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5
제345화. 한밤의 암살자
“알겠습니다.”
볼브가 한발 물러서겠다는 뜻으로 두 손을 들었다.
장군들의 고개가 재빠르게 움직이며 볼브에게 무언의 항의를 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쳐서 되겠냐고, 물러서지 말라는 모종의 압박이었다.
하지만 볼브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회의실 분위기 흘러가는 게 몸으로도 느껴질 정도였으니, 물러설 때는 물러설 줄 알아야 하는 법. 그 대신, 무언가 손에 쥐고 가면 될 일 아닌가?
“클리포포드는 계속 주시하되, 전하와 몇몇 관료를 의지를 받들어 이안 경에게 새로운 전언이 올 때까지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혹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는 제국방위부의 실책이 아닌, 진 황태자와 이에 찬성한 자들의 탓이라는 걸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진이 속으로 한숨을 들이 삼켰다. 일단은 자신이 뜻하는 대로 되었으니, 앞으로의 일은 추이를 지켜보며 다시 생각할 일이다.
“그리고-”
볼브가 힘주어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로만드로. 로만드로 역시 미간에 힘을 빡 주며 받아치려고 하였으나, 서로 간의 위치가 있는 탓에 쉽지 않다.
로만드로는 어쩔 수 없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버고스와 루스웨나의 견제 또한 전하의 지시대로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다. 하나 이 과정에서는 필시 이드갈의 유통 및 확보에 관한 정보가 들어올 것인데, 지금 상황으로는 마법부에서 이를 처리하여 도와줄 형편이 안 되지요. 제국방위부 자체적인 임시결정권을 허락해 주십시오.”
“안 됩니다! 허락할 수 없습니다!”
“로만드로, 그러면 자네는 알고 있나? 이드갈이 어떤 물질로 이뤄져 있고, 어떤 문제점이 있으며, 이를 다룰 방법과 무엇을 특히 조심해야 할지 등등.”
볼브가 턱을 들어 올리며 되물었다. 현재 마법부에는 로만드로와 황궁 출입을 담당하는 소수의 마법사만이 존재했다. 이드갈에 대한 정보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전문 영역이 아니다 보니 섣불리 대할 수 없음이라.
“보십시오. 당장 마법부 보좌관도 이에 관해 첨언하지 못하는 판국에, 바리엘 정세를 흔들 수 있는 이드갈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확인하여 처리하는 과정 전체에 대한 결정권이 필요합니다. 일일이 클리포포드에 있는 이안 경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버고스와 루스웨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드갈이 연관되어 나올 것은 자명했다. 문제는 임시결정권을 주었을 때 제국방위부가 이드갈에 대한 보고를 제대로 할 것인지에 대한 ‘믿음’이겠지. 확보하여 황궁에 넘기는 과정에서 누락된다고 한들, 그 누구도 알아챌 수 없을 것이라.
이는 제국방위부에 새로운 검을 내어주는 것이요, 마법부와 황궁친위대를 위협, 나아가 황실까지 부담될 수 있는 문제다.
“볼브. 이드갈 조사에 대한 문제는 이미 합의가 된 사안으로 알고 있는데.”
진의 목소리가 한껏 낮아졌다.
가만 듣기에는 차분해진 것처럼 들리지만, 옆에 앉아있는 수상은 아이의 목덜미가 달아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분노였다. 혼잡한 틈을 타서 자꾸 시끄러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볼브에 대한 분노.
“예. 물론 조사는 마법부에서 하는 것이 맞지요. 하지만 제국방위부가 버고스와 루스웨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드갈이 떡하니 앞에 있는데, 그걸 무시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아무리 부서가 다르다고는 하나, 우리 모두 황궁 아래 한 식구.”
한 식구라는 말을 언급하자, 로만드로는 기가 차서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웃어? 장군들이 날 선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으나, 로만드로도 미친 척 눈을 크게 뜨고 맞섰다. 장관은 몰라도 장군들은 해볼 만하지! 이 새끼들아!
“유연한 업무 처리를 위한 것이니 허락해 주십시오. 이안 경이 복귀하면 제국방위부에서 수집한 모든 것을 문제없이 넘긴다는 약조를 하겠습니다. 아니면, 뭐. 제국방위부는 그저 감시탑 역할만 하라는 것인지요?”
볼브가 안쓰러운 투로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관료들은 저들끼리 속닥거리며 현 사안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수상이 갑작스러운 볼브의 행동에 눈치를 주었기만, 그는 오히려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마법부를 견제한다는 대의로 뭉쳤거늘, 어찌하여 황태자와 수상께서는 되려 제국방위부를 억압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전하. 저는 볼브 장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마법부가 현재 불능 상태에 있고, 일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엮일 수밖에 없는 부분인데 ‘이것은 마법부의 일, 저것은 제국방위부의 일’, 이런 식으로 나누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나아가 아둔한 일입니다.”
“영구적인 것도 아니고 임시권한이니 허락해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저도 크게 다를 것 없는 입장입니다.”
“찬성합니다. 마법부에서는 불편한 일인 걸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마법사가 없는 걸.”
“전하…….”
수상이 진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 역시도 회의의 흐름을 거스를 만한 이유가 없었다.
진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볼브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와 다른 점은, 뜨겁게 이글거리던 분노가 차갑게 식어있다는 것.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공허한 눈빛으로 볼브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래. 알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이안 경 외, 이드갈에 대한 전문 마법사가 복귀하면 모든 결정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한다.”
“로만드로,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제국방위부 아닌가? 그대들 앞에 내 이드갈에 대한 정보를 잔뜩 밀어 넣어 줄 것이니. 하하. 혹 아는가? 무더기로 싸다 줄지?”
타아앙! 탕탕!
수상은 진의 눈치를 보다가 봉을 내려침으로 회의 마무리를 알렸다. 장군들은 서로의 어깨를 치며 만족스럽게 자리를 떠났고, 몇몇 관료들도 슬그머니 회의장을 나갔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진은 정면을 바라본 채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결국에는 수상과 로만드로만이 남았고, 수상의 보좌관은 눈치껏 회의실 문을 닫으며 그들만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물론. 괜찮지.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진은 수상을 돌아봤다. 그리고 아까의 일을 상기해보라는 듯 고갯짓하여 볼브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수상, 보았지. 마법부의 견제는 황권 강화를 위하여 하려는 것인데 그걸 이해 못 하는 자들이 있어.”
“볼브 장관의 돌발 행동은 저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전하, 제가 다시 만나 얘기해 볼 터이니…….”
“아니. 되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나. 게다가 볼브 장관은 내란 때 임시직에 올랐던 자. 자신의 그릇에 과분한 자리를 맡고 있어.”
황태자의 중얼거림이 심상치 않았다. 수상은 다시금 문이 잘 닫혀있는지를 살펴보았고, 로만드로는 긴장한 채 마른 입술을 물어댔다.
“이안 경이 지금 없어서 다행이다.”
“전하. 송구하오나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지금 저들이 보기에는 나는 아직 어린 황족일 뿐. 제대로 정권을 장악하려면 요직에 내 사람을 올리는 것이 제일 정확하고 빠르다. 이것에 대해 이견이 있나?”
없다. 제국방위부가 지금처럼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볼브 장관이 진과 목표를 완전히 함께하지 않아서였으니까.
진은 황권의 강화를, 볼브는 제국방위부의 위상과 자신의 권위 상승을 원하고 있었으니 부딪히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로만드로. 행정부에 있었으니 잘 알 것이다. 장관직의 교체가 언제 언제 이루어지는지.”
“보통은 신년회 때마다 황제께서 선별하시고, 특수상황에서는 그 대리인이 참석한 대회의에서 과반수 이상의 표를 얻은 자가 임시직으로 올라가며,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여겨질 시…….”
“지금껏 일어났던 것들 말고. 다른 경우가 있을 것인데.”
“아, 음, 그, 재직 중인 장관이 사망하면 황제께서 다시 선별하십니다. 하지만 지금 폐하께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시니, 마찬가지로 대회의에서 새로이 뽑게 될 것입니다.”
진이 수상을 돌아봤다. 자신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듯이 말이다.
“지금, 볼브 장관을 처리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처리라고 하기보다는, 제자리에 맞지 않는 듯하니 내려오게 함이 어떤가 싶은 게지.”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볼브 장관 아래 장군들이 있습니다. 분명 반발하여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그중에서 다시 장관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걸 맡아줄 사람은 제이럿 대장일세.”
“제이럿 대장이요?”
“그래. 제이럿을 폐하의 침실로 부르지.”
“…전하!”
황제의 동결을 모르는 제이럿. 하여, 황궁친위대의 입장이 상당히 애매했었다. 진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우선시되는 주군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황제의 상태를 두 눈으로 보면, 제이럿 대장은 차기 황제가 진이라는 것을 완벽히 인지하고 그 입장을 분명히 취할 것이다.
“제이럿 대장의 입장도 제국방위부와 같았어. 마법부를 견제하여 황권의 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이지. 볼브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아버지의 침실로 부르면, 제이럿은 황권의 안정을 원하는 게 아니라 나의 안정을 원하게 될걸세.”
무슨 말인지 모르는 로만드로만 눈을 끔벅였다. 황제 폐하께서 그렇게도 몸 상태가 안 좋으신가? 그럼에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계심이 용하다 싶다.
진은 고개를 휙 돌려 로만드로 쪽을 바라봤다.
“로만드로.”
“예. 전하.”
“대회의의 결정권에 그대가 마법부를 대신하여 나올 것이니, 내게 협조를 요청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약조하지. 이드갈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을. 모든 것은 이안 경이 결정하게 할 것이다.”
“아, 예. 물론입니다. 전하의 뜻을 받들지요.”
“수상, 행정부는 그대에게 맡기겠네.”
이안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한 진의 뜻을 알겠다. 마법부의 도움을 받아 마법부를 견제하고, 나아가 황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아이의 도약.
이안이 있었다면 필시 불가했을 터였다. 그의 존재가 너무 강해 그 외의 세력들이 모두 같은 색으로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이안이 없는 지금은, 비슷한 색으로 위장하고 있던 것들을 모두 솎아낼 기회다.
‘혹여 실패하더라도 괜찮아. 이안 경이 돌아오면 다시 모두 같은 색으로 보일 것이라.’
그리고 자신이 넘어지는 것을 이안이 보고만 있을 리 없잖은가.
기회다. 볼브가 기회라고 여긴 것처럼, 진도 기회였다. 다섯 발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기회. 잘만 하면 다섯 발 그 이상을 물러서서, 이안이 돌아왔을 때 그가 그 자리에 있게끔 할 수 있는 기회.
“전하.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합니다. 혹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내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황궁에서는 숨 쉬는 순간순간이 위험하다. 수상, 자네가 그걸 모를 리 없을 터인데. 그리고 볼브는 마리브, 게일 황자와 입장이 달라. 정통성 없는 자가 군사권을 쥐고 있다는 것만으로 바리엘을 어찌할 수 있다고 보나?”
조목조목, 아이가 반박하는 말이 틀린 게 없어서 당황스럽다. 수상은 머리를 쥐어 싸며 고민에 잠겼다. 자신은 황실을, 나아가 진을 보좌할 의무가 있는 자라.
하지만 말마따나 시간의 흐름으로만 성장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이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이 황궁을 장악할 수 있는 적기. 이것은 그가 원하는 마법부의 견제와도 맞물리는 것이다.
“…누구를 쓸 것입니까? 원하신다면-”
“아니. 그것까지는 수상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모든 것은 진의 주도하에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으니.
아이는 뒤에 서 있는 시아오시를 돌아봤다. 제국방위부 소속이니 혹여 발각된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사고라 주장할 수 있는 인물. 실력과 근성이 뛰어난 인물. 무엇보다 주군을 위해 죽음을 불사할 수 있는 인물.
“시아.”
“네. 전하.”
두 사람은 이미 이에 관한 계획을 나누었는지, 별말 없었다. 로만드로는 깍지 낀 채 볼브가 무사히 죽기만을 기도했고, 수상 역시 눈 감고 돌발 상황 따위를 침착하게 계산했다. 황태자가 이미 마음을 먹었으니, 자신은 도와줄 수 밖에 없지 않나.
“우선, 제이럿 대장을 황제 폐하의 침실로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장군들을…….”
처리하든 정리하든 설득하든, 뭐 그건 제이럿 대장이 알아서 할 일이다. 진은 점점 저무는 바깥 해를 보며 시아오시의 어깨를 잡았다.
“시아.”
“네. 전하.”
“나는 너를 믿어.”
로만드로가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의 반대쪽 어깨를 잡았다.
“시아야, 나도 너를 믿는다.”
“걱정 마십시오.”
“언제, 언제 거행하실 생각입니까? 전하.”
“마침 내일이 삭(朔)이라.”
귀한 자를 죽이러 갈 것이라던 이안의 명령 아래, 게일의 침소에 침입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때는 다 짜고 치던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귀한 자를 위해 죽인다.’
시아오시는 자신을 결연하게 바라보는 진을 내려다보며 살짝 웃어 보였다.
달이 뜨지 않는 밤이 적기일 것이다. 그리하여 제 손에 묻은 피조차 보이지 않는 밤. 상대 또한 자신을 보지 못하여 일이 틀어졌을 때 문제없이 죽을 수 있는 밤.
진은 시아오시의 허리춤을 껴안으며 안타까운 한숨을 들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