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2
제352화. 어금니와 미친개 출동
이안은 마법부가 묵고 있는 별채 궁을 찾았다.
문을 열어젖히자, 꾸벅꾸벅 졸고 있던 자들이 침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하나, 둘, 셋……. 거의 대부분이 도착했을 때와 다름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안이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자, 한 마법사가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마력 필요하십니까? 이봐, 다음 차례 누구지?”
“나 한 번만 넘겨주라. 아직 피곤해.”
“너만 피곤해? 허튼소리 하지 말고 일어나.”
“아아, 진짜.”
마법사가 발끝으로 동료의 허리춤을 쿡쿡 찔러대자, 이안이 그냥 누워있으라고 손짓했다. 클리포포드 왕궁 내의 흐름이 심상치 않건만, 계속 기절해있던 마법사들은 알 턱이 없었다.
“베릭은?”
“베릭이요? 글쎄요. 아까 나간 뒤로는 안 보이는데요. 이안 님 찾아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건 벌써 어제 일이다.”
“예? 시간이 그리되었어요?”
노아 왕자가 들이닥치고, 베릭이 이안에게 안내해주겠다고 앞장선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였는데, 그게 어제 일이라니. 마법사는 놀라서 눈만 깜빡거렸다.
“이안 님. 이러다가 저희 걸어서 귀국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몸은 좀 괜찮으세요? 와, 답이 없는데.”
“나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듯하니 그대들의 피로를 푸는 것에 전념하라. 그럼.”
이안은 바쁜지 급하게 문을 닫고 돌아섰다.
물어볼 것이 산더미인데, 마법사들은 허공에 손만 뻗은 채 멈칫거렸다. 아, 모르겠다. 푹 쉬라고 하셨으니 명령을 따를 수밖에. 마법사들은 말린 포도를 입에 문 채 다시금 나른한 참에 빠져들었다.
타닥타닥.
“아, 바르사베.”
“네. 이안 님.”
모퉁이를 지나가려는 순간. 땀에 흠뻑 젖어 올라오는 바르사베와 마주쳤다. 아마 뒤뜰에서 홀로 검술 훈련을 한 것 같다.
“베릭을 못 보았나?”
“베릭 걔, 시종이 불러서 본궁 갔는데요. 노아 왕자님 동생들이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뭐라더라, 뭐가 뽕이고 뿡이고 어쩌고. 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쪽으로 갔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이안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바르사베에게 따라오라 지시했다. 황궁친위대에서 여러 이유로 붙여둔 자였지만, 클리포포드에서는 변명의 여지없이 한 몸이지 않나. 바르사베가 영문도 모르고 땀을 닦아내며 이안의 뒤를 따랐다.
“바르사베. 곧 있으면 클리포포드와 버고스 간 충돌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손실을 최소화하여 클리포포드가 함락당하지 않게 할 것이다.”
“궁 밖이 시끄럽다고 느끼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 심하네요. 아코렐라 대장이 가진 마력증폭제는 일 회분이라고 들었는데요.”
선택할 수밖에 없다. 클리포포드를 돕는다면, 중앙으로 돌아갈 길을 열 수 없으니까.
“그 전에, 베릭과 함께 궁 밖으로 나가서 찾을 사람이 있어.”
“예? 베릭이랑 둘이서요?”
바르사베가 경악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말 안 통하는 미친개랑 밖에 나가서 무슨 임무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저놈을 제어하려면 이안이나, 제이럿 대장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겠나? 음, 로만드로 정도도 괜찮을 듯싶고.
“버고스 출신의 티모시 사절이 현재 클리포포드 중앙에 입성했어. 왕궁 내 첩자와 접선할 가능성이 큰데, 클리포포드와 바리엘의 입장이 상이하니 혹시 모를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고자 두 사람을 보내는 것이다.”
“무슨 의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티모시가 버고스로 돌아가지 않게 잡아두었으면 한다. 그게 아니라면 산 채로 포박하여 데리고 와도 좋아. 생명에는 무조건 지장이 없는 채로.”
“버고스 사절 아닙니까? 그자를 왜요?”
타악.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본궁에 당도했다. 정확히는 노아 왕자의 동생들이 있다는 북쪽의 작은 별궁.
깔깔 자지러지는 웃음과 함께 온갖 소란스러운 즐거움이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시종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송구합니다. 왕실의 지엄한 명으로, 현재 작은 왕자님과 공주님을 알현할 수 없습니다.”
“안에 있는 베릭은 내 수하인데?”
“왕자님께 보고드리고 올 터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그럴 것 없다. 저주 발현으로 인한 접근 금지임을 알고 있으니, 비키거라.”
“저, 저주라니요?”
시종들이 아연실색 모른 척 잡아떼었지만, 데구루루 굴러 나오는 베릭 탓에 모든 게 허사가 되었다.
베릭을 따라 함께 굴러나오는 왕자와 공주. 개중 한 아이에게는 작고 탐스러운 꼬리가 달려있었다. 바르사베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고, 시종들은 급히 달려가 몸으로 아이들을 가렸다.
“왕자님. 어찌 이러세요!”
“베릭, 봤지? 나도 굴렀으니 내가 이겼다.”
“꼬리로 중심 잡은 거 아니에요? 다시 해요.”
“베릭.”
“엥? 이안아. 바쁜 거 끝났어?”
바깥으로 출입을 금지당한 왕자와 공주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베릭을 불러서 놀고 있었던 모양이다. 바르사베와는 다른 방식으로 땀범벅이다.
“찾느라 혼났다. 따라 나와.”
“나? 나 찾았어? 왜? 왜 찾았어? 밥 먹을 시간인가?”
콰앙!
베릭이 신나서 이안을 따라나서려고 하자, 왕자와 공주가 그 두 발을 확 잡아버렸다. 앞으로 제대로 넘어지는 베릭. 바르사베는 자신의 코가 깨진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안 된다. 베릭은 우리랑 놀아야 하느니라.”
“그래. 이안 경. 듣기로는 베릭이 일하는 데 하나도 도움 안 된다고 하였어. 그냥 여기 있게 해주게.”
“공주님. 왕자님. 송구하오나, 베릭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금방 다녀와서 다시 이곳에 들라 할 터이니, 부디 내어주십시오.”
이안이 차분하게 설득하였으나, 공주와 왕자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났는지 꼬리로 바닥을 팡팡 내려치기까지 했다. 게다가 한껏 부풀어 오르는 귀까지.
바르사베는 충격적으로 귀여운 광경에 입을 틀어막았고,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안 그래도 어린아이들인데, 저주까지 발현하니 이성적인 행동이 불가한 게라. 노아조차도 황궁의 뒤뜰에서 구르고 굴렀거늘, 아이들이라고 별수 있겠는가.
“…이안아,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다.”
“조금이면 돼. 곧 있으면 풀릴 것이란 말이다. 다음 저주 때는 베릭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이 정도 허락은 해줘! 베릭 어차피 사고만 치잖아!”
“아니라니까요, 왕자님. 저 생각보다 능력 있거든요? 그, 뭐, 내세울 건 없는데 아무튼 그래요.”
동시에 베릭을 깔고 뭉갠 아이들.
시종 중 한 명은 이 사안을 알리기 위해 계단을 뛰어 내려갔고, 나머지 한 명은 혹시 몰라 복도의 창문과 문들을 모조리 단속하기 시작했다. 왕궁에서 몇 없는, 왕가의 저주를 아는 자들이다. 아마 신임이 대단한 자들이겠지.
이안이 조심스럽게 무릎 꿇으며 시선을 맞췄다.
“다음 저주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혹여 저희가 클리포포드에 있는 동안이라면 베릭과의 놀이에 필시 방해가 없을 것입니다.”
“다음 저주 때? 보름 뒤인데.”
“보름 뒤요? 저주에도 주기가 있는 것입니까?”
꼬물꼬물 베릭의 허리를 타고 와 결국 뒤통수를 깔고 앉아버린 아이들. 숨 막힌다고, 베릭이 손을 휘저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하지. 저주 시기를 예측하는 자가 있긴 하지만, 본인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그게 불확실하다는 게 문제지. 나는 어려서 보름 뒤 다시 저주가 나올 것이니.”
“아, 그렇군요.”
이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싱긋 웃으며 되물었다.
“그러면 혹 노아 왕자님의 다음 저주는 언제입니까?”
“형님? 형님은 아마…….”
“일러주시면 그날 하루 종일 베릭을 빌려드리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아직 큰 숫자를 세지 못해.”
꼬물꼬물, 아이의 손가락이 숫자를 세는 것처럼 접혔다 펴졌다. 이내 계산을 끝냈는지, 아이는 이안에게만 들릴 정도로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읍읍, 숨 죽어가는 베릭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는 순간.
“왕자님!”
“으악. 깐깐쟁이 할배다!”
“까, 깐깐쟁이라니요. 경망하십니다. 서둘러 들어가십시오!”
시종이 왕의 최측근인 대신을 데리고 왔다. 황실과 비교하자면 수상과 비슷한 위치의 자일 것이다.
그는 펼쳐진 상황에 놀라면서도 목격자가 이안이라는 것에 안도하며 아이들을 들어 올렸다. 이미 저자는 왕가의 저주에 대해 알고 있다 하였으니.
“들어가십시오! 당장!”
“깐깡쟁이 할배, 으, 싫어.”
“어서요!”
아이들이 장난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방으로 들어갔고, 베릭은 엉망이 된 머리칼로 천천히 일어섰다.
대신은 이안에게 어색한 눈인사만 한 뒤, 왕자와 공주를 뒤따라갔다. 곧이어 크게 혼내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베릭. 자리를 뜨자.”
“하여간, 누가 가족 아니랄까 봐. 노아 왕자랑 하는 짓이 똑같아. 구르는 거 겁나 좋아해.”
“바르사베, 자세한 것은 나중에 이를 것이니 당장은 입단속을 단단히 하여라.”
“아, 네네. 알겠습니다.”
너무 귀여운 것을 보았는지, 바르사베는 홍조를 띤 채 흥분을 숨기지 못하는 눈치였다.
별궁을 나온 이안은 그대로 왕궁의 정문 옆, 왕궁 사람들이 오가는 문 쪽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티모시가 중앙에 와 있어.”
“티모시? 정말? 근데?”
“노아 왕자가 곧 내게 왕궁 내 변절자 의심 목록을 공유할 것이다. 그자들을 제외하고 왕궁 밖으로 나가는 자가 있다면 살피고 있다가 뒤를 밟아.”
노아 왕자가 변절자 목록을 협조적으로 공유해준다면 문제없다. 그렇다면 접선하는 과정 역시 이안에게 공유될 터이니, 티모시를 어떤 식으로 회유하고 살필지는 그때 가서 적절하게 대응하면 될 일.
하지만 문제는 노아가 비협조적으로 나올 때겠지.
“현재 왕궁에서는 괜한 소문을 극도로 경계하여 바깥으로 나가는 자가 소수라. 둘이지만 충분히 전담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길은 저쪽이고, 아코렐라의 심부름을 다녀온 자를 보아하니 왼편 길을 사용하는 게 비교적 이목을 덜 끈다고 하였다.”
이안의 명령을 하나도 빠짐없이 입력하는 바르사베와 달리, 베릭은 머리만 긁적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창문으로 보니까 다들 춤추고 노래 부르고 난리 났던데, 걍 정문으로 가도 신경 안 쓸 듯?”
“신경 안 쓰기는. 왕궁에서 나온 이방인인 걸 알아채면 대중의 반응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라. 지금 소문에도 공을 들이고 있으니, 괜히 초치지 말거라. 변장에 유의해. 저번처럼 이상한 거적때기를 걸쳤다가는 당분간 밥 없을 줄 알아라.”
암행 나갔을 때를 말하는 게다. 다들 평범한 옷차림으로 숨어든 것과 달리, 베릭은 눈에 보이는 온갖 잡화를 걸쳐대며 변장이라 하였으니.
“와, 내 감각을 뭘로 보고?”
“바르사베. 잘 부탁한다. 베릭, 바르사베 말 잘 들어. 안 그랬다간 혼날 터. 티모시에게 내가 만나고자 한다는 걸 꼭 일러.”
바르사베가 의기양양하게 베릭을 쳐다봤고, 베릭은 짜증스럽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안의 명령인데. 잘못했다가는 계속 포도만 주워 먹게 생겼으니, 말 잘 들어야지.
“…짜증 나. 어금니가 내 위라고?”
“나도 짜증 나거든? 잘 따라와, 베릭. 안 그랬다가는 짤 없으니까.”
“안그뤴다가는쫠없으니꽈.”
“따라 하지 마라. 죽인다 진짜.”
“아, 미안. 어금니 없어서 발음 못 알아들었음.”
이안은 회중시계를 딸깍거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슬슬 노아에게 돌아가서 변절자의 목록을 받아내면 된다. 이안은 본궁 쪽으로 가며 두 사람에게 당부했다.
“다투지 말고, 필히 중요한 일이다.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알겠다아아!”
두 사람은 이마를 맞댄 채 서로를 강하게 노려보며 대답했다. 대답만큼은 우렁차다고, 이안은 희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