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13
제313화. 세 명분(分)의 통행증
“…옵니다.”
마법사 한 명이 중얼거렸다.
저 멀리, 버고스의 왕이 타고 있는 마차가 들어오는 게 보인다. 경비들이 자세를 바로 하며 마차 맞을 준비를 서둘렀고, 마법사들 역시 계단 위에서 하던 것을 멈추고 대기했다.
끼이익.
“어서 오십시오, 티모시 사절. 아코렐라 대장은 잘 만나보셨습니까?”
먼저 모습을 보인 건 티모시였다. 마법사가 문을 잡아주며 묻자, 그는 고개만 잘게 끄덕거렸다.
“예. 뭐,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거래 목록과 수량만 확인하고 바로 나왔습니다.”
“그래요? 거의 쾌유하였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지 않다면 주치의가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인에게는 전염 위험이 낮다고 하지만, 불가한 것은 아니니까요.”
“열 때문에 정신이 없는지, 홀로 중얼거리다 소리치고, 종잡을 수 없더이다.”
걱정하던 마법사가 당황하며 멈칫거렸다. 그것은 아픈 게 아니라, 원래 아코렐라 대장의 성격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것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그것이 정상인 상태이노라.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지만, 득 될 게 없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이안 히엘로 장관은?”
“버고스의 왕이시여. 장관님은 집무실에서 업무 중이십니다. 차마 자리를 비울 수 없음에 관용을 구한다 전하셨습니다.”
곧이어 내린 다몬. 바깥에서 한바탕 소란을 부렸다고 하더니, 진실인가 보다. 안 그래도 창백한 볼이 더더욱 희고 서늘해 보였다.
다몬은 망토를 휘날리며 앞장서서 걸었고, 이어서 티모시와 부하들이 그 뒤를 따랐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기백. 로비에 멈춰서 허리를 숙이던 마법사들이,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안 님이랑 풍기는 분위기가 좀 비슷한 것 같지?”
“어딜 함부로 비벼. 죽을래?”
“그러니까, 눈알 빼봐. 닦아 줄게.”
“아니. 분위기가 그렇다고, 분위기가.”
겉으로는 장난스레 타박했지만, 다들 조금씩 공감하는 바. 버고스 왕과 그 부하들이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지자, 마법사들은 슬쩍 그 뒤를 쫓아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런데 버고스 왕은 왜 이안 님을 보자 했대?”
“몰라. 갑자기 요청한 거라더만.”
진이 황태자로 격상되었고, 하루가 지나기 전 처소 이동 명령이 내려왔다. 정세가 바람처럼 휘몰아치고 있음은 아무리 무딘 자라도 인지할 수 있었으니. 버고스의 왕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안를 보자 하였을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똑똑.
“장관님. 버고스의 다몬 왕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모시거라.”
시종이 길을 내어주자, 다몬은 숨을 살짝 고르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뒤따르는 티모시의 안색이 어둡다. 주군의 의도를 모르니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나오는 반응이었지만, 다몬은 고갯짓하며 그를 떨어트렸다.
“티모시. 그대는 여기서 대기해.”
“…예. 알겠습니다.”
혹여 티모시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독대에 훼방 놓일 수 있다. 다몬은 옷깃을 가볍게 정돈하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가자, 반대쪽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만드로가 모습을 보였다.
“티모시 사절.”
“로만드로 님. 어찌 나와계십니까?”
“하하. 쫓겨났습니다. 아무래도 주군들께서 긴밀히 무언가 통하셨나 봐요.”
로만드로는 넉살 좋게 웃으며 버고스 부하들을 힐끔거렸다. 아무런 대접도 없이 덩그러니 서 있는 게 신경 쓰인다는 시선이다. 의미를 알아챈 티모시가 회중시계를 확인하며 물었다.
“얼마나 걸릴지, 짐작 가십니까?”
“글쎄요. 그건 요청하신 왕께서 아시겠지요.”
“이런. 제가 실없는 질문을.”
“아닙니다. 혹, 괜찮으시다면 다들 이리 서 있지 말고 응접실로 드시지요. 문 앞을 지키고 있으면 마법사들이 오가기 힘들답니다.”
안 그래도 황궁 밖을 다녀오느라 피곤한 상태다. 다들 티모시에게 어쩌면 좋을지, 침묵으로 물었다.
“그래. 모두가 이리 서 있을 필요는 없지. 내가 지키고 있을 터이니, 다들 자리를 비워라.”
“이쪽으로 오십시오. 바로 옆 방입니다.”
부하들이 시종의 안내를 받아 자리 비우자, 티모시와 로만드로만이 복도에 덩그러니 남았다.
적막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했다. 티모시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자, 로만드로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로만드로 님.”
“제가 아니라, 이안 님의 전달입니다.”
스윽.
로만드로가 품에서 꺼낸 것은 작은 서신 한 장이다. 아무래도 마력석과 관련한 모종의 거래 제안서 아닐까? 가능하다면 건네받고 싶지 않았지만, 장관이 직접 전달하라 했으니 거부할 수 없다. 티모시는 한껏 경계하며 내용을 살폈다.
“이건……?”
“통행 허가증입니다. 장관님의 권한 중 하나인데, 이를 보이면 다른 신분증 없이 바리엘 국경을 오갈 수 있습니다. 출국과 입국, 무관하게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어찌하여 이걸 저에게…….”
“우선은-”
우선은?
티모시가 눈썹을 까딱거리며 로만드로를 쳐다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역시 당최 영문을 모르겠다는 낯빛이다. 이안이 지시하니 하긴 하는데, 본인도 정확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듯했다.
“집시 추격에 관하여, 바리엘이 도움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하셨습니다. 집시가 국경을 넘어갔다고 예상되긴 하지만, 또 언제고 국경을 오가며 돌아다닐지 모르지 않습니까. 하여, 바리엘 국경선에서만큼은 조사를 원활하게 하라는 선물의 의미…….”
로만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사실상 다른 자도 아니고, 외교관의 신분인 티모시가 바리엘에 정식으로 입국하려 한다면,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전에도 황궁 몰래 들어와 집시를 조사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뭐, 얼마나 다급하게 조사를 이어 간다고 통행 허가증이라니. 이런 것은 보통은 국경에 임무 나가는 기사들에게 내어주는 것인데…….
“로만드로 님?”
“아닙니다. 아무튼, 우리 장관님께서 드리는 선물이니 받아두십시오. 통행권이라 해도, 국경수비대에 기록은 남습니다. 아시지요?”
받아도 될까?
티모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왕께서 집시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신 것 같으니, 아마 귀국하면 다시금 명 받아 추격에 나설지도 모른다. 그리하면 이 통행증이 여러모로 도움 되겠지. 한 번 입국하고 출국하는 데 소모되는 시간이 얼마던가?
우선은 받아두자. 받아두면 쓸모가 있을 것이라.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횟수 제한이 있습니다.”
“제한이요?”
“총 3회인데 동행이 있을 시 함께 차감됩니다.”
“…유념하여 잘 사용하겠습니다. 이리도 신경을 써주시니, 다몬 전하께서도 기꺼워하실 것입니다.”
의문투성이군.
티모시는 그리 여기며 통행증을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로만드로가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레 일렀다.
“음. 이는 티모시 사절에게만 주는 것인지라, 다른 쪽으로 말이 흘러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주십시오. 괜히 장관님 처지가 난처해질 수 있어서.”
“물론입니다. 저희 또한 귀국하여 보내는 마력석에 성심을 담겠습니다. 흠 없고 영롱한 것들로만 각별히 고르지요. 마법부 별채 건설에 쓰일 것이니.”
그리 대답하고 나니, 티모시는 깨달았다. 왜 이리 상황이 어색하고, 낯선지 말이다. 외교 사절로서 대접받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만, 상대는 바리엘.
‘지금이 이상한 것은 반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되려 내가 로만드로 님을 신경 썼어야 했는데. 혹시 이것이 그걸 꼬집는 처사일까? 이쪽도 무언갈 내주어야 하나? 하지만 당장 여분의 재화가…….’
티모시가 눈두덩이를 지그시 누르자, 로만드로는 걱정스레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물을 줘도 즐거워하질 않으니, 반응이 왜 저런가 싶은 게라.
“괜찮으십니까?”
“예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한다면 의무실에 데려다주겠노라, 로만드로가 그리 이르려는 순간이었다.
째앵!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유리 같은 것이 깨진 게 분명했다.
로만드로와 티모시는 당황하여 서로만 쳐다보다가, 다급하게 집무실 쪽으로 다가갔다.
똑똑.
“이안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티모시, 대기 중입니다. 다몬 전하.”
하지만 들려오는 답이 없다. 방금까지 통행증 주고받으며 허허 웃던 두 사람이 단번에 경계하며 날을 세웠다. 티모시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자, 로만드로 역시 긴장하며 주머니 속 호각을 만지작거렸다.
“전하. 답이 없으시면-”
티모시가 속으로 숫자 셋을 세었다. 그 안에도 주군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면, 강제로 열고 들어갈 수밖에. 그가 긴장하며 막 숫자를 세려 할 때.
다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되었다. 별것 아니니.”
“정녕 괜찮으십니까?”
“괜찮대도. 물러가.”
분명한 주군의 명령이다. 티모시는 찝찝함을 털어내지 못한 채 마지못해 물러섰다.
한편, 집무실 안쪽에서는 이안이 부서진 화병 조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카펫과 널브러진 꽃잎. 어둑한 집무실에 드는 빛이라고는 창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한 줄기 햇살밖에 없다.
“전하. 다치진 않으셨습니까?”
“…….”
“귀하신 몸에 상처라도 나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그래? 그거 마음에 드네. 피 내는 것으로 그대를 그리 만들 수 있다면.”
이안은 빙긋 웃으며 유리 조각을 지나쳤고, 다몬의 맞은편에 앉았다.
* * *
“어서 오십시오, 전하.”
다몬이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본 것은, 책상에 앉아있는 이안이었다. 그는 정복이 아닌 가벼운 옷차림으로, 막 서류를 덮고 있었다. 왕이 들어왔건만, 일어날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몸짓이다.
“실례합니다. 갑작스러운 만남인지라, 격식을 차리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십시오.”
“마법사 몇이 쓰러졌다고 하더니, 그중 한 명이 장관 그대였군.”
왕이 왔음에도 일어나지 않는 처사라. 몸이 불편한 것아니면 모욕이다. 이안은 희미한 미소로 긍정 아닌 긍정을 내놓았다.
“오래도록 준비한 행사다 보니, 기력이 쇠하였나 봅니다. 무례를 용서하시고, 부디 편히 자리하십시오. 차를 들이라 할까요?”
“아니.”
다몬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무슨 말로 서두를 떼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던 그에게 이안이 먼저 물었다.
“혹 마력석 거래에서 수정 및 보완할 부분이 필요하신지요? 송구하오만, 이미 행정부에서 결재가 내려올 것인지라, 그리하면 처음부터 다시 체결을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
저것이 용건이 아님을, 이안은 알고 있다. 무엇 때문에 왔는지 돌려 말하지 말고 이르라는 질문이다.
다몬은 소파에 팔을 기댄 채 창백한 볼을 받쳤다. 그가 알아내야 할 것은 분명했다.
‘황궁이 집시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비밀을 거래하여 내 것을 먹었는지. 또 더하여, 티모시의 배반 사안이 있는지.’
그러나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지가 문제다.
이안은 참을성 있게 다몬의 서두를 기다렸다. 예민한 사안이다 보니, 먼저 입에 올리는 것 자체만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게다. 살살 긁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안 히엘로 장관.”
“하문하십시오. 전하.”
“황궁에 떠도는 소문을 들었소. 황제 폐하께서 상태가 저러하시니, 근심․걱정이 많을 것 같아. 황태자께서 믿고 기댈 만한 자가 그대밖에 없으니, 나 또한 그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군.”
“황궁에 장관직을 단 자가 여럿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진 전하께서 어리시지만 앞으로 바리엘을 온전히 이고 나가실 분입니다. 저보다는 전하와 대화를 나누심이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그것 또한 맞는 말이지. 하지만 외척 하나 없는 전하에게 그대가 유일한 버팀목임은, 부정하지 마시게나. 타국인 버고스까지 그 말이 도는데,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가?”
“황제 폐하께서 굳건히 버티고 계시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굳건히?”
다몬은 의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전생에서 현 황제가 장수를 하긴 하였으나, 지금도 그리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저리 누워서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데.
“장관 그대는, 황제 폐하께서 오래 사실 것이라 확신하는 것 같군.”
슬쩍 떠보는듯한 말투로, 두 사람의 시선이 본격적으로 맞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