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1
제351화. 역미끼
다몬은 한쪽 턱을 괸 채로 침묵했다.
톡톡, 그의 손끝이 테이블을 두드릴 때마다 신하들은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눈짓하였고, 그 마지막은 티모시를 향했다. 제발 무어라 운이라도 떼어달라는 듯.
티모시는 한숨을 삼키며 천천히 종이를 넘겼다.
“전하. 클리포포드 측에서 연락이 오려면 진작 왔을 시간입니다. 어떠한 전언도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신의 급사를 묻으려는 의도가 명백해 보이니 새로운 자를 보내심이 어떠할까요.”
“저도 동의합니다. 급사를 알렸다가 문제가 될 것을 염려하여 아무런 언질조차 없는 것입니다. 시간을 끌었다가는 어떤 방법으로 빠져나갈지 모르니, 한 번 더 보내보심이 어떨는지요.”
“검은 달이 클리포포드 왕궁에 떴다가 졌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하나 아니면 둘 정도가 죽었을 가능성을 크게 생각하심이…….”
똑똑.
그때였다. 바깥에서 들리는 인기척. 다몬은 턱 괴었던 것을 바로 하며 서둘러 들라 명했다. 다급해 보이는 신하가 곱게 접힌 종이를 티모시에게 전했다.
“클리포포드에서 온 급서(急書)입니다.”
“몇 명이 죽었다 하는가?”
“아, 그것이…….”
티모시는 다몬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읊었다.
“사신들이 단체로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니, 클리포포드에서 치료 중이라는 내용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신하들이 어이없이 인상을 찌푸리며 속닥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혹여 독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여 죽지 못한 것 아닌가? 아니면 중간에 모종의 사안으로 일이 틀어졌거나?
다몬은 보랏빛이 형형한 눈으로 글자를 읽어내리더니 피식 웃었다.
“거짓말도 장황하군.”
“거짓말이라 하시면…….”
“사신들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을 피하고자 이리 전하는 것일 터. 아마 클리포포드는 버고스가 송곳니를 감추고 있음을 알아챈 듯싶다.”
“그, 그러면 어찌합니까? 역시 한 번 더 사신을 보내 증거와 빌미를 잡아내는 편이…….”
“아니. 보내봤자 어차피 돌아오지 못해. 괜한 짓이다. 그것보다 왕궁에 심어둔 눈과 귀를 거두는 편이 나을 듯싶은데. 또한 클리포포드 거리에서 떠도는 소문을 소집하고, 안쪽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쪽으로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마법사들은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거의 그렇다고 보는 게 맞다. 근데 의아한 게 있어.”
다몬은 찰랑거리는 단발을 가볍게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클리포포드와 바리엘 마법사들이 국경에서 한바탕 난리를 친 것까지는 인지했다. 그리고 그 일의 연장선상으로 클리포포드 왕궁에 들어간 것도, 마법부 대부분이 지원을 나간 것도 루스웨나 측의 언질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마법사들은 바리엘로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클리포포드를 지키겠다는 명분은 너무 빈약했다. 아직 그들은 공식 동맹 관계가 아닐뿐더러, 황궁을 비워두는 것 자체가 더욱 치명적인 상황일 텐데.
‘이안에게 문제가 생겼다고는 하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소년의 나이로 마법부 장관직까지 오른 자가 대체 무슨 연유로 한풀 꺾였는지 알 수가 없다.
‘…티모시를 보내볼까?’
흙탕물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그저 손끝의 감각으로만 앞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
그 속에 티모시를 던진다면, 그 무엇이 되었든 잡아 끌어올릴 게 있지 않을까? 마침 이안이 티모시를 대하는 태도가 단순한 외교관을 넘어서는 것 같았으니.
“전하?”
“아.”
티모시가 걱정스레 다몬을 부르자, 다몬은 정신을 차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이 죽었다는 정황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바리엘 측이 클리포포드를 통해서 개입할 여지를 찾고 있는 것 같으니, 우리 측에서 빈틈없이 해야 할 것이다. 다들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라.”
“예. 전하 물론입니다. 받들겠나이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런데 말입니다, 저…….”
회의가 마무리되려고 하는데, 한 신하가 손을 들었다. 그는 머뭇거리며 지방에서 속속들이 올라오는 상소를 만지작거렸다.
“귀족들의 사병 결집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몇몇 가문에서는 먼저 가보를 돌려받는 걸 원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에 들어가면 혼란스러울 터이니, 관리나 분실에 관하여 걱정이 많은 듯하옵니다.”
단순히 버고스의 왕궁 전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나 인구수로 따지면 클리포포드 쪽과 꽤 큰 차이가 나지 않나.
버고스가 타개할 방도는 지방에 분산된 귀족들의 군사력을 모두 한곳으로 모으는 것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바리엘에 진상품으로 넘겨주었던 보석의 확실한 처분이 필요했다.
“그것참 걱정들 많으시네. 수도로 올라오면 내어준다고 전하긴 했는가?”
“예. 물론입니다.”
“증표로 왕궁 인장 찍은 서신을 보내도록 해라. 하여간, 귀족들이란.”
다몬은 그리 중얼거리며 자신의 집무 책상 서랍을 뒤적거렸다.
곧 손에 잡힌 작은 상자 하나. 원래라면 클리포포드에서 보관하고 있어야 할 황금빛 다이아몬드가 담겨있는 상자다.
두 번째 삶이라고, 하늘이 도우시는 게 분명한 게다. 이드갈의 대량 확보는 물론이고 그쪽으로 넘어갈 뻔하였던 보석까지 되찾았으니, 이는 속히 전쟁을 개시하라는 운명의 지시다.
‘러더포드.’
러더포드 소속인 의문의 사내. 어떤 수를 쓴 것인지 모르겠다만, 그는 노아 왕자의 마차에서 보석을 빼 와 자신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에 관한 대가는 헐값이라 치부할 만한 가격이었다.
다몬은 러더포드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물질적인 이득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전쟁 그리고 파괴. 나아가 각국의 긴장 관계와, 어쩌면 바리엘의 몰락까지.
상단의 의도가 어떠하든 어쨌거나 버고스와 바라보는 방향이 같으니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그리하여 문제없이 귀족들을 중앙으로 결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드르륵!
다몬은 서랍을 닫은 뒤, 티모시에게 지시했다.
“티모시.”
“예. 전하.”
“클리포포드 거리에 나가서 일을 보는 건 네가 하도록 해라. 직접 가서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상대 측 상태를 알아 와.”
티모시가 고개를 조아리며 명을 받들겠다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거리에서 알아내지 못하면, 궁으로 들어가서라도.”
“예?”
아까 다몬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또 다른 사신을 보낸다고 한들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티모시가 당황하여 고개를 쳐들자, 다몬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농이다. 농.”
“아…….”
불편하게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티모시.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지만 때로는 너무 날카롭고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 난감했다. 티모시가 고개를 조아리자, 다몬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지켜볼까. 클리포포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 * *
“뭔가 반응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움직임도 없어요.”
국경에서 넘어온 연락을 받은 이안이 팔짱을 낀 채 지도를 내려다봤다. 벌써 하루가 지났다. 클리포포드의 전언을 받은 버고스 측에서는 어떠한 움직임 없이 잠잠했다.
사신 전체가 발병하여 앓아누웠다는데도 답신이 없다는 것은, 내용 자체가 거짓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뜻. 당연하게도, 다몬이라면 그럴 눈치가 충분했다.
“계속 대치 상태를 유지하면 되겠습니까?”
“예. 바리엘 측에서도 군사가 내려오는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버고스에서는 트집을 잡기 위해 현재 클리포포드 안쪽으로 정보원을 침투시켰을 것입니다. 탐문하고 수색할 시간은 주는 게 마땅하지요.”
“하아, 이거 생각보다 더 긴장됩니다.”
“긴장하실 것 없어요. 긴장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니까.”
타악.
이안은 클리포포드의 지형을 자세히 살피며 계속해서 돌을 이리저리 옮겨댔다.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오가는 것인지, 클리포포드의 신하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듯 눈알만 굴려댔다. 그 옆의 노아 왕자도 별말이 없는데, 저들이라고 덧붙여 말할 게 있겠는가.
“소문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요?”
“그래. 안 그래도 왕궁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음이니, 소문이 퍼지는 것은 금방일 터. 버고스를 유인하는 책으로도 좋지만, 백성들 또한 나름의 준비를 하게끔 하니 일석이조인 것 같네.”
왕궁에서 버고스 사신 세 명이 죽어 나갔다. 이것은 외교적인 문제로 번질 것이니, 왕궁에서는 쉬쉬하며 뒤처리에 열성이다. 하여, 백성들 또한 혹시 모를 버고스와의 충돌에 대비하여 음식을 비축하고, 가족끼리 모여있으며, 외출을 삼가라는 비공식 경고를 날리는 게다.
“하루 종일 노래 부르는 것에도 지치지 않으니, 제 생각보다 더 이르게 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타닥타닥!
콰앙!
“왕자님!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버고스의 티모시 사절이 입국했다는 정보입니다.”
멈칫. 돌을 놓으려던 이안의 손길이 뚝 멈추었다. 스며들 듯 안쪽으로 들어와 반응을 보일 것이라 예상하기는 했어도, 그 주체가 티모시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사절 대표단을 맡을 정도로 고위직이며, 이는 곧 다몬의 최측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를 이런 상황에, 클리포포드로 넘겨 보내? 별생각 없어 보이는 노아와 달리 이안은 머리를 가만 넘겨댔다.
‘이건 다몬이 나한테 던지는 미끼인가?’
이래서 감정을, 그리고 그에 따르는 호의적인 행동을 남들에게 들켜서는 아니 된다. 다몬은 바리엘에서 본 이안과 티모시의 특별한 인연에 알 수 없는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티모시는 모르겠지만, 이안은 실제로도 그리했고 말이다.
그는 나움의 선조이니만큼, 예상에 없는 죽음이나 사건‧사고에 휘말리게끔 두어서는 안 된다.
“티모시 사절. 아아. 바리엘에서 봤던 그자군. 어디로 갔다 하던가?”
“수도로 진입한 이후로는 추적이 끊어졌습니다.”
“왕궁 쪽으로 접근할 것이다. 기민하게 살펴라.”
“예. 왕자님.”
왕궁 내에 첩자가 있다면 그자와 접선하기 위해 움직이겠지. 이안이 돌을 한쪽으로 치우며 물었다.
“왕궁 내 버고스의 눈과 귀가 될 만한 자가 있습니까?”
“아, 몇몇 의심 가는 자가 있긴 있네. 우리 애들 가정교사들이랑 저기…….”
황궁과 왕궁의 조직도가 다르니,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노아는 대충 얼버무리며 고갯짓했다.
“대여섯 명 추려 놓았어. 감시를 붙여두었으니 혹여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바로 연락이 올 것이다. 잘 되었지. 티모시의 보고라면 다몬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일 터. 국민들 사이에서의 소문으로는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으니, 첩자를 역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
첩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그걸 티모시가 다몬에게 보고한다면?
안 그래도 날을 잔뜩 세우고 있는데 티모시를 그냥 둘 리 없다. 사신의 죽음을 신호로 쓰는 잔혹한 자라. 잘못된 정보를 가져왔다는 사실만으로 티모시의 생명이 끊어질 수 있음이라.
이안은 팔짱을 낀 채 헛웃음을 지었다.
‘뭔지도 모르고 던지는 미끼가 상당히 깊게 들어오는구나, 다몬.’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노아에게 일렀다. 이쯤 하면 티모시의 귀화를 직접적으로 설득할 수밖에 없다.
“그 목록을 저에게도 공유해 주십시오.”
“…알겠네.”
노아는 이안이 일어서는 것을 따라 고개를 들어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중얼거렸다. 알겠다는 대답 속에, 알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숨긴 채 말이다.
이안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변절자에 관한 것은 극비 중의 극비. 굳이 이안이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 생길 위험을 부담할 필요도 없다.
노아는 서류를 넘기는 척, 이안이 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