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35
제335화. 우리도 간다
“엄마. 저것 봐요.”
한 아이의 손끝을 따라 어른들의 시선이 하늘로 올라갔다. 또다시 뜬 검은 달. 일주일 전에도 잠깐 뜬 적이 있었지만, 금방 사라지곤 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러할 것이다. 황궁에서 소란이 있을 때마다 뜨는 것인지라 걱정되긴 하다만, 이렇다 할 발표가 없으니, 원. 사람들은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황궁은 계속 열려있는데. 아마 마법사님들이 실험하는 걸 수도 있어.”
“그래. 큰일 아니겠지. 곧 있으면 사라질 걸세.”
“하던 일이나 계속하자고!”
하늘을 가득 채우는 검은 달. 조금씩 커지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안일하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저 하릴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아이들만 변화를 알아챌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알레나라 님. 밖을 보세요.”
“밖에? 왜?”
세르오 가문의 알레나라가 커튼을 걷자, 황궁을 집어삼킬 것 같은 검은 달이 한눈에 보였다. 놀란 시종들과 달리, 그녀는 멈칫한 뒤 곧바로 아래층으로 달려가 제 오라비를 불렀다.
타닥타닥!
“오라버니! 오라버니!”
“알레나라 님, 조심하세요. 넘어지겠어요.”
“가서 오라버니 외투 가져와! 어서!”
“알레나라, 무슨 소란이냐?”
느긋하게 소파에 누워 궐련만 태우고 있는 세르오. 알레나라가 단번에 잡아채며 그를 일으켰다.
그녀의 손짓에 시종들이 외투를 가져와 세르오 어깨에 걸쳐줬고, 그는 얼떨결에 셔츠 단추를 잠그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갑자기 왜 그래?”
“이안 경이 일주일 전에 클리포포드 마차와 접선하기 위해 국경선으로 갔다 하였죠? 그 뒤로 연락이 없다고.”
“그랬지. 전서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맞을 게다. 일러준 친구가 황궁에 납품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거든.”
“다시 검은 달이 떴어요. 이는 남은 마법사들도 황궁을 떠난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요.”
“뭐? 검은 달?”
세르오는 그제야 커튼을 치며 창문 밖을 살펴봤다. 오가던 주민들이 제자리에 서서 모두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알레나라는 제 오라비의 어깨를 확 잡아챈 다음, 넥타이를 바로 잡아주었다. 몰락하기 일보 직전인 가문을 누가 지탱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손길이다.
“당장 입궁해서 상황을 알아보고 오세요. 마법사들이 어째서 다시 포탈을 열었는지, 이안 경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등등. 가능한 모든 것을요.”
“아, 알겠다.”
“이봐! 가서 전서구를 한 마리 구해와!”
“아, 네. 아가씨. 수신지는 어디로…….”
“그걸 꼭 말로 해야 알겠어?”
루스웨나. 정확히는 루스웨나의 왕궁, 에리포니에게 닿을 전서구다.
이미 알레나라는 이안이 황궁에서 자리를 비울 때 한 차례 전서구를 보냈었다. 답신은 없었지만, 비둘기가 무사히 되돌아온 것으로 보아 에리포니 왕이 이 사실은 인지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오라버니가 돌아오는 즉시 전서구 날릴 거니까, 최대한 서둘러서 움직이세요. 아시겠지요? 아, 너는 나가면서 심부름 좀 하자. 카미아 부인과 조앤 영애에게 물어보고 와. 혹시 황궁에서 들려온 소문이 없는지.”
제국방위부 장교 부인과 사법부 장관의 조카였다. 사교계에서 특히 알레나라와 죽이 잘 맞는 자들이었는데, 아마 무언가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움직여! 빨리!”
짜악!
알레나라가 세차게 손뼉을 치며 소리치자, 세르오는 머리를 대충 빗어넘기며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시종들도 마찬가지. 검은 달이 뜬 게 세르오 가문과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다만, 아가씨가 하라면 해야지.
알레나라는 창틀에 손을 짚은 채 연신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른 곳도 아니고, 마법부라고.’
이걸 에리포니 왕이 알게 된다면, 이번에는 답신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녀는 창틀을 꽉 움켜쥔 채 펄럭이는 바리엘 국기를 쳐다봤다. 검은 달이 잡아먹을 것처럼 내려왔지만, 그 백색의 위상은 여전히 굳건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알레나라에게 보란 듯이.
차악!
하여, 그녀 역시 보란 듯이 커튼을 치며 등을 돌렸다. 세르오 가문이 있을 수 없다면, 제아무리 바리엘이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 *
“긴장 풀어, 예쁜이.”
“아코렐라 대장님. 대장님이 그럴 때마다 저 정말 무섭습니다.”
“그래서 뭐, 안 맞을 건가?”
“그건 아니지만요. 그, 평범하게 좀 놔주십시오.”
“알겠다고, 팔이나 걷어! 어서!”
아코렐라의 성화에 못 이겨 두 눈 질끈 감은 마법사. 그의 팔뚝으로 주사 바늘이 거침없이 꽂혔다. 살짝 따끔하고 만 것이, 걱정한 것에 비해 별 반응 없어서 민망할 정도다. 아코렐라의 중얼거림을 듣기 전까지.
“흐음. 근데 너 알레르기 체질 있었지?”
“…예?”
“너는 나중에 나한테 따로 경과 보고해라. 미안한데 내가 그쪽으로는 확신이 없네.”
“아, 아코렐라 님!”
“자, 다음!”
“비켜라, 좀. 가서 마법진 그리는 거나 도와!”
동료들의 성화에 마법사가 울상을 지으며 물러섰다.
마법부 정원에는 증폭제를 맞은 마법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여백 없이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를 복잡한 술식으로 채워가며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작업이 이어졌다.
옳고 그름을 봐줄 이안이 없는지라, 그들은 검은 달을 띄워 놓은 채 위치 조정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안이 있었다면 제국민들이 걱정한다고 한마디 했겠지만, 어쩌겠나. 증폭제를 맞아도 이것이 최선이었다.
“쓰읍,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남쪽 국경에 마력이상반응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위치를 더 아래로 잡는 게 맞아요.”
“다시 써보겠습니다. 좌측 계산 다시 해주십시오.”
“아, 이안 님 보고 싶다. 이럴 때 답 딱딱 알려주시면 진짜 편하고 좋았는데.”
“그 이안 님 보러 가는 거니까 정신 집중!”
“서둘러서 합시다. 약빨 다 떨어지겠네, 증말.”
그때, 시끌벅적한 마법부 정원으로 손님들이 찾아왔다. 수상의 집무실에서 함께 있었던 진, 제이럿, 볼브를 포함한 여타 다른 부서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은 마법부 건물로 들어갔다가 텅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하게 정원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볼브가 사위를 둘러보며 어이없이 소리쳤다.
“이게 다들 무슨 짓인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그러자 마법사들은 일동 멈추며 정원 입구 쪽을 쳐다봤다. 그들은 황태자 진에게만 인사를 올린 다음, 하던 일을 계속했다.
헤일만이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맞이할 뿐이다. 남의 부서에 와서 무슨 짓이냐니, 이만한 개소리가 어디 있나?
“전하, 어쩐 일이십니까?”
“헤일. 이게 대체…….”
아이는 마법사들과 허공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당황해하는 수상과 볼브의 낯과 달리, 반가워하는 기색에 가까웠다.
분명 아까는 포탈 여는 것이 불가하다고 하였는데, 무슨 방도로 이리 해냈는지! 아이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게 차오르자, 헤일이 아코렐라 쪽으로 고갯짓하며 설명했다.
“아코렐라 대장이 마력증폭제를 개발해 왔습니다.”
“뭐? 그걸 맞았단 말인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작용이 없는 것이라 하네요.”
주사를 놓던 아코렐라가 진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연신 흔들었다. 마법사가 아프다며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는 듯했다.
사태를 파악하던 볼브가 그만하라며 윽박질렀다.
“다들 무슨 짓을! 검증도 안된 것을 주사하다니? 그러다가 마법사들이 단체로 문제 생기면? 그러면 어쩌려고 무모한 짓을 해?”
“그건 볼브 장관의 말이 옳다. 헤일 대장. 이런 사안은 대회의에서 함께 나누는 것이 적당하거늘. 지금이라도 주사를 멈추게.”
아직 줄 선 마법사들이 좀 남아있다. 헤일은 그럴 수 없다는 뜻으로 바로 선 채 비켜서지 않았다.
새삼스럽다. 마법부가 없으면 황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대회의에서 그런 작태를 보이다니. 헤일은 궐련을 물며 대꾸했다.
“포탈을 여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 방법 아닙니까.”
“그건 문제가 없을 시에 한한 것이지! 이전 보고서에는 증폭제 맞은 마법사가 죽을 고비 넘겼다는 게 적혀있었어. 지금-”
“네! 그 죽을 뻔한 마법사, 여기 살아있어요옹!”
“…문제없습니다. 아코렐라 대장은 마법부에서 인정하는 연구자이며, 지식인입니다. 그녀가 부작용이 없다 하였으면, 없는 것입니다.”
크으, 아코렐라는 감격스럽다는 듯 연신 손 뽀뽀를 날리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마법 영역에서는 문외한인지라, 수상과 볼브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헤일. 마법부에서 제국방위부와 함께 국경선으로 간다 한들, 황궁에서는 지원이 불가할 것 같네.”
그 틈을 타, 진이 일러주었다. 마법부의 인력이 줄어도 황궁에서는 인력 지원을 핑계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인력을 분배하라는 신호였다. 헤일은 그 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전하. 잘 알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마법사가 동원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지금 이안 님과 동료를 구하는 걸 최선으로 두고 있습니다.”
“보자 보자 하니까, 헤일 대장이라고 했나? 지금은 위급 상황이다! 대회의가 버젓이 열리고 있거늘, 어찌하여 독단적으로 그리 진행해? 마법사들이라고 해서 황궁의 질서를 어겨도 된다 이건가? 응? 그래?”
이안이 없는 기회를 잘 살려보고자 했는데, 마법부에서 이리 나오면 곤란하게 되었다. 수상이 자중하라며 손짓하였으나 볼브는 오히려 더욱 흥분하여 수상에게 호소했다.
“수상께서는 지금 황제 폐하의 권한을 이양받은 대리인입니다. 대회의에서 버젓이 결정된 사안이 있는데, 마법사들이 단체로 독단 행동을 하다니요!”
“아아아, 잠시만요!”
그때, 저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로만드로. 그는 두꺼운 종이를 잔뜩 들고 있는 상태였다. 볼브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쪽을 노려봤다. 저건 또 뭐야, 하는 표정이 여실했다.
“로만드로. 무엇인가?”
“이거요. 외근증입니다.”
“뭐? 외근증?”
그 짧은 거리 달렸다고 숨이 찬다. 로만드로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마법사들에게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수상께서 권한 대리인이듯, 이안 님이 없을 때는 제가 그 대리인이지 않습니까. 마법사들에게 외근증을 발급하였으니, 문제 삼으실 것 없습니다.”
외근증. 이는 이안과 황궁의 권한으로 발급되는 것인데, 이걸 지님은 곧 업무 수행 중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마법사들이 단체로 황궁 밖을 나서도 특별히 저지할 방도가 없는 것이라. 수상이 귀가를 명한다고 한들, 저 멀리 갔으니 돌아오는 데 오래 걸렸다고 둘러말하면 그만이다.
“에, 나키나!”
“네. 여깄습니다.”
“토미!”
로만드로는 마법사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가며 외근증을 나눠주었다. 어이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볼브.
수상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대처하였다는 걸 인지했는지,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다. 마법부에서 이리 독단적인 행동으로 답을 보일 줄 몰랐다는 듯이 말이다.
“에, 마지막으로 아코렐라?”
“네네네! 나도 갑니다요!”
아코렐라가 외근증을 받기 위해 가까이 왔다. 그리고 볼브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눈을 번뜩이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장관님. 증폭제 걱정되시면, 한번 맞아보실래요?”
“뭐, 뭐?”
“아직 일반인한테는 실험한 적이 없거-”
헤일이 제발 닥치라며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그때, 어긋난 조각이 맞춰졌는지 마법사 한 명이 탄성을 내질렀다.
“맞아떨어집니다, 헤일 대장! 클리포포드 쪽으로 위치가 맞아요!”
“다들 마력 발동해!”
지이이잉! 지잉!
헤일의 명령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다급하게 주사기를 찾아 제 팔에 꽂아 넣었다.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바람. 마법사들이 마력을 발동했을 뿐인데, 그 파급력이 엄청났다.
“오오오!”
“아코렐라 님! 이거 뭡니까?”
“봤지? 나 미쳤지? 크흐, 맛 죽일 거다.”
아코렐라는 콧대를 튕기며 크게 웃어 보였다.
미세한 마력입자가 핏줄로 흘러들어, 심장을 터지게 만드는 기분. 마법사들의 눈빛이 동시에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볼브가 뒤로 주춤거리며 굳어버렸다.
“아 참, 나도 맞아야지.”
아코렐라는 제 팔뚝에도 증폭제를 주사하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진 황태자가 저희들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코렐라는 아이에게 눈을 찡긋거리며 인사했다.
“이안 님 잘 데려올게요. 전하.”
“…조, 조심히. 꼭 조심히.”
“다들 바로 전서구 날리게! 마력석 챙겼지?”
“물론이죠! 로만드로 님은 집 잘 지키고 계세요!”
“저저, 말하는 본새하고는! 이안이 꼭 살려와!”
“아하하! 와우! 기분 죽인다!”
촤아아악!
솨악!
마법사들이 허공으로 도약하며 쾌감 어린 소리를 질러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검은 달. 그 소란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마법부 정원에는 정적만 감돌았다. 전쟁을 제외하면, 마법사들 모두가 동시에 자리 비운 예가 없으리라.
볼브는 허망하게 하늘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뭔…….”
이안이 취임한 이후, 마법부가 이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