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17
제317화. 가고 싶어
이안은 익숙한 자태로 본궁 회의실 쪽으로 들어섰다.
넓은 복도, 좌우로 나뉘어 대기하고 있던 관료들이 이안의 인기척을 알아채고 몸을 일으켰다. 대회의에 참석한 장관의 부하들이다. 그들은 눈짓으로 인사하며 이안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안 님.”
“늦었네. 회의는?”
“마법부 관련 논의 사안을 제외하고 진행 중입니다. 방금 막 문화부의 ‘예술가지원금액 확대’ 건이 마무리되어 넘어갔습니다. 앞선 기록은 서기가 로만드로 님께 전할 것입니다.”
회의실 문을 열어주는 수상의 보좌관.
진이 황태자로서 맞이하는 첫 대회의였다. 잘하고 계실까, 혹여 모르는 것이 있어 난감하지는 않으실까 걱정하였는데…….
“놀랍군. 효과가 그리도 좋은가?”
“예.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수치입니다.”
“그 정도면 건설 초기와 같은 비용이지 않나?”
“맞습니다. 하여, 남은 잉여금으로…….”
상석에 앉아있는 진이 의젓한 표정으로 장관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전혀 모날 것 없는 분위기.
이안은 문득, 처음 아이의 손을 잡고 대회의에 참석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그때와 비교하여 지금의 진이 얼마나 성장하였는지, 본인은 알까? 알았으면 좋겠건만.
“오, 이안 경.”
서류를 따라 넘기던 진이 이안을 발견했다. 그와 동시에 돌아가는 장관들의 고개. 황태자가 마법부에서 짐을 빼었으니, 관계가 어찌 변모하였는지를 살피려는 시선들이다. 이안은 천천히 입장하며 인사했다.
“송구합니다. 전하. 늦었습니다.”
“아닐세. 전해 들었어. 갑자기 황궁 출입 담당하는 마법진이 과열되었다고, 문제는 없나?”
“예. 수식 차이에서 온 계산 실수였습니다. 잘 마무리되었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수고했군. 앉으시게.”
회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앞선 내용을 짐작하며 경청하는데, 로만드로가 회의 기록지를 가져와 내밀었다.
재빠르게 글자를 훑어보던 이안.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루스웨나에서는 아직 면세 물품을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혹여 은을 요청한다면 팔레피폰츠 쪽과 논의하여 은 거래를 조절하는 게…….”
그때 이안의 귀에 걸리는 한 단어, 팔레피폰츠. 진이 이것을 알까? 이안은 반사적으로 펜을 들며 상석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것을 귀퉁이에 적어주던 행동이 습관으로 남은 것이라.
하지만 이안이 마주한 것은, 당당하게 손을 들어 관료의 발언을 저지하는 황태자였다.
“잠깐. 짚고 넘어가지. 팔레피폰츠가 무엇인가?”
“아, 송구하옵니다. 바리엘에서 금과 은을 거래 대상으로 하는 상인조합 중 제일 규모가 큰 곳입니다.”
“보고서에는 없는 내용이라 물어보았네. 있었다면 내 숙지하고 왔을 터. 회의가 길어지는 걸 원하시오?”
아이는 반쯤 농담 삼아 장관을 질책했다. 모자란 부분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하여, 회의에 들어서기 전 세세한 부분까지 서면화하여 올리라 하였거늘.
다른 장관들이 이때다 싶어 장난을 더했다.
“전하. 저자의 아들이 이제 막 걷기 시작하여, 며칠 전부터 집 들어가면 쉬질 못한다고 한탄하더이다.”
“아, 아닙니다. 전하. 저, 굉장히 행복합니다.”
“그대 아내도 같은 부서 관료 아니오?”
“맞습니다. 그래서 회의가 길어지길 바랐나 봅니다.”
이안은 펜을 톡톡 돌려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살폈다. 이해관계가 참으로 절묘하게 맞물리는 순간이다.
관료들은 마법부 견제를 위해 평소보다 더욱 호의적으로 진을 대했고, 진은 그 호의를 빌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낼 수 있지 않나.
여러모로 옳게 굴러가는 모습. 이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수상에게 눈짓했다.
‘회의를 계속 이어가십시오.’
웃고 떠드는 것 다 좋은데, 일은 제대로 하자는 눈치였다. 수상은 헛기침을 큼큼, 하더니 봉을 가볍게 두드렸다.
퉁퉁!
“자자. 발언을 계속합시다. 이러다 진짜 늦어지오. 버고스가 출궁을 앞두고 있으니, 일정이 밀리면 곤란하지 않겠소?”
“아, 예. 그러니까, 루스웨나 측에서…….”
장관이 허둥지둥 발언을 이어가자, 진은 서류 보는 척 이안을 훔쳐봤다. 보았을까? 이제는 이안 없이도 회의에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까?
아직 부족하나마 자신이 홀로 섰다는 걸, 이안이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안이 믿고 의지하여, 조금만 떨어졌으면…….
“전하.”
“응?”
수상의 부름에 진이 안 놀란 척 고개를 틀었다. 어느덧 발언이 모두 끝난 것이라. 수상은 서류를 살피며 회의 마무리를 제안했다.
“마법부 사안 외에는 모두 논의되었습니다. 한데, 버고스 왕의 출궁이 곧…….”
“마법부는? 이안 경?”
“네. 전하. 함께 의논할 사안은 아니고, 모두 경과보고서입니다. 시간이 촉박하시다면 서면으로만 받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안은 문제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다들 침묵하며 긴장을 숨겼다. 때가 된 것이라. 진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일렀다.
“하면, 오늘 회의에서 있었던 결정 사안은 그대로 진행하는 것에 관해, 모두 이견 없겠는가?”
장관들의 시선이 재빠르게 이안에게 쏠렸다. 마법부가 없는 동안 제안된 것이니, 사실상 저쪽 빼고 다 찬성한 사안이라는 게다.
이안은 펜으로 서류 끄트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저기, 이안 경?”
“예. 이견 없습니다.”
보다 못한 수상이 재촉하기 위해 움직였으나, 이안은 결심한 듯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다들 안도하면서도 의아한 낯을 거두지 않았다. 어째서 저리 쉽게 수긍한단 말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황궁에서 마법부 빼고 모두 예산을 올린다는 것인데.”
“원래 과하게 받긴 했잖습니까. 다른 부서랑 맞추어 올려달라 하면 양심 없지요. 그리고 루론석 대금도 아직 묶여있고요. 마법부 별채에 꼬투리 안 잡히려면 이안 경도 어쩔 수 없겠지요.”
“뒷장을 못 봤나?”
“보았습니다. 아까 넘기는 거 봤어요.”
-1회분의 마력봉인석을 황실친위대 대장에게 3개씩, 그 아래 대원들에게는 1개씩 위임. 마물 전투 및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특성상 마력봉인석은 다방면에서 효과적으로 쓰임 가능. 황실친위대의 명예 향상…….
마력봉인석은 마법사를 물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유일의 수단이다. 이미 이안이 한 차례 그걸 배분하였으나, 다시금 황실 내부에서 친위대에 소량 하사하겠다는 내용이었으니.
이는 황제를 호위하는 친위대가 마법부에 대응할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인지라 실효성보다는 의미에 중점을 두어 간을 보는 것이지만, 본격적으로 황태자가 마법부 쪽 손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근데, 여기서 뭐 반대할 수나 있겠습니까? 마법부의 권한을 줄이는 것도 아니고, 황실의 것을 하사하겠다는 것인데.”
“맞습니다. 그리하면 월권이자, 황실에 대한 도전이지요. 이는 저쪽에서도 위험한 선택지입니다.”
“당분간 태세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예예.”
속닥속닥, 여기저기서 이안을 두고 떠드는 말들이 오갔다. 저들만 들을 수 있게끔 아주 작은 소리였으나, 그게 한두 개가 아닌지라 사위는 금방 어수선해졌다. 수상은 서둘러 봉을 두드리며 소란을 잠재웠다.
타앙! 탕탕!
“그럼 오늘 대회의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지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움직이시지요. 버고스 배웅을 가야 하니.”
“그럽시다. 옆 궁이니 걸어서 움직입시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일어나 사라지는 장관들. 마법부에 책이라도 잡힐까 봐 자리를 피하는 모습들이다.
이안은 차분한 손짓으로 서류 끝을 톡톡 두드려 정돈했다. 진은 고개를 옆으로 숙이며 이안의 표정을 살폈다.
“이안 경. 괜찮소?”
“예. 전하. 피로는 다 가셨습니다. 전하께서도 몸 상태가 안 좋으셨다고요. 임명식 날 많이 힘드셨지요.”
그거 말고.
자신이 이리 한 발 뒤로 물러섰는데, 괜찮냐는 말이다. 혹, 오해하여 실수한 것은 아닌지, 이것이 이안이 바라는 게 맞는지를 묻는 눈빛이다.
아이의 시선이 끈덕지게 달라붙자, 이안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회의에 늦어서 그런 것이오.”
그러니까 누가 늦으라 하였는가? 이런 자리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당연지사 불이익이지. 진이 눈매를 가늘게 뜨자, 이안은 희게 웃었다.
“예. 그러게 말입니다. 가능했다면, 더 일찍 올걸 그랬습니다. 전하께서 진행하신 첫 회의인데 말입니다.”
아, 웃었다. 다행이다. 이게 맞나 보다. 진은 표정을 갈무리하며 위엄 있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뒤에서 들려오는 청천벽력같은 전언.
“전하. 곧 있으면 제 어머니의 약혼식입니다만…….”
“들었소. 당연히 내 알고 있지.”
자신이 준 귀걸이를 착용하고 식에 오른다 하였으니, 필시 참석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이안이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왜, 왜?”
“업무가 많으실 것으로 생각되어서요.”
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이제는 거리를 두는 게 맞으니까, 당연하게 필리아와도 교류를 멈추어야 했다. 황궁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겉핥기식의 견제가 먹혀들 리 없다. 어머니의 약혼식 같은 사적인 자리에 진이 참석한다는 것은, 그들의 관계가 이전과 같다는 걸 시사할 뿐이다.
하지만 정작 진은, 굉장히 충격받은 것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전하?”
“…그렇지. 업무가 많, 많지.”
“예. 어머니에게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염려치 마시고 국정에 집중하십시오.”
진이 멈춰서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아오시와 로만드로가 동시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안은 로만드로에게 서둘러 나가자는 듯 손짓하였고, 시아오시는 그런 그를 지나쳐 진에게 다가왔다. 눈높이를 맞추니, 아이의 낯이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잠시만, 그…….”
“예. 알겠습니다.”
시아오시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들에게 먼저 가라 눈짓했다. 그중에는 이안과 로만드로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영문 모를 표정으로 이안의 뒤를 따르는 로만드로를 마지막으로, 회의실엔 진과 시아오시 둘만 남았다.
“…….”
쿵.
아이는 벽에 이마를 대고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앓는 소리를 참으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시아오시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어디 아프십니까?”
“그것이, 다음 주에 필리아가 약혼을 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이안 님이 취임하고 처음으로 휴가를 냈다고, 소문이 크게 돌았습니다.”
순간 시아오시는 아, 하고 멈칫했다.
두 사람 간의 기이한 흐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진이 대놓고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임명식 이후로 거리감이 생긴 것은 분명해 보였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근간에 부정적인 감정이 없어 보인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는데.
진은 쪼그려 앉아서 연신 꿍얼꿍얼했다.
“일이 바빠서, 못, 못 갈 것 같은데…….”
“가고 싶으십니까?”
“…아니. 일이 너무 많아서.”
가고 싶구나.
시아오시는 아이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얼굴을 살폈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리 가고 싶으시면, 가십시오, 전하. 괜찮습니다.”
“아니 된다니까. 나 일 많아…. 그리고 다른 자들이 알면 의미가 없어져…….”
진이 참석하면 이안을 멀리하려는 수고가 희석된다는 뜻이었다. 시아오시는 고민하더니, 작게 속삭였다.
“몰래 다녀오시면 되지요. 제가 한번 수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정말?”
“예. 그러니 그만 일어나세요. 황태자 전하께서 어찌 이리 쪼그려 앉는단 말입니까.”
진이 시아오시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릴 뻔하였지만, 잽싸게 소매로 닦아내어 흔적을 지웠다.
아이는 곧이어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안도 참 무심하지, 약혼식 정도는 어떻게 잘 넘어가도 되는 것 아닌가? 고작 며칠 차이인데!
“이안 경도 너무해. 정말.”
“혼내라 할까요.”
“누가 경을 혼내겠나?”
황궁에서, 수상조차 함부로 할 수 없거늘. 막상 그런 생각을 하니, 주위에서 왜 이안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새삼 깨달았다.
“감히 누가…….”
시아오시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이의 옷매무시를 정돈해 주었고, 동시에 앞서 가던 로만드로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누가 내 얘길 하나?”
“왜 그러십니까? 로만드로 님.”
“아니, 귀가 간지러워서. 그나저나, 아까 진 전하랑 무슨 얘기를 하였어? 전하 표정이 안 좋아 보이던데.”
이안은 슬쩍 로만드로를 보다가 말을 얼버무렸다.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데?”
“…업무가 과중하니, 어머니 약혼식에 못 오셔도 개의치 마시라 전하였습니다.”
우뚝.
잘 걸어가던 로만드로가 멈추더니, 엄청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세상에나, 마상에나! 진 전하께서 그토록 고대하던 것을……!
“이안!”
로만드로가 체면도 잊은 채 경악하여 소리쳤고, 이안은 못 들은 척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저, 저! 일만 잘하는 냉혈한 같으니라고!
로만드로는 팔을 걷어붙이며 이안의 뒤를 맹렬히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