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24
제324화. 국경을 넘기 전에
이안의 호출을 받은 마법사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연신 바닥만 살펴보고 있었는데, 멀리서 본다면 실험 결과 살피는 연구진이라 오인할 정도였다. 팔짱을 끼고,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몇몇은 머리를 연신 쓸어넘기며 혀를 차댔으니까.
“이상하네. 위치상으로는 남쪽이 맞는데, 정확한 지점을 잡을 수가 없어.”
“마지막 술식이 잘못된 거 아닐까?”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아. 그 윗줄이라면 몰라.”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이안 님 부르자.”
마법사들은 고개를 틀어 정원 입구 쪽을 바라봤다. 이안이 타 부서 관계자와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는데, 그 만남이 길어지고 있었다. 끝날 만하면 다른 부서에서 사람이 도착하는 게, 오늘 중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부서들. 휴가 전날에도 저러더구먼.”
이안이 처음으로 휴가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마법사들은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고작 이틀이었지만, 뭐 어떠한가?
설레는 마음으로 이안의 외출을 기다린 것도 잠시. 다른 부서는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일거리를 들쳐 메고 방문했다. 이안이 없으면, 단 이틀일지라도 황궁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라.
“이번 외근은 얼마짜리래?”
“모르겠어. 수당 미정이라고 적혀있더라.”
몇 시간 혹은 하루 그 이상이 걸릴지 아무도 들은 바가 없었다. 마법사는 필릭에게 지팡이를 던져주며 고갯짓했다.
“필릭. 나머지는 네가 좀 봐주라. 힘들어 죽겠어.”
“고작 마법진만 그렸으면서, 무슨.”
“근데 너 아까부터 안색이 안 좋아. 왜 그래?”
필릭이 신경 쓰지 말라며 등 돌리자, 이쪽으로 다가오던 이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천천히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마법진을 살폈다. 숙제 검사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처럼, 그들 사이에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안은 시선으로만 수식을 읽어내렸고, 암산으로 계산을 진행하는 듯 보였다.
“잘했군.”
째깍째깍. 아주 짧은 순간이었으나, 몇 분처럼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마법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우와, 다행이다. 그런데 이안 님. 위치 설정이 제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해도 남쪽 국경선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마치 자기장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곳만 짚으면 밀려나요.”
“얼마나?”
“남쪽 국경 수비 4번 관문에서 5킬로미터 정도입니다.”
턱을 괴며 곰곰이 생각하던 이안은 뭔가를 깨달았다. 하지만 답을 내놓기 전, 은근한 말투로 주위를 떠보았다. 정확히는 마주한 필릭에게.
“짐작 가는 바가 있는가?”
필릭이 쉬는 동안 클리포포드와 접촉하였다면, 비슷한 이동 마법을 사용했을 터. 그때도 이런 이상반응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필릭은 어수룩한 미소만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이전 기록을 찾아보면 해답이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촉박하여 불가합니다.”
이안은 가까이 선 마법사에게서 지팡이를 받아들고 마법진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스윽, 부드럽게 그어지는 선을 따라 빛이 들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얼마 전, 클리포포드와 접경한 남쪽에서 마력이상반응 신고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싶어.”
“수치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평년보다 세 배정도.”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그만하면 확실히 마법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위치는 최대한 가까이 붙여서 조정하고, 슬슬 발동함이 좋을 것 같은데. 필릭.”
이안은 시계를 딸깍거리더니 필릭에게 손짓했다. 베릭과 바르사베가 곧 있으면 올 터. 서서히 마력을 불어넣는 게 좋겠다.
“제, 제가 먼저요?”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 넣어보아라.”
마법사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뒤로 물러섰다. 이안 님이 왜 저러실까? 아무리 필릭의 몸 상태가 좋다 하여도, 홀로 시작하는 건 비효율적이건만.
필릭은 물러설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자신의 마력을 개방했다.
지이잉. 지잉.
마법진과 맞닿은 손바닥 아래가 환히 빛났다. 빛은 천천히, 수채화처럼 물들더니 이내 사방을 가득 채웠다. 가로세로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들.
필릭의 가슴통이 조금씩 높게 솟았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호흡을 깊게 하고 있다는 증거라.
“후우…….”
내색하지 말자, 의심받을 수 있다.
필릭은 시작과 동시에 그리 다짐했건만, 오래 지나지 않아 휘청이고 말았다. 지금 그에게는 아주 최소한의 마력만 남아있었으니까. 중앙에서 국경선까지 오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필릭이 어색하게 이안을 힐끔거렸으나, 그는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잠수한 사람이 언제 올라오는지 궁금해하는 아이처럼.
지이잉. 지잉.
멈추라는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조금씩 한계가 느껴지는 듯한데, 이안은 제 일 아니라며 담담했다. 지켜보던 마법사들이 먼저 웅성거릴 정도였다.
“필릭, 상태 안 좋아 보이는데.”
“그러니까, 처먹는 것 좀 잘하지.”
“이안 님. 다음은 제가 할까요?”
누군가 자진하여 나섰으나, 이안은 손만 들어 올리며 저지했다. 나서지 말라는 분명한 의사 표시다. 필릭은 결국 주저앉았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헉헉거렸다.
“계속해라. 필릭.”
하지만 이안은 봐주지 않았다. 마력을 계속 넣으라고, 너의 모든 걸 바쳐보라는 지시가 거두어지지 않았으니. 결국, 필릭의 코에서 피가 터졌다.
“필릭!”
“이안 님, 필릭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군.”
이안은 초시계를 멈추며 중얼거렸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만하면 비이상적인 결과다. 필릭의 몸안에 마력이 거의 없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이어서 다들 동시에 마력을 발동하라. 베릭과 바르사베가 도착하면 바로 출발할 것이다.”
“필릭도 갑니까? 이런 몸으로요?”
“한계치에 다다른 것 같은데요. 가더라도 업무에 투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필릭, 너 대체 뭐 했길래 그래? 체한 건 둘째치고, 머리에 피가 몰릴 정도면 마력이 거의 없는 거 아니야?”
동료들이 걱정하는 투로 물었으나, 이안은 되려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입가에 걸려있는 은근한 미소가 그러했다.
“준비해.”
필릭을 데려가겠다는 단호한 결정. 변절자가 마력 하나 쓰지 못하는 몸이 되었으니, 그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저 멀리, 로만드로와 함께 베릭, 바르사베가 모습을 보였다. 베릭은 제 몸만 한 배낭을 멘 채로 손을 흔들어댔다.
“이아아안!”
“뒤에는 뭐지?”
“이거? 도시락. 혹시 몰라서 조금 많이 싸달라고 했어. 국경선 쪽은 허허벌판이라며.”
너무 과한데. 이안이 웃으며 눈썹을 찌푸리자, 로만드로가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그는 반쯤 엎드린 필릭의 뒤통수를 계속 경계했다.
“이안. 준비되었다네. 필릭을 데리고 가면, 바로 수색 나가보지.”
“단단히요.”
“응. 걱정 마. 침대 밑 동전 하나라도 탈탈 털어버리려니까. 이쪽은 맡겨두고, 조심해서 다녀오시게.”
필릭을 중앙에서 떨어뜨리는 연유 중 하나가 바로 수색이었다. 그자와 멜라니아를 연결한 주체나, 혹은 숨기고 있는 것, 나아가 클리포포드와의 문제 따위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자, 그럼 출발해 보지.”
“알겠습니다, 필릭, 물러서 봐.”
“내가 좌측을 맡겠다. 너는 우측으로 돌아가.”
“이안 님. 시작하겠습니다.”
지이잉. 지잉.
솨아아악!
감질나는 마력 탓에 반응만 겨우 하던 마법진. 마법사들을 비롯하여 이안까지 가세하자, 하늘이 갈라졌다. 검이 베고 지나간 것처럼 날카롭고 우아한 곡선이 그려졌다. 포탈의 뼈대인 것이다.
“와, 오랜만.”
베릭은 손으로 그늘을 만들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란 때와 비교하면 훨씬 작지만, 그래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다.
“제국민들에게 검은 달은 그리 유쾌한 기억이 아니니, 서둘러라.”
파아앗!
검은 달이 떴을 당시, 황궁은 유례없는 폐쇄를 맞이하지 않았나. 이안의 재촉에 어둠이 깊어졌다. 완연한 달이다.
“다녀올게요, 로만드로 님!”
“이안 님 잘 모시고, 사고 치지 말고, 다치지 말고, 응? 말 잘 듣고, 제발! 까불거리지 마!”
“아하하! 뭐래, 내가 앤가?”
“애만큼이나 되면 말을 안 해!”
베릭은 로만드로의 당부를 무시하며 마법사들에게 매달렸다, 그들은 끙끙거리며 가방을 무릎으로 치워댔다.
“왜 이따위 무거운 걸 달고 왔어?”
“이따위라니? 도시락한테 사과해! 당장!”
이안을 선두로 마법사들이 도약했다. 천천히 날아오르는 모습. 로만드로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입을 벌려댔다. 내리쬐는 햇빛 사이로 선신(善神)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잘 다녀오라는, 로만드로의 인사가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모두가 포탈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래. 궁금했지! 천려들이 이거 타고 올 때 기분 되게 이상했다 하더라고.”
사위를 알아볼 수 없는 어둠. 베릭은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뛰었다가 구르기를 반복했다.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빛. 무리는 북극성을 따라 움직이는 여행자처럼, 그것만을 지표로 삼으며 나아갔다.
“으윽…….”
“필릭, 괜찮아?”
“응. 조금만 부축해 줘.”
터덜거리며 걷던 필릭이 동료에게 도움을 구했다. 아까 전을 제외하고, 이안은 단 한 번도 필릭을 살피지 않았다. 마법사는 당최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필릭에게 속삭였다.
“너, 이안 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지?”
“뭐?”
“그렇지 않고서 이안 님이 저러실 리 없잖아. 솔직히 말해. 너 뭐 잘못했어?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도와줄게.”
필릭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멈칫거렸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안의 처사가 너무했던 게 사실 아닌가? 무리한 명령으로 부하가 피를 보았고, 몸 상태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정 강행이다.
그런데 여기서, 되려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를 묻다니. 필릭은 연신 코를 닦아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걸 원한 건 아닌데.’
솔직히 말하자면, 동료들의 동정심 유발 및 조사단에 위화감 조성을 위해 명령에 응했다. 제아무리 상관의 지시일지언정, 마력은 지극히 개인적인 힘. 원하면 멈출 수 있었으니까.
“필릭?”
동료는 필릭의 안색을 살피며 되물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낯을 갈무리한 다음, 필릭은 한껏 안쓰럽게 중얼거렸다.
“그러면 그것 좀 부탁할게…….”
“이안아아아! 저기, 자세히 보인다!”
안 그래도 작은 목소리, 베릭의 우렁찬 외침 덕분에 은밀히 전달할 수 있었다. 바르사베가 검을 다잡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클리포포드 사절단일까요?”
위치상으로 보았을 때, 포탈의 입구가 하늘에 나 있나 보다. 드넓은 대지와 무성한 잡초, 그리고 척박한 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몇 번이고 보았던 클리포포드의 마차들이다.
“위치를 잘 잡았나 본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클리포포드가 국경선에 거의 다다른 게 맞았네요. 운이 좋습니다.”
마법사들이 화색을 보이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차가 점점 빨라져?”
“…어? 어어?”
달그락거리던 대형 마차들이 속도를 내더니, 전력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아해서 멈춰선 마법사들 옆으로, 이안이 스쳐 지나갔다.
“서둘러라.”
“예?”
“저쪽에서도 포탈을 인지한 것이니-”
타닥타닥!
“서둘러 국경을 넘으려 함이다.”
그들도 이안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몸을 내던지자, 엄청난 바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날아들듯 떨어지는 일행들.
클리포포드의 메이가 망원경으로 그걸 확인하곤 소리쳤다.
“꺄아아악! 맞아요! 맞습니다! 왕자님, 마법입니다! 검은 원에서 마법사들이 나왔어요! 미치겠네. 왜 저자들이 저기서 나오는지, 원! 집에 좀 가자, 젠장!”
“어서!”
메이의 비명에 노아 역시 덧붙여 명령하자, 마부들의 채찍이 연달아 휘갈겨졌다.
타닥타닥!
히이잉!
“마차 속력을 더욱 올려라! 국경까지 단숨에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