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39
제339화. 이드갈의 대중화
루스웨나의 왕, 에리포니는 있는 힘껏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장신에 시원시원하게 뻗은 팔인지라, 그 자세가 한껏 유연하고 화려해 보였다.
그녀는 뱃심을 단단히 한 채 한쪽 눈을 감았다. 풀을 뜯어 먹던 사슴이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고,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완벽했다. 이대로 활시위를 놓기만 하면 사냥감의 목을 단번에 꿰리라. 에리포니가 참았던 숨을 뱉어내며 활시위를 놓는 순간이었다.
“전하.”
솨아악!
갑작스러운 부름에 어깨가 살짝 흔들리고 말았다. 에리포니는 망원경으로 사슴이 껑충껑충 뛰어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곤 짜증스럽게 고개를 틀었다.
엘더트가 급한 낯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거 몇 초 기다리질 못하여 일을 그르치다니. 에리포니는 시종에게 활을 넘겨주며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렸다.
“엘더트. 무슨 일이지? 내 오늘 시종들에게 사슴 고기를 하사할까 하였는데, 덕분에 그르쳤으니. 그대가 알아서 하라.”
시종 다섯이 그녀를 위해 겨우 옮긴 소파였다. 바깥에서 눕는 맛이 또 다른지라, 그녀는 항시 사냥할 때면 소파나 침대 따위를 가지고 나오곤 했다.
에리포니는 몸을 내던지듯 기대 누웠고, 시종들은 부채질하며 그녀의 휴식에 도움을 더했다. 저 멀리서 사슴 한 마리가 지평선을 가르며 내달리고 있었다. 왕의 다음 사냥을 위해, 반대편에서 방생한 짐승이다.
“사슴이 멀리 가기 전에 일러.”
“알레나라에게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알레나라? 아아, 그 귀여운 영애.”
에리포니는 알레나라라는 이름을 단번에 떠올리지 못한 게 분명했다. 포도주로 입술을 축인 다음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녀의 손짓에 엘더트가 서신을 건네주었다.
“보자. 우리 귀염둥이 영애께서 친애하는 마음을 얼마나 담아 보냈을까.”
사락.
루스웨나로 망명을 요청하는 서신이 그전에 두어 번 있었기만, 그건 엘더트의 선에서 칼같이 정리되었다. 하여, 이번 서신은 에리포니가 알레나라에게 처음으로 받는 연락이 되는 것이다.
사냥의 즐거움에 도취하여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왕께서, 점점 침묵하며 낯을 굳혔다. 시종들이 눈치 보며 한 발 뒤로 물러섰고, 그녀는 곧이어 눈썹을 올리며 기이한 미소를 보였다.
“이게 사실인가?”
“바리엘에 남아있는 정보원 또한 같은 정보의 내용을 보고해 왔습니다. 신빙성이 상당해 보입니다.”
“하, 하하! 대단하군!”
에리포니는 다시금 누워서 전언을 햇빛에 비추어보았다. 꾹꾹 눌러 담은 글씨체에서는 순수하고 명백한 영애의 욕망이 엿보였다. 살아남고자, 모든 것을 불살라버릴 만큼 뜨거운 욕망.
음, 나쁘지는 않지만, 불장난은 강 건너에서 구경할 때가 제일 재밌고, 안전한 법 아닌가? 알레나라가 루스웨나로 들어와서 똑같이 나라를 좀먹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아무튼…….
“마법부는 현재 두어 명의 인력을 제외하고 모두 황궁을 비웠다?”
“클리포포드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이안 경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건 아직 확인되지 않습니다.”
“아니. 안 좋겠지. 그렇지 않고서 마법사들이 죄다 그쪽으로 넘어간 이유가 뭐 있겠어? 그들은 서로 주고받는 마력이 중요하다며.”
“그렇다면 클리포포드 측에서 이안 경을 해하였다는 걸 추측할 수 있는데요.”
“그것도 아니다. 이안 경이 당했다면 바리엘에서 마법사들을 보낼 이유가 없다. 그 수장 격인 이안이 무력화되었는데 다른 마법사들이 의미 있겠는가? 차라리 병력을 움직이고 말지.”
클리포포드는 아예 마법사가 없었지만, 루스웨나는 그래도 소수의 마법사들이 존재했다. 워낙에 소수라 왕궁에서 특별히 이점을 못 받는다는 게 문제지만.
마지막으로 보고 받은 것이 루스웨나의 동부 숲이었는데, 지금은 또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흐음. 재밌네.”
그녀가 잠시 지평선 쪽으로 시선을 멀리하여 생각했다. 자초지종이 어찌 된 것인지 완벽하게 추측할 수는 없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바로 지금은 더도 없이 좋은 기회라는 것.
황궁을 단단히 지키고 있는 마법사들이 죄다 사라졌고, 하필이면 그들이 향한 곳이 클리포포드라고 한다. 엘더트는 에리포니에게 건네받은 서신을 곱게 접으며 제안했다.
‘버고스 왕은 사태가 이리될 것을 알았나?’
진의 황태자 임명식에서 만났을 때, 버고스 왕이 이른 게 있었다. 바로 이드갈의 대중화. 그때는 무슨 개 헛소린가 싶었는데,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대신 그들은 드래곤 각린을 모아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는 하이만 가에서 사용했던 흑갑옷 제작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되었다. 앉아서 어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겠어. 왕궁으로 돌아갈 터. 지체할 수 없음이니 서둘러라.”
“네. 전하.”
에리포니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며 벌떡 일어났다. 버고스 왕이 일러준 바가 있어 예상은 했다만, 이렇게 빠르게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다.
에리포니의 명령에 엘더트가 조금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전하.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자가 좀 수상합니다.”
하완 왕국에서 넘어왔다는 상단 소속 무역상. 마력봉인석에 준하는 이드갈을 거래하고 싶다 하여 아래쪽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진위를 확인하느라 에리포니 왕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시세에 비해 너무 싼 값도 그러하고, 혹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검증하는 단계에 있었다.
“이드갈을 그 값으로 내놓는 것도 그렇고,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지 않습니까. 하필 마법사들이 클리포포드로 대거 이동하다니요. 제 살 깎아 물건 파는 상인은 없는 법입니다.”
에리포니는 별걸 다 걱정한다며 웃었다. 마력봉인석은 마력석 중에서도 최고상급. 그에 준하는 걸 두둑이 들고 와서는 별다른 요청이 없으니, 수상한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버고스 왕이 말한 것과 더불어, 상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문제없다.
“따지고 보면 그자들도 우리와 같은 입장이라서 그렇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드갈로 대가를 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드갈을 쥐는 걸 원하고 있다고. 마법사의 견제를 받는 주위 국들이 모두 그 힘에서 자유롭기를 원하는 게다.”
클리포포드도 모르겠다. 혹시 이안의 행렬 습격이 클리포포드가 이드갈을 선취한 것으로 생긴 문제라면… 버고스와 루스웨나에는 더더욱 좋은 일이다만.
“적의 적은 동지라. 그자들도 마법사들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으니, 우선은 내민 것을 잘 받아주어야지. 알현을 허락하마. 오후 중으로 자리를 만들어. 그리고 드래곤 사육장에도 연락하고. 버고스에서 조만간 연락이 들어올 것 같은데, 그 조그만 왕께서 웃는 모습을 드디어 보려나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전하.”
“아쉽네. 한 발만 더 쏘고 갈까?”
에리포니는 겉옷을 대충 걸친 다음 활을 잡아 들었다. 바보 같은 사슴이 아까와 같은 자리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짐승을 유인하기 위한 향이 발려져 있는 부분일 터라.
에리포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활시위를 가볍게 당겼다. 아까보다 훨씬 편안한 자세였다.
쉬이익!
하지만 화살은 그대로 날아가 사슴의 머리를 꿰었다. 주위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고, 깃발이 흔들리며 명중을 일렀다. 에리포니는 저것 좀 보라며, 아주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 * *
“…클리포포드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니요?”
헤일이 잠시 멈칫거리며 이안의 말을 되씹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클리포포드가 위험해질 길은, 이안을 해친 것으로 오인한 바리엘이 군사를 보내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하지만 이는 국경의 마력이상반응으로 인한 오해임이 밝혀졌으니, 모든 게 문제없지 않나?
“이드갈이 클리포포드뿐만 아니라 버고스와 루스웨나 측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찌, 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그리고 유입되었다고 한들, 그 수가 얼마나 되려고요. 마리브 황자가 내란에서 썼던 걸 생각하면, 글쎄요.”
“황궁에서도 그리 생각하고 있나?”
가만 듣던 이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드갈에 대한 수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는데 헤일의 단정이 의아한 것이다.
헤일은 긍정하며 황궁에서 있었던 대회의 내용을 일러주었다. 전해 듣는 이안의 눈썹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패착인데.”
유통되는 수를 만만하게 보았다가는, 패착이다. 이안이 그리 중얼거리자, 헤일이 다시금 물었다. 지금 대화하던 것은 클리포포드의 안위에 관한 내용이었으니.
“클리포포드가 위험하다는 걸 설명해 주십시오.”
“이드갈을 쥔 버고스와 루스웨나가 바리엘에 들어서기 전, 거점으로 삼을 곳이 클리포포드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아, 황궁 중심에서 단단히 자리하고 있던 마법사들은 모두 여기 드러누워 있지 않나?”
안 그래도 버고스와 클리포포드는 갈등이 심하던 관계다. 명분이라 하면, 수십 개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터. 혹 보석의 행방불명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이는 바리엘 명령에 불복했다는 클리포포드를 처단한다는 대의와 함께, 보석을 되찾고자 그쪽 귀족들을 동원하는 유의미한 동기가 될 것이다.
“마법사들을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제압할 기회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 계속 있으면 버고스와 클리포포드의 분쟁을 야기하는 꼴밖에 되지 않아. 서둘러 바리엘로 돌아가서 클리포포드와 동맹 관계를 견고히 하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다.”
모든 전쟁은 탐욕에서 세워진 명분 싸움이다. 구두로만 서로의 길을 함께하자 약조하였지, 아직 형식화된 것이 하나도 없다. 버고스 측에서 클리포포드에 쳐들어온다 하여도 바리엘 입장에서는 도와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혹, 타당치 않은 이유로 바리엘이 가담하게 된다면 아마 루스웨나 측도 참전하게 될 것이다.
이리되면 진정으로 걷잡을 수 없는 참극. 이드갈을 쥔 버고스와 루스웨나를 상대하여 마법사들이 힘을 제대로 낼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한마디로, 혼돈 그 자체로 빠져든다는 것.
헤일은 궐련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클리포포드 왕께서는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하시는 것 같던데요. 저희가 더욱 오래 남아있어 주면 좋겠다고 여기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대의 생각인가?”
“제 생각이자, 느낌이었고, 실제로 그리 제안도 하셨으니까요.”
“그러면 더더욱 큰일이군.”
이안은 팔로 눈가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클리포포드 측에서는 버고스와의 충돌을 예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마법사들이 이곳을 떠난 뒤 버고스의 침략이 들어온다면 바리엘 측에 지원을 요청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리되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요, 혹 바리엘에서 이제껏 있었던 일 등을 내세워 손절이라도 한다면 참으로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법사들을 붙잡아두어 충돌에 있어서 휘말리게 하는 것. 그래서 버고스의 공격을 바리엘과 함께 막아내는 것. 왕은 그걸 원하는 듯했다. 참으로 딜레마가 아닌가.
‘마법사가 있으면 버고스의 공격이 기정사실로 되지만, 막상 마법사가 나갔을 때 공격이 들어오면 힘들어진다.’
“그런데 이안 님.”
헤일은 불붙지 않은 궐련을 잘근거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노아 왕자에게 필릭의 자백을 전해 들은 것이다.
“계약 마법으로 이리되었다고 하셨지요. 혹시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
이안이 계약을 맺었다면, 특히 이중 계약이 불가하도록 맺었다면 그걸 잊었을 리 없다. 한데 어찌하여 이안은 자신의 몸에 걸린 제한을 깜빡이라도 한 것처럼 왕과 계약 마법을 맺으려 했는가.
“그리고 이안 님이 이드갈과 연관 있다는 필릭의 말 말입니다. 저희는 모두 개소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모르니까, 진짜 혹시 모르니까 여쭙습니다. 저희가 알아야 할 다른 게 있을까요?”
조심스러운 헤일의 질문. 다들 녹초가 되어 쓰러진 상황에서 아코렐라만이 정신을 잃은 척 누워 귀를 쫑긋거렸다. 이안이 이불 걷는 소리가 들린다. 아코렐라는 실눈을 뜨며 궁금해 죽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쪼그려 앉은 이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헉!”
“아코렐라. 잠시 나가지. 헤일과 함께.”
“아, 저 방금 일어났는데요. 와, 기절했네. 크흠.”
“부축 좀 해주겠나?”
이안은 헤일에게 손을 내밀었고, 헤일은 기꺼이 그를 잡아주었다.
헤일과 아코렐라. 차기 마법부를 이끌어갈 두 사람이었기에, 이안은 아주 조금, 자신의 비밀을 풀어낼 필요가 있다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