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8
제348화. 기준점
새벽. 창백한 관료들의 낯처럼 서슬 퍼런 하늘이다.
급하게 내달리느라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관료들은 옷을 여며 입고 머리를 가다듬은 채 급서(急書)를 다시 읽어내렸다.
아닌 밤중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제국방위부의 장관인 볼브가 죽고, 장군들이 대거 사임한다니? 도대체가 어찌 돌아가는 일인지 알 수 없다. 타국과의 긴장 상태가 극대화된 지금, 마법부에 이어서 제국방위부까지 불능 상태가 되면 어쩌란 말인가?
황궁에 가까워질수록 눈에 익은 마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궁을 환영하는 듯, 정문은 좌우로 활짝 젖혀져 있었다.
타닥타닥!
히이잉!
마부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대부분은 마차가 멈추자마자 손수 문을 열었으며, 눈 마주치는 자들끼리 다가가서 급서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거 원, 마차 타고 오는 동안에도 제가 꿈을 꾸고 있나 싶었습니다.”
“볼브 장관이 죽었다지? 다른 전언은?”
“아니요. 들은 것이 없습니다. 경을 처음 뵌 것이거든요. 궁에서 나온 연락이니 황궁에서는 자세한 경위를 알고 계시겠지요. 서둘러 들어갑시다.”
“자네, 셔츠 거꾸로 입은 것 같네만.”
“…누가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지. 내 모른 척해줌세.”
“볼브 장관의 죽음보다 더 의아한 것은 장군들의 대거 사임입니다. 대체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원.”
“생각을 해봤는데, 혹 황궁친위대 측에서 일을 낸 건 아닐까 싶어. 왜, 이드갈에 관한 문제로 껄끄러운 부분이 좀 있었잖은가. 그쪽이 움직였다면 일이 상당히 복잡해지는데.”
“설마요. 제이럿 대장이 그럴 자는 아닙니다. 지금 시점에서 제국방위부의 부재가 바리엘에 얼마나 큰 위험이 되는지 알고 있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황궁친위대가 그리 나오면…….”
그리 나오면, 과연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나?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관료들은 고개를 털어버리며 최악의 상황을 지워냈고, 이내 대회의실에 들어섰다. 이미 연락받은 대부분이 자리하여 수군대는 중이다.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그때, 밖에서 알리는 전언. 일동 침묵하며 일어섰고, 아이가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무렇지 않은 발걸음과 담담한 눈매, 저들처럼 놀란 기색 하나 없는 아이의 자태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수상과 제이럿 대장도 함께입니다.”
“…세상에나.”
수상과 제이럿이 아이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좌우로 갈라지며 황태자 옆을 지켰으며, 은근한 태도로 관료들에게 입장을 표명했다. 저들은 황태자의 명을 온전히 따르고 있음을 말이다.
“앉으시오.”
“전하, 전날 밤 볼브 장관이 사, 사망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누군가 자리에 앉자마자 운을 떼었다.
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는데, 그 표정이 참으로 오묘했다. 대외적으로는 아쉬우면서도 그 내면의 기쁨이 저절로 느껴졌으니.
“…성급도 하셔라.”
“소, 송구하옵니다.”
“아니다. 워낙에 중대 사안이니 그리할 법도 하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다. 볼브 장관이 전날 본인의 저택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황태자가 볼브의 죽음을 확실히 공표했다.
“사, 사인은요?”
“글쎄. 조사 중이지만 술에 취한 상태였던 터라 분명한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 궁금하긴 해. 그렇지? 불과 저번 대회의 때만 하더라도 혈기 넘치던 자였는데. 인생무상이라, 참으로 안타까워.”
당장은 묻지 말아야겠다. 관료들은 본능적으로 그걸 알아채고 입을 다물었다. 기민한 몇몇이 회의 주제를 돌렸다.
“볼브 장관의 급사가 애석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제국의 안위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원인은 천천히 찾도록 하고 우선 공석을 채워 혼란을 방지하는 게 좋을 듯싶은데요.”
“맞습니다. 게다가 장군들이 대거 사임했다고…….”
과연 사임이 맞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지나갔지만, 모두가 답을 알고 있었다. 장관의 급사와 관련한 타의적 사임이라는 것을.
황태자와 황궁친위대 대장 그리고 수상. 이 셋이서 제국방위부를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수상은 그렇다 쳐도, 제이럿 대장은 어찌하여 황태자 편에서 황궁에 혼란을 가져왔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어디까지나 황제를 위해 일하는 자였으니까 말이다.
웅성웅성, 조그만 소란이 가라앉지 않자, 진이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모두 자중해달라는 신호였다. 아직 전할 말이 많았다.
“아무래도 현 장군들 대부분이 볼브 장관의 후임이었으니, 새로운 장관과 함께 할 수 없다 판단한 것 같네. 나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자 한다.”
상관을 따라 조직이 개편되는 것은 흔한 일.
하지만 볼브의 급사가 정말 우연이었다면?
황태자가 지금과 같이 안정적인 투로 회의를 진행할 수 없었을 터였다. 남은 장군들이 장관직을 차지하겠노라 분열을 일으켰을 터이니.
이로 보나 저로 보나, 단체로 사임시키는 것이 마땅한 처사였다. 그로 인한 혼란이 야기되어도, 분열보다는 낫지 않겠나?
“그리고 이참에 군부의 악습과 적폐를 개선하고자 하니, 그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권한을 황궁친위대에 위임할 것이다.”
한바탕 뒤집어 놓겠다는 선포다.
볼브의 주축 세력은 이미 반강제적으로 사임당했으나, 장군 아래 장교들이 남아있었다. 하나하나 적법한 자인지를 선별하여 새로운 제국방위부를 만들고자 하니, 다들 토 달지 말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권한을 황궁친위대에 주니, 이드갈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균형에 다시 추가 달리는 듯했다.
“또한 바리엘 대제국 황태자의 임명 권한으로 제국방위부 장관에 트웰러 경을 선임하고자 하니, 관료들은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도록 하시오.”
“맥심 트웰러 경 말입니까?”
그자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정치에 관심이 없음은 물론이고, 군사학교 출신이 아니라 출세와는 거리가 먼 자 아니던가? 볼브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그렇다 쳐도, 어린 황태자와 모종의 인연이 얽혀 있다는 게 놀라웠다.
“문제가 있는가?”
“아, 아니요. 맥심 트웰러 경이라면 우수한 군인이지요. 하지만 지금껏 군사학교 출신이 아닌 자가 장관이 된 사례가 없는지라…….”
“군사학교 출신인 자는 화살이 알아서 비껴가는가 보지?”
“예?”
“전장에서 말일세. 화살에 눈과 귀가 달려, 군사학교 출신인 자를 알아서 비껴가냐고 물었네. 맥심 트웰러 경은 비 군사학교 출신으로 처음 장교에 올랐고, 거기서 인생의 반을 지냈지. 또 그 절반을 전장에서 지낸 자라. 제국방위부 장관직에 추천할 자가 있다면, 내 친히 듣겠소.”
추천할 만한 인재가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보시라.
현 제국방위부 장관이 사인도 알려지지 않은 채 죽은 상황에서, 과연 누가 그리할 수 있겠는가? 다들 말문이 턱 하고 막혀 적막만이 감돌았다.
“…….”
자신들이 보고 있는 자그마한 아이가 과연 이제껏 알고 있었던 진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다. 속전속결로, 황궁에 큰 파장 없이 제국방위부만 집중적으로 잡아채는 솜씨가 아주 깔끔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일 처리 하나만큼은 이안 경에게 아주 잘 배운 것이라. 이래서 아이들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 건가?
관료들은 자신이 지금 무슨 헛생각을 하는지 깨닫곤 슬쩍 뺨을 내려쳤다. 진이 의아하게 웃으며 소리 난 쪽을 쳐다봤다.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소집한 것인가?”
“아니, 아닙니다. 전하. 그, 맥심 트웰러 경 선임은 저도 찬성합니다. 인사청문회도 무리 없을 만한 자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는 것이, 그가 비 군사학교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장교 다음이 장군, 그리고 마지막이 장관이었다. 군사학교 출신의 장교나 장군 중에서 장관이 나오면, 당연지사 그 아래는 모두 전우이자 직속후배 관계였고, 이에 따라 자연스러운 조직 운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 군사학교 장교 출신인 맥심 트웰러가 장관이 된다면, 그 아래 장군들은 모두 신임이 차지하게 되는 바다.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장관인 맥심 트웰러 경이 해결할 문제다. 부하를 관리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그의 임무니까 말이지. 우선은 장관 공석부터 채우도록 하지. 해가 뜨면 진행할 것이니 관료들은 일전의 볼브 장관 건과 관련한 인사청문회 자료를 토대로 준비하시게.”
볼브는 내란 당시 임의로 취임한 자인지라, 인사청문회는 형식적이었다. 즉, 트웰러가 취임하기에 아무런 문제 없이 준비하라는 명령이었다.
관료들이 눈짓으로 보좌관들에게 신호하였고, 여기저기서 복도 내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참. 잊을 뻔하였군. 작위 수여식도 간소하게 할 것이네.”
“작위 수여식이라니요? 이미 트웰러 경은 남작 작위가 있습니다. 취임을 사유로 승작하는 것은 전례가 없습니다. 공적을 세운 후 은퇴 시 승작하는 것이-”
“맥심 트웰러 경의 작위 수여식이라고 말한 적 없네만.”
“예? 그러면 누구를…….”
관료들은 그제야 시아오시의 존재를 깨달았다. 매일 그림자처럼 진의 뒤를 지키는 자. 하여 가끔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어 당황했던 자.
시아오시는 여느 때와 같이 문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풍기는 분위기가 특별했다.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느낌. 관료들은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아.’
볼브의 죽음에 저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구나.
“왜 트웰러 경을 선택했는지 알겠습니다.”
“나중에 전하께서 장성하시면 트웰러 경도 은퇴할 나이가 되겠지요. 본격적인 국정을 이끌 시기인데 최측근이 비는 것을 막기 위함이시라.”
“노예 출신인 자유민에게 작위를 준다 함은, 장교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것 아니십니까?”
미리 맥심 트웰러로 길을 터놓는 것이다. 선례는 만드는 것이 어렵지,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그 누구도 이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비 군사학교 출신에 장교에서 특급 승진한 사례가 있다면, 언제고 노예 출신인 장관도 탄생할 수 있을 터. 시아오시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경험을 익힐 만한 시간이었다.
“전하, 작위라 하면…….”
“자작 작위를 말함이라.”
그나마 합리적이시다. 인사 개편에 있어서 자신의 사람에게 권한과 권력을 나누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 관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파격적인 뒷말이 붙어 나왔다.
“그리고 혹 트웰러 경이 임명하는 장군직에 자리가 빈다면, 시아오시를 그 자리에 특별 임명할 것이다.”
“전하, 아니 될 말씀입니다!”
“자, 장군이라니요. 장교 임명도 아니고, 그 무슨…….”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절대 아니 됩니다!”
“군사학교를 차치하고도 태생이 미천한 자입니다!”
“아, 태생이 미천한 자는 고위직에 앉을 수 없다?”
진이 미처 몰랐다는 듯 중얼거리자, 관료들이 멈칫거렸다. 동시에 떠올린 사례가 있었으니. 바로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 아니겠나.
다들 입만 뻐끔거리며 무어라 항변하고 싶은데, 까딱 잘못했다가는 공식적으로 이안을 욕보이는 것이라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 뜻이 아니오라…….”
“재차 알리노라. 맥심 트웰러 경이 인재를 선발하여 그 자리가 남았을 때, 시아오시를 장군으로 임명할 것이라고.”
그러니까, 시아오시에 관한 인사 처분을 자신에게 토로하지 말고 트웰러 경에게 가서 부탁하든 따지든 하라는 말이다.
이미 거래가 끝났음은, 그 자리의 모두가 직감할 수 있었다. 반대와 비난을 분산시키는 처사도 빈틈이 없으니, 오밤중에 불려 나온 관료들이 대처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자, 곧 있으면 해가 뜰 것이오. 오후를 저택에서 보내고 싶다면 가급적 서둘러 움직이는 게 좋겠지. 해산하고, 잠시 후 다시 모입시다.”
진이 수상에게 눈짓하자, 그가 봉을 내려치며 회의 종료를 일렀다.
다들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머리를 맞대며 현 사안에 대해 떠들어댔다. 진은 먼저 대회의실을 떠났고, 시아오시는 언제나처럼 그의 뒤를 지켰다.
“전하.”
“응?”
그러다 문득, 저를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섰다.
아이는 피곤한 기색 없이 총명한 눈으로 시아오시를 돌아봤다. 할 일이 태산이다. 인사청문회는 물론이고, 작위수여식, 장군 및 장교들 조사와 3국의 견제까지 진행해야 하지 않나.
시아오시는 천천히 무릎 꿇어 아이에게 걱정을 전했다.
“전하. 저에게 작위를 주심은 참으로 영광입니다. 관료들의 말마따나 천하디천한 제가 이리 황궁에서, 전하의 옆을 지키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과분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일이 혹여 전하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어…….”
“시아.”
아이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잘게 가로저었다. 이는 시아오시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그리고 바리엘을 위한 일.
“누군가를 위해 사람을 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너에게 이만한 대가는 충분해. 그리고-”
그리고 무리를 해서라도 시아오시를 장군으로 올리려는 이유.
“내가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최대한 손을 멀리 저어보는 수밖에 없단다. 시아. 너를 장군으로 올릴 수 있으면 나는 지금 황궁에서 그만한 힘을 가졌다는 뜻이니.”
과연 자신이 밀어붙이는 게 어느 선까지 가능할지, 혹 무리라면 거기까지가 자신의 벽이요, 다음으로 넘을 과제였으니.
진은 살아 돌아온 시아오시를 살포시 안아주며 중얼거렸다.
“바리엘에서 내가 해내지 못할 일은 없어야 해. 시아. 네가 나의 기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