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49
제349화. 맥심 트웰러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준비라고 할 게 있나요. 이미 정해진 사안인데.”
“볼브 장관 때와 마찬가지로 진행하라 하셨으니, 읽어내리기만 하면 될 겁니다. 아마 맥심 트웰러 경은 질문 순서도 다 인지하고 있겠지요.”
“인생 바뀌는 것도 정말 한순간입니다. 어제만 하더라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맥심 트웰러 경이 제국방위부 장관으로 올라설 줄.”
“모르긴 몰라도, 볼브 장관이 제일 몰랐겠지요. 살아 있었다면요.”
“제국방위부 측에서는요? 연락이 없습니까?”
“거긴 말도 마세요. 지금 완전 뒤집혀서 연락도 안 됩니다. 아마 시간 맞춰서 단체로 올 것 같은데, 반발이라도 없으면 다행이지요. 군사학교 출신도 아닌 자를 상관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시대가 바뀌고 있다 생각합니다. 맥심 트웰러 경 재산 현황은요? 행정부에서 올라온 게 없어요?”
“아니요. 먼저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참나, 빠르기도 하셔라.”
대회의실을 오가며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는 관료들이 혀를 내둘렀다. 모든 역사가 단 한순간을 기점으로 세워지고 무너진다고 하지만, 이처럼 벼락같이 들이닥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어린 황태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행정부와 황궁친위대 그리고 제국방위부를 장악했다. 마법부를 제외하고 거의 핵심 부서들이라 할 수 있으니. 특히 바리엘의 전력을 담당하는 오른쪽 왼쪽을 모두 잡은 것이라.
“마법부가 돌아오면 어찌 나올지 궁금합니다.”
“별수 있겠습니까? 그때 되면 이드갈에 대한 처분도 정해질 터인데. 자자, 이거나 마무리합시다. 시간 다 되었어요.”
새벽 댓바람부터 호출받고 들어와서 바로 인사청문회라. 관료들은 피곤한 기색을 숨기며 청문회 준비를 마무리했다.
째깍째깍 흘러가는 거대한 시곗바늘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드리웠다. 저 멀리, 마차들이 내달리는 게 창문으로 보였다.
“옵니다.”
제국방위부의 깃발이다. 천지가 울릴 것처럼 우두두 내달리는 모습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관료들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서는 장교 무리를 내려다봤다. 모두 정복에 머리를 단정히 하고서는 허리춤에 검까지 챙긴 상태다. 치렁치렁한 휘장 아래, 피로 절여진 제국방위부의 배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저자가 맥심 트웰러 경이군요.”
“자네는 처음 보나?”
“예. 제국방위부 쪽이랑은 인연이 없어서요. 거기에 바깥으로 나도는 장교를 만날 일은 더더욱 없지요.”
수십 년의 햇빛이 덧발라진 구릿빛 피부.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나로 조여 맨, 수염이 덥수룩한 자였다. 굵직한 주름 사이로 형형한 눈매. 체구는 작지만 단단하고 옹골진 기세가 단번에 느껴지는 군인이다.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시작되었군. 관료들은 옷깃을 여미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까와 같은 황태자의 입장에 경의를 표했다. 수상과 제이럿이 따르는 그 입장 말이다. 진은 모두에게 앉으라 손짓하며 웃었다.
“인사청문회 전, 먼저 간소한 작위임명식을 진행토록 하지.”
당연한 순서였다. 진은 시아오시를 장교로 올리고 싶어 하는 듯 보였으니, 귀족 작위를 먼저 주고 나서 일을 진행하는 게 맞으니까.
몇몇 관료들은 긴장한 채로 서류 뭉치를 꽈악 쥐었다. 맥심 트웰러가 장관이 되는 건 어찌할 방도가 없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시아오시가 저 자리에 오르는 것은 불공정했다.
“적어도 시아오시의 장교 임명만은 막읍시다.”
“되겠습니까? 괜히 나섰다가 전하 심기만 거스르는 것이 아닌지…….”
“아닌 건 아니지요. 저는 납득할 수 없으니, 말리지만 마십시오.”
“미치겠네. 정말.”
“제국방위부 사람들 다 착검하고 들어온 거 안 보이십니까? 제이럿 대장도 무장을 하고 있어요.”
“원래 정복에는 저것이 정석입니다. 쫄지 마세요.”
곳곳에서 이와 같은 결심을 지닌 자들이 속닥거리며 열의를 불태웠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아오시는 평소와 같이 무던한 낯으로 진의 앞에 무릎 꿇었다. 로만드로가 급하게 맞춰온 예복이다. 머리칼 역시 정돈하여 그의 오드아이가 더욱 확연히 두드러졌다.
“시아오시. 내란부터 시작된 모종의 사건‧사고에 자네가 수많은 공을 세웠음을, 내 알고 있다. 하지만 신분의 한계로 그 영광까지 닿기 어려웠지. 하여, 내 그대의 능력과 공적을 높이 쳐서 자작 작위를 하사하니.”
진은 시아오시의 가슴팍에 배지를 달아주었다. 푸른 눈의 회색늑대 인장이었다.
“시아오시 엔로우. 앞으로 바리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시게.”
엔로우. 시아오시가 가진 최초의 성(姓)이었다. 그는 받들겠다는 뜻으로 가슴팍에 손을 올린 뒤,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진이 주위를 둘러보며 선창했다. 모두에게 따라 하라는 듯.
“바리엘의 영광을 위하여.”
“바리엘의 영광을 위하여.”
짝짝짝!
그러자 관료들이 하나둘씩 일어서며 박수를 보냈고, 제창했다.
로만드로는 손목이 파닥거릴 정도다. 몇몇이 힐끔거리며 날 선 눈매를 보냈지만, 알게 무어란 말인가? 로만드로는 더더욱 보란 듯이 크게 환호했다.
“시아오시 경이라니, 세상에나. 축하하오. 이래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안 그런가? 이안 일행이 알면 어떨지 내 참으로 기대되어.”
“베릭이 자신도 달라 떼를 쓸 것 같습니다.”
“그럴까? 크히히. 아무튼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시아오시가 아래로 내려와 로만드로의 축하를 받아주었다. 민망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가슴에 달린 인장의 무게가 버거운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다.
이내 수상의 안내가 들려왔다.
타앙! 탕!
“자,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서둘러 진행하겠습니다. 다음은 제국방위부 장관 임명에 관한 사안입니다. 먼저, 자택에서 급사한 볼브 장관에게 애도하는 마음을 표합니다. 하지만 제국방위부의 장관직은 바리엘을 지탱하는 요직 중 하나. 오래 비워둘 수 없음이니, 관례에 따라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맥심 트웰러 경을 장관직에 임명하고자 하십니다. 맥심 트웰러 경.”
수상이 호명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좌우로 젖혀지며 군인들이 들어왔다. 아마 트웰러 경을 따라 장군직에 앉을 최측근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사내.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위압적인 힘. 전장에서 수십, 수백의 뼈를 으스러뜨리고 살아난 자의 원초적인 기백이 엄청났다. 아무리 봐도, 정복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거친 외모다.
“맥심 트웰러 경. 단상에 서 주시오.”
수상과 트웰러가 잠깐 시선을 나누었다. 어린 황자가 어찌하여 좌천된 장교와 연이 닿았나 싶었는데, 중간에서 수상이 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트웰러가 단상에 올라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긴장감을 깨버리는 그의 웃음.
“허허. 밑에서 보았을 때도 높아 보였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더하군요.”
자그마치 몇 년이던가. 군사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교들 틈에서도 온갖 수모를 겪은 것이 말이다.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워도,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대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없다시피 했는데.
저의 후배들이 진급하고, 심지어는 장관직에 앉아 모두가 트웰러의 은퇴를 원하던 나날들. 하지만 보라. 버티다 보면 언제고 기회는 온다. 지금처럼.
“선언을 해주시게.”
“예. 저는 제5천인대 대장 맥심 트웰러입니다. 지방 동부 출신이고, 입대하여 서른 해를 지냈으며, 대장직을 맡은 지는 십삼 년째입니다. 저의 신의와 성실 그리고 능력에 대한 검증을 위하여, 어떠한 거짓도 없이 사실만을 고하겠나이다. 바리엘에 맹세하고,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께 맹세하여서 말이지요.”
전장을 누비던 자라 그런지 실로 여유롭다. 노련한 덕도 있겠지만, 이미 상황 자체가 자신에게 기운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럴 것이라. 여기서 미친 척하고 구르지 않는 이상, 장관직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종이 넘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트웰러의 부하들은 긴장한 채 자신의 상관만을 바라보며 침을 삼켜댔다.
“맥심 트웰러 경. 가족 관계가 부인과 아들 셋 그리고 딸 둘입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 역시 제국방위부에 입대하기 위하여 훈련하고 있지요.”
“신고된 재산이 저택 세 채와 말 열 필 그리고 금화 백 닢 정도로, 재작년 이후 갱신된 게 없습니다.”
“지난해에는 제가 국경을 돌아다녔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말을 이끌고 간 터라, 뭐든 특정할 수 없어 신고도 불가했습니다.”
“개인 말을 이끌고 가요? 왜요?”
“왜겠습니까?”
진급에서 밀리고 은퇴 눈칫밥을 잔뜩 먹는 퇴물 장교에게, 보급이 제대로 떨어질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는 볼브와 사이가 안 좋은 편이었다. 군마 관리에 필요한 보급조차 미흡하니 사비를 차출할 수밖에.
되묻는 질문에 관료가 멈칫거리자, 트웰러가 씨익 웃었다. 치아 몇 개가 깨져있다.
“허가 없이 황궁 재산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생각에 그리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비꼬는 투가 역력했다. 여기 있는 관료 중 그 누구라도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에 관심 있었던 자가 있는지 묻는 눈빛. 자신은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니, 어디 해보려면 해보라는, 도발적인 전사의 대답이다.
“…그, 장관이 되면, 그 아래 장군을 누구로 선별할 생각입니까? 정확한 기준을 설명해 주시고, 추구하는 제국운영부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나올 게 나왔다. 트웰러가 선별할 장군에 관한 내용. 이는 곧 시아오시와 관련이 깊은 것이니, 그의 대답에 따라 관료들의 공격과 회유가 적절하게 던져질 터.
일반적으로는 잘 나오는 답변으로는 ‘수행에 적합하고 무리가 없는 자’ 정도가 되겠지. 그러면 시아오시의 무경력을 걸고넘어질 수 있다. 전장 경험 하나 없는 자가 어찌하여 수백, 수천의 병을 이끌겠는가?
다들 손들 준비하며 움찔거리는 순간.
“그런 거 없습니다.”
“예?”
트웰러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장군을 선별할 때 기준 같은 건 없습니다. 군단마다 임무 수행이 상이하니, 관료들이 보시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도 제 판단 아래에서는 적합하다고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기준에 관한 건 묻지 마시고, 저에 대한 것만 물어봐 주십시오. 문제가 생기면 제 부하고, 제 책임이니, 그 또한 저에게 물으시면 될 일입니다.”
“아니 그래도 어느 정도 답변을…….”
“상황에 따라, 제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니 지금 말한다고 한들 지켜질 것이라 약조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듣고 싶으시다면…….”
까딱까딱. 트웰러의 손끝이 습관적으로 움직였다. 담배를 말아 돌리는 움직임이었다.
“능력 위주로 갈 것입니다. 우리 훌륭한 황궁친위대를 보십시오. 신분이고 지위고 상관없이 오로지 능력만을 보니, 황제 폐하를 옆에서 모실 만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끌 제국방위부도 앞으로 그럴 것입니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승리만을 가져오는, 그런 제국방위부를 원합니다. 그것이 곧 바리엘을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아주 이를 꽉 깨물었다. 그간 겪었던 수모를 잊지 않고 뼈에 새겨 제국방위부를 완전히 갈아엎겠다는 선언. 이는 곧 시아오시의 장군 임명에도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걸 의미했다.
관료들이 펜을 돌려대며 서로 난처한 시선만 주고받았다.
“노인네. 힘 빡 들어갔네.”
“들리겠습니다. 조용히 하십시오.”
“황궁친위대 운운하며 개편하겠다고 하니, 여기서 반대하면 황궁친위대도 걸고넘어지는 것 아닙니까? 하여간, 너구리 같은…….”
관료들이 아주 작게 속닥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트웰러 경은 그렇다 치고, 시아오시만이라도 어찌 잡아 끌어내리려고 했는데 틈이 없다.
“다음 질문, 없습니까?”
트웰러가 유쾌하게 코를 훌쩍이며 돌아보았다. 관료들은 거의 반쯤 포기한 채로 손을 들어가며 형식적인 청문회를 이어갔고, 이내 거의 마무리 될 즈음.
똑똑.
끼이익.
밖에서 총총걸음으로 뛰어온 로만드로가 진에게 속닥거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연락이다.
“전하. 클리포포드에서 전언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