펼쳐지는 우주의 흐름, 그걸 타고 떠나는 금빛 마차 그리고 자신들의 황태자.
모든 게 경이롭고, 아름다웠으며, 완벽했다.
“와…….”
“세상에, 너무 멋져요.”
축제 분위기로 들끓던 사위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새로운 지도자의 탄생은 즐겨 마땅하나,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단언컨대, 경외심. 군악대는 더욱 크고 강렬하며, 웅장한 음악을 연주했다.
끼이익.
이는 행렬이 황궁 앞에 당도할 때까지 이어졌다. 안으로 들어서기 전,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흔들었고 제국민들은 찬가로 응답했다.
바-리엘!
황금 마차가 궁 안으로 사라졌다.
하나둘 그 뒤를 따르던 기마병 역시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떼 지어 부르는 노래는 점점 거세지며 불길처럼 타올랐으니. 황궁이 완전히 닫히자, 바리엘 수도를 가로지르던 은하수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본궁 앞에 멈춘 마차. 수상이 진을 맞이하며 걱정스레 물었다.
일대 다수로 열기를 받아낸다는 것은, 어른조차 버거운 일 아닌가? 하물며 상대는 수천에 달하는 제국민이요, 혼자인 자는 어린아이다.
수상이 연신 진의 상태를 살폈으나, 아이는 손만 내저으며 보고를 명했다.
“3국의 귀빈들과 귀족들은?”
“연회장으로 이동하여 사교 중입니다.”
진은 망토를 벗어내고 수상과 함께 본궁 침소로 들어섰다. 실로 오랜만에 황제인 아버지를 뵙기 위함이다. 시종들은 뒤에 남겨졌고, 관료들은 마차와 병사들을 정리하며 마무리에 나섰다.
“…우웁.”
“필릭, 속 안 좋아?”
“미안. 마력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러니까, 뒤로 빠지라고 했잖아. 이안 님, 필릭 먼저-”
특히나 마법부의 뒤처리가 시끄러웠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마법으로 덮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며칠 간은 간단한 마력구 하나 띄울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걸 소진한 참이다.
“이안 님!”
“됐네. 소란은.”
고개를 떨구어 소매로 코를 가린 이안. 어두운 옷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흰 피부에 묻어나는 혈흔이 선명했다.
“세상에. 손수건은 어디 두셨어요? 로만드로 님! 이안 님 좀 보세요. 아아, 이거 어떡하지요?”
“응? 왜 그러는, 헉! 이안!”
“로만드로 님, 다들 조용히 시키고 뒷정리 부탁드립니다. 저와 마법사들은 먼저 마법부로 들어가겠습니다.”
“거, 걱정하지 말고 서둘러 들어가 계시게. 마법부 마차를 먼저 내오시오! 아이고, 피 계속 나?”
“뭐!? 이안이 피 나!?”
“조용히 좀 해, 베릭 이놈아!”
“로만드로 님 소리 듣고 왔잖아요! 누가 누구보고 조용히 하라는 겨? 이안아, 봐봐. 쌍코피야?”
쓸데없는 걸 묻는다며, 이안이 웃었다. 그러자 허둥지둥 당황해하던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로만드로와 베릭 또한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전하?”
침실로 들어서는 복도.
진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봤으나, 그뿐이다. 수상의 재촉에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계속했다.
스윽.
“…폐하의 건강 상태에 차도가 있는가?”
진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의아함을 품었다. 황궁에서 제일 아늑하고 평온해야 할 곳이건만, 냉하다 못해 스산했다.
절대안정을 목적으로 외부인을 일절 들이지 말라는 의료진의 권고를 충실히 따랐는데, 이런 줄 알았다면 진즉 살펴 부족한 점을 꼬집었으리라.
“…송구하게도.”
“그래. 워낙에 노쇠하셨으니.”
끼이익.
수상이 손수 침실 문을 열었다. 정확히는, 잠겨 있는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쯤 하니, 진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뒤로 물러섰다. 경계하는 낯이 살벌했다.
“수상?”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황태자가 되자마자 위험한 국면을 맞이한 것인가? 여기는 저 혼자밖에 없는데. 시아오시도 없고, 이안 경도…….
“이런, 놀라셨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는 보안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맹세하건대 모두 황제 폐하의 뜻이셨습니다.”
‘뜻이셨습니다.’라니.
누가 듣더라도 유언을 연상하게 하는 뉘앙스였다. 수상이 손짓으로 안내하자, 진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천천히 그를 따랐다.
드넓은 침실. 진이 기억하는 황제의 침실 그대로다. 벽면의 통창으로는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심겨있다. 기억이 맞는다면, 게일의 생모와 관련 있는 것이리라.
“…아버지?”
진은 누워있는 황제 가까이 다가갔다. 마지막 기억과 다를 것 하나 없는 모습이다. 깊게 팬 주름과 흰 머리칼 그리고 바싹 마른 손등.
“……?”
이상했다. 손에 상처들이 자잘하게 나 있다. 거동이 불편하니 크게 움직일 일이 없을 터인데 말이다. 진이 수상을 돌아보자, 진실이 전해졌다.
“황제 폐하께서는 현재 동결 상태이십니다. 내란 당시, 마리브의 검에 베여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승하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여 그런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온몸의 상처는 물론 복부의 자상 역시 아물지 않았지요.”
“그게, 대체 무슨…….”
“폐하께서는 황실의 안정을 위해 공식 후계자를 원하셨습니다. 그 자리는 전하께 돌아갔지요. 지금껏 제가 지고 있던 비밀의 무게를 드디어, 감히 내어드립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으며 허망하게 눈을 깜빡였다. 사실상 사경을 헤매는 상태와 다를 바가 없지만, 전혀 짐작지 못했던 것이기에 충격이 크다.
“그대 말고 또 누가 아는가?”
“베올스 전 삼대장, 딜라이나 님-”
모두 죽음으로 인해 침묵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안 경입니다.”
“…이안 경도?”
“전하지 않았다 하여, 부디 서운치 마소서. 중대 사안이자, 황제 폐하의 마지막 전언이었습니다.”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침실의 어둑한 그림자에 숨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아비를 바라만 볼 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상은 나름대로 황태자의 머릿속을 짐작해보려 했으나, 아이의 서두를 듣고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이안 경이, 나와 다른 길을 걸을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 이안 경과 내가 갈 길이 다르다는 뜻이라.”
알아는 들었으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래 진과 이안은 태생부터가 달랐으니, 가는 길 또한 다르다.
혹시…….
“이안 경이 월권을 행하였습니까?”
우려되어 제이럿의 견제를 의도적으로 묵인하였으나,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안에 대한 이상한 신뢰가 있었나 보다.
수상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진 앞에 무릎 꿇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심각해진다. 현재 황궁에서 마법부 장관인 이안과 대적하여 균형 이룰 자가 없었으니까.
진은 고개를 단호하게 가로저었다.
“결단코 아니네. 그저, 방금 그대가 걱정한 것을 나 또한 걱정해. 하여, 길이 달라지더라도 홀로 걸을 수 있게 준비하는 게 좋을 듯한데.”
비대해진 이안의 존재감과 권력 그리고 의존도를 조정하겠다는 발언이다. 수상은 놀란 심장을 달래며 마른 침을 삼켰다.
“올바르신 결단입니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쏠리면 넘어지기 마련이니. 제가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내 자네의 조언을 바라.”
“음, 상세한 것은 우선 3국 귀빈들이 출궁한 다음 나누는 것으로 하시고, 거처를 옮기는 것만 해두는 게 어떠시온지.”
황태자가 마법부에 기거한 사례는 없었다. 딜라이나의 황궁 보수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으니, 본 거처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다. 우선은 물리적인 거리를 되찾는 것부터가 시작이니.
진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알겠네. 그리하지. 먼저 나가계시게.”
“예. 전하. 복도 멀리 가 있겠습니다.”
멀고도 먼 황제였지만, 아버지였다. 동결된 걸 알았으니 그 슬픔이 엄청날 터. 대국적으로는 경사인 날이지만, 아이에게 이만큼 비극인 날도 없을 것이다. 수상은 마음껏 슬픔을 털어버리시라 배려하며, 침실을 나섰다.
끼이익.
홀로 남았지만, 아이는 황제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소파에 앉아 머리만 감싸 쥐었다.
들썩이는 어깨 그리고 콧잔등을 따라 흘러내리는 눈물. 있는 힘껏 소리를 죽였으나, 새어나가는 울음까지 막을 순 없었다. 손으로 물을 받을 수 없는데, 눈물이라고 다르겠는가.
‘이안 경은 아버지의 상태를 알고 있어.’
확실해졌다. 이안이 다른 마음을 먹고 있었더라면, 그 지혜로운 자가 저를 살려두었을 리 없다. 이전에는 황제께서 살아계시니 유언이나 다른 변수로 인하여 적통자인 자신을 앞세울 것이라는 가정도 세웠었다.
하지만 황제인 아비는 이미 반쯤 죽은 상태. 그가 원했더라면, 이미 모든 걸 가졌으리라. 굳이 자신을 황태자로 올려 동결 비밀을 공유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안 경이 그리하는 연유는-’
기둥. 거리가 적당하여, 하나가 무너져도 버틸 수 있는 안전의 값어치.
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답답함을 토해냈다. 그러고 싶지 않다 전하고 싶은데, 금관의 무게가 무거워 움직여지지 않았다.
스윽.
진은 이안이 준 손수건으로 눈두덩이를 찍어 누르며 훌쩍였다. 계속 도와달라 한 말에, 대답 없던 이안의 표정이 떠올랐다.
자신 보고 울지 말라 하였지만, 정작 그때의 이안은 본인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알고 있을까?
“알겠네. 이안 경. 알겠어.”
진은 숨을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거리를 벌리기 위해 그대가 물러선다면, 자신 또한 돕겠노라. 혼자 열 걸음 물러나면 힘드니까, 자신이 다섯 걸음 물러나겠노라.
그리하면 다시 돌아오기도 쉬울 테지.
그쪽도, 이쪽도.
‘내가 강해지면 된다. 내가 홀로 설 수 있으면 되는 문제였어.’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였다.
진은 임명식 때처럼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부디, 열 걸음만으로도 충분하길. 너무 멀어지지 않길. 그래서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람이 불자, 복숭아나무의 시든 잎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