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
제35화. 베릭에게 데모샤
기사는 검을 잡은 채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친의 제물에 불과한 이안과 그 똘마니가 천려족에 스며든 것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베릭. 잘 할수 있겠어? 오늘 죽는 거 아니야?”
“응, 꺼져. 너나 죽어.”
“입 터는 거 보니까 컨디션 좋구먼.”
“이봐, 브라츠의 기사 양반! 베릭 혼쭐 좀 내주라고! 정신 번쩍 들게 말이야. 아니면 내가 널 죽일 거야.”
“크하하하! 그럼 기사는 이러나저러나 죽는 거 아닌가? 너무 불공평하잖아.”
“아아. 그렇지. 맞네.”
베릭과 기사를 둥글게 둘러싸고 구경하는 꼴이라니. 마치 투기장의 개가 된 기분이었다. 기사는 카칸티르 옆에 앉아 있는 이안을 보고서,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확신했다. 이런 정세 역시 데르가에게 보고해야만 했다.
“퉤!”
베릭은 침을 뱉은 다음 검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았다. 아까 기사의 공격을 수월하게 쳐내긴 했다만, 그건 놈이 방심했기에 그랬던 것이다. 베릭은 이안을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이안! 얘 죽으면 답신은 어떻게 보내?”
“튼튼한 쿠실레가 많아. 걱정일랑 말고, 네 목이나 간수 잘하거라.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예예. 그럽죠.”
답신 전해주는 것이 문제겠는가?
기사 대신 직접 쿠실레를 타고 달리면 될 일이다. 이안의 말에 베릭은 히죽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카칸티르의 말대로, 살의 없는 전투는 지겨운 참이었으니까.
“살살 봐줘잉. 난 X나 세게 덤빌게.”
“말투가 천박하군!”
“그게 내 매력임!”
채앵! 챙!
베릭은 모래를 밟고 단박에 뛰어올랐다. 바람을 가르는 칼날의 궤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기사는 차근차근 베릭의 공격을 막아냈다.
“으아아아악!”
끼이이익!
칼날이 맞물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렸다. 천려일족들은 흥미롭게 구경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기사! 죽여! 베릭 좀 죽여!”
“으하하핫! 저거 봐라, 저저, 벌써 지쳐 보인다.”
“아니거든!”
언뜻 듣기에는 기사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안과 베릭은 그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카칸티르가 직접 말해주지 않았던가.
“가라! 베릭!”
“어디 한번 굴러봐!”
진정한 전사의 길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베릭이 전사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달려드는 미친개 같군.”
“칭찬이지?”
퍼억!
“커헉!”
공격을 받아내던 기사가 틈을 노려 베릭의 명치를 팔꿈치로 후려쳤다. 그대로 얼굴을 모래더미로 처박는 베릭. 숨이 쉬어지지 않는지, 꺽꺽대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런. 제대로 맞았나 본데.”
“베릭! 마! 일어나!”
“쯧쯧. 까불 때부터 알아봤다.”
이안은 피식 웃고 말았다. 막상 베릭이 저리 쓰러지자, 천려족들의 반응이 험악해진 것이다. 기사는 시간 낭비할 것 없다 여겨, 바로 검을 다잡았다.
고꾸라진 목표물의 목덜미가 훤했다.
쉬이익!
기사의 검이 베릭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베릭은 몸을 틀어 피하면서 기사에게 모래를 뿌렸다. 그리고 바로 갚아 주듯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뒤지게 아프잖아!”
퍼억! 퍽!
난투로 치닫을 것 같은 흐름에, 기사는 하늘을 힐끔거렸다. 해가 완전히 뜨고 말았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이 순간, 그가 베릭과 놀아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성가시게 굴지 마라!”
채앵! 챙!
하지만 문제는 베릭 이놈이 영 만만치 않다는 데 있었다. 됐다 싶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치고 올라오니, 기사는 짜증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으아아악!”
“흐아앗!”
둘의 기합이 동시에 터졌다. 검끼리 맞물리며 서로의 심장을 노린 채 꺾어 들어갔다.
푸욱!
그리고 드디어, 검에 피가 묻었다.
베릭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찌른 기사의 공격. 칼날을 타고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기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손잡이를 돌렸다.
입가에 슬며시 걸리는 웃음은 덤이다.
“끄아아아악!”
“후우. 실력은 좋으나, 여기까지다.”
“으으으! 으아아아악!”
“내가 바빠서.”
내장을 후벼 파는 수준이다. 베릭이 맨손으로 칼날을 잡자, 피가 여러 줄기로 뚝뚝 떨어졌다. 이안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천려 일족이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가, 죽이려면 곱게 죽일 것이지.”
존중이 없는 전투는 조롱일 뿐이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제일 혐오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베릭은 눈앞이 핑 도는지 머리를 몇 번 털어낸 다음 상처 부위를 내려다봤다.
“…하. X발.”
그리고 이를 꽉 깨물며 검을 빼내려고 했다. 그럴수록 기사는 힘을 더욱 깊게 실어낼 뿐. 칼끝이 결국 베릭의 몸을 관통해 뒤로 나오고 말았다.
퍼억!
기사는 그대로 베릭의 몸을 발로 까버렸다. 옆으로 나뒹구는 몸뚱이를 넘어서서는, 이안에게 저벅저벅 다가왔다. 카칸티르는 아까와 같이 심드렁한 눈빛으로 턱을 괴고 있을 뿐이다.
“이안 브라츠. 시간이 없다.”
그는 허리춤에 찬 단도를 꺼내 들었다. 베릭과 달리, 이안은 이것으로도 충분할 터. 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모래바람만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휘몰아칠 뿐이다.
“그대의 죽음으로 데르가 브라츠 백작님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니. 소임을 다하고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라.”
그가 단도를 위로 쳐들었다. 이안의 시선은 칼끝으로 향했다가, 기사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죽음을 앞둔 자의 반응이 아니었기에, 기사는 저도 모르게 멈칫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하.”
베릭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치 악마라도 들린 것처럼 고개가 뒤로 꺾여져 있었지만, 두 다리를 제대로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옆구리에 꽂힌 검을 한번에 잡아 뺐다.
촤악!
피가 분수처럼 터졌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붉지 않은 데가 없다. 베릭은 고개를 천천히 앞으로 내리더니, 힘겹게 중얼거렸다.
“…나, 아직, 안 끝났는데, 개새끼야.”
“이제 그만 좀…….”
지이잉.
그때였다. 기사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운에 말을 잇지 못했다. 마물 전투에서 기사단장들이 보였던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사아아악.
살랑이던 베릭의 머리칼이 점점 거칠게 휘날렸다. 바닥에 그어지는 모래 선이 물결처럼 보일 정도다.
“나는 한 방 맞으면 두 방으로 돌려준다.”
“젠장! 진짜 더럽게 성가시네!”
“기사, 이걸 쓰시게.”
그때, 카칸티르가 웃으며 제 검을 빌려주었다. 베릭의 옆구리에 꽂혔던 기사의 검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으니까. 기사는 망설임 없이 받아들고 베릭에게 뛰어들었다.
촤아아악!
“죽어도 혼자 안 죽어!! 나는! XX 새끼야, 너 죽는 거 보고 죽을 거야!”
“닥쳐라!”
베릭이 폭발하듯 힘차게 뛰어올랐다.
이안은 그의 눈이 마력을 불어넣었을 때와 같이 빛나고 있음을 알아챘다. 피떡이 된 얼굴에서, 오직 눈동자만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으니.
챙! 챙!
“으아아악!”
“이, 뭐 하자는, X발…….”
베릭은 엄청난 속도로 밀어붙였다. 겨우겨우 피해가던 기사도 결국을 피를 내고 말았다. 힘이 이전과 달리 비교도 안 되게 묵직한 탓이다.
스쳐 지나가는 칼날을 따라 핏물이 튀었다. 그것이 베릭의 것인지 아니면 기사의 것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죽어어어!”
푸욱!
기사의 어깻죽지를 한번에 관통한 베릭의 공격.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기사가 부들대며 반대쪽 손으로 칼날을 밀어냈지만…….
“으아아악!”
기사가 했던 것처럼 베릭 역시 몸으로 무게를 실어 넣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올리며 심장 쪽으로 검을 잡아끌었다. 길고 깊은 자상이 벌어질수록, 기사의 숨결과 함께 피가 쏟아졌다.
“아, 이…….”
“하아… 하아…….”
베릭은 이를 꽉 깨문 다음 그의 목을 무릎으로 눌렀다. 이내 어깨에서 쭉 빠지는 칼날. 태양을 찌를 것처럼 위로 향했다가, 망설임 없이 기사의 목을 관통했다.
푸욱!
“아, X발, 진짜…….”
그리고 모래 위에 벌러덩.
베릭은 아린 옆구리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조용하던 주위에서 동시에 환호성과 격려가 터졌다.
“베릭! 잘 했다! 이 싸가지 없는 놈!”
“그래, 끝까지 가 봐야 하는 게 싸움이라고!”
“생각보다 검 잘 쓰네. 베릭, 정신 차릴 수 있겠어?”
“아아. 말 걸지 마. 너무 아파…….”
“엄살은! 피 조금 흘리고서는.”
“이봐! 얘 좀 옮겨봐. 의원 어디 갔어?”
카칸티르는 그 소란을 지켜보며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그리고 이안에게 고개를 숙여 조용히 속삭였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실로 만족스럽게 보였다.
“이안 경이 저자를 데리고 온 이유를 알겠네.”
“데려온 것이 아니라 함께한 것입니다.”
“하하하. 그래. 역시 전사의 미덕을 그대로 갖췄군. 베릭이라는 자, 실로 예사롭지가 않아.”
“성격이 저리 지랄 맞게 독한 자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모래바람이 일렁이고 눈빛이 번득이는 능력을 묻는 것이었으나, 이안은 카칸의 말을 장난스레 넘겼다. 그리고 베릭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베릭. 정신 좀 차려보아라.”
눈앞에서 손가락을 딱딱 튕기자, 베릭이 인상을 찌푸리며 이안의 손가락을 깨물려고 했다.
“어허. 어디서.”
“…이거 진짜 졸라 아파.”
“그래 보인다. 수고했다.”
잠재되어 있던 마검사의 능력이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안이 마력을 넣어 자극했던 게 점차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베릭은 마지막으로 이안의 손가락을 깨물려고 하다가, 기절해 버렸다.
“좀 옮겨주시오.”
“예예. 지혈도 해야겠네.”
“얼씨구. 이거 잠든 거야, 기절한 거야?”
“배에 구멍이 뚫렸는데 잠이 오겠어? 기절이지.”
천려일족이 한마디씩 던지며 베릭을 천막으로 옮겼다. 기사의 시체 위에도 천이 덮였다. 네르사른은 그의 품에서 답신을 꺼낸 다음, 수를 불렀다.
“수. 채비를 하거라.”
“아. 제발요.”
심부름 시키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수는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싫다는 의사를 표했으나, 단호하게 무시당했다. 네르사른이 부하를 불러 지시했다.
“기사의 머리를 잘라서 상자에 넣어라.”
“아아악! 그냥 종이만 가져갈게요! 네? 네르사른 님.”
“아니, 머리여야 한다.”
데르가에게 줄 답신으로는 그만한 게 없었다.
수는 팔짝 뛰며 네르사른에게 매달렸으나, 소용이 없었고 이내 기사의 시체는 토막 났다. 네르사른이 이안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제 때를 보면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화친 파기를 원한다는 걸 알았으니, 데르가는 바로 중앙군과 맞붙을 겁니다. 지원군이 내려오는 중이라 하니 시간 끌어봤자 손해니까요. 조사단 먼저 정리해 놓으려 할 겁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데르가가 열심히 저항하여 조사단과 중앙군 모두에게 전력 손실을 입히고 척결되는 것이다. 그 상태로 이안이 천려족을 등에 업고 입성하면, 승기의 각도를 더욱 확실하게 가져올 수 있다.
“데모샤!”
기사의 시체를 이고 가던 전사가 이안에게 주먹을 뻗었다. 신의 축복을 빌며, 베릭의 성장을 축하하고, 신의를 다지는 인사였다.
이안은 주먹을 가볍게 맞부딪히며 화답했다.
“데모샤.”
피를 쫓는 전사들의 투지가 사막을 더욱 뜨겁게 만들리라. 떠오르는 태양 빛을 잡으려는 것처럼, 이안의 주먹이 굳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