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37
제337화. 한자리에 모인 웃음
숨이 좀 트이는 기분이 든다. 몽롱한 와중에도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 겉으로만 부는 것이 아니라 속 안을 가볍게 헤집으며 열감을 내려주는 기분이다.
촉감이 극대화되며 기분 좋은 모든 것들이 이안에게 쏟아지는 듯했다. 따스한 햇살, 바스락거리는 이불, 어디선가 나는 달짝지근한 냄새, 그와 더불어 익숙한 목소리들.
“와. 이안 님, 웃는다. 웃어.”
“어디 봐봐, 진짜네? 편하신가 보다.”
“나도 좀 보자. 어이구, 얼굴이 반쪽이 되셨어.”
“마력 아끼지 말고 넣어라. 다 보고 있다.”
“시꺼, 인마.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까.”
반짝, 이안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아주 느긋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하여, 침대에 옹기종기 붙어선 마법사들은 이안이 정신을 차린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아웅다웅 대기만 했다. 개중 한 명이 이안과 눈이 떡하니 마주쳤다.
“어, 이안 님 눈 떴다.”
“뭐?! 이안 님, 정신 좀 드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말 좀 해보세요. 아에이오우.”
“무리하지는 마시고요, 몸 상태는 좀 어때요?”
“…….”
흐릿한 시야에 빼곡하게 들어오는 마법사들. 머리가 하나, 둘, 셋, 끝도 없다.
이안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싶었다. 분명 여기는 클리포포드인데, 서자 이안의 계약 마법으로 인해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일까? 바리엘 마법부를 지키고 있을 마법사들이 어찌하여 여기에 있단 말인가? 이안이 멍하니 그들을 지켜만 보자, 몇몇이 울음을 터트렸다.
“이, 이안 님, 우리 못 알아보나 봐.”
“방금 깨셔서 그래. 정신 없으신 거지.”
“이안 님 바보 되면 어떡해? 흐윽.”
“지랄도 정도껏, 뒤로 빠져! 이안 님. 마력 계속 넣을 겁니다. 불편한 곳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아, 말하기 힘드시면 눈만 깜빡여도 좋습니다.”
지이잉. 지잉.
마법사들이 이안을 둘러싼 채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잠결에 느꼈던 기분 좋은 감각이 이것이었구나.
이안은 신체 내부 깊은 곳부터 차오르는 기력을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손끝을 까딱거렸다. 아까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고개 하나 돌리기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팔을 들고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들…….”
“이안 님, 말씀하신다아아!!”
“이안아아아! 이제 안 아파!?”
한마디 떼었는데 시끌시끌.
마법사들에게 치여서 뒤에 서 있던 베릭이 헤엄치듯 앞으로 다가오려 했고, 마법사들은 온몸으로 그를 밀어내며 버텨냈다. 아까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다 어디 가고, 도떼기시장만 남았는지, 원.
이안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자, 누군가 잽싸게 베개를 허리에 받쳐줬다. 베릭이 눈을 댕그랗게 뜨며 벌떡 뛰어올랐다.
“이안아! 일어날 수 있겠어? 전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했는데! 대박! 이야, 역시 마법이 좋긴 좋다. 빨랑빨랑 더 해봐. 응?”
“그러니까, 저리 좀 가봐. 방해된다고!”
“내가 옆에 있다고 방해될 정도면 문제 있는 거 아님?”
이안은 심장 부근을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꽤 넓은 침실이 가득 찬 것은 물론이요, 이어져 있는 응접실까지도 인기척이 그득했다. 수로 보아, 마법부의 대부분이 이쪽으로 넘어온 게 분명했다.
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쥐었다 폈다.
“…다들 어떻게 된 건가?”
“아코렐라가 부작용 없는 마력증폭제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이용해서 포탈 타고 왔어요.”
“그럼 지금 바리엘에는? 누가 남아있지?”
이안의 물음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한 채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황궁 입구를 담당할 두 명과 로만드로 님을 제외하고서 텅 비어있었으니까.
이안은 황당하다는 낯으로 헤일을 쳐다봤다. 대장이라는 자가, 지금 바리엘을 그렇게 비워두고 왔다는 게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안 님.”
헤일이 무릎을 꿇으며 침대와 시선을 맞추자, 뒤에 서 있던 마법사들 역시 우르르 무릎 꿇었다. 베릭만 어리둥절하게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그 역시 철퍼덕 자리에 주저앉았다.
“혼내실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리포포드로 넘어간 이후 연락도 안 되고, 마지막에 겨우 들어온 것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장관이기 전에 이안 님은 마법부의 수장입니다. 이안 님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라 판단하였고, 저희는 그 선택이 옳았다고 여길 것입니다.”
“맞습니다. 안 그래도 황궁에서 요즘 마법부 대하는 게 심상치 않은데, 이안 님마저 없으면 진짜 곤란합니다.”
“이안 님, 혼내시더라도 힘 좀 내서 혼내십시오.”
“그래요. 그 전에는 하시는 말씀 안 들을 겁니다.”
“옳소! 이안이는 마법사들 혼내지 말라! 얘들이 포도밭도 망치고, 저기 왕님 계속 훌쩍이고 있는데, 그래도 혼내지는 마라! 어지간했으면 약 빨고 왔겠냐!”
“으아악! 베릭, 조용히 해!”
“그래. 넌 입 다무는 게 도와주는 거다!”
가운데 껴 있던 베릭이 손을 번쩍 들며 외치자 마법사 두어 명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손을 잡아내려 챘다.
포도밭이 망가져? 왕은 또 왜 울어?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지만, 이안은 잠시 베개에 목을 기댄 채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의 부재로 인해 황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어느 정도 짐작 가능했다. 견제 세력에서는 이때다 싶어 마법부의 영향력을 제한하거나, 간섭하는 쪽으로 파고들려고 했겠지. 하지만…….
‘마법사 대부분이 클리포포드로 온 이상, 황궁에서는 반응이 격렬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다. 아마 업무 마비에, 타국으로 정보가 들어간다면 군사적인 충돌까지 염두에 둘 수 있는 중대 사안.
이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끝으로 매만지자, 다들 침묵한 채 그의 눈치만 봤다.
‘이안 님 화났나?’
‘그런 것 같지? 아, 어떡해.’
‘그래도 저렇게 움직이는 거 보니까 안심된다.’
황궁에서, 정확히는 수상과 제국방위부 측에서 하도 재수 없게 군 터라 앞뒤 가리지 않고 우선 질렀는데, 막상 이안 앞에서 고백하자니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이안이 마법사들을 빤히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에 서린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조금은 무거운 침묵 끝, 드디어 이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고맙구나.”
“…예?”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이미 벌어진 일. 그리고 이안은 마법사들의 행위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하여,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딱 하나뿐이지. 고마움과 위로.
“문제가 생겨 고생이 많았을 것이라. 다들 고맙고, 고생했다.”
“……!”
울상이던 마법사들의 안면에 기쁨과 안도 그리고 환희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들은 이안의 침대 가까이 붙어서 황궁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전하기 시작했다. 그가 없는 와중, 황궁에서 마법부의 취급이 어떠하였는지, 또한 무슨 일이 있었으며, 아코렐라의 등장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까지.
따악.
“오오, 이안 님. 일어났어요?”
마침, 응접실에서 아코렐라가 포도를 양 볼 가득 우물거리며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있었는데, 알 수 없는 액체가 한가득 차 있다. 이안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마법사와 아코렐라를 돌아봤다.
“부작용 없는 마력증폭제라고?”
“예. 아코렐라 대장 말대로라면요.”
마법사가 결연한 표정으로 속삭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기분 좋다는 듯 빙그르르 돌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미친 자의 앞길을 막을세라, 길이 순식간에 트였다.
“이안 님. 저 아코렐라예요. 마법부에서 제일가는 똑똑이.”
“제일 똑똑이는 이안이 아녀?”
“응. 뒤에서 첫 번째인 베릭은 입 다물어. 아무튼 세 번까지는 연속으로 맞아도 되는데, 그 이후로는 실험해보질 못해서 모르겠어요. 황궁으로 복귀하면 각 잡고 실험해보려고요.”
아코렐라의 눈빛이 번뜩이며 마법사들을 훑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고, 아코렐라는 침대 곁에 앉으며 이안의 팔뚝을 걷어냈다.
“몸에 남아있는 마력 양을 기준으로 증폭하는 거거든요.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 한 대 맞고, 나중에 더 회복된 다음 한 번 더 맞죠. 그러면 포탈 열고 바로 돌아갈 수 있어요.”
쪼륵, 주사 바늘로 약이 찔끔 새어나왔다. 다른 거라면 몰라도 아코렐라의 실력이라면 믿을 만한 데다, 마법사 대부분이 이걸 맞고 왔다 하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이안이 선뜻 팔을 내주었다.
“갑니다요오.”
“으으, 대장. 안 아프게 놔드려요. 제발.”
“어허. 잡소리 사절!”
이안이 고통으로 인상을 찡그리자, 마법사들도 덩달아 인상을 찡그리며 안타까워했다. 약물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마력을 그렇게 퍼부어대도, 이안의 그릇을 다 채우기에는 모자랐나 보다. 증폭제의 효과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이안의 반응을 기다리는 순간.
똑똑.
문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클리포포드의 왕과 노아 왕자다. 훌쩍였다는 베릭의 증언이 맞았는지, 안 그래도 오동통한 눈두덩이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급한 볼일이 끝났으면 얘기를 좀 해야겠는데.”
어떠한 허락 없이 국경을 넘어선 것도 모자라, 왕궁에 직격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왕이 아끼는 포도밭을 작살 내기까지.
왕궁 정문 쪽에는 갑작스러운 검은 달의 존재에 놀란 백성들이 몰려왔고, 클리포포드 병사들과 관료들은 허술한 왕궁 경비에 질색하며 긴급 소집령을 내린 상태다. 말 그대로 나라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라.
노아 왕자는 이안이 상체를 세우고 있는 것을 슬쩍 보며 조용히 혀를 찼다. 저자가 일어나기 전에, 마법사들을 회유할 필요가 있었는데…….
“왕이시어. 소란을 일으켜서 송구합니다. 잠시 시간을 주시면 옷을 갖춰 입고…….”
“아니, 이안 경은 더 쉬시고-”
“이안 님!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그래요. 방금 일어나셨으면서! 또 쓰러지면 진짜 감당할 수 없어요. 바리엘이 아니니까 마력 분배 잘 해야 한다고요.”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왕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좌우로 저어댔다. 무릎 꿇고 대기하던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 단체로 벌떡 일어서며 이안에게 가만있으라, 한마디씩 던져댔다.
“제가 대신 알현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대는?”
“마법운용부 대장 헤일입니다.”
왕은 아코렐라와 헤일을 번갈아 봤다. 주사기 든 채로 헤실헤실 웃고 있는 자보다는, 그래도 아까 인사라도 한 자가 낫겠다 싶은 게라. 왕은 따라오라는 듯 고갯짓하였고, 이내 이안에게도 일러두었다.
“이안 경은 몸을 추스르는 대로 알현을 요청하라.”
“예, 전하. 참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는 명심하라는 듯 눈썹을 치켜들며 슬쩍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니, 이는 역시 클리포포드의 뜻이라.”
끼이익.
헤일이 왕을 따라나섰고, 베릭은 귓구멍을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뭔 소리래?”
“클리포포드 문화라고. 각자도생이 아니라, 조금만 파헤치면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게다, 바보야.”
“아, 연결되어 있다고? 포도처럼?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이 포도 좋아하나? 근데 나 바보는 아닌데 각자도생은 또 뭐임?”
“이안 님, 용케도 쟤를 거두셨습니다. 자아, 마력 계속 넣자. 헤일이 나갔으니 더 힘내 봐.”
아코렐라가 혀를 끌끌 차며 베릭에게 비키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이안이 희미하게 웃었고, 베릭을 비롯한 그 자리의 모두가 덩달아 웃었다.
“이안 님, 실례합니다.”
지이잉. 지잉.
그들은 이안의 손이나 팔 그리고 무릎께에 손을 올린 다음, 다시금 마력을 발동했다. 베릭은 연신 힘내라며 뒤에서 정체 모를 춤을 춰댔고, 이안은 베개에 몸을 기댄 채 웃기만 했다.
이안의 웃음. 이걸 보고자 그 고생을 한 것이라. 마법사들은 마음 깊이 충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안 역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스며드는 걸 인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