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28
제328화. 이안을 발견하다
“우욱.”
“로만드로 님. 괜찮으세요?”
“괜찮기는 이 사람아, 그걸 말이라고…….”
벽을 짚으며 연신 헛구역질을 해대는 로만드로와 그런 그의 등을 두드려주는 토미.
나키나는 궐련을 문 채로 주위를 둘러봤다. 주택 밀집 구역치고는 인적이 굉장히 드물다. 그녀는 정면의 작은 건물과 마주한 채로 연기를 뱉어냈다.
“그래도 마차 안 타니까 해 지기 전에 도착했잖아요. 로만드로 님도 익숙해지세요. 효율적인 업무를 위하여.”
“효율 따지다가 먼저 죽게 생겼구먼, 무슨!”
“저기 몇 층이라고 했더라? 토미?”
“5층.”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마법사라는 필릭의 특이한 신분 덕에, 집주인은 그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이를 통해 이사를 도왔던 마차꾼을 소개받고, 수소문을 통해 상세한 주소를 파고들었다.
필릭도 별로 숨길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네 꼬마조차 마법사가 저곳에 살고 있노라, 알려줄 리 없으니까.
“마법사는 원래 그렇게 몸이 안 좋아요?”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야.”
“흐음. 그렇구나.”
로만드로 옆에 쪼그려 앉은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일은 주머니에서 동화 한 닢을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소개해 준 값이다. 이제 그만 돌아가.”
“으에. 짜다!”
“…….”
“농담이에요. 아저씨 바보네. 하하하!”
당황한 헤일을 놀리듯, 아이는 동전을 낚아채곤 도망쳤다. 단편적이지만, 동네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분명한 요소였다. 낡고 허름하며, 하루하루를 날 세워 살아가는 자들의 무력감. 모든 게 점철되어있는 동네다.
“참나, 필릭 이 새끼는 돈 받아서 다 꼬라박나? 왜 이런 곳에 자리를 튼 거람.”
마법사의 급료가 상당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황궁의 막대한 예산 중 상당수가 마법부로 배정되고, 그걸 나눠 쓰는 자들은 소수였으니. 제아무리 천민 출신이라 빈손으로 시작하였더라도, 번듯한 집 한 채 구하는 건 쉬운 일이다.
“집엘 못 들어가니까, 짐만 보관하는 용도로 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일단 가자. 로만드로 님. 괜찮겠어요?”
“으응. 다 게웠네. 어이구, 머리 아파.”
“경비대에 통제 요청 안 해도 되겠어?”
“사람도 없는데, 뭘. 경비대 오면 더 이목 집중될 것 같으니, 바로 가시죠.”
“동의합니다. 조용하니, 작업 치기 딱 좋네.”
로만드로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아내자, 세 마법사는 장갑을 바로 끼며 건물로 다가갔다. 한 층당 한 세대가 사는 구조였다. 곰팡이 슨 나무문이 굳게 닫혀있고, 계단은 밟을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달칵.
“잠겨있는데 마력이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어떡할까요?”
“비켜.”
나키나는 토미를 잡아당기며 문을 살폈다. 말대로, 보호장치가 적용되어 있다. 그녀는 조금씩 마력을 불어넣으며 보호막이 무엇인지를 가늠했다.
“재수 없게, 까다로운 거면 곤란한데.”
“왜, 왜?”
“보안을 우선으로 했다면, 보호막이 부서짐과 동시에 건물이 날아갈 수도 있거든요. 근데 그건 좀 어렵고, 침입자를 죽이는 방법도 있는데…….”
“자리 비운 사이 시체가 생기잖아요. 뒤처리가 꼬일 수 있어서 이런 경우에는 잘 안 써요.”
로만드로는 벽에 딱 붙어서는 두 볼을 감싸 쥐었다. 지금 저자들이 무슨 살벌한 말을 해대는 겐가? 건물이 날아가? 시체가 어쩌고 저째? 로만드로가 마법사들을 말리려는 순간.
지이잉. 지잉.
“음. 로만드로 님. 뒤로 물러나세요.”
“으아아악! 으악! 잠깐! 나, 나가 있을게!”
“갑니다!”
“끼아아악!”
콰앙! 아득!
진단을 마친 나키나가 주먹에 마력을 휘감은 다음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단 한 번. 나무가 으그러지며 떨어져 나갔고, 그와 동시에 투명한 무언가도 박살 나며 터져 나왔다.
기겁한 로만드로와 달리, 헤일과 토미는 마치 먼지라도 치우는 것처럼 손을 내저었다.
“실례합니다.”
“네. 실례하세요.”
“같이, 같이 가!”
로만드로는 아래층을 살피며 재빨리 마법사들을 따라 들어갔다.
훅 올라오는 먼지 냄새. 벽 따위 없이 통으로 이어진 공간이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침대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나무상자로 빽빽했다.
“와, 집 안 상태 인상적이네, 정말.”
“안쪽에는 보호장치가 없을까? 나키나?”
“네. 아마도요. 안쪽까지 보호막 걸기에는 무리였을 거예요. 전면에 설치한 것만 봐도 견적 나오거든요. X밥이에요.”
나키나는 상자들을 발끝으로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이 많은 것들을 조사할 생각 하니까, 숨이 턱 막히는 지경이다. 아니, 먼지 때문인가?
헤일은 로만드로에게 책상 쪽을 고갯짓하며 부탁했다.
“로만드로 님은 서류 쪽을 맡아주십시오. 아무래도 저희 중에서는 읽어내리는 속도가 제일 빠르실 테니.”
“아, 그러지.”
“문제 생기면 바로 말씀 주시고, 토미는 안쪽으로 들어가서 시작해. 나키나는 저기부터.”
“알겠습니다아.”
헤일의 지시에 맞춰 자리 잡는 두 사람. 발 디딜 틈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높이가 천장에 다다랐다. 로만드로는 조심스레 책상 쪽으로 다가가 종이를 살펴봤다.
사락.
마법부의 업무를 종종 가지고 왔는지, 로만드로도 잘 아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무언가 단서가 있을 터인데…….
“흐음.”
로만드로가 서랍 구석구석을 뒤지는 한편, 마법사들은 상자를 까고 부수며 안쪽 내용물을 살폈다. 이사하면서 아예 짐을 풀지도 않은 듯했다. 아니, 어쩌면 이전 집에서도 이 상태였을지 모르지.
“뭐 없는데. 토미, 그쪽은 어때?”
“어, 잠시만요! 대장님!”
“뭐 찾았어?”
토미의 부름에 헤일이 가까이 다가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가 한가득했다. 토미가 냄새를 맡아보려고 하자, 그가 손으로 가로막았다.
“함부로 맡지 말고, 다시 밀봉해. 사람 불러서 마법부로 옮긴다.”
“대장! 여기도 이상한 거 있어! 씨앗 같은데?”
마름모꼴의 붉은 씨앗들이다. 헤일은 당최 필릭 이놈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마법부로 가져갈 것을 가려내며 수색을 이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열리지 않는 창문 밖으로 일몰이 지기 시작했다.
“하아. 필릭, 이 개새. 힘들어 죽겠네.”
“대장님, 안쪽은 정리 다 했는데요. 가루 외에는 특별한 것 없습니다.”
“이쪽도 뭐, 대충 다 해가. 먼저 마법부로 옮기고, 내일 지원 요청해서 다시 오자. 어때, 대장?”
“그게 좋을 것 같군. 이안 님이 돌아오셨을 수도 있으니까. 로만드로 님?”
헤일이 로만드로 쪽을 쳐다봤다. 등 돌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 무언가를 읽어내린다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로만드로 님?”
“어? 어어?”
“뭐 좀 찾으셨습니까?”
헤일이 의아하게 묻자, 그가 고개를 재빨리 쳐들었다. 잠깐의 침묵. 로만드로는 이내 민망하게 웃으며 종이를 흔들어댔다.
“미안. 집중하느라 못 들었어. 대부분 마법부 업무와 관련된 것 같은데, 특별한 사안은 없네,”
“그렇군요. 그러면 오늘은 이쯤 하시지요.”
“…갈 때도 날아서 가나?”
“그럴 리가요. 짐이 있으니 마차를 부르겠습니다.”
“아이고, 그거 다행이군.”
헤일이 등을 돌리자, 로만드로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다시금 읽어내렸다. 드문드문 처음 보는 문자가 섞여있었지만, 개중에서도 확실히 식별 가능한 문장들이 있었으니.
‘어째서…….’
어째서 이안의 이름이 여기에 언급되고 있단 말인가. 흔한 이름이니 우연인가 싶다가도, 앞뒤의 문맥상 자신이 아는 그 이안이 분명했다. 변경에서 나고 자랐으며, 마법을 쓸 줄 아는 그 이안 말이다.
“하아.”
로만드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눈 감았다. 파악해 보고자 하지만, 정보가 한정적이니 제대로 될 리 없다. 그가 아는 바로는…….
‘이안이 멜라니아를 살려 보낸 것은 이드갈의 소재지인 러더포드 상단을 추적하기 위함이었어. 그런데 왜, 곧 만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을까? 대체 왜? 아니, 내가 제대로 읽은 것 맞나? 젠장, 맞네.’
로만드로는 눈알을 뱅글뱅글 돌려가며 글자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 읽었길 바랐지만, 그럴수록 잉크가 더욱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키나가 로만드로의 어깨를 붙잡았다.
“로만드로 님.”
“흐어억!”
“아이고, 기절하겠네. 왜 그래요?”
그녀가 눈매를 가늘게 뜨자, 로만드로는 저도 모르게 쪽지를 뒷주머니에 숨겼다. 쿵쿵, 미친 듯이 울리는 심장 울림. 식은땀. 그리고 영 보기 힘든 안색.
나키나는 혀를 차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또 울렁거려요? 나 참, 건강 좀 챙기셔야겠네.”
“응? 으응. 그렇지, 뭐. 자네도 내 나이 돼 봐.”
“먼저 나가 계세요. 냄새나서 더 그렇겠다.”
“아, 그러지. 이쪽은 내가 다 봤어. 그, 혹시 모르니까 옮길 때 이것도 같이 부탁하네. 그대로, 훼손 없이.”
로만드로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런 그를 안쓰럽게 보는 나키나. 책상 쪽으로 시선을 잠시 주었지만, 이미 로만드로가 살폈다 하니 굳이 볼 필요 없다. 그녀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 * *
톡톡.
이안은 생각에 잠겨 손끝으로 테이블만 두드렸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노아 왕자의 긴장 역시 팽배해졌다.
이드갈을 대량으로 취한다는 것은, 명백히 마법사를 견제하겠다는 태도. 이는 곧 바리엘에 대항하여 자국의 힘을 기르겠다는 것이요, 동맹이 성립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노아는 복잡한 머릿속을 털어버리며 누워있는 필릭을 쳐다봤다. 저자만 문제없이 잘 하였다면! 자신들은 이드갈만 취하고 아무런 의심 없이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생각할수록 일이 꼬여도 이리 꼬일 수 있나 싶다.
“정확한 거래 내용을 일러주십시오. 혹, 계약 마법을 사용했습니까?”
“아니. 그쪽에서는 권하였지만, 내가 믿을 수 없어 거절하였네. 대신 왕국 출입이 용이하도록 서신을 써주었지. 그것에 백 배에 달하는 것을 오 년에 걸쳐 공급받기로 하였다.”
“금액은요?”
“말하였잖은가.”
노아가 고갯짓하며 일렀다.
“금빛 다이아몬드를 내주었다고.”
“…그것이 전부입니까?”
“절반 값을 먼저 내었다고 보면 되겠군.”
황자가 하사한 보석이지만, 그것 하나로 마력봉인석에 버금가는 것을 무더기로 교환할 수 있다.
보석을 반환하는 것은 진 황태자가 성년이 되는 십 년 후. 십 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유력 황제 후보였던 마리브와 게일이 몰락한 것은 고작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들키지만 않았다면, 그러니까 그 잠깐의 소란이 경비대에 흘러들지만 않았더라면, 전혀 문제없을 판단이었다.
‘대금이 없다고?’
이안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바깥의 마법사를 불러모았다. 이는 큰일이다. 생각보다 3국의 정세가 날카롭게 세워지고 있음이 자명했다.
“황궁으로 급히 돌아갈 것이다.”
“예? 지금요?”
“그래. 당장.”
습격 후 극적인 타결을 빙자하여, 클리포포드에 이드갈을 내어준 것이라면? 그러니까, 러더포드가 3국에 거의 무상으로 이드갈을 나눠주고 있다면?
“클리포포드 마차 수습은 두 사람만 남아서 진행하라. 황궁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오겠다.”
“아. 그런데 이안 님.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문제? 이안이 미간을 찌푸리자, 마법사가 울상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마차를 세우기 위해, 그리고 필릭을 저지하기 위해, 나아가 마차를 수습하느라-
“저희, 마력 다 써서 포탈 바로 못 열 것 같아요. 죄, 죄송합니다. 흐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