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4
제344화. 황궁의 작은 전쟁
“전하, 넘어지십니다.”
시아오시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달리는 진이었다. 아이는 대회의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섰고, 옆으로 흩어지며 인사하는 자들에게 일말의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직진했다.
황태자가 달려오는 것을 본 시종들이 허겁지겁 대회의실 문을 좌우로 젖혔다.
끼이익.
회의장 햇살과 함께 쏟아지는 관료들의 시선. 수상을 비롯한 볼브 방위부 장관 그리고 몇몇 고위직 관계자들이 먼저 모여 앉아있었다.
클리포포드 측에서 답신이 온 탓에 급히 소집된 회의였다. 로만드로 또한 끝자리에 자리했는데, 아이는 짧은 순간 그의 표정과 수상의 손에 들린 서신을 살폈다.
“오셨습니까, 전하.”
“급한 걸음을 하셨나 봅니다. 숨을 고르시지요.”
진은 자신이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아이는 자신의 자리로 거칠게 걸어가며 물었다. 걱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불안함이 자신을 잠식시키기 전에, 이안의 생사 여부를 아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이안 경은?”
“무사하다고 합니다. 전하.”
수상은 안경을 벗고 서신을 진에게 넘겨주었다. 꼬깃꼬깃 접혀있는 작은 종이. 헤일의 글씨체인지라 상당히 거칠고 투박하여 알아볼 수 없는 단어가 존재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이안이 살아있다는 것.
“하아.”
아이는 이마를 짚고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관료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법부의 장관이자 바리엘의 핵심 전력에 혹여나 문제가 생겼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할지 참으로 고민했는데.
로만드로는 헛기침을 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다만 이안 장관님의 부상 깊이가 굉장히 심하고, 그를 채우는 마법부원들의 마력도 한계가 있는지라 회복 및 복귀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보고였습니다.”
로만드로가 진에게 은밀히 눈을 찡긋거리며 신호했다. 보고는 저리했어도, 이안이라면 필시 금방 힘을 되찾아 돌아올 것이라는 신호였다.
관료들이 웅성대는 와중, 볼브가 무언가 미심쩍다는 투로 이의를 제기했다.
“이안 경의 부상 원인이 무엇이라 하더이까?”
“그것에 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출처가 확실한 것 맞습니까?”
“예. 마법부 헤일 대장의 필체가 확실합니다.”
“이해가 안 되네요. 그 대단하신 이안 경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그러니까 마법부 전체의 마력을 쏟아부어도 회복 불가할 정도로 몸져누웠는데 그 원인은 미상이라니.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혹 클리포포드에서 수작질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헤일 대장의 필체고, 마법부원들이 검은 달을 타고 올라갈 때 챙겼던 마력석이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요. 클리포포드에서 마법사들을 제압한 후 적은 게 아닌가 싶어요.”
“억측이고, 심한 비약입니다.”
볼브는 클리포포드와 마법사들 사이에서 충돌이 생기기만을 바라는 자였다. 그렇게 되면 마법부의 전력이 우선 잘려나가는 것이고, 그만큼 제국방위부의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마법사들을 구하기 위해 클리포포드로 군대를 보내게 되면 한차례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승리하여 제국에 영광만 가져올 수 있다면 장군들의 출세 길에는 그 어떤 것도 가로막을 것이 없지 않나.
이를 잘 아는 로만드로가 또박또박 반박하며 볼브를 저지했다.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이 가상하기는 하다만, 현실은 클리포포드가 이안을 간호하고 있는 것이라.
“그건 나도 동의하오. 마법사 전체에 달하는 수가 들어갔어. 혹여 충돌이 있었다면 국경에서 보고가 올라왔을 것이오. 이안 경의 부상에 관하여 언급이 없는 것은 아마 개인적인 연유이거나, 마법부 자체 내의 문제인 듯싶은데…….”
수상이 눈을 흘기며 로만드로를 노려봤다. 깜찍하게도 마법부 전체에 외근증을 발급해주는 바람에, 그들이 돌아와도 책임 물을 소지가 없어진 것이다.
눈알을 필사적으로 굴려대며 시선을 피하는 로만드로. 그는 먼 산을 보며 보고를 이었다.
“클리포포드에는 마법사들에게 도움 될 만한 것이 충분치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여, 마력석 보급 및 복귀를 돕기 위한 사절단을 파견하심이 어떨까요?”
자세한 내막은 이안이 돌아오면 알 수 있겠지만, 우선 현재로 보아서는 클리포포드와 문제 될 만한 사안은 없어 보였다.
수상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몇몇 관료들 또한 동조한다는 뜻을 보였다. 볼브와 제국방위부의 장군들은 영 만족스럽지 못한 눈치였지만 말이다. 장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는 순간.
똑똑.
대회의실로 들어서는 제국방위부의 군인. 그는 볼브 장관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로만드로는 수상과 함께 사절단 논의를 하는 중에도 계속 그쪽을 힐끗거리며 주시했다. 볼브 장관의 입매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께름칙하지 않나?
“잠깐.”
아니나 다를까, 볼브 장관이 손을 들며 회의 중단을 요청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회의장. 수상이 봉을 두드리며 발언권을 허락했다.
“무슨 일인가?”
“방금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클리포포드 측에서 병력 소집이 이뤄지고 있다 하는군요.”
“무어라?”
“그게 참말이오? 볼브 장관?”
관료들이 수군대며 의아함을 나눴다. 이안이 무사하고 마법사들 또한 문제가 없다면, 클리포포드 측에서 군사적 움직임을 보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볼브 장관은 탁상을 시원하게 두드리며 웃었다.
“이것 보십시오. 국경 맞대고 있는 족속 중에 제대로 된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바리엘의 제국방위부는 이미 결집을 마쳤으니, 회의에서 출정 명령만 내려주시면 바로 떠나겠습니다. 이런 종이 쪼가리로 귀한 마법사들의 안위를 대중할 것이 아니라, 직접! 직접 눈으로 보고 오지요. 아까 로만드로, 뭐라 하였지?”
“…제가 뭐라 했습니까?”
“마력석이 뭐 부족하고 사절단이 어떠하다 하였잖은가. 사절단 보낼 필요 없이, 제국방위부에서 다녀오겠습니다. 수상, 그리고 황태자 전하. 부디 허락을.”
순식간에 분위기가 휩쓸리자, 로만드로는 벌떡 일어나 반대했다. 이안이 없는 지금, 바리엘의 운명을 저 권력욕에 눈먼 자 손아귀에 쥐어줄 수는 없다.
“안 됩니다. 군대를 동원하는 것 자체가 클리포포드 입장에서는 침략이고, 전쟁의 서막입니다. 그리고 헤일 대장이 보낸 전서구가 인제 막 도착했어요. 클리포포드 측의 군사적 움직임을 어찌 그리 즉시 알 수 있단 말입니까?”
“클리포포드에서 보낸 그건 마력이상반응을 피하기 위해 국경을 돌아온 것이고, 이것은 수비대에서 급파한 전언이기 때문이지. 마법부 장관 보좌관이라는 자가, 그걸 간과해?”
장군들이 피식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근본 없기는. 마법사도 아닌 자가 마법부의 보좌관 역을 맡았을 때부터 알아보았다는 시선이다.
로만드로가 다시금 반박하려고 하자, 진이 탁상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타앙!
“신성한 회의실에서 모욕적인 언사는 금하오!”
“…송구합니다, 전하.”
“볼브 장관, 내 하문하겠노라.”
“무엇이든지요.”
“클리포포드의 군사행동이 사실이라는 가정 아래, 그것이 정녕 바리엘을 위협하고자 함이라 여기는가?”
장군들이 볼브 장관을 힐끗거렸다. 사실 그들에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클리포포드가 무엇을 위협하고자 하는지 알 바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휘두르는 검에 쓰러져나가는 적진이요, 바리엘의 국경을 새로이 정의하는 것이니까.
볼브 장관은 침착한 척 어깨를 으쓱거리며 되려 물었다.
“그러면 전하께서는 클리포포드가 다른 의중을 가지고 있다 여기십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나쁜 습관을 가졌군.”
“…….”
허업, 그 자리의 모두가 놀랄 만큼 날카롭고 비정한 말투였다. 수상과 로만드로도 당혹스러워 고개를 숙일 정도다. 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마지막이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다시 하문한다. 클리포포드의 군사행동이 바리엘에 위협적이라 판단하나?”
“…예, 그렇습니다. 전하.”
“유감이네. 그대는 버고스와 루스웨나를 완전히 잊은 듯 보여.”
진이 로만드로에게 먼저 일러주었던 그것.
그리고 이안 역시 눈을 뜨자마자 걱정했던 바로 그것.
버고스의 움직임이다.
“현재 이안 경과 마법부는 전력을 잃은 채 클리포포드에 의탁 중이다. 이는 추측성 전제가 아니라 헤일 대장의 전언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지. 임명식 때 버고스를 중심으로 3국 동맹이 이루어질 뻔했음은 모두가 알 터. 하지만 클리포포드만이 거기에서 벗어나 바리엘에 협조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자, 그러면 다시 묻지. 볼브 장관.”
회의에서 모욕적인 언사는 금하라면서, 황태자는 공개적으로 볼브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관료들의 눈알만 재빠르게 굴러갔다. 이안이 없는 지금, 군대를 장악한 볼브 장관만이 유일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실세였기 때문이다.
황태자의 정통성과 권위가 있지만, 그 자리의 모두는 내란을 겪었던 자들이다. 볼브 장관이 혹여나 다른 마음을 먹게 된다면, 막아낼 자가 있을까? 아, 황궁친위대 정도가 있겠군.
“자네가 버고스 왕이라면 어찌할 것 같나?”
“…동맹 제의를 거절한 클리포포드를 응징하고, 더불어 황궁을 벗어난 마법사들 또한 제압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지. 게다가 타국에는 이드갈의 유통이 의심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기회가 없으리라 판단할 것이다. 그러니 클리포포드는 버고스의 공격에 대비하여 군대를 결집할 수밖에.”
그들의 의지가 바리엘이 아니라 버고스로 향해있음을 짚어주는 것이다. 이것 또한 진의 추측에 가까웠지만, 볼브의 주장보다는 확실히 신빙성이 있었다.
수상은 안경을 바로 쓰며 중재했다.
“제국방위부는 버고스와 루스웨나 측의 움직임도 확인했는가?”
“아니요. 하지 않았습니다.”
“그쪽도 파악하고 나서 출전을 논하겠다.”
“잠시만요. 그래도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볼브가 격앙된 투로 소리쳤다. 손만 뻗으면 되는데, 여기서 가로막힐 수는 없는 것이라.
“클리포포드가 버고스와 충돌이 있다면, 당연히 바리엘에서도 지원군을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법사들을 안전히 구해오기 위해서라도 군사를 보냄이 맞지요.”
“맞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출정은 불가피합니다.”
“재고하여 주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 전시는 일각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니!”
장군들이 한마디씩 덧붙이자, 진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바리엘과 클리포포드는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은 것이 없다. 클리포포드와 버고스의 전쟁 명분이 무엇인지 모르는 지금, 우리가 개입하면 루스웨나의 참전을 유도할 수 있음이라.”
“그러면 뭐 어쩌자는 것입니까? 가만 보고만 있자는 것입니까? 클리포포드가 함락당하면 바리엘에 둘 없는 위기입니다.”
“기다리자는 걸세!”
진과 볼브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노려보았다. 덩치 큰 성인과 아이의 부딪침이었지만, 누구 하나 밀리는 기색 없이 팽팽했다. 수상이 볼브에게 무례함을 지적하며 봉을 두드려댔다.
타앙! 탕!
“볼브. 자리에 앉으시게나. 오늘따라 과하시군.”
“…….”
볼브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자리에 앉았다. 한배를 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않나? 황태자께서 너무 어리시어 마법부 견제하던 것도 잊었나 보다. 볼브는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아이를 노려보았다.
“클리포포드에 이안 경과 마법사들이 있어. 현장에 직접 있는 자들이 판단하여 자세한 걸 알리기 전까지는 바리엘이 가만있는 게 옳다고 여겨져.”
“가만있어요? 하하!”
“아, 정정하지. 버고스와 루스웨나 쪽을 견제하고 있는 게 맞겠군. 볼브 장관.”
수상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몇몇 관료들 역시 진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듯, 옳은 소리를 해댔다.
“전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버고스 측에 어떤 빌미를 제공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맞아요. 게다가 마법사들인데, 뭐 별일 있겠습니까? 그쪽에서 다시 전언 오는 것을 기다려 보지요.”
“클리포포드와 버고스의 전쟁에 먼저 나서서 흙탕물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전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볼브와 제국방위부 장군들은 허탈하게 웃으며 서로 눈짓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그건 진 역시 마찬가지.
‘볼브 장관. 서두르지 마시게. 자네는 이미 높은 곳에 있으니, 급하게 움직이다간 미끄러질 것이라.’
바리엘 밖에서 이안이 고군분투한다면, 진은 안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
“…….”
이를 지켜보던 시아오시는 소매 속에 감춘 단검을 매만지며 볼브 장관의 목덜미를 노려보았다. 황궁에 다시 피바람이 부는 순간이 온다면, 그 근원지는 바로 저곳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