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23
제323화. 가시를 품다
마법부로 들어서는 마법사들의 발걸음이 실로 무겁다. 퇴근이 익숙하지 않은 만큼, 출근 역시 낯설었으니까. 소파가 아니라 침대에서 잠을 자고, 책상이 아닌 식탁에서 밥 먹는다는 게 그렇게도 행복한 일인지 까맣게 잊었던 게라.
필릭은 부서 문을 열자마자 멈칫했다. 분명 바깥은 날씨가 맑은데, 어찌하여 먹구름이 보이는 건지, 원.
“안녕. 좋은 아침.”
“응. 공감 못 해.”
“왜들 그래? 어제 집들 들어갔잖아? 가서도 일했어?”
“아니, 쉬었지. 근데 한 번 쉬니까 여기 앉아있는 게 죽을 맛이다.”
“필릭, 몸은 좀 어때? 피곤해 보이는데.”
“아냐. 덕분에 괜찮아.”
“쟤는 체해서 임명식부터 쉬었잖아. 안 괜찮으면 억울하지. 자자, 서둘러 앉아. 네 책상에 뭐가 많이 와 있더라.”
필릭은 웃으며 자신의 자리를 확인했다. 여기저기서 넘어온 것들이 수북하였지만, 개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호출장. 장관실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보는 즉시 올라오라는 명령.
“호출?”
“옙옙. 바로 집무실 가시면 됩니다.”
“왜 그런지 아는 사람?”
필릭은 뒷장을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동료들의 분위기를 기민하게 확인하는 눈매. 하지만 무언가 특별한 것은 없고, 그저 업무 시작에 열중하는 모습들이다.
“일이 있으신가 보지. 집무실 매일 열려있는 거 몰라? 새삼스럽게.”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였다. 그만큼 오가는 사람이 많으니 문 닫을 새가 거의 없는 것이라. 구석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덧붙였다.
“외근 가신다고 하는데, 거기에 차출되어서 그럴걸? 한 대여섯 명 함께 간다고 하더라.”
“…어딜?”
“몰라. 네가 가서 직접 들어.”
마법사들은 대충 대답한 후, 자신의 업무에 집중했다. 필릭은 그 자리에 서서 호출장을 연신 내려다볼 뿐이다.
“뭐 잘못했어?”
“응?”
“뭐 잘못했냐고. 부르는데 가만 서 있으니까.”
“뭐래. 다녀올게.”
필릭은 아무렇지 않게 짐을 정리한 뒤, 사무실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마법사들. 서로 눈짓하며 의아하게 어깨만 으쓱거렸다.
“필릭. 안녕.”
“어어, 그래.”
집무실로 통하는 복도. 오가는 동료들이 인사해 왔지만, 필릭은 한 귀로 흘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웠으니까.
이전에도 호출이 몇 번 있긴 했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업무를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이었다. 이처럼 특별히 따로 부를 만한 일이 없었거니와, 하필이면…….
‘클리포포드, 그게 벌써 알려졌나 본데.’
조사단이라니. 갑작스레 외근 꾸릴 만한 사안이 무엇 있겠나? 필시 바리엘 외곽에서 일어난 그 일이 황궁 쪽으로 흘러들어 간 게 분명했다.
빠르기도 하지. 필릭은 모퉁이에 등을 기대고 선 다음 손톱만 잘근거렸다.
‘그런데 하필 나를 불러?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건가? 장관 눈치가 보통이 아니긴 해도, 예상보다 더 이른데.’
“뭐 하십니까?”
“아.”
필릭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황궁친위대 정복 차림인 바르사베가 필릭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마법사는 마법사인데, 하는 행동이 어찌 영 수상쩍다는 듯.
스윽.
그녀는 필릭을 지나쳐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여기서 이러고 서 있다는 걸 알리면 더더욱 이상하게 생각할 터. 필릭은 안으로 들어서는 바르사베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실례합니다. 제이럿 대장님이 가보라 하여-”
“얽.”
바르사베의 발치에 무언가 걸렸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베릭이다. 그녀는 심히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베릭의 옆구리를 쭉 밀었다.
“왜 여기서 자빠져있어?”
“어, 어금니네. 아, 나 왜 여깄지?”
“미쳤나 봐. 술 냄새!”
베릭 역시 밤새 진탕 마시다가, 오전 중의 급한 호출로 황궁에 들어선 것이었다. 정확히는, 제이럿이 보낸 시종에게 들쳐 업혀 온 것이지만.
베릭은 누운 채 뒹굴뒹굴 소파까지 굴러갔다. 전사들과 마시면 즐겁다만, 후폭풍이 실로 엄청난 게 문제다.
“우에에엑. 그 새끼들 간도 근육 빵빵인가.”
“뭐라는- 아, 이안 님.”
“그래. 왔군.”
안쪽 방에서 옷 갈아입은 이안이 바르사베를 맞이했다. 그 뒤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필릭도 함께.
필릭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이안을 살폈다. 외출복인 것으로 보아, 외근은 진짜인가 보다. 그렇다면 분위기는? 무언가 달라진 게 있나 싶었으나, 특별한 게 없다. 사무적이다 못해 무미건조한 눈빛. 조금 피곤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로만드로는 이안의 옷가지를 정리하며 대신 일러주었다.
“국경으로 내려가는 클리포포드를 만나러 갈 것이네. 원래는 마법사들끼리만 가도 되는데, 그, 제이럿 대장께서 안전에 특별히 신경 써주시는 터라. 친위대원 둘도 함께하는 거지.”
“둘? 나도요?”
“그럼 너는, 여기서 뭐 하게?”
“잠이나 자려고 했는데. 난 여기 소파가 그렇게 좋더라. 푹신푹신해.”
귀찮아하는 베릭과 끔찍하다는 듯 눈 감는 바르사베. 차라리 혼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표정이 여실했다.
이안은 소매 단추를 잠그며 책상에 앉았다.
“앉게. 필릭. 시간이 좀 걸려.”
“아, 네.”
“베릭과 바르사베를 제외하고, 나 포함 여럿이 함께할 것인데 아직 두 명이 오지 않았다. 명단은 따로 확인하고, 모두 모이면 건물 뒤편 정원에 마법진을 설계하라.”
이안이 내민 쪽지 한 장. 모두 잘 아는 이름들이다.
“로만드로 님은 안 가십니까?”
“나? 나는 남아서 장관님 대신 일 봐야지.”
“그렇군요.”
로만드로가 베릭의 목덜미를 잡고 일으키자, 바르사베가 받쳐주었다. 술자리에 찌든 옷을 갈아입히려는 것이다.
뒤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지만, 이안은 반응하지 않고 종이를 넘겨댔다.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까, 고민하던 필릭. 느닷없는 질문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중앙으로 기재된 주소가 본가인가?”
“예?”
“미혼인 것으로 아는데, 궁금해서.”
사락.
이안이 보고 있는 것은 필릭의 인적사항이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지방 출신입니다. 아시다시피, 마법사들 대부분이 그러하지요.”
“하긴. 나도 그래.”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만.”
“괜찮네. 사실인걸.”
마법사들 대부분이 천민 출신이라는 것. 이안도 최초의 귀족 마법사 명예를 갖고 있었지만, 그 시작에는 변경의 천출이라는 얼룩이 묻어있지 않나.
베릭의 머리를 빗기던 로만드로가 필릭을 연신 힐끔거렸다. 이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아주 훌륭하게 대하고 있다만…….
‘제이럿 대장이 의심한다니? 잠깐잠깐, 나 지금 숙취 때문에 좀 힘들어. 이안.’
‘멜라니아가 자신을 의탁하기 위해 러더포드 상단을 찾고 있음은 아시지요. 중간에 누가 끼어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필릭이 전해 듣고 만 것입니다. 멜라니아가 살아있다는 사실을요.’
‘그 뒤에 우리가 봐주고 있음도?’
‘우리라는 말은 삼가세요. 제가 한 것이니까요.’
“악!”
베릭이 놀라서 소리쳤다. 상념에 빠진 로만드로가 그의 머리칼을 너무 세게 잡아당긴 것이다.
“아이고, 미안. 아파?”
“살살, 아, 살살!”
부드럽게 좀 해달라는 말이, 로만드로의 머릿속을 웅웅 울리다 사라졌다. ‘우리’가 아니라 ‘자신’이 한 것이라는 이안의 발언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멜라니아를 살려 보내준 것은 멸문에 처한다는 황실 명령에 반하는 것. 가히 중죄 중의 중죄였으니, 이안은 오로지 자신이 한 일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그들이 폭풍 한가운데 있음을 실감했다.
‘그래서, 그걸 제이럿 대장에게 일렀다고? 필릭이?’
‘지금으로는 그게 유일한 추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붙여놓은 그림자가 들통났을 리 없으니.’
‘제이럿 대장은 어디까지 아는 것 같던가?’
‘확신은 아니고, 은근히 확인하는 쪽이었습니다. 그의 성격상, 제가 멜라니아를 살려 보냈음을 알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빤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긴 해. 바로 공론화하여 엎어버렸을 터.’
‘자세한 건 필릭을 더 조사해야 합니다. 어째서 그가 몸을 사리지 않고 행동에 나선 것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가만있었으면 반이나 가지. 쯧쯧.’
‘일단 결은 같습니다. 누구는 진 전하를 걱정하여 제가 물러서길 바라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부서가 높아지기 위해 물러서길 바라지요. 필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다만, 제이럿 대장을 이용했을 뿐.’
당시 이안의 견제 세력으로 급부상하던 게 제이럿이었으니, 그를 선택한 것이다.
필릭을 노려보는 로만드로의 눈매가 더더욱 가늘어졌다. 천하의 잡배 같으니! 다른 부서라면,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마법사는 그러면 안 되지! 이안이 어떤 존재인데!
“로만드로 님. 나 어제 술 먹고 뭐 실수했어요?”
“응? 어어, 어이고. 미안하다. 미안.”
“말로 해요, 말로.”
찡얼대는 베릭, 놀란 듯이 쳐다보는 바르사베.
로만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제 손을 내려다봤다. 두 손으로 붉은 머리칼을 꽈악 움켜쥐고 있었으니, 안 그래도 산발인 게 사자 갈기처럼 헝클어졌다.
필릭은 뒤를 힐끔 쳐다보며 다시금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런데 이안 님. 왜 저를…….”
이안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곤 필릭을 쳐다봤다. 질문의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그러자 필릭이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마법진은 제 전문이 아니라서요. 외근 경험도 별로 없고. 하하.”
“임명식 이후로 계속 쉬었잖은가. 다른 자들보다 몸 상태가 좋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혹, 아직 낫질 않았나?”
이안이 능청스럽게 되물었다. 임명식 끝난 직후 퇴근하여 지금까지 쉬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는 눈빛이었다.
“아닙니다. 전혀요.”
“그러면 다행이고. 사실 들어올 때 낯이 안 좋아 보여서, 쉬는 동안 문제가 있었나 싶었어.”
로만드로는 다시금 시선을 날카롭게 세웠다. 문제? 있겠지! 클리포포드 사절단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홀로 이곳과 그곳을 오갔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그쪽에 가서도 모종의 수작을 하였고! 마력을 갈아 썼을 터이니, 문제라 할 수밖에.
이번에는 바르사베가 로만드로의 팔을 툭툭 두드렸다.
“로만드로 님. 그, 베릭… 볼 찢어집니다.”
“어? 어어!”
좌우로 길게 늘어난 베릭의 볼따구. 그는 인제 체념한 듯이 눈을 반쯤 뜨곤 로만드로를 노려보는 중이다.
“…실수했네. 내가 어제 큰 실수를 했어. 어디, 말해봐요. 내가 취해서 뭐라 했어요? 로만드로 님 보고 뚱땡이라고 했어요? 아니면 짧은 다리? 수염 뽑아보고 싶다 했나?”
“펴, 평소에 나를 그리 생각했어!?”
“아니면 뭐!? 뭔데 자꾸 이래요? 아프다고!”
“이놈이, 증말!”
“알았다! 로만드로 님 저번에 추가 수당 삥땅 친 거 비비안나한 테 일렀는데, 그거 들켰구나!”
“그, 그걸 말했어? 너, 너는…! 이리 와. 안 되겠다. 찢을 게 아니라 아예 꿰매놔야지.”
쿠웅! 쿵!
소파 하나를 두고서 아주 시끌벅적하다. 바깥에서 인기척 내는 것 하나 들리지 않을 정로도.
마법사 한 명이 고개를 들이민 채 이안을 불렀다.
“이안 님. 나머지 둘도 출근했는데요. 정원으로 슬슬 나가심이…….”
“그래, 가지. 필릭. 준비해.”
“아, 네. 알겠습니다.”
“로만드로 님. 마법진 설계하려면 시간 좀 걸리니 준비하여 주십시오. 베릭, 씻고 나와.”
“살려줘! 이안아, 살려줘! 악!”
이안은 필릭을 데리고 정원으로 나갔다. 기초 술식을 써내려가던 마법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이안을 맞이했다. 그는 팔을 걷어붙인 다음, 필릭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위치 설정은 남쪽, 클리포포드와 가까운 국경선.”
“예. 문제 없습니다. 마력은 이안 님이 넣으십니까?”
“아니.”
이안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필릭이 주도하여 마력을 넣는다. 우리 중 제일 오래 쉬었으니, 문제없을 것이라. 그렇지, 필릭?”
“아, 네…….”
떠밀린 필릭이 웃음으로 난감함을 숨겼다.
시침이 중천을 가로지르는 시간. 곧 있으면 해와 검은 달이 함께 뜬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