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26
제326화. 국경 앞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던 마부가 슬며시 눈을 떴다. 저를 덮치는 무성한 이파리. 시간이 정지한 기분이었다.
멈추면 살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말도 안 돼.
그는 자신의 뒤에 바짝 따라오는 마차들을 알고 있다. 여기서 갑작스레 멈추면, 연쇄된 충돌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다면 맨 앞의 자신은 깔려 죽을 게 자명하지 않나? 신비로운 소년이 경고했지만, 이성적으로는 오히려 멈추지 않고 내달리는 게 사는 길인 듯싶었다.
압생트 빛의 시선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느리게 흘러가던 세상을 원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지휘관의 명령.
“이 새끼가, 미쳤어?! 뭐 해?!”
쿠구궁! 쿵!
저도 모르게 고삐 쥔 손을 놓았나 보다. 지휘관이 마부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대며 소리치자, 마부는 반사적으로 더욱 세게 줄을 잡아당겼다.
“옆으로! 옆으로 지나가!”
마차는 솟구치는 대지를 피해 좌우로 갈라졌다. 다시금 관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붉은색의 거대한 깃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멈추라는, 국경을 열 수 없다는 신호다.
부우우우-
물소뿔 나팔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고, 땅의 기울기로 인해 휘청이는 마차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앞서 나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단호히 손짓했다. 마치 정해진 선을 넘지 말라는 듯.
쿠구궁!
“으아아악!”
“살려, 살려줘!”
이안이 그은 손길을 따라 땅이 갈라졌다. 세계수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그곳은 절벽이 되어 단숨에 마차를 삼켜버렸다.
굉음과 함께 찢어지는 마부들의 비명. 뒤따르던 자들이 놀라서 급하게 말머리를 틀었다.
히이잉!
발목을 타고 오르는 뱀과 같다. 세계수의 가지들은 순식간에 마차 바퀴를 옭아매어 단단히 붙잡았고, 말들은 저를 가로지르는 가지에 걸려 속절없이 넘어졌다. 모든 게 엉망으로 내려앉는 순간이다.
“하아, 하아…….”
살아남은 자들은 제 몸이 친친 감겨있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서서히 아무는 대지. 그 안으로 떨어졌던 자들의 마지막이 어떨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죽음의 문턱 아닌가. 넘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타앗.
이안은 가볍게 내려와 주위를 둘러봤다. 마차 대부분이 기능을 상실하고, 부상자 또한 적지 않아 보였다.
노아 왕자가 탄 마차는 어디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베릭을 발견했다. 메이 사절에게 멱살이 잡힌 채로 헤실헤실 웃는 모습이다.
“이, 정신머리 온전치 않은 자! 과격한 무뢰배! 멍청이! 하수구 물이나 퍼먹어! 왕자님 죽을 뻔했잖아!”
“아하하. 뭔 욕이 그렇게 고상해? 타격감 하나도 없고요. 그러니까 진작 멈추면 좀 좋아?”
“이, 이, 시정잡배!”
“이, 이, 싀정좝배에!”
“따라 하지 마! 너-!”
열이 끝까지 오른 메이가 베릭의 멱살을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그러는 한편, 마법사들 역시 지상으로 내려와 가까이 몰려들었다. 무력 충돌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으니, 다들 전투태세를 단단히 취한 채로. 바르사베 역시 검을 잡고 호위병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스윽.
하지만 이안은 경계를 풀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곳은 아직 바리엘의 영지. 클리포포드가 무력으로 응수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고 말 터.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기에, 노아 왕자가 취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안 경. 이게 무슨 일이지?”
“노아 왕자님. 괜찮으신가요?”
모두가 왕자의 마차만은 안전하게 사수하려 해서 그런지, 다른 것들에 비해 상태가 온전했다. 노아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한껏 찌푸려진 미간. 그는 항의하듯 손짓하여 큰소리를 냈다.
“바리엘에서는 손님 배웅을 이런 식으로 하는가? 과연 대단하고 대단하도다. 대국이라 차마 내 상식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군. 앞에서는 귀빈이라 칭하고, 뒤에서는 이런 취급이라. 하!”
“송구합니다만, 최선이었습니다. 마치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저희를 보자마자 속력을 높여 도망가시니. 어쩌겠습니까?”
“클리포포드가 바로 저 앞이다. 자국으로 돌아가는 기쁨으로 인한 것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원.”
발뺌이다. 자신들은 마법사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였고, 그저 가던 길을 갔을 뿐이라. 옆에서 듣던 베릭이 손으로 엑스 자를 그리며 반박했다.
“이안아. 저거 거짓말이다. 내가 멈추라고 했고, 왕자님 들었음. 진짜진짜.”
“갑작스레 공격을 당했는데, 어찌 멈출 수 있나? 무슨 상황인 줄 알고? 아무튼, 이안 경. 마차를 비롯하여 피해가 극심하니, 이에 관해서는 공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다. 바리엘과 클리포포드가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참으로 황당하군. 왜?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이시려는 건가?”
노아는 단단히 화난 낯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단번에 경계심을 세우는 사람들. 이안은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들었다.
“죽이다니요. 과격한 언사는 삼가주십시오.”
“과격은 자네들이 한 짓을 과격이라 하는 게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와중, 혹 습격을 받지는 않으셨습니까?”
“습격? 받았지. 바로 지금!”
노아 왕자는 말할 것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안은 천천히 왕자의 마차를 둘러봤다. 그의 걸음걸이를 따라, 왕자와 메이의 눈길이 불안하게 따라붙었다.
“바리엘에서는 클리포포드가 괴한의 습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여, 저희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이리 왔지요.”
이안은 짐마차를 살폈다. 짐들이 뒤죽박죽 섞여 엉망이었지만, 황궁에서 출발할 때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나, 멈추라는 지시에 불응한 점과 저희를 보고되려 속력을 높인 점을 토대로, 클리포포드 마차가 괴한에게 탈취당했을 수도 있겠다 판단했습니다.”
“말도 안 돼. 언제 멈추라고 했나?”
“네. 했습니다. 못 들으셨나요? 확실히 소통에 문제가 있긴 했군요.”
했나? 베릭이 의아하게 턱을 긁적였으나, 이내 곧 자신의 존재가 그 신호였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관문소에서 펄럭이는 깃발. 물소뿔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저쪽에서 국경수비대가 다가오고 있음이 보였다.
“하!”
노아 왕자는 기가 찬다는 듯 팔짱 끼며 이안 앞을 가로막았다. 짐마차 안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다.
귀엽기는. 이안이 싱긋 웃으며 옆으로 돌아가자, 노아 왕자가 재빨리 따라붙었다.
“저곳만 넘으면 클리포포드 관문소가 있어. 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만 비켜주지? 서둘러 돌아가 이 사태를 알리고 싶으니까.”
“노아 왕자님.”
눈매가 워낙 가늘어서 눈동자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으나, 이안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일렀다.
“무슨 일이 있으셨지요?”
“답을 정해놓고 묻는 자에게는 침묵이 제일이지.”
“정확히 하십시오. 지금 노아 왕자님을 가로막고 있는 게 무엇인지. 바리엘과 클리포포드 관계에는 아직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수많은 부서의 한낱 장관일 뿐이고, 왕자님께서 마주하실 분은 황궁에 계시니까요.”
비밀을 털어놓고 협조를 구하라는 회유였다. 자신이 황궁에 어떤 식으로 보고를 올리는지에 따라, 수많은 선택지가 생겨날 터였으니.
노아 왕자가 잠시 침묵하며 고개를 돌렸다.
‘거의 확신하는데.’
황궁의 실세가 마법사들을 이끌고 온 것 자체가 이미 글렀는지도 모르겠다.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일찍 출발할걸. 그랬다면 진작 국경을 넘었을 터인데.
노아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갈수록, 이안의 안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마주한 노아 대신, 한 발 떨어진 메이를 주시했다.
스윽.
‘마법사들…….’
이안이 노아에게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메이는 한층 편하게 마법사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는 자가 섞여 있는지 가늠하는 태도다.
이안은 베릭에게 고갯짓하여 짐마차를 수색하라 일렀다.
“베릭. 여기 상자 모두 열어봐.”
“오케오케.”
베릭은 바로 짐마차로 뛰어들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열고 젖히며 찢어버리는 탓에, 너절해진 것들이 바깥으로 밀려왔다. 노아 왕자는 머리를 짚으며 다시금 항의했다.
“이안 경. 무례가 지나치군. 밀매에 가담한 듯한 취급은 참을 수 없네.”
“이런, 왕자님. 차라리 밀매가 나을지도 모르겠지요. 진 황태자 전하께서 맡긴 보석, 보여주시겠습니까?”
왕자는 물론, 메이 사절 역시 멈칫거렸다.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저 징글징글한 마법사, 아니지. 이안 장관은 모두 알고 온 게 분명했다.
노아가 난감하다는 듯 입술을 짓이기자, 메이가 나섰다.
“보석은 짐마차에 싣지 않았습니다만, 상황이 이러하여 마차 수습 후에나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어찌하여 보석을 찾으시는지 목적을 밝히십시오. 그 전에는 저희도 내어드릴 수 없군요. 혹시 모를 일 아닙니까?”
이안이 보석을 탐하여 황궁 몰래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전제한 발언이다. 옆에서 듣던 마법사들이 반발하듯 되받아쳤다.
“정식으로 대회의에서 소집한 조사단입니다. 메이 사절, 말씀을 가려주세요. 애초에 그쪽이 의심스러운 짓만 하지 않았다면 피해 없이 넘어갔을 사안입니다.”
“의심스러운 짓이라니!”
분위기가 다시 과열되자, 이안과 노아가 동시에 손을 들어 부하들을 저지했다. 안쪽을 다 살핀 베릭이 별거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안아. 계속 조져?”
“되었다. 보석은 다른 곳에 있다 하니. 그리고 메이 사절. 아까부터 누굴 찾으시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제가 찾기는 누구를…….”
“관문소 쪽에 마법사 두 명이 더 있습니다. 오트릭과 필릭이라는 자입니다.”
이안이 콕 짚어서 이름을 일러주자, 마법사들이 무언가를 감지했다. 출발 전부터 이안이 필릭에게 냉랭하지 않았던가? 무슨 일인지 몰라서 모른 척 눈 감고 귀 막고 있었건만, 이쯤 하니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이라.
“…이안 님. 필릭, 그 새끼.”
“아니지요? 지금 제가 생각한 게 아니라 말씀해 주십시오. 세상에, 젠장.”
지금 이 사달과 연관이 있다고.
클리포포드와 모종의 접촉이 있었던 것이라고.
마법사들의 물음에 이안은 고갯짓으로 질문을 넘겨버렸다.
“나도 자세한 것을 알고자 이리 왔으니, 물어보려면 왕자님께 물어봐야겠구나.”
모두의 시선이 노아에게로 쏟아지자, 그는 자포자기 한 것처럼 머리를 쓸어넘겼다. 진득한 한숨은 덤이다.
메이가 주먹을 꽉 쥔 채로 왕자를 지키기 위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다들 눈빛이 어찌 그러십니까?”
“시간이 가는군요. 서둘러 말씀하지 않으시면 제가 우선적으로 임의 보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황은 충분했다. 이것이 공식으로 황궁에 접수되면, 바리엘과 클리포포드 동맹은 완전히 엎어지게 될 터.
명분을 통한 적대가 성사될 것이고, 이는 온전히 클리포포드가 감내할 사안. 그들은 버고스 측을 잘라내었으니까 말이다. 밧줄이 모조리 끊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안 경.”
노아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치고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자리를 조금 멀리하지.”
“물론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그리고 미리 이르지만, 클리포포드를 이리 공격하여 피해 입힌 것에 대한 걸 인지하길 바라네.”
어느 정도, 서로서로 이해하며 넘어가자는 밑밥이다. 두 사람이 시끄러운 상황에서 멀어지자, 노아는 바로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그래. 내 진실로 털어놓지. 보석은 없어.”
“그럴 줄 알았습니다.”
“자네, 재수 없다는 소리 종종 듣지 않나?”
“글쎄요. 뒤에서는 모르겠는데, 앞에서는.”
이안이 웃을수록 노아 왕자의 인상은 구겨져만 갔다. 전말을 이르려는 순간.
콰아앙! 쾅!
관문소 쪽에서 들려오는 폭발음. 마법의 흔적이다.
모두가 놀라서 그쪽을 바라보았고, 노아가 눈빛을 반짝였다. 혹여, 타개할 수 있는 변환점이 될까 싶어서. 하지만 이안은 그런 왕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일렀다.
“왕자님.”
필릭의 마력은 바닥에 다다랐다. 그렇다면 저걸 행한 자가 누구겠는가?
이안의 지시에 따른 오트릭의 힘이다.
필릭이 수상한 짓을 하면 가차 없이 제압하라는.
“단꿈은, 돌아가시어 꾸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