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1
제341화. 혈안이 된 버고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하여 색색의 빛이 들어오는 대회의실. 따뜻한 조명과 달리 분위기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클리포포드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노아 왕자가 거대한 원형 탁상에 모여서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으니. 마법사를 계속 붙잡아 두어야 한다는 왕의 의견과, 서둘러 그들을 보내야 한다는 신하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탓이라.
왕은 포동포동한 볼을 괴며 한숨 쉬었다.
“이보게들, 버고스와 루스웨나에서 지금 사안을 모를 것 같은가? 마법사들을 내보냈다가 일이라도 터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되네. 안 그래도 곧 있으면 농사철로 바빠질 것인데, 이런저런 쪽으로 문제라 이 말이라.”
“전하, 그 말씀도 응당 옳습니다만, 마법사가 클리포포드에 묶여있는 것이 더한 위험을 초래합니다. 서둘러 보낸 다음, 클리포포드에는 마법사가 없고 바리엘과의 동맹에도 문제가 없음을 버고스 측에 알리는 게 제일입니다.”
“하지만 이안 장관이 이제 막 깨어나지 않았소? 마력이상반응으로 인해 막 날린 전서구도 도착하려면 보통보다 시일이 오래 걸린다고 하니, 무턱대고 마법사들을 쫓아낼 것이오?”
“인도적인 차원에서도 문제고, 국가 간의 결례입니다. 적어도 이안 경이 몸을 회복하고 나서 보내는 게 맞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궁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니까요. 차라리 대외적으로는 이동했다 알리고, 저희 쪽에서 은밀히 보호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랬다가 바리엘과 소통에 오류라도 생기면요?”
“버고스 측에만 알릴 건데 바리엘과 소통 오류 생길 게 무엇이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지금 이런 논쟁을 할 필요가 없지요. 클리포포드와 바리엘 사이의 일을 버고스가 뭐 어찌 알고 행동한답니까?”
“자자, 그만들 하고!”
쿵쿵!
왕이 주먹으로 탁상을 두드리며 진정하라 일렀다.
반대파 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음은 인정했다. 하지만 왕은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국민들의 안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갈등 발발을 상정한 채로 답안을 내놓을 수밖에.
신하 한 명이 노아 왕자 쪽을 바라보며 간곡히 물어보았다. 노아 왕자의 설득이라면, 왕도 마음을 돌릴 수 있으리라.
“왕자님. 왕자님 의견은 어떠십니까?”
반대파 신하들이 두 손을 꼭 쥔 채 노아 왕자를 주시했다. 그는 왕의 왼쪽에서 두 번째에 앉아있었는데, 공식적으로 재상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 다음으로 발언권이 높은 자였다. 비공식적으로는 왕 다음이지만.
“버고스 측의 움직임에 관한 보고가 들어오지 않으니, 이는 섣불리 생각할 수 없음입니다.”
노아 왕자가 담당 신하를 힐끗 쳐다봤다. 정보전에 있어서 무엇보다 신속과 정확이 중요하건만, 버고스 측에 보낸 클리포포드 정보인은 아직까지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이안 경과 논의를 해보심이 어떻습니까, 아버님.”
“이안 경을?”
“예. 어쨌거나 바리엘 측에서도 클리포포드와의 동맹을 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클리포포드가 버고스와 충돌하면 저희 다음으로 곤란할 자들이고요. 무엇보다 마법사 당사자들의 의중이 제일 중요하다 여겨집니다. 그래야 밖으로 내보내든 어찌하든, 바리엘 측에 전할 말이 생기니까요.”
“흐음. 틀린 말은 아니도다. 하지만-”
클리포포드가 바리엘에 마법사의 왕궁 무단 침입 및 이안의 인도적 간병 따위를 내민다고 한들, 바리엘 측에서는 보석 분실과 이드갈 소지를 내밀 것이다.
동맹이 체결되려면 집요하고 끈질긴 이해관계 속에서 수많은 논의가 오가야 할 터인데, 이런 시기에 자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회의에 바리엘인을 참석시키기가 영 꺼림칙한 것이다.
왕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린 포도를 쏙쏙 집어먹었다.
‘깔끔하게 서로 빚진 거 없애고 동맹 맺으면 되겠구먼. 그 포도밭 망가진 것도 그렇고. 쩝.’
왕이 생각에 잠긴 채 포도만 주워 먹자, 신하들이 조심스레 말했다.
“전하.”
“응?”
“헤일이라는 부하에게 이미 언질을 하셨다지요. 무어라 답하더이까?”
“이안 경에게 전한다고 하더군. 그리고 나는 이리 회의에 왔지 않소.”
반대파 신하들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왕이 입장을 물릴 생각이 없어 보이니, 직접 마법사 측과 접선하여 그들을 돌려보내고자 할 참인 게다. 노아 왕자가 기민하게 그걸 알아채고 헛기침을 해댔다.
“크흠. 우선 아버지께서 마법사들이 더 머무셨으면 하니, 그에 관한 조치를 해둔 다음 버고스 측의 상태를 파악하고 다시 논하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들에게 치료 기간을 두 배로 늘려 진단하라 이르고-”
끼이익!
타닥타닥!
노아 왕자의 발언을 자르는 다급한 소리. 회의실의 모두가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병사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전하!”
“왜 그런가? 넘어지겠어.”
“버고스, 하아, 버고스 측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그의 보고에 다들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이렇게나 빠르게? 왕궁조차 아직 혼란스러운데, 버고스 측에서는 어찌 알고?
왕은 한숨을 푹 내쉬며 먹던 것을 마저 삼킬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며, 신하들을 둘러보며 혀 차는 것을 잊지 않았다.
“봐봐, 내 말했지. 떼잉, 쯧!”
“저, 전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쩌긴 뭘 어째? 사신을 문전박대할 것인가? 버고스의 새로운 왕은 제 아버지와 다르다. 뭐랄까. 전 왕이 구렁이 같은 자였다면, 다몬 왕은 작은 독사 같은 자라. 아이고, 일어나봄세.”
“다들 준비하라! 버고스의 사신을 접견실로!”
노아 왕자가 아버지를 부축하며 급히 명령했다. 신하들은 왕과 왕자를 번갈아 보다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내달렸다. 이리되면 왕의 명령대로, 마법사가 클리포포드에 주둔해있음을 알리는 편이 낫지 않나? 뛰어가던 신하가 발걸음을 되돌리며 소리쳤다.
“마, 마법사들은 어찌할까요? 접견에 동석해달라 부탁할까요? 혹, 부탁을 거절하면…….”
“마법사들은-”
왕이 제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가볍게 밀었다. 왕자가 얼떨결에 앞으로 나아가며 제 아버지를 돌아봤다.
“노아, 네가 만나러 가보아라. 접견실 옆에서 내용을 전해 듣다가, 마법사의 존재를 알릴 필요가 있다 하면 그때 내보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노아.”
왕자가 제 아비와 눈 마주쳤다. 왕은 인자하게 웃으며 눈꼬리를 더더욱 깊게 접었다. 부자(父子)가 똑 닮았으니, 크고 작은 여우 두 마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듯했다. 급하게 돌아가는 배경과 다르게, 아주 느긋이.
“바리엘 사절 임무를 잘 해내고 돌아왔음을 항시 명심하고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 알았지?”
“아버지.”
“어여 가봐. 가서 마법사들과 잘 해봐.”
노아는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으로 제 아버지를 짧게 끌어안았다.
솔직히, 자신이 잘 하긴 무얼 했단 말인가. 3국 동맹을 맺지도 못하였고, 왕가의 저주가 누설되었으며, 이드갈에 대한 욕심으로 바리엘에 책까지 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왕인 아버지는 질책하는 대신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3국 동맹은 언제나 정세를 따르는 것이요, 왕가의 저주는 노아의 탓이 아니라 선대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드갈의 거래는 모두 애국심에서 실행된 것이니까.
“곧 뵙겠습니다.”
“그래.”
노아는 굳건한 표정으로 인사를 올린 다음, 마법사들의 별궁 쪽으로 뛰어갔다. 수십의 신하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왕은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접견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입가에 남은 단맛을 음미하며 일렀다.
“먼 길 오신 손님들에게 따뜻한 포도주를 내놓자.”
“예. 전하.”
“어찌 노을 지는 시간에 왔을꼬.”
포도 농사가 주인 클리포포드에서는 해 지는 시간을 신성하게 여겼다.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무와 술로 힘듦을 잊고 다음 날을 준비하기도 모자란 저녁인데, 업무가 생겨서야, 원. 왕은 제 옆을 쫄쫄 따르는 시종에게 말린 포도를 내밀었다.
“긴장하지 말고, 입을 축이련?”
“가, 감사합니다. 전하.”
“그래. 다 잘 될 것이다. 신의 뜻대로.”
데엥-
아- 오아-
멀리서 종소리와 함께 농부들의 흥얼거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왕궁의 소란 탓에 바로 묻혀버렸지만 말이다.
* * *
콰앙! 쾅!
벌컥!
“으악, 깜짝이야! 뭐여!”
“와, 왕자님이네. 안녕하세요?”
“놀랐잖아요. 간 떨어질 뻔. 왕궁에서 그렇게 뛰면 안 된다고, 이안이가 말 안 해줘요?”
별궁에 마법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노아는 숨을 헐떡이며 이안의 침실을 열어젖혔고, 바닥에 뒤엉켜 늘어져 있는 마법사들과 마주했다.
상태가 다들 왜 저런가? 미쳐 날뛰던 자들이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곯아떨어져 있었다. 침대는 텅 비어있는 상태.
“…다들 왜 이래?”
“왜긴요. 이안이한테 힘주느라 기운 다 빨린 거지. 하아암.”
“이안 경은?”
“이안이? 화장실 갔나?”
“아니. 아까 헤일 님이랑 아코렐라 님이랑 나가던데. 긴히 하실 말씀들이 있었나 봐.”
“그렇다네요. 왕자님, 동생 왕자는 괜찮아요?”
“다들 좀 일어나보시게들!”
“왜, 왜 그러십니까? 상태 좀 안 좋은데…….”
의식이 있는 자들이 비척비척 상체를 일으켰으나, 거기까지였다. 도저히 기운이 안 난다는 듯, 다시금 뒤로 철퍼덕 쓰려졌으니. 이러면 버고스 사신 앞에서 마법사라는 걸 어찌 증명하겠나?
“오케오케, 나 일어났다! 짜잔!”
베릭이 벌떡 일어서며 근육을 쥐어짜냈다.
그걸 짜증스럽게 보는 노아. 이내 바로 등을 돌리며 부하들에게 이안을 찾아보라 명했다.
“인근에 있을 것이다. 찾아봐.”
“네. 왕자님.”
“이안이 왜 찾는데요? 이안이 찾는 거는 내가 전문인데? 찾아볼까요? 응?”
“좀, 시끄러워! 지금 얼마나 급한-!”
“이쪽이다, 이쪽. 냄새가 난다.”
노아가 성질을 부리든 말든, 베릭은 코만 킁킁거리며 그를 지나쳤다. 황당하게 그 뒷모습을 보던 노아. 이를 빠드득 갈아대며 검집에 손을 올렸다.
“시간 날리게 하는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다.”
“에헹. 대결 신청, 그런 건가? 난 너무 좋은데?”
“이 자식!”
“이쪽이쪽!”
별궁 지리를 잘 모를 터인데, 성큼성큼 나아가는 것이 꽤 그럴듯해 보였다.
노아는 검 손잡이를 계속 잡은 채로 베릭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따라갔다. 모퉁이를 두어 번 돌고 나니, 베릭이 펄쩍 뛰어오르며 손을 흔들었다.
“이안아아아!”
“베릭. 일어났는가?”
“아 몰라. 왕자님이 갑자기 문 쾅! 마법사들 기상! 이래서 다 깼어.”
“슬슬 밥 먹을 시간인데? 원래 깰 때 되었어.”
“아. 그런가? 그러면 그런 거지. 밥 먹자!”
베릭이 기지개를 쭉 켜며 소리치자, 이안은 노아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까딱거리는 턱 인사로 간략한 예를 표하곤 웃는 모습. 마치 노아 왕자가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문에 손님이 온 것 같던데요.”
“이안 경. 우리와 함께 자리를 움직이지.”
한시가 급한데 이안은 움직일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 옆을 단단히 지키고 있는 헤일과 아코렐라 역시 마찬가지. 베릭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슬그머니 이안의 옆으로 붙었다.
“왕께서 혜안을 가지셨습니다. 버고스가 이리 빠르게 움직일 줄은 저도 예상 밖인데요.”
“바리엘은 클리포포드와 동맹을 원하지 않나?”
“원하지요. 그리고 클리포포드가 버고스에 밀리지 않는 것 또한 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안이 의아한 눈짓을 보냈다.
“혹시 버고스 사신을 궁으로 들이실 생각입니까?”
“뭐?”
그러면 타국의 사신을 접대하지도 않고 돌려보낸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노아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자, 이안이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버고스에서는 명분을 잡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터인데, 괴한과 다름없지요. 궁으로 들이면 힘들어지실 것입니다.”
“대체 뭘-”
타닥타닥!
그때, 노아가 왔던 복도에서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다들 사색이 되어서는 왕자를 찾는 소리가 크다.
“왕자님! 왕자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소란인가!”
저는 아까 저것보다 더 심하게 뛰어다녔으면서, 참나. 베릭이 입을 비죽거리자, 이안이 자중하라며 눈짓했다. 이제부터 이곳은 바늘 위, 살얼음을 걷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니.
“버, 버고스 사신 중 한 명이, 접대주를 마시자마자 쓰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