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38
제338화. 생각하지 못한 과녁
콰앙! 쾅쾅!
“문 좀 열어보십시오, 로만드로 님!”
“아니, 이것만 결재하면 된다니까요? 도장만 좀 찍어주세요. 제발.”
“우리 얼굴 보고 얘기합시다, 예? 왜 이러실까, 증말. 이러기 있습니까? 다른 부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아시면서 이러기 있냐고요!”
“로만드로 님, 안 들리는 척하지 마세요!”
굳게 닫힌 문이 계속해서 덜컹거렸지만, 로만드로는 침착하게 차를 따라 마실 뿐이었다.
이안이 자리를 비운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 시간. 그의 빈자리는 치명적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마법사들이 힘을 써주었고, 로만드로 또한 권한을 대신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으로 편의를 봐주었다.
하지만 지금을 보라. 텅 비어버린 마법부. 황궁 출입을 담당하는 마법사를 제외하고 모든 마법사들이 증발해버리니, 그 업무 또한 모조리 정지된 것이다.
“음. 맛있네.”
“로만드로 님!”
쾅쾅!
로만드로는 차를 홀짝이며 부서질 듯 흔들리는 문을 노려봤다. 저 중 반은 진실로 일을 부탁하기 위함이요, 나머지 반은 항의하기 위해 온 것이리라. 그는 마법사들이 돌아올 때까지 사무실을 지키며 꼼짝달싹 안 할 것이라 결심했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마법사들이 몸과 정신을 갈아 넣어 황궁을 지탱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터인데, 그런 취급이라니. 이는 일종의 정당한 파업이라고 봐도 될 터였다.
누군가 창문까지 흔들어 젖히자, 로만드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아 창문 부서지겠네!”
“있네, 안에 있었어!”
“그럼 업무 시간에 내가 여기 있지, 어딜 가겠나? 두고 갈 서류 있으면 그 앞에 놓아. 상자를 괜히 둔 게 아니라고. 크흠.”
“그래서 마법사들 언제 오는데요?”
“이안 님 몸 상태를 먼저 물어라, 이 사람들아! 가자마자 전서구 보낸다고 했으니까, 기다리든가. 난 몰라!”
“문 좀, 아오! 마법부 거라서 그런가 더럽게 튼튼하네. 부숩니다? 예? 부숴요? 도장만 좀 찍어줘!”
“그거 마력석 갈아 만든 건데, 엄청 비싸거든? 봉급 날리고 싶으면 알아서 해라! 인마!”
에베베. 로만드로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문을 노려봤다. 저런다고 열어주나 봐라. 그는 바삭하게 볶은 굴라를 씹어먹으며 밀린 보고서를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뚝, 하고 멈춰버린 소란. 로만드로는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들리는 정중한 노크.
똑똑.
“아, 잡상인 안 받아요.”
“로만드로. 나일세.”
“헉!”
우당탕탕!
로만드로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머쓱한 표정으로 시아오시와 서 있는 진. 그의 뒤로 타 부서 직원들이 먹잇감을 노리는 눈빛으로 로만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문틈으로 고개를 내민 다음, 진과 시아오시에게 들어오라는 듯 몸을 틀어주었다.
‘스읍.’
로만드로는 움찔거리는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경고하듯 눈썹을 까딱거렸고, 황태자가 있는 자리에서 추태 부릴 수 없는지라 다들 조용히 문 닫히는 것만 지켜봤다.
“어쩐 일이십니까, 전하?”
문이 완전히 닫히자, 로만드로가 조심히 물었다. 진의 의중을 알고 있기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리 마법부에 출입해도 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진은 싱긋 웃으며 걱정스러운 낯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부 또한 황궁의 부서. 나를 도와 바리엘에 이바지하는 자들 아닌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직접 와서 살펴야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전서구는 온 게 없는가?”
“예. 왔다면 정문에서 먼저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군.”
진은 무릎에 올린 손끝을 꼼지락거리며 잠시 침묵했다. 이안이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 이후, 이렇다 할 정보가 없으니 답답하고 막막한 것이라.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전하. 마법사들이 단체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만한 마력 받으면 저승길 가다가도 정신 퍼뜩 차리고 돌아올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미래는 참담한 어둠 그 자체다. 제국의 거대한 전력을 잃음은 물론 수장을 잃은 마법부는 또 어찌 관리할 것인지, 눈앞이 캄캄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스승이자 친우인 이안을 영영 못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아이가 떠나보낸 그들처럼.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게지요?”
로만드로는 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속삭였다. 혹여 바깥에 소리가 새어나갈까 싶은 게다. 시아오시는 창문에 딱 붙어서는 혹여 엿듣는 자가 있는지를 살폈다.
“수상과 제국방위부가 이드갈에 대한 조사를 하려 함은 알고 있지.”
“예, 물론입니다. 전하께서 막아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수상은 그렇다 쳐도, 제국방위부 볼브가 그리는 바리엘이 내가 생각하는 바리엘과 조금 괴리가 있는 것 같네.”
“……!”
로만드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멈칫거렸다. 지금 진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행보에 있어서 제국방위부가 거슬린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만드로는 실례한다며 차를 벌컥 들이켰다.
“어, 볼브 장관 말씀 맞으시지요?”
“그래. 수상과 볼브 둘 다 이드갈을 선취하는 쪽에 목적을 두는 것 같은데, 그 의도가 달라 보여. 확실한 건 아니네만…….”
수상이 건실한 바리엘의 중심을 위해 마법부를 누르려 한다면, 볼브는 자신의 위상을 위해 힘을 얹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언행에서 보여주는 자그마한 거슬림이 계속 신경 쓰여 무시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심증만 있는 것인지라 말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럽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니요. 전하께서 그리 느끼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이안이가 항시 그러지 않았습니까. 전하께서 세상의 중심이시라고.”
로만드로는 일체의 의심 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의 의견에 동조해주었다.
그 모습에 진이 쓰게 웃었다. 자신과 이리 잘 맞는 자들은 모두 마법부에 있는데, 홀로 떨어져 나와 서려 하니 쉬운 게 없다.
“제국방위부 장관을 내 사람으로 앉히고 싶은데, 신년회까지는 시일이 너무 오래 걸려. 그때 다른 장관들의 여론 또한 어찌 될지 모를 일이고. 하여, 혹 좋은 방안이 있다면 나누어주었으면 하네만.”
“아, 예예.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이안이가 있었더라면 좀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이안 경에게는 최대한 비밀로 해주게.”
“예? 어째서요?”
진의 부탁에 로만드로가 의아해했다. 이안이라면 분명 깔끔하고 확실한 수를 일러줄 터. 하지만 진은 로만드로의 손을 단단히 잡으며 재차 강조했다.
“이안 경은 몰랐으면 좋겠어.”
이안이 원하는 것은 그 없이 혼자 걸어 나가는 자신이니까. 실망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또한 진 역시 로만드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베풀 수 있는 아량의 끝이다. 기반이 제대로 없는 지금,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는 탓인 게다.
‘이드갈…….’
로만드로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연신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필릭의 가택수사에서 찾아냈던 이안의 흔적. 아무래도 이드갈이 이안과 무언의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황궁에 알려지면 어떤 식으로 반응이 올라올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안이 돌아오면 물어보기나 할 것인데, 사태가 이러하여…….
‘송구합니다. 전하. 당장 말씀드리지는 못하겠네요.’
“알겠습니다. 저도 다방면으로 방도를 찾아보겠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전하. 황궁의 주인은 전하시라는 걸요.”
이는 아마 진의 인생사에 있어서 첫 정적 상대가 될 지도 모르겠다. 권력을 견고히 하는 것의 시작은,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인사를 분배하는 것.
“볼브 장관은 내란 당시 임의로 상정하여 올린 자이지요. 전 장관이 마리브의 편에 가담했던 걸 생각하면 필시 그 반대파요, 이는 황실 권력과 멀었던 자입니다. 운 좋게 올라왔으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내가 그걸 느꼈네. 장관이…….”
이것까지 말해도 될까? 진이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털어놓았다.
“전쟁을 원하는 것 같아.”
“원래 무장들은 그렇습니다. 피를 마시고 살아가는 자들이니까요. 뭐-”
제국방위부 장관이 전쟁을 원하는 건, 굳이 볼브가 아니더라도 그쪽 부서 사람들이라면 다 그리할 것이다. 로만드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전하, 혹시…….”
진이 주위를 인식하면서도 이리 찾아온 이유.
그리고 콕 짚어서 볼브에 대한 언질을 하는 이유.
로만드로는 벌떡 일어나 창문 커튼을 걷었다. 멀리, 로비에 삼삼오오 앉아서 기다리던 타 부서 직원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제국방위부는 한 명도 없다.’
“…대규모 군사훈련을 나갔네.”
“…이런.”
“마법부가 비어있는 지금, 바리엘이 평시보다 취약한 것은 사실이니까 거부할 명분이 없었어. 이안과 마법사들의 전서구도 도착하지 않았고.”
혹시 모를 클리포포드와의 격돌이나, 틈을 노리고 들어오려는 버고스와 루스웨나를 대비해야 한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하여, 진은 어쩔 수 없이 대규모 군사훈련 허가를 내려주었고, 그의 지휘 아래 병사들이 결집하고 있을 터였다.
사태가 아슬아슬했다. 지금 황궁에서는 볼브를 잡아 누를 만한 자가 없는 것이라.
“하아.”
진은 이마를 짚으며 잔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토록 자신의 위치가 갈대 같을 줄은 몰랐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자리라니. 하지만-
“중간에 문제가 있었지만, 클리포포드는 바리엘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어. 내 임명식 기간에 이미 그들은 버고스와의 길을 달리 걷겠노라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여, 이안이 살아만 있다면 편의를 충분히 봐주고 있을 터. 버고스와 루스웨나도 아둔한 자들이 아니니, 마법부가 비었다고 해서 섣불리 바리엘에 덤벼들지는 않을 것이라.”
하지만 갈대는 부러지지 않는다. 진은 흔들리는 이 과정이 자신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걸 굳게 믿고 있었다. 이안이 바라는 것이었으니, 틀릴 리가 없다.
“…클리포포드라면 몰라도.”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전쟁은 난다. 그것의 규모나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러니 서두르는 게 좋겠어. 제국방위부 장관의 군사권을 제한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 볼브를 끌어내리는 게 옳아.”
로만드로는 뭔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이 방금 한 ‘클리포포드라면 몰라도’의 의미를 알아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아.”
진이 짚어내는 정세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 * *
클리포포드 국왕 알현을 마치고 돌아온 헤일.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아주 가관이다.
베릭은 춤추다 지쳐서 바닥에 뻗어있지, 마법사 몇몇도 마력을 쏟아낸 탓에 지쳐 쓰러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개중에 아코렐라도 섞여 있어 조용하다는 것.
그리고 이안이 스스로 손을 움직여 죽을 떠먹게 되었다는 것.
“회복이 빠르십니다. 이안 님.”
“다들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이안이 희미하게 웃으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움직임이 영 어설프다. 들어보니 각혈을 심각하게 했다는데, 저만한 회복도 대견하다 싶다.
헤일이 아코렐라를 발로 밀어내며 의자를 끌어왔다. 그에게 왕과의 알현 내용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우선, 바리엘로 전서구를 새로 보냈습니다. 국경에 마력이상반응이 있다는 걸 이안 님이 깨면서 아셨다고 하네요.”
“그래. 내가 일러주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도착할 것입니다. 다만 우회하여 보내는 것이라 시간은 조금 걸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국왕께서 포도밭 보상을 요구하셨는데요.”
“엉망이 되었다지?”
“예. 그게, 실수였습니다.”
덕분에 망가진 고급 포도를 퍼먹을 수 있어서 좋다며, 베릭이 연신 위아래를 오가며 돌아다녔다. 헤일은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에게는 자세히 말하지 않으셨는데, 왕실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할 것이 있다 하였습니다. 이안 님 몸 상태 나아지면 계약을 다시 논의하자 하였고요, 음. 그 대략적인 내용은 여기 있습니다.”
스윽.
이안은 헤일이 전해준 전언을 천천히 읽어내렸다. 아마 왕실의 저주에 관하여 마법부의 도움을 받을 예정인가 보다.
그 밖에, 동맹을 맺을 때 서로에게 합당한 내역들이 오밀조밀 정리되어 있었다. 자세한 것은 황태자를 대동하여 진행하겠지만, 이만하면 서로에게 합리적이다 싶은 부분이 상당했다.
“나쁘지는 않군.”
“그리고 얼마 후면 클리포포드 왕궁건설기념일이라 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때 참석한 뒤 출발하면 좋을 것 같다 제안하셨습니다. 아마, 마법사들의 꽃가루에 대해 들으신 것 같아요.”
이안은 천장을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매였다.
“아니. 우리는 최대한 빨리 힘을 보충하여 바리엘로 돌아가야 한다.”
“황궁 걱정 때문에 그러십니까? 마법부가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다른 부서들도…….”
“그 때문이 아니다.”
“그러면요?”
“버고스와 루스웨나 측에도 현 사안이 흘러 들어갔겠지. 우리가 여기 있으면 클리포포드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