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7
제348화. 황제의 침실
제이럿은 평소답지 않은 부름에 의아해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수상의 집무실로 가는 게 보통이건만, 이번에는 황제 폐하의 침실 앞으로 오라 하지 않나?
외부의 자극에 극도로 예민하다 하시어 내란 이후 뵌 적이 없는 폐하였다. 황궁친위대와 같은 궁을 쓰고 있었으나, 그쪽으로는 얼씬조차 못 한 채 이때까지 온 것이라.
제이럿은 황제의 처소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진과 수상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전하.”
“그래. 어서 오시오.”
“폐하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신 것입니까? 어찌하여 처소로 오라 하셨는지…….”
진은 대답 대신 수상에게 눈짓했다. 그러고 보니, 매일 데리고 다니던 시아오시라는 자가 없다. 수상의 보좌관이나 시종들 또한 마찬가지.
드넓은 황제의 처소 앞 복도, 세 남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무언가 이상했다. 불길하다면 불길할 수 있고, 의아하다면 의아할 수 있는 감정.
수상이 문을 좌우로 젖히자,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훅 새어 나왔다. 오래된 나무, 소독용 알코올 그리고 먼지 냄새. 무엇이 되었든, 지엄한 바리엘의 황제 처소에서 날 법한 냄새는 아니었다.
은은하게 켜진 등불 아래, 모든 것이 고요하다. 진은 들어오라는 듯 고갯짓하며 앞장서 걸었다.
끼이익.
수상은 주위를 둘러본 뒤,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리고 그 이름을 꺼냈다. 제이럿의 동료이자 친우였고, 함께 삼대장 역을 이끌었던 그 이름.
“베올스가 남긴 서신이 이걸 뜻하네.”
아르센 사태 전날, 베올스가 제이럿에게 남긴 서신이 있지 않았나? 무엇보다 황제의 무게와 함께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위험해질 것이니. 이는 제이럿이 마법부 견제를 결심하게 된 동기 중 하나였다.
“무슨,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보다 폐하 앞에서 이리 말해도 되는 것입니까? 의사가 전하기를 자그마한 외부 작용에도 심히 고통스러워하신다고…….”
“아버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동결하셨으니까.”
“…동결.”
동결? 자신이 아는 그 동결?
진은 가까이 오라며 손짓하였고, 제이럿은 아주 조심스레 걸음을 떼었다. 냉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진이 이불을 걷어 올리자, 노쇠한 황제의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내란 때 입은 부상, 자잘한 상처, 심지어는 머리칼의 길이까지도.
“아버지께서는 마리브에게 받은 공격으로 생명의 위험을 느끼셨고, 승하함에 따라 바리엘이 혼란스러워질 것을 염려하셨다. 베올스의 도움 아래, 동결하셨어.”
제이럿은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상태가 이러하니, 중증이라 알고 있던 평소와 다름이 없음이다.
하지만 의사소통 하나 안 되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멈춰버린 육신이라니. 바리엘 황제의 마지막이라 하기에는 참으로 비참하지 않나.
제이럿은 자신이 모시던 황제께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에 다시금 뼈저리게 후회했다. 내란 당시 자신이 궁 안에만 있었더라면, 그 전에 리아마의 배신을 알아채고 저지하였다면. 그랬더라면 폐하께서 이리되시지는 않았을 터인데.
“폐하.”
제이럿은 바닥에 이마를 붙이며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황궁친위대의 존재는 황제만을 위한 것. 그러니 어찌 마음이 안 쓰라리겠는가. 진은 친히 무릎을 꿇으며 제이럿과 눈을 마주했다.
“제이럿. 내가 아버지의 상태를 자네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말해보라.”
“모르, 모르겠습니다.”
“동결을 알고 있던 자는 나와 수상 그리고 이안 경일세. 이제 자네까지 하여 총 네 명만이 숭고한 비밀을 받들게 되었어.”
제이럿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마법부 장관인 이안도 이 사안을 알고 있다고?
“제이럿, 아버지의 죽음은 바리엘의 안정을 위한 것. 즉, 나의 권위가 단단해지면 아버지의 죽음이 정해진다. 이는 즉, 나와 황제 폐하가 곧 한 몸이라는 것이지.”
황제가 남긴 의지이자, 언제든지 원한다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이럿은
진의 말뜻을 바로 알아챘다. 황궁친위대의 초점을, 황제가 아니라 진 자신에게 맞추라는 것. 제이럿은 머리가 복잡하여 잠시 침묵했다. 그러자 수상이 황제의 이불을 정돈해주며 덧붙였다.
“들었는지 모르겠군. 볼브 장관이 대회의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말들이 많이 떠돌긴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마법부가 너무 강한 권한과 힘을 갖고 있다 생각하고 있어. 그건 마법부를 제외한 모두가 같은 의견일 걸세. 하지만 목적이 같다고 해서, 목표가 같을 수는 없는 노릇.”
마법부의 견제 아래 사리사욕이 들끓어대고 있었다. 특히 볼브의 폭주와 제국방위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사달이 나기 전에, 그러니까 마법부가 귀환하기 전에 황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국방위부는 전력의 주축이라 내 특별히 신경 쓰려고 해.”
“볼브 장관을 해임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잘 알고 있을 터인데. 해임은 신년회에서나 가능하다는 걸.”
제이럿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황태자가 진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단호하고 단단하여 하나의 망설임 없는 결단력. 그리고 황궁을 완벽히 장악하기 위해 내보이는 송곳니. 제이럿은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축였다.
“암살, 말씀이시군요.”
요직에 제 사람을 앉히는 것. 그것만이 어린 황자가 실권을 단단히 잡을 수 있는 일이다.
제이럿은 다시금 동결되어 누워있는 황제를 바라봤다. 살아서 죽어가는 것과 죽어서 살아가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미 황제는 죽었고, 그렇다면 황궁친위대가 모실 분은 눈앞의 작은 황태자. 망설일 것이 없다.
“알겠습니다.”
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제이럿을 설득했으니까. 삼대장의 주축이자, 마법부 반대 결집 세력의 중심인 그가 진의 명령을 듣는다면, 한껏 수월하게 일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진은 제이럿에게 일어나라는 듯 손을 잡아끌었다.
“자네가 직접 할 일은 아니다.”
“그러면 누구를…….”
제이럿은 시아오시를 떠올렸다. 몸놀림이 좋고, 베릭과 맞붙어서 버틸 수 있는 자였으며, 맹목적인 눈빛이 인상적인 노예 출신. 전체적으로 암살에 적합한 인물이다.
“언제 거행합니까?”
“내일 밤.”
“급하십니다.”
“삭(朔)이 뜨는 밤이라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언제 클리포포드에서 연락이 올지, 버고스와 루스웨나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짐작할 수 있는 게 없어. 제국방위부가 그쪽을 조사하기로 하였으니, 최대한 빠르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구구절절 하나같이 옳은 말인지라 대꾸할 게 없다. 제이럿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우려를 표했다.
“혹시 시아오시 그자를 제국방위부 장관으로 올릴 생각이십니까?”
“아니. 봐둔 자가 있다. 맥심 트웰러 경이라고, 유능하지만 군사학교 출신이 아니라 진급에 문제가 있더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없이 보직을 잘 유지하고 있어. 단점이 있다면 볼브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
“장점 같은 단점이군요.”
“내 우선순위로는 그자를 염두에 두고 있고, 시아오시는 장군으로 올릴 것이다.”
밑바닥 노예 출신에서 제국방위부 소속 병사로, 그리고 이어서 장군이라. 거의 전설처럼 전해질 만한 파격 출세였다. 아마 대부분이 반발하겠지.
그래서 진은 시아오시를 암살자로 보내는 것이다. 황권에 반하는 자를 직접 죽인 자, 그리하여 황권 강화에 도움을 준 자로 시아오시를 앞세우면 그 누가 반대할 수 있겠나?
“시아오시, 예. 적당해 보입니다.”
“나는 적당 수준이 아니라고 보지만, 뭐. 각자의 시선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니.”
시아는 영민하고, 습득력과 판단력이 비범했으며, 무엇보다 충성심이 남달랐다. 언제고 자신이 장성하여 황좌에 앉는다면, 시아오시 역시 그에 걸맞은 자리에 앉을 터.
“그러면 저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아주 적절한 질문이었다는 듯, 진이 방긋 웃었다. 저 웃음, 이안한테서도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진은 제이럿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명령했다.
“시아가 죽지 않게 해.”
* * *
제이럿은 저택 안으로 들어서는 문 앞에서 잠시 심호흡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부하들. 시종들은 새로운 손님이 도착했음을 알렸고, 얼큰하게 취한 장군들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그를 반겼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황궁친위대 제이럿 대장 아니시오?”
황궁친위대와 제국방위부는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그 중간에 마법부가 끼어있다면 말이 달라는 것 아니겠나. 적의 적은 동지라, 당장은 황궁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 아래 건넨 인사였다.
무엇보다 이드갈에 관한 것은 황궁친위대 역시 민감한 문제. 서로 좋게 좋게 풀어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어서 오십시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어쩐 일로 오기는, 이 사람아. 좋은 모임에 좋은 분이 왔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하하하. 그렇네요. 자자, 드십시오. 이쪽으로.”
“부하들은 밖에 나가 있거라.”
장군들이 손짓하여 부하들을 물리라 하였으나, 그들은 꿈쩍하지도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단단히 서 있는 황궁친위대의 반응에 장군들이 뭔가 의아하다는 듯 멈칫거렸다. 몇몇은 기민하게 뒤로 물러서며 시종에게 맡겨둔 검을 가져오라 이르기도 하였다.
“제이럿 대장?”
“다들 즐기는 데 방해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아니, 방해는 무슨. 이리 와서 한잔 들게. 그, 부하들을 뒤로 물리고.”
제이럿은 장군들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가 와인 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한 모금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모임의 주최자가 누구입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람?
장군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제각각의 사람을 쳐다봤다. 이자는 저자에게, 저자는 그자에게. 볼브의 저택에서 모이자는 연락을 받지 않았나.
“이, 무슨…….”
“자네가 볼브 장관님 축하하자고 내게 연락했잖아.”
“아니, 나도 전달받아서 일러준 걸세.”
“누구한테?”
웅성웅성,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제이럿은 여유롭게 그들 사이를 헤집으며 다시 물었다.
“여기서 볼브 장관에게 임명받은 장군은 몇이나 됩니까?”
어림잡아 일곱 정도. 그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때, 누군가가 검집에 손을 올리며 소리쳤다.
“제이럿 대장. 이건 방해하는 수준이 아닌데. 용건이 무엇인가?”
“우리 모두 황제 폐하를 모시는 자들이지만, 직속상관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음입니다. 볼브 장관이 죽으면, 그대들은 어찌할 것입니까?”
“뭐, 뭐라고?”
볼브 장관이 죽어? 장군들은 동시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쳐다봤다. 곧장 그쪽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지이잉. 지잉!
퍼엉!
“으아악!”
황궁친위대 부하들이 마력을 개방하여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경고했다. 장군들도 무인이긴 하나, 저들은 마검사. 실력 차이가 여실함은 물론 존재 자체가 다른 자들이다.
제이럿이 손짓하자 부하들은 장군에게 종이 한 장씩 나눠주었다.
“사표입니다. 서명하든 피를 찍어내시든 알아서 하십시오. 볼브 장관이 죽으면 새로운 장관이 들어설 것인데, 합이 잘 맞겠습니까?”
“이, 이건 반역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제이럿은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다들 제이럿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챘다. 어린 황태자. 그 작은 게 이리 깜찍하게도 수를 쓴 것이라.
제이럿은 마력을 발동하여 마검을 소환했다.
지이잉. 지잉.
“다시 말씀드립니다. 서명하든 피를 찍어내시든 하십시오.”
장군들의 동공이 어지러이 움직였다. 자신의 부하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사실상 그들 모두가 덤벼든다 하더라도 마검사 하나를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무사히 도망은 쳐야 할 것 아닌가?
그때였다.
“꺄아아악!”
위층에서 구르듯 내려오는 한 코르티잔 여인. 팽팽하던 분위기를 단번에 끊어버렸다. 그녀는 앞으로 엎어지며 횡설수설 떠들어댔다.
“왜, 왜 그러는가?”
“위, 위층에, 주인님이, 피, 피를, 누가…….”
“침착하게.”
“누가 주인님을 찔렀습니다! 남자인데, 회색 머리고, 그, 아, 모르겠습니다. 빨리 올라가야 해요!”
헉! 장군들은 돌처럼 굳은 채 제이럿만 바라봤다. 진정으로 볼브를 죽인 것인가?
하지만 제이럿은 서두르라는 듯 고갯짓만 까딱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스르면 모두가 죽어 나가는 목숨. 한 명이 먼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다.
“나, 나 여기 적었소.”
“샤이로!”
“나가게 해주시오.”
“젠장, 미쳤어? 지금-!”
“나도, 나도 여기 사표입니다.”
“다들, 정신 좀 차려보라고!”
쿠웅! 쿵!
위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볼브와 시아오시의 몸싸움이 내는 기척이다. 술에 취한 한 장군은 단검을 꺼내 코르티잔 여인를 베어버렸다.
촤아악!
“꺄아아악!”
“허억, 허억…….”
“이런.”
“사, 살려주시오. 목격자는 없을 것이오.”
유일한 목격자인 여인은 자신이 죽여주었으니, 제 목숨만은 살려달라. 제이럿은 쓰러지는 여인을 붙잡아주며 혀를 찼다.
“목격자가 없다니요. 여기 모두가 여인의 비명을 들었는데요. 자, 한번 올라가 봅시다.”
“무, 무슨-”
“따라들 오십시오.”
직접 눈으로 보고, 스스로 닫아버려라.
현장을 목도하였음에도 침묵하여 볼브의 죽음에 죄를 더하여라.
제이럿이 앞장서서 계단을 오르자, 부하들이 장군의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나선형 계단 위쪽. 제이럿은 활짝 열린 문과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시아오시를 발견했다.
“시아오시.”
장군들은 제이럿 너머로 볼브의 시체를 확인했고, 숨을 흡 들이쉬며 달달 떨어댔다. 여차했다가는 정말 여기서 죽어 나갈 수 있겠다 싶은 게다.
제이럿은 장군들을 돌아보았다.
“어떠십니까? 장군들. 뭐가 보이십니까?”
“그…….”
“제 눈에는 탐욕스러운 자의 말로만 보입니다만.”
“예, 예예. 그…….”
다시 볼브의 방문이 닫혔다. 그러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참상 또한 가려졌다.
“별일 아닌 것 같으니 다시 내려갑시다. 이상한 일이군요. 이렇게 좋은 날 말입니다.”
“…저기, 제이럿 대장.”
“무슨 일인지 잘 알겠네. 사표 낼 터이니, 살려만 주시오. 진심으로 눈과 귀를 닫겠소.”
“장군들의 저택에는 이미 조치를 해놓았으니, 실컷 드십시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어디로?
“황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