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29
제329화. 왕을 만나기 위해
이안의 눈빛이 참으로 기묘했다.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하는 듯하였으니.
의중을 알아챈 마법사가 다시금 덧붙였다. 자신의 상관은 분명히 알 필요가 있었다. 소년의 나이로 장관직에 오른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덧붙여, 일반 마법사들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저희는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안 님.”
기본에 가까운 기속(羈束) 마법을 세 명이 해낸 주제에 전력을 다했다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어쩌겠나?
사실, 출발할 때 썼던 포탈 마법부터 힘을 대부분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간섭하는 것은 영속의 저주에 가까운 마법이었으니, 그 난이도가 상당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것이다.
“그래. 내 생각이 모자랐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 하시면 저희가 더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급한 일이라 하시니 큰일이네요. 이안 님은 마력이 얼마나 남으셨어요?”
아까의 만엽(萬葉)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단순히 세계수를 소환하는 것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대지를 솟구치게 하고 갈랐으며, 다시 메웠으니까.
“남은 힘이라도 우선 모아서 드리겠습니다. 혼자서라도 먼저 올라가심이 어떨지요.”
마법사의 제안에 이안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노아 왕자와 메이가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고, 저 멀리서는 반파된 마차가 한가득하였으며, 구석에는 필릭이 묶인 채 엎어져 있었다.
그뿐인가? 조금만 걸어가면 클리포포드 영지였다. 왕자 일행의 도착이 늦어지면 필시 사람이 올 터인데, 그때 마법사들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뭐야? 우리, 집 못 가!?”
“조용히 하고, 이거나 옮겨.”
“밥은? 허허벌판인 게 뜯어먹을 풀도 없구먼!”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좀 하라고.”
“내 도시락 뺏어먹을 생각하지 마. 하긴, 넌 어금니 없어서 줘도 못 먹겠다.”
“이게 누구 때문인데? 죽어!”
“으앗!? 미친, 진짜로 휘둘러?”
…베릭도 그렇고, 무엇보다 제이럿 측의 사람인 바르사베가 포함되어 있었다. 노아 왕자와도 마무리할 사안이 남아있었으니, 전서구를 먼저 날리는 게 좋겠다.
“수비대장, 전서구를 하나 구해다 주게. 황궁으로 보낼 것이라. 그리고 다들 나절 정도면 회복하는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떤가?”
“네. 그 정도면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안아아! 의사들 올 때 밥도 가져오라고 하자!”
끼이익.
한편, 이안이 현장을 정리하는 와중, 노아와 메이는 머리를 맞대고 방도를 모색했다.
동맹을 앞둔 채 뒤에서 딴생각 품은 것이 들켰으니, 이제 그 대가를 겸허히 받을 차례 아니던가? 최악으로 치닫게 되면 전쟁이요, 이는 클리포포드의 절멸을 의미했다.
메이는 지난 시간을 자책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네가 무엇을. 결단은 내가 내렸어. 이미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나저나, 방금 이안 경의 태도로 보아 뭔가 다른 게 있는 듯하지?”
“네. 대금이 없다는 걸 듣고 특히 놀라 보였어요.”
노아 왕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상대가 보석을 요구하기에, 이는 분명 정치적인 수작이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황궁이라 판단한 근거는 저기 쓰러져 있는 필릭이라는 마법사. 하여, 더더욱 바리엘 측에 알리지 못한 거였는데.
이안의 태도로 보아 마법부 안에서의 내분이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마법부 안에서의 배신자. 그리고 이드갈…….”
클리포포드가 껄끄러운 일에 휘말리고 말았음을 알아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간을 되돌려 가더라도, 자신은 같은 선택을 했었을 터이니.
그만큼 마법사에게 대항할 힘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었다. 독립적이고 안전하며, 부국강병의 미래를 위하여.
“왕자님. 무슨 선택을 하시든, 제가 끝까지 옆에 있겠습니다. 그러니 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메이가 노아의 손을 꽉 쥐어주며 힘을 실어주었다. 여기서 클리포포드 쪽으로 피해가 안 가려면, 모든 걸 노아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들통난 수인의 저주 그리고 바리엘에 대항하려 한 것. 모두 왕자의 독단적인 문제요, 선택이었고, 실행이었노라고.
“메이. 그럴 것 없다.”
“왕자님. 저는 진심입니다.”
“아니. 정말로 그러지 않아도 돼. 생각 외로, 이안 경은 우리에게…….”
‘관용’을 베풀지도 모른다고, 노아가 그리 이르려다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노골적으로 모욕적인 단어의 선택이 아닌가. 노아가 잠시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기회를 줄지도 몰라.”
똑똑.
그때, 이안이 보란 듯이 문을 두드렸다. 소곤대던 논의를 멈추라는 신호였다.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하는 메이. 노아 왕자는 무던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만 봤다.
이안은 웃옷을 정리하며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래, 어디 한번 이 사태를 책임질 방안을 내놓아보라는 눈빛으로.
“이안 경.”
“네. 노아 왕자님.”
“…우선 일러두겠네. 바리엘에서 있었던 나의 모든 행동은 내 독단적인 결정이었고, 왕께서는 전혀 모르고 계시네. 그러니 문제가 생겼다면 그 또한 나의 문제. 내 선에서 내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내어 치를 터이니, 클리포포드에게는 책임을 묻지 마시게.”
“그럴 수는 없지요. 왕자님께서는 클리포포드의 사절단으로 이곳에 오신 것 아닙니까? 게다가 차기 후계자로 유력하신 분이니, 왕자님의 의중이 곧 클리포포드의 의중이라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요.”
“습격한 자는 마법사였어. 그렇다면 부하를 제대로 관리 못 한 이안 경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마법의 위대함을 알고 있으니, 그 한 명의 위협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험이 되었을지, 잘 알고 있을 거라 여겨지네만.”
“하지만 전하께서 하사하신 보석입니다. 강탈당한 것도 아니고 무뢰배에게 거래의 대가로 넘겼으니, 이는 불충 중의 불충. 거기에 대가로 이드갈이라니요?”
틈 없이 쌓이고 쌓이는 대화 속에서 메이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아무리 봐도 이안은 클리포포드를 썰어 먹을 기세인데, 왕자님은 어찌하여 자신들에게 기회가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일까?
“실수에는 용서를 구하지. 황태자 전하를 뵙게 되면 내 진실로 사죄하리라. 알맞은 대가도 치를 터.”
“알맞은 대가라. 궁금합니다.”
“동맹에, 군사적 합의도 추가하지.”
비밀스러운 자들이 이드갈을 클리포포드에 넘겨주었다. 그것도 경제적 이득을 거의 제하고서.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안의 반응을 보고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이드갈이 주변국으로 잔뜩 풀려나면, 바리엘의 군사력은 강한 타격을 입는다.
“동맹을 앞두고 뒤에서 거래하시던 분인데, 저희가 무엇을 믿고요?”
바리엘과 3국의 전력 차이. 병사 수로 따진다면 비등하거나, 아마 3국 쪽이 조금 더 우세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3국을 아래에 두고 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연유는 딱 하나, 견고한 마법사들의 존재였다.
“이 자리에서 계약 마법을 맺지.”
“왕자님!”
기겁하는 메이와 달리, 이안은 느릿한 미소만 지었다. 얼추 예상하긴 했다만 생각보다 반응이 빠르게 온 것이다. 그만큼 왕자가 느끼는 책임감이 막중하다는 것이겠지.
“클리포포드에서 이드갈이 유통되면, 당연지사 버고스와 루스웨나 측에서도 그리될 것이다. 아니, 벌써 그리되었을지도 모르지.”
이안은 턱을 괸 채로 제 볼을 툭툭 건드렸다. 버고스의 다몬 왕이 자신만만하던 게 이것과 연관되어 있나? 하완 왕국에서는 이미 이드갈이 시중에 나와 있는데, 그렇다면 인접한 루스웨나 측에서도 접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마법사의 전력이 위협받게 되면, 확실히 클리포포드와의 동맹 여부가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왕자님께서는 클리포포드의 대표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왕자님과 계약을 맺는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는 자네도, 수많은 부서의 한낱 장관이라면서? 내가 뵐 분은 황궁에 계시니, 서로에게 아주 알맞은 거래가 될 것 같은데.”
메이는 탁자 아래로 두 손을 꽉 쥔 채 기도했다. 할 수만 있다면 제 목숨을 내놓고 이 사태를 진정시켰으면 했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계약의 필수지. 일러보시게.”
“우선, 황궁에 보고는 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하사한 보석의 행방이 묘연해졌다고요. 그리고 두 번째. 계약은 왕자님을 비롯하여 클리포포드의 왕과도 맺고 싶습니다.”
“아버지와?”
이안이 싱긋 웃으며 긍정했다. 자꾸 왕자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꼬리 자르기를 하려고 하니, 아예 그러지 못하게끔 왕과 계약을 맺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 있으십니까? 대신 보석의 분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게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드갈은?”
“그건 클리포포드의 왕께 논의하지요.”
“동맹 목록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
“그것 또한, 왕의 앞에서 함께 논하심이?”
노아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제 선에서 처리하고 싶었는데, 순순히 그렇게 해줄 이안이 아니었다. 자신이 더 이상 제안할 처지도 아니었고.
왕자는 결국 알겠노라 답했다.
“그러면 언제…….”
언제 자리를 마련하면 좋을지 묻는 순간.
수비대가 물소뿔을 다시 울려댔다. 난리통에 들었던 소리라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거렸다. 수비대는 흰색 깃발을 흔들며 주위에 일렀다.
“클리포포드 쪽에서 기마병들이 옵니다!”
“저쪽에서도 깃발을 흔듭니다! 왕국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아무래도 사절단의 귀환이 늦어져서 확인 차 나온 것 같습니다!”
클리포포드 쪽에서 병사가 온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다들 국경선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손을 흔들며 자신들이 여기 있노라 알렸다.
“여기요! 여기!”
“왕자님도 여기 계십니다! 마차 좀 어떻게 해줘!”
“우리 마법사들한테 공격당했-!”
“이 사람아, 입조심!”
“음, 그러니까! 마법사들도 있어요! 여기! 조심해요!”
기마병들은 무언가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하고, 한 명은 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증원을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며 노아에게 일렀다.
“시일을 따로 잡는 것보다, 이리 온 김에 하는 것이 좋겠네요. 마차가 아니라 말로만 내달리면, 왕국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쉬지 않고 달리면 밤중에는 도착할 것이네.”
“흐음. 그래요?”
그때쯤이면 마법사들의 마력 또한 회복될 터. 거기서 일을 다 보고, 바로 황궁으로 돌아가면 되겠지.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지시했다.
“수비대는 클리포포드 병사들의 입국을 임시 허락, 수습을 도와주어 이곳을 정리하라. 우리는 왕자님을 모시고 왕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보고서 올리는 것 잊지 말고.”
“전서구 여기 있습니다. 이안 님!”
“다들 서둘러.”
이안은 테이블에서 간단한 상황 설명만 적은 다음, 전서구 다리에 묶어 날려 보냈다.
곧이어 이안 무리와 노아, 메이는 기마병들의 말을 건네받아 올라탔다. 베릭이 기대된다는 듯 낄낄거리며 메이에게 물었다.
“있잖아요. 포도 나라에는 진짜 포도 많아?”
“…….”
메이가 눈을 흘겼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었으니까.
포도주가 주 생산품이었고, 앞마당에는 포도나무 하나씩은 심겨있는 나라 아니던가. 메이는 애써 무시하며 먼저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히이잉!
“가자! 포도 먹으러!”
“닥쳐! 하수구 물이나-!”
“퍼먹으러 가자!”
앞서 내달리는 베릭. 이어서 마법사들과 메이, 노아도 그 뒤를 따랐다. 달작지근한 바람의 냄새.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공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이안은 자신의 허리춤에 묶여있는 이드갈을 매만지며, 몸을 한껏 낮췄다. 말들이 더욱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