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22
제322화. 조사단 결성
“전하.”
작게 속삭이는 시아오시의 목소리.
책상에 턱 괴고 졸던 진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세를 바로 했다. 바깥 멀리서 발걸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함께 들어오는 수상과 장관들.
그중에는 이안과 로만드로 역시 섞여 있었다. 어제 늦게 들어간 것일까? 이안은 그렇다쳐도 로만드로의 안색이 가히 심각하다.
“전하. 이른 새벽부터 회의에 참석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 역할인데 어찌 그런 인사를 하시오? 거두고 앉으라.”
진과 눈 마주친 이안은 가슴에 손 올리며 고개 숙였다. 가감 없이 담백한 인사다. 불과 어제, 아니지.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서 웃고 떠들던 그자가 맞는지 모를 정도로 건조한.
진 역시 고갯짓하는 것으로 응했다. 모두가 새벽 동이 트자마자 달려와서 그런지 유독 피곤해 보였다.
“기상이 이르니, 참으로 보람찬 하루가 되겠습니다.”
“부지런도 하시군요. 저는 다시 가서 잘 건데.”
“하루를 이틀처럼 쓰십니다. 성실하셔요. 하하.”
“자자, 다들 정숙하시오. 다들 전언은 들었을 터.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전하, 시작하겠습니다.”
타앙! 탕!
차락. 차라락.
수상이 봉을 두드리자, 보고서 넘어가는 소리가 차분히 울렸다. 제일 먼저 발언한 것은 제국방위부의 장관. 경비대의 보고서를 받아서 수상에게 전해준 자였다.
“경비대에서는 정체 모를 격전이 있었던 것 같다 하고, 클리포포드는 모르는 일이라 하는 게 회의의 논지이지요?”
“그렇소.”
그들은 이안과 로만드로가 마법부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그대로 되풀이했다. 경비대의 착오 혹은 클리포포드의 거짓을 상정한 채로 말이다.
뒤에 서서 듣던 로만드로가 이안의 뒤통수를 힐끔거리며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오차 없이 딱딱, 모두 이안이 예상한 대로였다.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지라, 로만드로는 수첩에 의미 없는 줄만 그어대며 성의를 보였다.
“하면, 버고스의 수작 아니겠습니까?”
“버고스 측에서 가져온 진상품이 특급 중의 특급이지요. 되찾기 위해 일을 꾸민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듣던 진이 손을 들며 발언했다. 중장년의 장관들은 하던 말을 멈춘 채 황태자를 돌아봤다.
“하지만 버고스에게 그것은 최선도, 차선도 아닌 선택이지 않겠소. 바리엘 영지 안에서 소란을 피웠다가는 빌미를 바로 제공할 것인데.”
무표정인 로만드로가 콧김을 내며 동그라미를 격렬하게 그렸다. 그겁니다, 진 전하. 바로 그것이어요! 저 작은 아이의 생각이 어느덧 저리 깊어졌구나.
로만드로가 속으로 손뼉 치고 있을 때, 이안 역시 손끝으로 서류를 톡톡 두드려댔다. 진의 발언을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는 자세다.
“일리 있습니다. 버고스 측에서는 확실히 부담되고, 이득에 비해 손해가 커요.”
“그렇다면 대체 누가…….”
회의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버고스도 아니고, 루스웨나도 아니며, 인근의 도적도 아니다. 바리엘에 이만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세력이라 하면 딱 한군데. 이곳, 황궁.
수상이 그걸 깨닫자, 흔들리는 동공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몇몇 관료들도 그걸 깨달았는지, 살펴보는 눈매에 유독 경계가 서려 있다.
꽤 길게 이어지는 적막. 경청하던 시아오시가 진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응?”
무슨 말을 했는지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썹이 잔뜩 찌푸려지는 것으로 보아, 그리 유쾌한 전언은 아닌 것 같다.
“왜, 왜 그러십니까. 전하.”
“아닐세. 다들 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논의하게.”
논의하라고 해도, 쉬이 꺼낼 수 없다. 거의 음모론에 가까운 가정이지 않나? 임명식 잘 끝낸 황궁에서, 무엇 하러 타국과의 관계에 초를 쳐? 대체 누가…….
‘진 황태자가 마법부에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스윽. 다들 흰자로 이안을 살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무언의 신호가 떨어진 것은 분명했으니, 할 만한 자라면 이안이 유력하지 않나? 물론, 증거 하나 없는 심증뿐이었으나, 사고가 그리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관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운을 띄었다.
“…이안 경. 경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한 말씀 덧붙이십시오. 말씀이 없으시니, 하하. 어제 좋은 술이라도 드셨나 봅니다.”
필리아와 네르사른의 약혼식을 은근히 떠보는 말투였다. 야만인이라 불리는 천려족 새아비를 얻은 것인지라, 귀족들 사이에서는 뒷말이 나도는 중 아니던가. 다만 상대가 상대인 터, 쉬쉬하며 조심할 뿐.
수상은 자중하라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으나, 소리 없는 꾸중이 어찌 닿겠나? 이안은 펜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예. 제가 술에는 문외한이라, 이럴 줄 몰랐네요. 영 기운이 가시질 않으니, 아직도 열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술 덜 깼으니까 허튼소리로 신경 긁지 말라는 경고다. 대놓고 면박 먹은 장관이 낯을 굳혔지만, 어찌하겠나? 더 나아갔다가는 자신만 손해인데.
이안은 로만드로가 내어주는 일정표를 확인했다.
“이러나저러나, 조사단을 결성하여 파견하는 게 좋겠지요. 클리포포드가 국경을 넘기 전에요. 제국방위부에서는 경비대 쪽을 담당하시고, 마법부는 클리포포드를 만나보겠습니다.”
“내일이나 모레 중이면 바리엘을 벗어날 터. 서두름이 어떠시오?”
“안 그래도 오늘이 제 휴가인 터라, 일정이 비어 있습니다. 마법사 몇을 차출하여 다녀오지요.”
“어찌-”
진이 놀란 투로 되물으려다 말았다. 내란 당시, 하늘에 떴던 검은 달을 기억해 낸 것이다. 수고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만큼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은 없었다.
“전하. 여쭐 것이 있습니다.”
“…허락하오.”
이안이 진을 돌아보자, 아이는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회의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처음으로 말 섞는 것이었으니.
“혹여 조사 과정에서 타국의 이상 행동이 확인될 시, 전하께서는 어찌 처리하고 싶으십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경비대는 격전을 짐작했습니다. 마법부와 제국방위부는 혹시 모를 돌발 사태를 대비하며 임할 것인데, 이는 모두 전하의 의중 아래 행해질 일이기 때문입니다.”
폭약을 터트리는 건 언제나 사사로운 불씨였다. 타국과 마찰이 생기면, 결정권자에 따라 대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평화를 원한다. 나는 황궁에서 안전을 보장받지만, 그 지대를 터전 삼은 백성들은 온전히 위험에 처해. 그들의 비명을 듣고 싶지 않아.”
“알겠습니다. 마음 깊이 받들겠습니다.”
이안은 제국방위부 쪽을 힐끔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의 뜻을 받들어 최대한 조용히 사안을 마무리하자는 뜻이었다.
‘제국방위부는 피로 성장하는 부서.’
안 그래도 황궁 내에서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기회랍시고 분탕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이안은 진의 입을 빌려 주의를 줬다.
지금은 바깥의 3국을 먼저 정리하는 게 우선. 다른 장관들이 어색한 웃음을 터트리며 분위기를 무마했다.
“크흠. 경비대가 착각한 것이라면 아무런 사달 없이 제일 좋게 넘어갈 수 있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현장 조사 나갈 제국방위대 장군으로는 누구를 차출할 것인지…….”
“저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스윽.
이안이 보고서를 덮었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사안이 있나 했는데,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하여. 이는 자리하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라.
게다가-
“이동하는 마법진이 상당히 복잡해서요. 공들여 단단히 쓰려면 지금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 그래. 그러시게.”
“전달 사항이 있다면 따로 전해주십시오.”
자신이 없어야만 자유롭게들 얘기할 수 있지 않나?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걸어가자, 장관들의 시선이 늘어지게 따라붙었다.
쿠웅!
“진 전하. 아무래도 마법부만 보낼 게 아니라, 타 부서 사람을 동행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마법부가 수상하다는 말을 직접 하진 않았지만, 경계하는 바가 완연했다. 진의 시선이 시아오시 쪽으로 슬쩍 기울어졌다.
‘전하. 기억하십니까? 저번에, 이안 님이 마법부에 변절자가 남아있다 하셨지요.’
아까 시아오시가 일러준 것은, 잊고 있었던 배신자의 존재다. 제삼의 인물이 개입한 사안이라면, 그자가 유력했다. 이안도 이걸 알고 있을 터.
진은 저도 모르게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물론. 적절히 감시할 자가 필요하긴 하지. 내가 타 부서에 직접 명하겠다.”
“예. 현명하신 처사입니다.”
장관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옳다 칭송했다. 진이 그 타 부서를 ‘황궁친위대’로 선정한 것도 모르고.
바르사베와 베릭을 붙여 보내면 외부에서 보기에도 적절하고, 이안에게 특별히 방해될 것 같지도 않았다. 진은 시아오시에게 손짓하며 속삭였다.
“이안 경이 차출할 마법사 명단이 만들어지면 내게 가져오라.”
“알겠습니다.”
마법부에 남아있는 변절자. 이안의 명단을 보면 그가 누구를 의심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상은 장관들에게 정숙해 달라며 봉을 두드렸다. 이안의 자리는 비어 있었으나, 회의는 계속되었다. 당연하게도.
* * *
“이안. 소집 명령을 내릴까?”
내란 당시에 마법진 그린다고 얼마나 소란이었는지, 아직도 생생했다. 물론 지금은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여유가 있었으니 괜찮다만. 서두를 필요가 있지 않나.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했다.
“그리해 주십시오. 다들 아침부터 놀라겠군요.”
“우리만 하겠어? 술 마시다가 듣는 것보다는 낫지.”
대꾸 없이 발걸음을 계속하는 이안. 로만드로는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보고서를 들어보였다.
“이안. 아까 말한 마법사, 그 변절자 맞지? 저번에 솎아내지 못한 그 한 명.”
게일이 필리아에게 협박용으로 태웠던 쪽지 한 장.
세상만사 그만큼 운 좋은 자가 또 있나 싶었다. 배신자들의 말로가 어떤지는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신께서 두 번 없을 행운을 주었다면 그림자처럼 살 것이지, 어찌하여 소란에 정체를 보이는가?
“아직 모릅니다.”
“모르기는. 내가 자네를 몰라?”
“무죄 추정의 원칙은 아시지요?”
“농하지 말고!”
이안이 옆으로 지나가려 하자, 로만드로가 그를 따라 움직이며 막아섰다. 단단히 여문 입으로 보아, 쉽사리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안은 고개를 기울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마법진 만들기 전에, 그자를 먼저 잡아보는 게 맞지 않겠어? 진 전하에게도 다시 알려 가까이하지 마시라 청하고.”
“…그건 조금 곤란합니다.”
“어째서?”
이안이 결국 창가에 몸을 기댔다. 회의까지 하고 나왔건만, 아직도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다.
“그때의 변절자라면, 누구와 연관되어 있는지 짐작 가능하실 겁니다.”
“하이만?”
“그래서 그런가, 조금 곤란한 패를 쥐었더라고요.”
“그게 어찌 곤란해? 우리에게는 유리하지. 멸문가와 엮여있다면, 더욱 쉽게 처리할 수 있어.”
“로만드로 님. 기억하십니까? 클리포포드 사절이 중앙에 당도할 때, 제이럿 대장과 잠시 대면하였지요.”
“그래. 남쪽 접경지에서 마력이상반응장치 관련하여 신고가 들어왔다고.”
“의심하더라고요.”
“응?”
로만드로는 기억해 냈다. 이안과 제이럿이 단둘이서 밀담하였던 것을.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이안은 절대 말해주지 않았다.
“멜라니아를 살려서 보내고, 그 뒤에 그림자까지 붙인 정황을, 제이럿 대장이 의심해요. 제가 보았을 때는, 그 변절자가 멜라니아의 소식을 전해 듣고, 제이럿 쪽으로 흘려준 것 같거든요.”
그러니 어찌 바로잡겠나? 상대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파헤칠 필요가 있었으니. 이안은 벙찐 로만드로의 반대쪽으로 쏙 지나가며 일렀다.
“가서 필릭을 먼저 부르세요. 제가 조사단을 직접 이끌고, 함께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