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27
제327화. 비밀 계약
이안과 그 일행이 클리포포드 마차와 맞서고 있을 때.
오트릭은 필릭을 부축하며 관문소 앞에 내려왔다. 대기자가 거의 없어 한산한 분위기다. 이쪽은 클리포포드 왕국과 제일 가까운 관문소였기에, 다른 곳보다 검사 및 절차가 까다로운 게 그 이유였다.
안쪽에서 대기하던 국경수비대원들이 놀라서 뛰쳐나왔다.
“마, 마법사?”
“안녕하십니까.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곧 있으면 클리포포드 사절단이 온다는 소식만 들었는데요.”
“괜찮으세요? 이쪽 분은 영 안색이…….”
콰아앙!
오트릭이 신분증을 보여주자,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수비대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낮추었고, 망원경을 들어 근원지를 살폈다.
마차 군단이 내달리는 와중, 그 허공을 재빠르게 유영하는 물체. 자세히 보니, 사람이다. 눈으로 보아도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빛줄기가 번쩍였고, 지진과 같은 흔들림이 발바닥을 타고 올랐다.
오트릭은 초소 안으로 들며 소리쳤다.
“국경을 임시로 막을 것이오. 클리포포드 마차를 지나가게 해서는 안 되니, 멈추라 신호를 올리시오.”
“네? 이미 허가가 다 난 것인데요?”
“시간 없으니까, 좀!”
“아, 네네! 알겠습니다! 이봐! 문부터 먼저 막아!”
“물소뿔! 깃발!”
조심히 가시라, 활짝 열린 국경 옆에서 열심히 손 흔들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다.
수비대들은 허겁지겁 움직이며 쇠사슬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계초소 위로 올라가 붉은 깃발을 흔들었고, 이내 물소뿔 나팔 또한 번갈아가며 불어댔다.
“더 크게 부시오! 밥 안 먹었어?”
“바, 밥 먹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속도가 영 안 줄어드는데요. 멈추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내달리는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문제가 생긴 것처럼 최대한 내지르고 있는데, 이대로 충돌한다면? 마법사들은 어쩔지 몰라도 저들은 대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수비대들이 걱정스레 중얼거리자, 오트릭이 짜증 섞인 화를 내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막아내야지. 앞으로 가서 장애물이라도 설치해. 나도-”
지이잉. 지잉.
오트릭이 마력을 개방하자, 수비대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얼어붙었다. 말이 국경수비대지, 그들은 한평생 변방에서 나고 자란 자들 아닌가? 오트릭이 힘을 모으자, 옆에서 죽은 듯이 있던 필릭이 그의 팔을 잡아챘다.
“오트릭. 나 마력 좀.”
“어?”
“아까 봤잖아. 나 지금으로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어. 조금이면 되니까. 어서.”
아주 자연스러운 요청이었다. 마법사들끼리 힘을 주고받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특히나 이럴 때는 혼자 혼신의 힘을 다하기보다, 조금 모자라도 두 명이서 보호벽을 만드는 게 효율적이었으니까.
필릭이 손을 내밀었지만, 오트릭은 난감하게 먼 산만 보았다.
“미안하지만, 괜찮아. 나 혼자 해볼게.”
“…네가 방금 무슨 말 했는지는 알아?”
마차 한두 대도 아니고, 수십 대가 전력으로 달려오는데 그걸 혼자 막아보겠다고? 필릭이 어이없이 쳐다보자, 오트릭은 귀까지 벌게져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아, 아는데. 미안. 넌 뒤에서 수비대를 도와줘. 그게 좋을 것 같아.”
“마, 마법사님! 저기, 갑자기 땅이 솟습니다!”
“우아아악! 저, 저, 저거 괜찮은 건가요?”
“누가 물소뿔 쉬라 그랬소? 계속 불어!”
“…….”
수비대의 언질에 오트릭이 고개를 돌렸다.
그 틈을 타서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필릭. 인제 보니 모든 게 확실해졌다. 출발 전, 이안이 자신을 시험하며 마력을 죄다 빼놓은 것부터 시작하여 지금 동료가 힘을 나눠주지 않는 것까지.
오트릭은 아직 자세한 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으나, 그 뒤에 이안의 명령이 단단히 버티고 서 있음은 분명했다. 필릭은 쿵쿵 울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계속 뒷걸음질 쳤다.
‘마법사들이 나섰으니 클리포포드 마차는 멈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모든 전말이 드러나게 되겠지. 그럴 바에, 우선 바리엘을 떠나있는 게 좋을 터. 모두 마차 쪽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지금만큼 더한 기회는 없을 것이라.
필릭이 냅다 국경 쪽으로 내달렸다.
타닥타닥!
‘저것만 넘으면 당장 회피는 가능해.’
“어? 마법사님? 왜 그러-”
“비켜!”
“마법사님!”
“필릭!”
앞으로 넘어지듯 온 힘을 다하여 달리는 필릭.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수비대 어깨를 있는 힘껏 밀어내며 그대로 지나쳤다. 설마 마법사가 불법 출국을,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감행할 것이란 생각을 못 한 것이다.
작은 소란에 오트릭이 뒤를 돌아봤고, 이내 반사적으로 마력구를 모아 터트렸다.
‘오트릭, 혹여-’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다. 이안이 은밀하게 전했던 명령이 만들어낸 반응.
‘필릭이 인질을 삼는다거나, 도망치려고 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면, 단호하게 제압하라.’
퍼어엉! 펑!
필릭이 앞으로 구르고 말았다. 사태를 파악한 수비대원들이 그의 등으로 달려들어 저지했고, 이내 다른 자들도 힘을 보탰다.
이를 꽉 깨무는 필릭. 필사적으로 온몸의 기력을 쥐어짜내 마력을 개방했다. 제 사지에 달라붙은 자들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필릭! 너 대체-!”
“놔! 이거, 놓으라고! 젠장!”
“무슨 짓을 한 건데!”
“으아악! 마법사님들! 왜, 왜들 이러세요!”
지이잉! 지잉!
퍼엉! 콰아앙!
크고 작은 마력의 맞물림으로 인해 굉음이 터졌고, 신음과 비명 그리고 고성 따위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 * *
“음. 조져놨네. 조져놨어.”
베릭은 밧줄로 칭칭 감겨있는 필릭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한 모습. 베릭은 입술을 들췄다가, 눈꺼풀을 열었다가, 힘없이 늘어지는 팔 따위를 장난감처럼 흔들어댔다.
바르사베가 무릎으로 그의 어깨를 툭 쳐댔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마력봉인석 채워.”
“예예. 알겠습니다요. 근데 얘도 어금니 털렸을까?”
“…죽는다.”
킬킬대며 웃는 베릭과 달리, 오트릭은 관문소 구석에 앉아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동료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이 마력으로 누군가를 헤쳤다는 죄책감이 엄청난 것이라. 마법사들이 옆에서 그를 토닥였으나, 그럴수록 오트릭은 더욱 오열했다.
“흐윽, 아니, 나는 필릭이…….”
“알아, 알아. 저 새끼가 X새끼야.”
“외근직이 아니니까, 흐윽, 사람한테 마법 쓴 적이 없는데 그래서 저렇게, 미안해요. 수비대원들도…….”
“아이고, 아닙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래 봬도 군인인데요. 작은 상처는 일상이지요.”
한산했던 관문소가 이리 시끌벅적한 것은 일상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클리포포드 사절단의 부상자들이 인근 마을 의사를 기다리고 있었고, 거동이 가능한 자들은 반파된 마차를 수습했다. 이안은 그 모습을 쭉 둘러보며, 망연자실 서 있는 아이를 불렀다.
“자. 노아 왕자님.”
대답이 없다.
노아의 옆에 딱 붙어있는 메이. 그녀는 의도적으로 필릭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는데, 되려 그 모습이 확신을 갖게 했다. 아는 얼굴임이 분명했다.
“마법사들이 마을에서 의사를 데려오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가 정리되면, 클리포포드 쪽으로도 상황을 알리지요. 그 전에, 나눌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요.”
모든 걸 털어놓기 전에는 바리엘 영지 밖으로 나갈 수 없노라. 그리되면 클리포포드에 어떠한 도움도 요청할 수 없으니, 황무지에 덩그러니 잡힌 신세다.
“알겠다고, 알겠어. 하아.”
노아는 메이에게 눈짓하여 물건을 가져오라 일렀다.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이안과 노아만이 소란에서 떨어져나와 마주 앉았다.
“며칠 전이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사흘 전, 밤중에서 새벽으로 추정됩니다.”
“그래. 사흘 전. 별것 없는 날이었다. 숲을 지나가는 도중 밤을 맞이했고, 거기서 자리를 만들었지. 그리고 그대들의 의심대로, 습격을 받았어.”
끼이익.
메이가 조심스럽게 들어와 묵직한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잘그락, 무언가가 가득 들어있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도적 무리인 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이상한 것인지라. 결국에는 검을 들었지.”
노아는 자신의 검을 보여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검집에 보석이 박혀있는 터라 장식용인 줄 알았건만, 아니었나 보다. 검날이 무딘 검은색이다. 마력봉인석을 녹여 입힌 게로다.
“하지만 필릭에게는 자상이 없었는데요.”
“응. 그래. 내 검과 맞선 건 다른 자였거든.”
“…가담자가 또 있군요.”
“예상하지 않았나? 자네라면 몰라도, 저자는 다른 마법사들과 다름이 없어 보이는데. 클리포포드 공식 사절단을 어찌 혼자.”
저주로 인해 못 볼 꼴 많이 보였던 자였지만, 일국의 후계자였다. 바리엘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당연히 위험에 대비했을 것이요, 그 옆을 지키는 호위들 역시 기사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일 터. 이안이 궁금하다는 듯 고갯짓하자, 호위들이 검을 빼내 확인해 주었다.
스릉.
“클리포포드는 귀한 마력봉인석을 저런 식으로 쓰십니까? 고작 검에 녹이다니요.”
“왕국이 견제해야 할 마법사는 바깥에만 있으니, 저것이 우리에게는 최선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황궁에서는 마법부를 결속하는 게 목적이고, 타국에서는 죽여 없애는 게 우선이니.
“그래서 필릭과 함께한 자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노아는 고갯짓으로 주머니를 가리켰다. 입구를 열어젖히니, 이안이 아주 잘 아는 보석이 한가득했다.
이드갈. 호박색으로 반짝이는, 마법사들의 아킬레스건.
“…그렇네요. 제가 더 잘 알겠어요.”
그자가 바로 필릭에게 멜라니아의 생존을 일러준 자다. 멜라니아와 접촉하였다는 것은, 러더포드 상단과 연관 있다는 뜻. 이드갈은 모든 걸 확신하게 하는 증거물이나 다름없다.
“그쪽에서는 전하가 하사한 보석을 원하더군. 무슨 의도인지 명백해 보였지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었어.”
밤중이었고, 기습이었으며, 외지였다. 노아 측은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여기서 국면을 다르게 가는 선택을 하고 만 것인데…….
“아쉬운 선택을 하셨군요.”
“최선이었다. 그대들이 쫓아오기 전까지는.”
대가로 이드갈을 받은 것.
차라리 보석을 빼앗기기만 했으면 이를 빌미로 곧 맺을 동맹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터였다. 뭐, 왕국의 공식 사절단이 두엇에 불과한 자들에게 당했다는 모욕은 좀 받겠다만.
“마법사였어. 전하가 하사한 보석을 지키지 못했으니, 그것이 어떤 빌미로 쓰일지 예상할 수 없었단 말이다!”
“그래도 밝히심이 맞았습니다. 그랬더라면-”
마법부 수장인 자신의 입지가 곤란해짐과 동시에, 3국 간의 외교에 긴장이 생겼을 터.
노아는 모든 걸 덮어두고, 대신 ‘대가’를 챙기기로 선택한 것이다. 동맹으로 얻어내는 비료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값어치 있는 대가. 바로 마법사를 견제할 수 있는 힘.
“이드갈은 이게 다입니까?”
“…….”
바리엘에서 마법사의 능력을 똑똑히 지켜보고 돌아가는 참이지 않나. 하늘에서 꽃비를 내리고, 우주를 만들어내며, 대국의 위상을 그대로 받치는 자들.
마력봉인석에 준하는 이드갈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클리포포드 역시 바리엘에 준하는 대응력을 갖출 수 있다.
“왕자님. 이제부터는 두 번 묻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와의 대화 내용과 다른 점이 밝혀진다면, 관용 또한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노아가 눈을 치켜떴지만, 특별히 대꾸하지 못했다. 사태 파악을 아주 정확하게 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의 백 배에 달하는 것을 클리포포드와 직접 계약하기로 체결했네. 보석을 대금 대신 넘겨준 것이라.”
이안은 말없이 이마를 짚었다. 이것만 해도 무게가 꽤 되는데, 백 배에 달하는 계약이라. 이드갈 제조가 생각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