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2
제342화. 신호
버고스의 사신들은 자신의 국기를 왼팔에 감은 채 클리포포드 궁으로 들어섰다. 접견실로 가는 발걸음이 위풍당당하고 날 선 것이, 앞서 안내하던 시종은 마치 쫓기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일몰이 지는 어둑한 왕궁 곳곳에 불이 켜지고, 노을이 완전히 발화하여 밤 너머로 타버린 시간. 클리포포드 왕은 왕좌에 앉아 사신들을 맞이했다.
“어서들 오시게, 이웃의 사신이여.”
“클리포포드의 왕께 인사 올립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환대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처억.
버고스는 손짓으로 자국의 기호(記號)를 심장 부근에 그렸다. 남의 나라에 왔으면 그 문화를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건만, 저놈의 버고스 왕국은 클리포포드에 와서 자국식 인사를 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이를 본 신하들이 소매로 불쾌한 심기를 가리며 저들끼리 눈짓했다.
“그래. 갑작스러운 방문이 의아하긴 하군. 무슨 일이신가? 혹 버고스에서 부고라도 생긴 것인가?”
위엄 있고 따뜻한 인사말이었지만, 그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그쪽의 다몬 왕이 죽기라도 했는지를 묻는 게라. 그렇지 않고서 이런 결례를 범한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사신들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농사나 지으면 딱 알맞을 그릇의 인간 따위가, 일국의 왕이랍시고 감히 주군의 죽음을 논하다니.
“아닙니다. 다름 아니라, 클리포포드가 바리엘의 임명식에서 귀가하던 중 의문의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서요. 버고스에서 도움 드릴 것이 있는지를 여쭙고자, 다몬 왕께서 친히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이런, 친절하기도 하셔라.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그런 일은 없었으니.”
“없으셨습니까?”
“그럼. 부하를 너무 질책하지는 말고.”
왕이 하하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클리포포드와 바리엘 간의 관계에 대해서 떠보고자 한 대화. 둘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으로 확인되니, 클리포포드 왕의 대답을 미루어 해석했을 때 관계상으로 변화가 크게 없는 듯 보였다.
‘충돌은 있었는데 문제는 없다라?’
클리포포드는 바리엘과 틀어질 수도 없고 틀어져도 안 되니, 필시 모종의 무언가가 오갔을 터다. 사신들은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클리포포드에서는 버고스의 보석을 보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혹 그 충돌로 보석에 문제라도 생겼다면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한 것인데…….”
“으으응. 아니지.”
“예?”
“버고스의 보석이 아니라 바리엘의 보석 아니던가? 진 황태자 전하께서 하사하신 것이니 말일세. 설마, 그대들은 진상품의 의미를 모르는가?”
“…저희는 그저 버고스에서 세공한 보석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오해하기 십상이니 언행을 조심하시게.”
껄껄 웃는 낯으로 버고스의 사신들에게 한마디씩 먹이는 클리포포드의 왕. 신하들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한데, 도움이라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뜻하는 지 묻고 싶군. 설마 세공사를 보낸다는 건 아니겠지. 클리포포드에도 훌륭한 보석 관리인이 많은데.”
솔직히 따지자면, 척박하고 건조한 버고스 왕국보다 놀고먹으며 유흥 즐기는 클리포포드의 문화가 더 화려하고 반짝였다. 그러니 당연지사, 보석 세공에 우열을 따지자면 이쪽이 더 낫지 않겠나?
버고스의 사신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보석은 버고스 귀족 가문에서 수 대째 내려오던 가보였지요. 하여, 혹 보석에 문제가 생겼다면 가문의 관리인을 통하여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흠이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해도 문제없습니다. 그것과 같지만 크기가 작은 것이 아직 남아있으니, 맡겨만 주시면 감쪽같이 고칠 수 있답니다. 바리엘의 황태자가 하사하신 것인데, 문제가 생기면 클리포포드 쪽에서 곤란할 것을 염려한 다몬 왕의 배려이십니다.”
흐름. 왕은 턱으로 말랑말랑한 볼을 괴며 그들을 내려다봤다. 일종의 거래 제안이었다.
노아에게 듣기로, 버고스의 보석이 귀족을 집결하는 데 쓰일 중요 수단이라 하지 않았나. 바리엘 몰래, 수리 명목으로 버고스 측에 돌려달라는 뜻이었다. 클리포포드 입장에서는 그대로 버고스가 보석을 뱉어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바리엘 측에 항변할 말이 있으니까.
그런데 어쩌지? 이미 보석은 저들 손에 없는데.
“되었네. 다몬 왕에게 마음만 받겠다 전하게.”
이드갈을 선취하는 조건으로 노아 왕자가 의문의 무리에게 거래 대금으로 넘겨준 상태다. 그리고 이미 마법부 장관과 바리엘이 그걸 알고 있지.
더 이상 바리엘 측에 반기 드는 선택은 절대 금물이다. 사람의 목숨을 두고 불행 중 다행이라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안이 저리 쓰러진 것이 클리포포드에서는 인정에 호소할 협상 카드가 되었으니까.
아무튼, 클리포포드의 노선은 확실해졌다. 무조건 바리엘과 함께 가는 것. 마법사들을 묶어두는 것 또한 그 노선의 일종이다.
“…전하.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까지 온 김에 보석을 보고 가도 되겠습니까?”
“응. 실례인 것 같네. 클리포포드가 보여줄 의무는 없지. 아까부터 자꾸 보석의 관리에 소홀하다는 걸 상정한 채로 질문하는 것 같아 내 듣기 거북하구려. 보석은 잘 있으니 걱정 단단히 붙들어 매시고, 왕께 가서 자-알 보고하시게.”
왕은 하하하 웃으며 단칼에 쳐내버렸다. 보석에 관한 언질을 계속한다면 이는 클리포포드의 자질을 시험하고, 의심하는 것이라. 더는 그에 관해 듣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다.
“하면, 검은 달에 대해서는요?”
왕은 멈칫했다. 검은 달, 마법사들이 쏟아졌던 그 구멍을 말하는 게라.
시치미를 떼고 싶어도 이미 클리포포드 수도에 사는 자들은 모두 거기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버고스의 사신들 또한 어렵지 않게 정보를 흘려들을 수 있었으리라.
“마법사들이 클리포포드에 와 있습니까?”
“…….”
왕이 잠시 침묵하며 마지막까지 생각을 정리했다. 신하들을 둘러보는 시선이 결연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반대파 입장의 신하들은 끼어들 시기를 완전히 놓친 게 아니라고 여기는 듯 보였다. 버고스가 무언가 낌새를 느끼고 사신을 보내긴 했지만, 이곳에 마법사가 없다면 바리엘과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클리포포드로 덤벼들 이유가 없어지지 않나. 괜히 불을 지피는 것일 수 있다고, 신하 몇몇이 고개를 잘게 가로저었다.
하지만 왕은 결정을 물리지 않고 일렀다.
“그래. 바리엘의 마법사가 현재 클리포포드에 주둔해있다.”
“……!”
“……!”
사신들은 조금 놀란 낯을 보였고, 신하들은 저지르고 말았다는 식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기이한 침묵이 감도는 접견실. 버고스의 사신들은 더더욱 허리를 숙인 채 물었다.
“어찌하여 와 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버고스와 클리포포드는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클리포포드에서 마법과 관련된 사안이 일어난다면, 버고스 왕국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지요.”
“개인적인 일이다. 버고스 측에 알릴 말은 없으니.”
“하지만 전하-”
“시간이 너무 늦었어. 오늘은 자리를 마련해줄 터이니 그만 쉬고 내일 일찍이 돌아가심이 어떤가?”
허허실실 웃고 있어도 일국의 왕이었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이만한 시간을 할애해준 것만 해도 충분하다는 걸 이르는 마무리다.
사신들은 입술만 벙긋거리며 한숨을 들이 삼켰고, 이내 인사했다.
“하면, 내일 출발할 때 다시 인사 올리겠습니다.”
“그리하시오. 여독을 충분히 풀어. 버고스에서는 맛보지 못할 귀한 것들을 가득 내어줄 터이니. 다들, 사신들을 극진히 대접하라.”
“예. 전하.”
왕은 그리 이르며 손짓했다. 그러자 시종들은 받침대에 금은보화로 장식된 술잔을 들고서 사신들 앞에 섰다. 사신들은 어쩔 수 없이 잔을 받아들었고, 이내 짙은 와인이 따라지는 걸 지켜봤다.
그 틈에 왕은 메이를 발견하곤 눈썹을 까딱거렸다. 마법사를 데리러 간 노아 왕자가 왔냐는 듯이. 그러자 메이가 울상을 지으며 손날로 X자를 그렸다.
“…전하?”
“아, 그래. 그러면 드시게나. 입맛을 돋우기에는 그만한 술이 없지.”
부하의 부름에 왕이 마시는 것을 허락했다. 사신들은 단 한 번의 목 넘김으로 술을 털어 넣었고, 이내 입가를 닦아냈다. 소득 없는 여정 때문인지 유독 쓰다는 듯 낯을 일그러뜨렸다.
“저저, 무례하기는. 왕 앞에서.”
“그러게 말입니다. 이래서 버고스인들은…….”
채애앵!
신하들이 수군대는 순간.
유독 얼굴을 찡그리던 자가 술잔을 던지다시피 팽개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대리석 바닥을 구르는 술잔 소리와 꺽꺽 넘어가는 숨소리. 다들 그대로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억, 억…커억…….”
“이봐, 왜 그래? 왜, 숨 쉬어! 숨!”
“무, 무슨 일인 겐가?”
“으억! 피, 피를 토합니다! 의사! 의사!”
“이보십시오! 대체 뭡니까! 이게!”
“우리가 할 말이다. 뭐 하는 건가, 다들?”
“숨을 쉬어, 이 사람아! 도, 동공이 풀립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신들은 제 동료를 감싼 채 살려보겠다고 온갖 난리를 피워댔고, 신하들은 의사 호출 및 왕을 보호하고자 줄지어 앞을 가로막았다. 누군가 금잔을 집어 들려고 하자, 버고스 측 사신이 소리쳤다.
“그만! 만지지 마시오! 술잔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샅샅이 살펴야 할 터이니!”
“지금 자네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 겐가? 우리가? 우리가 그랬다고?”
“술을 먹자마자 이리되지 않았습니까!”
“무엄하다! 이 빌어먹을 종자들 같으니!”
“다들 진정, 진정하고-!”
채앵! 챙!
왕이 진정하라 일렀지만 분위기는 순식간에 과열되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
사절단 호위들이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 들며 몸을 낮추었고, 왕궁의 병사들은 긴 창으로 그들과 거리를 유지한 채 포위했다. 왕이 다시금 소리치려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천천히 열리는 접견실의 문. 좌우로 젖혀지는 틈으로 노아 왕자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이안의 무리. 문이 열리면서 바람이 들이닥쳐 그런지, 그들의 등장이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했다.
“소란스럽군요.”
이안이 노아 왕자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며 다가왔다. 하나둘씩 옆으로 비켜주는 사람들. 사절단 역시 낯선 중압감에 꼼짝없이 굳어 이안을 올려다봤다.
이안은 친히 한쪽 무릎을 굽혀 쓰러진 자의 숨을 확인했다.
“죽었습니다.”
“죽었, 죽었다고 합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전하?”
눈도 감지 못한 채, 그대로 죽어버린 사신 한 명. 이안의 발언에 웅성거림이 다시금 커졌다. 사신들이 분노에 찬 절규를 내지르며 왕에게 경고했다.
“우리는 버고스를 대표하고 다몬 왕을 대신하여 온 사신인데, 이럴 수가 있는 것입니까? 클리포포드는 당장 해명하고, 이에 관한 책임 물을 준비를 하시오!”
“쉿. 아조씨. 귀 아프잖아요.”
“뭐, 뭐야, 넌!?”
“나? 베릭이.”
화나서 바락바락 내지르는 사신의 입가에 살포시 손을 가져다 대는 베릭. 사신이 치우라며 손을 쳐냈지만, 다른 쪽으로 다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여기는 너무 넓어서 울려. 이안이가 그랬는데요. 우리, 조용히 해야 한대.”
“이런 미친놈이! 너 뭐야!”
“베릭이라니까? 아저씨, 바보예요?”
지이잉. 지잉.
그때, 쓰러진 사신을 에워싸는 빛.
헤일과 아코렐라가 마력으로 시신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혹여, 신체에 마법으로 인한 장치가 되어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겸.
“이안 님. 몸은 깨끗합니다.”
“예. 뭐, 전언 걸린 것도 없어 보이네요.”
“마, 마법사들이었군. 당연하지! 와인을 마시자마자 저렇게 되었다고! 이는 공식적으로 항의하여-!”
“어째서 한 명만 그랬지?”
이안의 청명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그게 무슨 말인지를 묻는 사신의 표정. 이안은 손수건으로 손을 닦아내며 사신들을 쭉 살펴봤다. 머리가 도합 다섯이요, 호위 또한 다섯이라.
“술병에서 나온 술은 하나인데, 어찌 한 명만 죽냐는 말이네. 이런 수상한 상황을 이성적으로 짚지 못하는 걸 보니, 둘 중 하나군.”
다몬이 보낸 저 사신들 또한 자신들이 죽을 줄 몰랐다. 혹은-
“죽음의 수로, 자국에 신호를 보내는 것인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전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신속한 정보의 전달 아니던가. 클리포포드에서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모르니, 사건의 여부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라. 예컨대 하나가 죽으면 ‘마법사들이 주둔해있다’. 둘이 죽으면 ‘마법사가 없다’ 셋이 죽으면 ‘존재 여부를 모르겠다’ 등등.”
이안이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맞추며 걷자, 주위가 급속히 조용해졌다. 아코렐라가 피 밟은 신발을 닦아내기 위해 바닥에 문지르는 소리만 날 뿐.
“모르겠다면 되었다. 클리포포드의 왕이시어.”
“어, 으, 응. 그래. 이안 경.”
“부디 간청하건대 이자들을 각자 구속하여 두십시오. 이들이 버고스 측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그걸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 왕은 멍하니 고개만 끄덕이며 물었다.
“그, 그러지. 그런데 어떻게?”
“아코렐라.”
“아, 네넹. 필요한 거 적었거든요. 이거 한 시간 안으로 구해다 주세요. 명색이 왕국인데,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요.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얼추 비슷하게는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이안의 지시에 아코렐라가 품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가까이 서 있던 신하가 그걸 펼쳐보고는 중얼거렸다.
“…실담물약 제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