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3
제33화. 황궁 조사단
목걸이는 햇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안은 그것을 ‘호박색’이라고 표현하는 것 외, 그 어떤 것도 정의할 수 없었다. 보물에 둘러싸여 평생을 살아왔던 이안 조차 처음 보는 보석이었기 때문이다.
‘이안. 이게 대체 뭘까?’
어찌하여 사창가의 사생아가 실라스크를 키우고 있었으며, 그 안에 이런 것을 보관하고 있었을까? 아니지. 가정을 처음부터 세우자면, 이안은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분도 신분이지만 행동이 맞지 않잖아. 어미 필리아의 고충을 알고 있으니, 귀한 것임을 알았다면 처분하여 가계에 도움이 되게끔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흙 속에 숨겨져 있던 목걸이. 이것은 실라스크를 심은 자가 묻은 게 분명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았던 건가? 이걸 잘 돌보아 달라고.’
지금 당장 그럴 듯한 추측은 그것 뿐이었다. 그리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나? 소중히 대했지만, 브라츠 저택으로 들어올 때 챙길만큼은 아니었다 이거지.
잘그락.
“알 수가 없다. 참으로.”
눈 뜨고서 제일 의아한 건 바로 서자 이안의 존재였다. 언제나 그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건 이 작은 아이뿐이다.
“뭐가 알 수 없어?”
“다 깨졌나?”
“깨지긴 누가! 비등비등했다고!”
“어어. 그래.”
이안은 목걸이를 착용하며 대꾸했다. 뭔지 몰라도, 발견한 이상 몸에서 절대 떨어트려 놓을 생각이 없다. 화분을 가져온 천려인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휴식 후 부족장님을 뵈러 오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 가지. 다 깨졌으니까.”
“안 깨졌다니까? 나 안 깨졌어!”
“입가에 모래나 털고 말하거라. 베릭.”
이안은 낄낄대며 천막을 벗어났다. 윈첸이 정신을 차렸으니, 이안의 말에 거짓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려족과 이안 사이의 우선협상권 상세 조율도 해야 하고.
“……?”
“어어!”
천막을 걷던 이안이 멈칫거렸다. 입구에 천려인들이 모여 있었던 탓이다. 따라 나오던 베릭 역시 고개를 내밀며 주위를 살폈다.
어색한 침묵 끝에, 그들은 손에 든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부드러운 쿠실레 덮개부터 튼튼한 바구니 등등.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물품들이었다.
“이게 다 무엇이오?”
“…사막에서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들, 챙겼습니다. 윈첸 부족장님을 위해 내준 것에 비하면 하찮지만 천려족 전사들은 은혜와 원수를 죽을 때까지 잊지 않으니까요.”
이안을 손님으로 대하라는 명이 있었던 것인지, 처음으로 존칭을 듣게 되었다. 그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유용하게 쓰지.”
“그, 그럼…….”
그들은 허둥지둥, 쑥스럽다는 듯 흩어졌고 이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가 그리 재밌냐?”
“귀엽지 않은가? 세상이 야만스럽다 여기는 자들도 자세히 보면 인정이 있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성인군자 납셨네.”
“베릭. 너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물건을 정리해 두어라.”
이런 젠장! 이안은 군자라는 말 취소라며, 길길이 날뛰는 베릭을 뒤로하고 윈첸의 천막을 찾았다. 안쪽에는 첫날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상태의 노인이 누워있었다.
차악-!
“이안 경. 어서 오시게.”
카칸티르가 그녀 가까이 무릎 꿇고 앉아 뭔가를 속삭이던 차였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노인의 위상이 느껴졌다. 부족을 이끄는 자가 거리낌 없이 무릎 꿇는 존재라.
“윈첸 부족장님. 호전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노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입구 쪽을 쳐다봤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현자의 미소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이리 부른 것은 이전의 대화를 매듭짓고자 함이네.”
“좋습니다. 제가 카칸티르 족장님에게 고한 것은 모두 사실이며, 하늘을 두고 지킬 것이라 맹세했습니다. 물론, 아직 말씀 안 드린 사실도 몇 있지만, 그것은 천려족과 무관한 일입니다.”
이안이 방긋 웃으며 선수 쳤다. 거리낌 없는 태도에 카칸티르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윈첸은 두 손을 모아 다시 이안에게 인사했다.
“신께서…….”
힘겹게 쥐어짜는 목소리. 상태가 안 좋아, 다시는 말을 안 할 줄 알았다. 시종들은 노인의 전언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바짝 붙였다.
“…그대의 모든 것을 바꾸라 하셨습니다.”
“네?”
“…설령 그것이 존재일지라도.”
이안이 놀란 눈으로 카칸티르를 돌아봤다. 지금 윈첸은 신탁을 내리고 있었다. 신전이 아닌 곳에서 신의 말씀을 듣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으나, 카칸티르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국인은 이해 못 하겠지. 그대들은 성전이 있어야만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여기니까.”
“사실입니다. 성전을 해독하는 자만이 신의 뜻을 전할 수 있다 여기거든요.”
아마 교황청이 알면 사이비라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이안은 어쨌거나 신의 말씀을 전해 들어 감사하다는 뜻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전언이 썩 유쾌하지는 않아.”
“그럴리가요. 언제나 의미 있는 말입니다.”
이안은 단박에 부정했다. 인간이 모른다고 해서 진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카칸티르는 이 금발 외지인이 점점 마음에 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전사로서 모든 것을 갖추지 않았던가.
‘대범하고 용기 있으며 깊게 흐르는 물처럼 고요하다.’
“형제들이 경에게 선물을 가져갔다 들었소.”
“고맙게도 잘 받았습니다.”
“이제 우선협상권 세부 사항을 조율할 것인데, 그 전에 특별히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해보시오.”
협상에 들어가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걸 돌려 말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상당히 호의적인 제안이기도 했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천려족은 전사의 부족 아닙니까?”
“그렇지. 대사막을 지배하는 자들이오.”
“제가 데려온 붉은머리에게 전사의 모든 것을 전수해 주셨으면 합니다. 세상에서 저가 제일 강하다 여기고 싶어 하는 녀석인데, 아직 모자람이 많아서요.”
“베릭이라고 했나?”
부하를 아끼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카칸티르는 흔쾌히 대답했다.
“일러두지.”
“감사합니다.”
“종이를 가져와라.”
차악-!
카칸티르의 부름에 밖에서 시종들이 종이와 붓을 가져왔다. 그들은 윈첸을 두고서, 진실한 계약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쿵! 쿵쿵! 우당탕!
갑작스러운 소음에 데르가의 펜이 궤를 벗어났다. 거의 다 작성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하게 생겼다.
“백작님! 백작님!”
“어디서 호들갑이야!”
파앗!
데르가는 문이 열리자마자 반사적으로 잉크병을 던졌다. 하늘이 두 쪽 난 것도 아닌데 어찌 저러는 건가! 안 그래도 세금 계산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데!
병을 정면으로 맞은 하인이 당황해하며 바지를 닦아냈다.
“죄, 죄송합니다. 한데 당장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중앙에서 사람이 내려왔습니다.”
입적확인서가 도착할 예정이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하인의 행동이 뭔가 이상했다. 데르가는 커튼에 몸을 숨긴 채 창밖을 살폈다.
“……?!”
일반적으로 서류 배달만 목적이라면, 두 명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정문에서 현관까지 마차가 잔뜩이었고, 그 선두에는 낯익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황궁 조사단 아닌가?”
“집사님이 일단 손님을 맞이하고 있긴 합니다만…….”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데르가가 책상 위의 서류를 그러모으며 외쳤다.
“너는 당장 여기 있는 서류들을 보좌관 사무실로 옮겨라! 그리고 안쪽에서 문을 잠근 채 기다려. 잉크 통은 왼쪽 수납장에 잔뜩 있다. 상황이 이상하다 싶으면 죄다 쏟아부어라. 알겠느냐?”
“네? 네에. 아, 알겠습니다.”
“망할!”
데르가는 단단히 당부하고서 계단을 내려갔다. 하인들이 모두 불안한 기색으로 중앙 현관에 모여 있었다.
“주, 주인님. 이것이 대체…….”
“비켜!”
그는 옷매무시를 다듬으며 앞으로 나섰다. 집사가 난감한 시선으로 물러섰고, 데르가는 황궁 조사단장과 마주했다.
“데르가 브라츠 백작님 되십니까?”
“그렇소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소.”
“황궁에서 파견된 황궁 조사단장, 버티 에리카입니다. 이는 황제께서 직접 인장을 찍으신 허가서입니다. 탈세로 인한 반역죄 조사를 위해 파견되었으며, 성실하고 진실한 과정을 맹세합니다.”
탈세로 인한 반역죄.
파견 이유를 듣자마자, 데르가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새끼들이 어떻게 안 거지? 대체 어떻게? 하지만 내뱉는 말은 뻔뻔하고 당당했다.
“굉장히 불쾌하군. 나는 바리엘을 위하는 마음으로 변방에서 저 야만족들을 막아내고 있어! 그런데 뭐라? 탈세로 인한 반역? 말도 안 돼!”
일단 발뺌이다. 죄가 확실시될 때까지.데르가는 일단 백작의 신분이었고, 이곳은 그의 영지였다. 마차 십수 대가 오긴 했지만, 전력으로 따지면 우세하다는 의미였다.
에리카는 익숙하다는 듯 다른 품에서 다른 서류를 꺼내 들었다.
“이것은 브라츠의 인장이 맞습니까?”
범과 월계수 무늬. 휘어 갈겨쓴 누군가의 문장 위에 확실하게 찍혀있었다.
-브라츠 가문의 탈세를 밀고합니다. 황제이시여, 부디 하나의 의심도 없이 조사해 주십시오.
데르가가 서신을 잡아보려고 하자, 에리카는 단호하게 손을 내쳤다. 밀고장, 그것도 인장이 찍힌 것이라면 당장 이들이 저택을 헤집어도 할 말이 없다.
“저택은 당분간 저희가 관리하겠습니다. 백작님을 비롯한 모든 사용인은 부단장의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보병들이 곧 도착할 것이니, 그들을 위해 정원도 비워주시길 바랍니다.”
추가 전력이 속속들이 도착할 것이니, 섣부른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에리카의 눈짓에 부하들이 검을 들고서 저택 안으로 밀려들었다.
쿵쿵! 쿵!
“꺄악!”
“자, 잠깐만요!”
“모두 입 다물고 따라와!”
“주, 주인님! 주인님!”
“거기! 계단 위로 가는 놈!”
“으아아아!”
차마 귀족인 백작을 묶어둘 순 없었기에, 그들의 손과 발인 사용인들을 먼저 제압하는 것이다. 에리카는 구둣발로 카펫을 짓밟으며 들어섰다.
“상당히 저택이 멋집니다.”
“자네…….”
“첼 도련님과 메리 부인 역시 곧 귀가할 것입니다. 걱정하실 것 없으니 그저 지시에 따라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다들 맨 위층부터 쓸어!”
에리카의 외침에 데르가는 머리가 뎅, 하고 울렸다. 이놈들은 집무실이 꼭대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밀고장에는 적혀 있지 않은 정보다. 그렇다면 종이만 올려보낸 게 아니라는 뜻.
‘몰린!’
이 찢어 죽일 새끼가 고기 먹여서 대접했건만! 이딴 짓을…! 데르가는 피가 거꾸로 솟은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에리카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를 지나쳤고, 들리는 것은 하인들의 비명뿐이다.
“백작님!”
위층을 뛰어 올라가던 자는 집사였던 모양이다. 그가 질질 끌려 내려왔지만, 데르가는 생각에 빠져 움직이지 않았다.
‘몰린, 그 새끼가 어떻게 인장을 찍었지? 역시 보좌관과 연관된 건가? 하지만 그놈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 여전히 감시하고 있고…….’
데르가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브라츠에서 몰린과 가까이 지낸 자를 한 명 꼽으라면…….
“이아아안!”
울컥 터지는 괴성에 병사들이 힐끗거렸으나,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고혈압으로 쓰러질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거, 일찍 죽는다 한들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