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3
제343화. 계속되는 심문
확실히 무슨 일이 났나 보다.
왕궁 앞에 모인 클리포포드 백성들은 완연한 밤이 왔음에도 돌아갈 생각 없이 더더욱 단단하게 결집했다. 고된 노동의 밤을 이런 식으로 지샌다는 것은 농부로서 크나큰 결심이요, 그만큼 나라에 대한 걱정이 진심이라는 뜻이다.
굳게 다문 병사들은 투구로 얼굴을 가린 채 어떤 전언도 해주지 않았다. 이따금 왕궁 사람들이 하나둘씩 오가며 안쪽의 분주함을 간접적으로 일러줄 뿐, 공식적인 발표 하나 없다.
퍼어엉! 펑! 퍼버벙!
“어?”
그때, 갑자기 왕궁의 첨탑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 밤하늘을 수놓는 형형색색의 빛들이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퍼지는 것 아닌가.
폭발 사고인 것 같았지만, 어떠한 불길이나 연기가 없다. 무엇보다 반짝이는 아름다움이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 사람들은 멍하니 올려다보며 넋을 놓았다.
거리의 악단도 감명받았는지 클리포포드의 전통악기, 브라쿠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둥둥 울리는 음악에 천천히 몸을 맡기며 움직이는 사람들. 그렇게 한목소리로 크게 소리 내 노래 불렀다. 일종의 시위와 같았지만, 간곡한 그 마음 탓에 유독 구슬프게 들리는 것 같았다.
왕궁에 있는 왕이시어, 백성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면 친히 나오셔서 포도밭의 평화가 건재함을 일러주십시오. 싱그러운 이파리로 왕관을 만들어 올릴 것이니 부디 대지로 흐르는 포도주 강을 건너시어 저희와 함께 노래합시다.
한편, 그 시각.
갑자기 터진 폭발에 헤일이 놀라서 문을 두드려댔다. 왕궁 시종들 역시 아연실색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이러다 왕궁을 다 날려 먹는 것 아닐까?
콰앙! 쾅!
“아코렐라! 아코렐라!”
“마, 마법사님, 괜찮은 거 맞지요?”
“내 말 들려? 아코렐라!”
창밖으로 난 빛이 아름답기는 해도, 언제 첨탑을 집어삼켜 먹을지 모를 일 아닌가. 헤일의 시끄러운 두드림에 결국 문이 열렸다.
벌컥!
“아이씨-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이거. 내가 끝날 때까지 접근 금지라고 했어, 안 했어? 회까닥 돈 모습 보고 싶어? 엉? 뒤지고 싶은 거면 당장 말해.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반쯤 박살 난 플라스크 병을 들고 씩씩대는 아코렐라. 헤일이 그걸 보며 멈칫거렸다. 이미 반쯤 돈 것 아닌가? 폭발로 인해 머리끝이 죄다 타버리고 얼굴은 숯 검댕이로 엉망이다.
그녀는 보호경을 집어던지며 헤일에게 손가락질해댔다.
“지금 세계 최고의 연구자인 아코렐라 님께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집중하고 계시잖아아! 부족한 마력석은 카클론 20그램, 타피코론 15그램! 카클론은 그래도 라칼로클로 대체가 가능한데 이것도 5그램이 부족하다고! 미친 헤일 대장아! 내가 지금 계산하느라 대가리 터지게 생겼는데, 왜 자꾸 문 두드리고 지랄이야!”
헤일은 진정하라며 서둘러 그녀의 입에 궐련을 물려주었다. 미친개처럼 왈왈거리던 아코렐라가 단번에 진정하여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아무리 그래도 왕국인데, 구하지 못할 마력석이 있다는 걸 생각지 못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 마법사가 없는 나라에서 그 정도면 훌륭한 거지. 클리포포드 국립연구시설은 외곽에 떨어져 있다고 하니, 금방 재료를 받을 수 있을 게다.”
“어이없어. 한 시간 전에도 그 소리였거든?”
모락모락, 둥그런 연기가 피어오르는 간이 연구실. 헤일이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전쟁이 났다고 해도 의심치 않을 만큼 개판이다.
아코렐라는 탁상 위의 파란색 액체를 흔들어 보이며 고개를 뒤로 꺾어댔다. 기괴한 모습에 시종들은 들어올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문 앞에서 울상을 지어댔다.
“색이 다른데?”
“당연하지. 망할 라칼로클로가 없으니까. 근데 왜? 용건이 정당했으면 좋겠어. 열악한 연구 환경만큼 날 개빡치게 하는 게 없거든.”
“이안 님이 부작용 있어도 되니까 성능만 확실하다 하면 갖고 오라 하시더라고.”
“뭐?”
아코렐라가 고개를 휙 치켜들었다.
인제 그만 끝내도 된다는 소리? 이 연구의 ‘연’자도 모르는 거지 같은 환경에서,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
그녀의 눈이 반짝이자, 헤일은 턱수염을 매만졌다. 분명 연구 과정에서 뭔가가 잘못된 게라. 그렇지 않고서 어찌 평소보다 더 위험해 보일까.
우당탕탕! 탕!
“진작 말하지! 내가, 응?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력석이 없는 건 못 참겠다!”
아코렐라는 파란색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그대로 든 채 내달렸다.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물러나는 시종들. 헤일이 다급하게 그녀의 뒤를 따르며, 앞서 있는 자들에게 조심하라 일렀다.
“조심! 조심하시오! 미친 자입니다!”
“비켜라아아! 아하하하!”
“꺄아아악!”
신나게 난간을 타고 내려가던 아코렐라. 익숙하지 않지만 능숙하게 지하실을 찾았고, 병사들 역시 그녀를 알아보아 길을 터주었다.
포도주 보관을 위해 크게 만들어놓은 지하실 안쪽. 시끄러운 인기척이 들렸다.
“이안 님!”
“아코렐라.”
이안이 셔츠를 걷어붙인 채 책상에 앉아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클리포포드 측에서 조사한 사신의 인적사항 등이 담긴 정보다.
버고스의 사신은 재갈이 물린 채 결박당한 상태였고, 클리포포드의 병사들이 밧줄을 정리하고 있었다.
“짜자잔! 부작용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효과는 확실한 물약 대령합니다!”
“수고했다.”
“저, 근데 정말 어떻게 될지 몰라요.”
“괜찮아. 진실 여부만 가리면 되니까.”
“뭐 좀 알아냈어요?”
버고스의 사신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시퍼런 색의 액체. 아무리 봐도 음용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건만, 지금 저걸 자신에게 먹이겠다고? 읍읍! 그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으나 피해갈 길이 없었다.
이안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서류만 넘겨댔다.
“다른 사신들은 클리포포드 측에서 맡아 조사 진행 중이다. 노아 왕자 쪽은 자신이 죽을 걸 몰랐다고 자백했는데, 이자는 또 아닌 것 같아서.”
“아코렐라의 특제 물약이 꼬옥 필요하겠군요.”
아코렐라는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쓰다듬으며 자기애를 숨기지 않았다.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다 보니, 헤일은 아니꼽게 궐련만 씹어댔지만 말이다.
끼이익.
“노아 왕자님.”
“이안 경. 소득이 있나?”
노아 왕자가 피범벅이 된 채로 들어오자, 버고스 사신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나마 자신은 이안과 대면하여 인도적인 조사를 받은 것임을 깨달은 게다.
“다른 자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이자는 신호 체계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국인 버고스 측에 대한 신뢰가 상당해요. 말씀드린 대로, 그 가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클리포포드 내 자국의 상황을 사신 죽음 수로 신호하고, 그를 명분 삼아 전쟁하는 것.
“클리포포드에서는 당황하여 버고스 측에 사신의 급사(急死)를 알리겠지요. 몇 명이 갑작스레 죽었다고 이르는 순간, 버고스는 클리포포드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러면 서로 답신하여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에 대해 논의하기 전, 먼저 알맞게 정비하여 우세를 점할 수 있음이라.”
“정확히는 논의조차 할 생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클리포포드가 당황해하는 순간을 노리고 들어오는 게 목적이니까요. 흐음.”
이안은 어지럽게 기록된 종이를 넘겨대며 중얼거렸다.
“사신 한 명이 죽었으니, 이는 곧 클리포포드에 마법사가 있음을 알리는 신호인 것 같은데요. 둘이나 셋 혹은 그 이상이 죽었을 때를 각각 알아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안과 노아 왕자가 서로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버고스 사신 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들짝 놀라며 오들오들 떠는 몸짓이 애처롭다. 노아는 피로 흥건한 장갑을 탁탁 털며 사신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알아내면 되지. 무슨 문제라고.”
“…잠깐만요. 왕자님.”
이안이 서류로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렸다. 노아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를 물었다.
“무엇이 되었든 사신의 급사를 알리면 버고스 측에 전쟁 명분을 먼저 주는 셈이 됩니다.”
“아버지께서 사태의 심각성을 아셨으니, 각 군대의 결집을 명하셨다.”
“전력의 차이는요? 파악되십니까? 저희를 상정하지 말고 말씀해 보십시오.”
이안이 그들을 돕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미래의 동맹 관계를 상정한 호의였다. 바리엘에 이득이나 해가 될 만한 분기점이 온다면, 마법사 측은 망설임 없이 클리포포드에게 등을 돌리리라.
이안의 물음에 노아가 잠시 망설였다.
“병력의 차이는 우리가 조금 우세하다.”
“인구수가 많으니까요, 저는 병력이 아니라 전력을 물었습니다.”
“…….”
“병사수가 중요하긴 합니다만, 전력은 그것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왕궁의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단단히 마음먹은 버고스입니다. 감히 문제없을 것이라 단언하십니까?”
기득권의 선택이 온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포도주 대신 절규의 피가 흐르고, 포도들은 사체를 거름으로 하여 끔찍하게 가지를 뻗어낼 것이라.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 하지만 버고스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는 없지만, 넘길 수는 있지요.”
“넘겨? 무엇을?”
“명분을요.”
잘 생각해보라고, 이안이 펜으로 서류를 두드려댔다.
전쟁은 한 사람의 인생을 모으고 모아 사지로 내보내는 일 아니겠나?
그러니 결정권자는 호소할 수밖에 없다. 명분이라는 허울에 그대들의 피와 살을 덧붙여달라고. 실로 하찮고 보잘것없으며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모든 걸 지탱하는 뼈와 같다.
“버고스 측에서 전쟁의 원인을 지게 하심이 핵심입니다. 그러는 것이 바리엘 측에서도 클리포포드를 도와줄 명분이 생기지 않습니까. 대의라는 이름 아래, 동맹을 맺기에도 수월해지고요.”
“알고는 있어. 하지만 이미 사신 하나가 죽었고, 우리는 발을 들여놓았다.”
덫을 물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버고스 측에서는 사신의 급사 소식을 목 놓고 기다리고 있을 터. 당장이라도 발발할 수 있는 이 순간, 클리포포드가 무엇을 할 수 있나?
“들여놓은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고요-”
이안은 조금 자중하라는 듯 웃어 보였다.
“밟아 짓눌렀다고 생각하십시오.”
촤악!
이안은 잔에 들어있던 물을 바닥에 부어버린 후, 아코렐라가 가져온 실담물약을 반쯤 따랐다. 역한 냄새와 기포가 보글, 올라왔다. 실로 사람 먹을 게 아니긴 했다.
“이걸 먹으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는 정보를 확실히 알아낼 수 있지요.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그쪽에서 들었던 실담물약과는 좀 다른데.”
“아니, 그건-”
“마법사 한 명 없는 나라에서 이만한 마력석을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압니다. 고맙습니다, 노아 왕자님.”
아코렐라가 발끈하려고 하자, 이안이 에둘러 쳐냈다. 마법 연구 기반이 부실한 클리포포드거늘 어찌하겠냐는 듯이.
노아 왕자는 한숨을 내쉬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마시면 죽을 수도 있으니, 마지막 심문을 하는 편이 낫겠다는 것이라.
“부작용이 뭔지 살펴보는 것도 좋겠지. 먼저 음용시키도록 하라. 나는 다른 사신들을 더 심문하고 돌아오겠다.”
“그러지요. 왕자님.”
“하나만 묻지.”
“무엇이든요.”
“사신들이 전부 죽으면, 어찌하나?”
그것만큼 버고스에 명분 줄 만한 게 없는데 말이다. 이안은 느긋하게 웃으며 서류철을 덮었다.
“저는 클리포포드 사람이 아닌지라, 모든 선택과 결정은 왕실에서 내리는 것입니다. 아시지요?”
“그러니까, 자네가 나라면…….”
“침묵할 것입니다.”
사신이 몇 명 죽었는지, 소식을 기다리는 자들을 안달 나게 하는 건 딱 하나.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저쪽에서 다시 움직일 때쯤, 이쪽에서 신호 체계를 파악하여 교란을 주면 수월해질 일.
노아 왕자는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나섰고, 조사실에는 이안의 일행만 남았다. 이안이 천천히 일어나며 옷깃을 털었다.
“자, 그러면-”
“눈이라도 좀 붙이십시오.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니. 질문은 정교할수록 좋으니 함께하겠다. 시작하지.”
이안의 손짓에 아코렐라가 눈을 번쩍이며 사신의 재갈을 풀었다. 과연, 제조법과 조금 다른 이 방식은 어떤 부작용과 어느 정도의 효능을 보일까?
만들 때는 짜증 났는데, 막상 실험하려고 하니 또 흥분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코렐라가 사신의 볼을 붙잡으며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자, 우리 사신 씨.”
“살려, 살려-”
“아, 해보세요. 아~”
“살려주시오! 내 다 말하겠소!”
“아앙, 이거 마시고 말해줘요. 다시 한번, 아-! 흘리면 혼나요. 이거 졸라 힘들게 만든 거니까.”
“으아아아아악!”
얼굴에 들이붓는 수준이다. 이안은 그 모습을 덤덤하게 보다가 펜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심문을 시작했다.
“이전과 같은 질문인데, 다른 답이 나오면 참으로 유감일세. 자, 묻지. 사신들은 죽음의 신호 체계를 모두 알고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