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12
제312화. 누가 알고 있는가
“…멈춰.”
“예? 왜 그러십니까, 전하.”
“멈추라고! 마차를 세워라!”
갑작스러운 왕의 명령에 티모시가 당황하여 마부석 쪽 창문을 두드렸다. 바퀴 네 개만 굴러가고 있는 게 아닌지라, 마부는 앞서 달리는 호위 마차에 속도를 줄이라 외쳐댔다.
다몬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지나온 거리를 돌아봤다. 순식간이다. 집시와 눈 마주쳤던 곳이 저 뒤까지 밀려나가 있다.
히이잉!
끼이이익!
“젠장.”
“전하!”
마차가 멈추자마자, 다몬은 손수 문을 열어젖히고 내달렸다. 잘 닦인 중앙 길을 벗어나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고, 길을 트라 소리쳤으며, 거추장스러운 좌판대를 넘어 들었다.
다몬의 격정적인 모습에 황급히 뒤따르는 티모시. 마치 자신이 헛것을 보는 것 같다.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시던 분 아닌가?
선왕이 죽었을 때도, 새로운 광산이 발견되었을 때도, 온전한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분이셨는데.
“비켜라! 길을 터!”
“꺄아아악! 밀지 마세요, 시발!”
“좌판 다 넘어지네, 저저, 망할 놈 같으니라고!”
“누구래? 외국인인가? 궁에서 나온 것 같은데.”
“막아서지 말고 비켜! 젠장! 전하!”
“호칭을 금하라! 입 다물어!”
아수라장이다. 다몬을 따라 움직이는 병사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티모시는 왕의 신분 노출을 금했다.
나중에는 알음알음 퍼지더라도, 당장 지금 버고스의 왕이라 선전할 필요는 없지 않나?
타닥타닥!
다몬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이럴 줄 알았다. 처음 바리엘에 입성했을 때부터 예견했던 상황이다. 오만한 집시라면 저를 찾고 있는 자들 앞에 나타나 조롱과 같은 인사를 보낼 것이라고.
다몬은 집시를 보았던 장소에 당도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허억, 허억…….”
“전, 아니, 주인님!”
“잠시만 좀 비켜보시오! 좀!”
“이거 넘어졌잖아요! 보상해 주고 가요!”
“알았으니까, 젠장. 주인님 어디 계십니까? 잠시만 멈추십시오!”
인근에 있는 병사의 모습이 안 보일 정도로 인파가 그득했다. 계단 앞에 앉아있던 한 아이가 다몬에게 일러주었다.
“할머니 찾아요?”
“…뭐?”
“‘도망가야겠다-’라면서 가셨어요. 저쪽으로.”
아이가 가리킨 곳은 으슥한 골목이다. 사람 서너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고 어두운 길. 축제가 이리도 화사하건만,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언제나 존재했다.
스윽.
다몬은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모퉁이를 두어 번 돌았을 때,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막다른 길에 직면한 것이다. 갈림길이나 개구멍 하나 본 적 없건만.
‘젠장.’
다몬은 이마를 짚으며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혹여 잘못 보았나, 그저 기대로 인한 허상이었나 오인할 수도 없다. 계단 앞에 앉아있던 아이가 집시의 존재를 확인해주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마법부의 이안 히엘로는 집시가 타국으로 이동했을 거라 단언하였고, 일말의 의심 따위 없어 보였다.
집시가 비범하긴 하다만 마법사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사라질 만큼 능력이 있는가? 정말 이안 히엘로는 집시가 외국으로 도망쳤다 생각한 것일까?
그렇다면 실망이면서도 다행스러웠다. 신의 힘에 가깝다는 자들의 한계가 명확하면서도, 상대할 만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으니.
‘몰랐다면, 그들이 진심으로 몰랐다면 한심스러운 일이지만, 혹 알았다면? 집시가 바리엘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버고스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면?’
솨아아.
좁은 골목으로 굽이치는 바람.
다몬은 인상을 찡그리며 벽을 짚었다. 집시와 이안 히엘로가 모종의 접촉이 있었고, 이를 버고스에 숨기고 있는 거라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고, 다몬이 현재 행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그는 저 멀리, 웅성거리는 축제 소란을 방패 삼아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황궁으로 돌아가면 초상화가 들을 것이요, 마법사들의 감시에 걸려들 수 있다. 충동과 우연의 산물로 내려진 남루한 골목만이, 다몬의 비밀을 받아낼 수 있다.
“다몬 런크비스. 두 번의 삶을 살고 있다.”
다몬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으며 벽을 짚었다.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비밀을 말할 수 있다니. 자신이 집시에게 팔아넘긴 비밀이, 제 의지대로 전해질 수 있다니. 이럴 수는 없다. 집시가 죽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비밀을 내어줬다고? 누구에게?’
자신이 비밀을 내어주고 부모의 비밀을 얻어낸 것처럼, 누군가도 그리한 것이다.
다몬은 충격에 욕지기가 올라왔다. 속을 게울 것 같은 불쾌한 느낌에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다.
“전하!”
그때, 뒤에서 저를 부르는 티모시의 부름. 굉장히 난처해하는 낯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너…….”
“잠시만요. 여기! 찾았다! 다들 마차를 대기시켜!”
“네. 알겠습니다! 바리엘 경비대가 도착했습니다.”
티모시가 부하들에게 상황을 지시하는 와중에도, 다몬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꼬여 갔다. 수개월간 집시의 뒤를 쫓았던 티모시다.
말할까?
지나오다 집시를 보았다고, 말해도 될까?
“전하. 무슨 일이시온지.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다몬은 정신을 바짝 차린 채 티모시를 올려다봤다.
귀국 전, 임무 수행 중에 이안 히엘로와 ‘우연히’ 만났다는 기이한 인연. 만찬에서 집시의 행방에 관해 바로 이해하던 태도.
그리고 전생에서도 조국을 버리고…….
“혹, 무언가 지시할 사안이 있으십니까? 경비대가 오긴 했지만, 제가 잘 처리해 보겠습니다.”
티모시가 걱정스레 물었으나, 다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되었다.”
“예? 하지만-”
“되었다고.”
현재로서, 자신의 비밀이 흘러 들어갔다 여길 수 있는 곳은 황궁의 중심부, 세세하게는 이안 히엘로를 비롯한 황태자 정도가 될 것이라.
황실이라면 자신의 비밀과 교환될 만큼 거대한 무언가를 품고 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모시.
‘추격을 직접 하였으니, 집시에게 비밀을 전해 듣고 살려 보내줬을 수도 있지.’
당최 확신이 불가했다. 수를 헤아리고 헤아릴수록 무한한 가능성이 생겨났으니까.
다몬은 저를 걱정스레 살피는 티모시를 지나쳐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계단 앞에 앉아 있던 아이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상태. 자신이 만들어낸 혼란으로 거리는 엉망진창, 혼돈 그 자체다.
“좀 지나갑시다! 예?”
“안 된다니까. 기다려! 아니면 저쪽으로 돌아가!”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좀 비키쇼! 딱 저기, 한 모퉁이만 돌면 되는데.”
경비들이 몸으로 사람들을 막아 길을 만들어냈고, 다몬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차에 올랐다.
티모시가 경비대장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며 마차를 정렬했다.
히이잉!
타닥타닥!
이어서 가던 길로 계속 나아가는 다몬의 마차. 맞은편에 앉은 티모시가 연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침묵하며 바깥을 지켜봤다.
의심 가는 상대에게, 집시를 보았노라 어찌 말하겠나? 바리엘 국경을 넘어 타국으로 갔노라, 말도 안 되는 말을 놀리던 자인데.
“전하. 혹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습니까?”
“출궁 일정이 정해졌지?”
“예? 그, 황태자 전하께서 버고스 왕국이 제일 먼저 출궁하라 명하셔서요. 내일 오후 중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 그다음은 클리포포드, 루스웨나 순입니다.”
“업무 보고 궁으로 들어가면 마법부로 간다. 가서 이안 히엘로 장관과 대면을 원한다고 미리 전해.”
“이안 경은 어찌하여……?”
순수한 물음이었다. 왕께서 타국 장관을 무슨 일로 만나는지를 알아야, 보좌관이자 사절 대표로서 도울 것 아닌가?
마력석 거래에 관한 것은 아코렐라 대장 선에서 마무리 지을 사안인 터, 이안을 굳이 만날 필요는 없었다. 동행한 마법사가 알아서 보고하겠지.
게다가 현재 황궁에서 입지가 좋지 않아, 작은 것이라도 계산적으로 대책 세우는 게 합당했다만…….
“네가 할 말은 그저 ‘받들겠습니다’ 밖에 없어.”
다몬은 섬뜩한 눈빛으로 티모시를 꾸중했다. 말 붙이지 말라는, 노골적인 적대의 시선이다.
어찌하여 저리하실까. 마차에서 뛰어내릴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다 여기긴 했지만, 그 정도가 조금 지나친 것 같다. 티모시는 머쓱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조아린 채 대답했다.
“…예. 전하. 받들겠습니다.”
잘 닦인 돌길인데도 어쩐지 마차가 크게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다몬은 속에서 치켜드는 구역감에 더더욱 인상을 찌푸렸고, 티모시 역시 눈치 보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축제에 모인 사람들은 저리도 행복해 보이는데, 대체 자신은 여기서 무엇하고 있단 말인가? 어서, 임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부인과 자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 * *
마법사가 가슴팍에 두꺼운 서류를 들고서 복도를 꺾어 들어갔다. 반쯤 열려있는 집무실 문. 마법사는 들으라는 듯 크게 인기척 내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똑똑.
“계십니까?”
“없어. 돌아가.”
“계시네요. 전달 사안 들어왔는데요.”
마법사를 맞이한 건 로만드로였다. 이안을 대신하여 행진 뒤처리를 한다고 두 볼이 홀쭉해져 있었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헤일 대장과 베릭. 헤일은 이안에게 마력을 주느라 그렇다 쳐도, 베릭은 왜 저리 누워있는지 모를 일이다.
“전달 사안? 어디서 왔는데?”
“수상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흐음. 잠깐만. 다들 쉬는 틈이라는 걸 안 주는구먼. 임명식이 막 끝났는데, 마시고 놀면 얼마나 좋아? 응? 안 그래?”
“이안 님은요? 좀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피는 멎었어. 다른 마법사들은?”
로만드로는 서류 첫 장을 넘기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반쯤 열려있는 안쪽 방문. 헤일의 마력을 전해 받고 곯아떨어진 이안의 옆모습이 보인다. 반듯하게 누워있는 모습 하며,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참으로 가지런하다.
마법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속삭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컸다는 걸 인지한 것이라.
“무리했다고는 하는데, 별거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이안 님이 제일 고생하셨죠. 다들 어지러워서 침 흘릴 때 혼자 피 흘리셨잖아요. 그런데 그 전언, 제가 다시 전달해야 할까요?”
“음? 잠깐, 보자.”
집중하여 글자를 읽어내리던 로만드로. 착잡하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소파에 거꾸로 누워있던 베릭이 그의 바짓단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뭔데요, 표정만 보면 집문서 날린 사람 같아,”
“그, 음. 진 황태자 전하께서 오늘 오후 일정 모두 취소하였다는 거랑…….”
“전하님도 피곤할 만하지. 하아암. 나도 졸리다.”
“거처를 마법부에서 이전 궁으로 옮길 것이니, 짐을 정리해 달라는 전언이네.”
“궁? 어디요? 개박살 난 그 궁?”
“보수가 거의 끝났다는 건 들어서, 언제고 돌아가시겠거니 싶긴 했거든. 근데 너무 이르지 않나?”
집무실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진의 처소가 나온다. 황태자의 신분으로, 특정 부서에 거처를 둘 수 없음은 당연한 일.
하지만 너무 아쉽다. 추억이라 하기에는 안타깝고 슬픈 일도 섞여 있긴 했으나, 웃고 즐겼던 일들 역시 분명히 있지 않았나. 로만드로는 마치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코를 훌쩍거렸다.
“아, 또 우네. 울 일도 없다.”
“너는 아쉽지도 않아? 이놈아, 진 전하께서 다른 궁으로 가신다는데.”
“뭐가 아쉬워요. 다른 나라 가는 것도 아니고, 오가다 계속 보겠구먼. 됐고. 뒷장에도 뭐 달려있어요.”
로만드로는 베릭을 흘겨보며 메모지를 살폈다. 이는 버고스를 담당하는 외교인이 덧붙인 것이다.
“버고스의 왕이 마법부로 올 터이니, 이안과 대면을 하자고 하네. 마력석 관련하여 출궁했다 하더니.”
“듣기로는 가다가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일? 무슨 일?”
“모르겠습니다. 마차에 문제가 생겼는지, 거리가 통제됐다고 하더라고요. 전해 들은 거라, 뭐. 자세한 것은 입궁하면 확인 가능할 것 같아요.”
어찌하면 좋을까. 이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대면은 뒤로 미루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로만드로가 깊게 고민하는 사이.
조용히 누워있던 이안이 눈을 떴다.
‘가시는구나.’
어렴풋이 깨어있던 의식이, 진의 거처 이동을 전해 들은 순간부터 또렷해졌다. 다시 잠들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이안이 로만드로를 불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울렸으나, 누워있으니 견딜 만했다.
“로만드로 님.”
“어? 이안. 깼는가? 아, 이런. 베릭 저놈 목소리가 너무 커서.”
“와, 웃긴다. 로만드로 님이 제일 많이 떠들었어!”
“시꺼! 조용히 해!”
“…둘 다 그만하고, 보고서 넘겨주십시오.”
“여깄네!”
이안은 누운 채로 메모를 확인했다. 버고스의 왕이 직접 대면을 요청했다라.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렀다.
“…다몬 왕이 돌아올 때까지, 일 처리를 좀 해두는 게 좋겠어요.”
대면, 해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