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3
제353화. 지붕 위를 달려라
왕궁을 나가기 위해서는 간단한 신고와 검문 따위가 필요했고, 그 과정을 거치면 여러 갈래로 나뉜 통로를 따라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베릭과 바르사베는 이안이 알려준 대로 왼쪽 문 바깥에서 누가 나오는지를 주시하는 중이다. 길가에 모인 자들은 여기저기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과 담배를 즐기느라 여념 없다.
베릭은 쭈그려 앉은 채 그쪽을 탐나게 쳐다봤다.
“아무도 안 나오는데 우리 한잔할래?”
“응. 이안 님한테 혼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벌써 몇 시간째 이러고 있는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님? 아니면 내가 가서 후딱 사올게.”
“이제 겨우 한 시간 지났어. 다른 건 몰라도 네 입에서 그런 말 나오면 곤란하지. 볼 때마다 처먹고 있더만. 그리고 너, 돈 있어?”
베릭이 눈을 세모나게 뜨고 바르사베를 째려봤다. 이안이 뭔지 모를 종이와 비상용 자금을 모두 바르사베에게 맡긴 탓이다. 그녀는 다시금 종이를 펼쳐보며 중얼거렸다.
“한눈팔지 말고 계속 잘 주시해. 은밀하게 나오려고 할 터이니, 우리 쪽에서도 놓칠 수 있어. 안 그래도 사람 많으니까, 더더욱.”
“잔소리 진짜 기깔 난다. 쉬지 않고 쫑알대네.”
“네가 쉬지 않고 처먹는 것만 할까.”
한마디도 지지 않는 게 아주 재수 없다. 자신이 글만 읽을 줄 알았더라면, 이안이 종이는 자신에게 맡겼을 터인데! 베릭은 궁으로 돌아가면 꼭 글공부를 해야겠노라 다짐하며 문 쪽을 노려봤다.
그때, 누군가 나왔다.
“쟤 아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계속 살피는 거 유지해.”
바르사베가 인파를 헤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자신 외, 저자를 뒤밟는 자가 있을까? 있다 하면 필시 노아 왕자가 붙인 그림자이니 변절자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특이한 기색 없이 상가 중심지로 걸어갔다. 모습을 보아하니, 또 다시 아코렐라의 심부름인 것 같다.
‘아닌가?’
그리고 이어서 다시 나오는 한 명. 마침 누군가 흥에 겨워 바르사베의 손을 잡고 돌리며 춤추자 청하였고, 그녀는 빙글빙글 돌면서도 고개를 고정했다. 최대한 기척을 숨기며 인파로 숨어드는 모습이다.
이어서 득실득실한 군중 사이로 특이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세 갈래로 나뉘는 흐름. 모두 방금 나온 자를 중심으로 원을 그린 채 걷는 것이다. 바르사베가 춤추던 자의 손을 뿌리치고 베릭에게 손짓했다.
“베릭!”
“어어, 춤 잘 추네.”
“지랄하지 말고, 빨리!”
“아, 온 겨?”
춤추면서 인사하는 게 아니라, 신호였어? 베릭은 벌떡 일어나며 바르사베 쪽으로 내달렸다. 한 발짝 내딛기가 힘들 정도로 빽빽한 인파를 헤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베릭은 지붕 위에서 노인들이 물담배 피우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바르사베에게 고갯짓했다.
“저기로 올라가자.”
“눈에 띄어선 안 돼.”
“그러면 이대로 놓치든가. 왕궁에서는 비상이라 사람 자체가 잘 안 나오는데, 그림자가 붙을 정도면 노아 왕자가 완전 의심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 목록에 없을 가능성도 있고.”
노아가 이안에게 준 변절자 목록. 하지만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도 없고, 왕궁의 인물인지라 이안이 아는 자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걸 상쇄하고자 두 마검사를 밖으로 보낸 것 아닌가.
아니 근데, 이 새끼 왜 갑자기 똑똑해졌지? 바르사베가 입술을 깨물더니 단숨에 적재물을 밟고 뛰어 올라갔다.
“그거지!”
타앗!
뻐끔뻐끔, 노인들의 담배 연기를 헤치며 지붕 위를 내달리는 두 사람. 노인들이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그뿐이다. 술에 취하고, 달에 취한 오늘 같은 밤. 미친 자들이 한둘쯤은 있는 것이 정상이니.
타닥타닥!
“보여?”
“잠깐만, 우리처럼 검은 후드를 쓰고, 여자였어.”
“와, 그것참 도움 되는 정보네.”
“저쪽! 저쪽이다! 녹색 지붕, 간판 옆으로 난 골목!”
“나 이쪽으로 먼저 간다! 넌 저기로 돌아서 와!”
“베릭! 미친놈아, 거기서 뛰면-!”
건물과 건물 사이가 수 미터에 달했다. 하지만 베릭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내던졌으며, 이내 술집 간판을 붙잡고 매달려 기어 올라갔다. 술 한잔하던 중년 남성이 베릭과 눈이 딱 하고 마주쳤다.
“뭐여?”
“술 맛나게 잡숴용.”
찡긋, 베릭이 윙크하자 중년 남성도 반사적으로 윙크하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머리를 짚으며 고뇌하는 바르사베.
“어금니! 먼저 간다! 에베베.”
“웃기지 마! 네가 하면 나도 한다!”
젠장, 젠장, 젠장. 애초에 사람과 짐승의 신체 능력에는 차이가 있는 거잖아. 바르사베는 손에 배어 나오는 땀을 닦아내며 베릭이 뛰었던 그대로 몸을 날렸다.
콰앙! 쿵!
끼이이익!
아슬아슬했지만, 베릭과 같이 간판을 붙잡은 채 매달릴 수 있었다. 한 번도 신기한데 두 번이나 사람이 창가에서 어른거리다니. 손님이 베릭에게 했던 것처럼 윙크하자, 바르사베는 가운데 손을 들어 보이며 화답했다.
타닥타닥!
“달려! 와호!”
“조용히 뛰어!”
뒷골목으로 진입한 변절자. 그리고 세 명의 그림자. 이어서 지붕 위를 내달리는 두 명의 마검사. 베릭과 바르사베는 목표물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시선을 고정한 채로 건물 사이를 뛰고, 오르며, 구른 채 달라붙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멈췄다.”
그림자들이 무언가 기척을 느끼고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완전히 멈췄다. 변절자가 누군가와 접촉을 한 것이다.
어둠 속이고, 워낙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자세한 상황이 보이지는 않았다. 베릭이 난간에 고개를 들이밀고 코를 킁킁거렸다.
“뭐 하냐? 고개 숙여.”
“냄새. 티모시 맞는지 보려고. 근데 모르겠네.”
헛소리 그만하고 따라오라며, 목덜미를 잡아끌려는데…….
끼익.
“어라?”
난간에 목이 그대로 끼어버린 것 아닌가. 베릭이 놀라서 몸을 이리저리 틀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녹슬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생긴 게 어찌나 튼튼한지! 베릭이 발버둥 치며 바르사베를 쳐다봤다.
“저기…. 선배님?”
따악! 딱딱!
도와달라고, 멋쩍게 웃는 모습. 바르사베는 이때다 싶어 베릭의 뒤통수를 연달아 후려쳤고, 베릭은 소리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너는 꼭 사고를 만들어서 치지? 응?”
“선배님?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이거 같이 벌려주시죠? 동시에 하면 될 듯.”
“한 대만 더 맞자. 내가 속이 뒤집혀서-”
그때였다. 어두운 골목 안쪽, 변절자가 건물로 들어서자 그림자들 또한 움직였다.
바르사베는 꽉 끼어있는 베릭과 그쪽을 번갈아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먼저 움직였다.
“먼저 간다. 알아서 따라와.”
“야! 이, 어금니, 미친놈아! 때렸으면 그 값을 해야 할 거 아녀! 같이 벌려주고 가!”
“시끄러워. 입 닥쳐. 매 맞은 건 철딱서니 없는 네 행동에 대한 값이니까.”
“우씨. 너 죽었다, 진짜.”
“빨리 따라와.”
타앗!
바르사베는 서둘러 건물에서 뛰어내렸고, 그들을 따라 더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질척거리는 흙탕물이 이리저리 튀는 곳이다.
이내 어렴풋이 말소리가 들려온다. 바르사베는 기척을 숨겼다. 아마 인근에 그림자들 역시 숨죽인 채 저들을 주시 중일 것이라.
“…해서 당분간 왕궁 문은 열리지 않을 것 같아요.”
“다른 특이 사항은? 소문으로는 사신들이 죽었다고 하던데. 셋이라는 말도 있고, 둘이라는 말도 있어. 이에 관해서 알고 있나?”
“아래까지는 들려오는 말이 없습니다만, 죽은 것은 확실합니다.”
“수를 정확히 모른다?”
“맹세코 정말입니다.”
“그러면 마법사에 관한 것은? 그것까지 모른다고 할 수는 없겠지?”
“마법사들은 지금 궁에서…….”
촤아악!
그 순간, 날렵하게 날아드는 그림자들. 마법사에 대한 것만큼은 정세를 가를 만한 중요 사안이라, 변절자가 누설하기 전에 그 목을 베어버리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사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상대측의 호위들과 왕궁의 그림자들이 얽히고설키며 검을 맞부딪혔고, 그 섬광이 번뜩였다.
‘티모시가 섞여 있나?’
변절자가 죽어나가든, 버고스 측 인물이 피를 흘리든 알 바 아니다. 바르사베에게 내려진 명은 ‘티모시의 안전 및 생포’였으니까.
어둠에 눈이 익었음에도, 그들은 모두 로브를 뒤집어쓴 상태라 쉬이 식별하기 어려웠다.
‘미치겠네.’
섣불리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노릇. 혹여 노아 측이 베릭과 바르사베의 존재를 알아챈다면, 이것은 곧 이안에게 의혹이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명령을 이행하는 자신조차 어째서 티모시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고.
채앵! 챙챙!
“티-모시!”
그때, 뒤에서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겨우겨우 난간에서 빠져나온 베릭이 소리친 것이었다. 격렬하게 싸우던 자들이 일순 허공을 쳐다봤지만, 아래에서 위를 살필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티모시! 있으면 대답해!”
“뭐지? 누구냐!”
왕궁 측은 버고스의 지원군으로 오인했고, 버고스 측은 티모시를 찾으러 온 제삼의 인물임을 깨달았다. 모두 고개를 쳐들자, 달빛 아래 얼굴이 드러났다. 바르사베는 그 자리에 티모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티모시가 없어!”
“없어? 아 그래?”
바르사베는 이리 내려오지 말라 소리쳤고, 베릭이 멈칫거리는 사이 다시금 건물을 타고 올라 위쪽으로 몸을 숨겼다.
어리둥절한 사람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버고스 측이었다.
푸욱!
촤아아악!
그들은 왕궁 그림자 등에 검을 꽂아 넣었고, 이내 도망치는 것을 우선으로 하여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쫓아라! 쫓아!”
“지원을 요청해!”
숨을 헐떡이며 내달리는 버고스 측의 변절자. 그는 접선한 버고스인에게 일렀다.
“뭡니까? 티모시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요?”
“내가 물을 일이다. 마법사들은?”
“마법사들은 현재, 허억… 모두 쓰러져서 불능 상태, 허억… 입니다. 다들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해 돌아가지도 못했어요.”
촤악!
그때, 왕궁의 그림자가 내던진 검에 변절자의 목이 뚫렸다. 정보를 모두 내어주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몸뚱이.
버고스인은 이를 꽉 깨물며 발길이 닿는 대로 달음박질했다. 골목 끝, 화려한 불빛이 보인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으로 가는 것이 당연지사. 그는 허리를 바짝 숙이며 자연스레 군중으로 숨어들었고, 왕궁의 그림자들은 흔적을 잇지 못하여 멈추고 말았다.
“젠장!”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수색해!”
“서둘러 지원을 요청하고, 국경 경비를 강화하라!”
버고스인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꼬리를 따돌렸다.
곧 있으면 결집하기로 약조한 시간이다. 어지러운 혼란 속, 버고스인은 약속 장소로 걸어가며 고민했다. 왕궁 사람은 아닌 듯했는데, 어째서 티모시의 이름이 나왔을까?
변절자의 뒤를 쫓은 듯했다.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라. 대체 어떻게? 누구를 통해서?
타악.
“이봐.”
정처 없이 걷던 자의 어깨를 붙잡는 사내. 티모시였다. 그는 넋 나간 부하를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 피가 묻어있었다.
“무슨 일 있었나?”
“아, 티모시 님.”
“정보는?”
“그게…….”
“우선 자리를 옮기지. 국경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먼저 움직이는 게 좋겠어.”
“예. 알겠습니다.”
티모시를 뒤따르던 버고스인은 혼란 속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티모시가 클리포포드 안쪽의 누군가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이라.
‘이건 다몬 왕께 직접 알리는 게 맞겠다.’
“저기, 티모시 님. 현재 왕궁에 마법사들이 주둔해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불능 상태라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네요. 상태가 심각하여 바리엘로 귀국조차 못 하고 있다 하니,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신이 죽은 것도 사실이고요. 다만 그 수에 관해서는 둘이나 셋 정도로 소문만 떠돕니다.”
“이제 사신의 죽은 수는 문제가 안 된다. 마법사의 존재와 상태를 알아냈으니.”
“예. 그렇긴 하지요.”
“가자. 서둘러 왕께 가서 이 기쁜 사실을 알리자.”
“알겠습니다.”
마법사들이 마력증폭제를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른 채, 티모시는 마법사들의 불능을 보고할 생각에 흥분되어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통수를 의심스럽게 힐끔거리는 버고스인. 티모시에게 문제가 있노라고, 왕께 무어라 전언하면 좋을지를 고심하며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