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4
제354화. 전쟁의 서막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버고스.
국민들과 가까이 닿아있는 클리포포드와 달리, 버고스의 성은 거대한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라의 크고 작은 수군거림이 들리지 않을뿐더러, 전쟁의 기운을 암암리에 눈치챈 자들이 일찍이 등분을 끈 탓에, 모든 것이 고요하고 어둑하며 깊게 가라앉은 분위기다.
티모시를 비롯하여 클리포포드로 들어갔던 신하들이 말 고삐를 거세게 잡아당기며 왕궁으로 달려갔다. 횃불과 함께 흔드는 버고스 국기를 보고, 문이 미리 열렸다.
타닥타닥!
히이잉!
사안이 급했다. 클리포포드에 마법사가 있긴 하지만, 상태는 불능에 가깝다 하였고, 왕궁의 그림자가 변절자의 뒤를 따라붙었다.
클리포포드 측에서도 만만찮은 준비를 하고 있는 게다. 아마 다른 변절자들 역시 파악되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한들 도움 되는 걸 기대할 수 없으리라.
티모시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다몬이 있는 왕궁 중앙 알현장으로 뛰어갔다.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면 한 시라도 빠르게 움직이는 게 저들에게 유리하니, 어서 왕께서 결단을 내리는 게 한 발자국이라도 더 승리에 다가가는 길 아니겠나.
끼이익.
“오, 티모시.”
“전하. 돌아왔습니다.”
다몬은 귀족들과 군사작전에 관한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수많은 귀족들의 시선이 티모시에게 쏟아졌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은 채, 클리포포드에서 얻어온 정보를 일렀다.
“그래. 사신은 몇이 죽었다고 하던가?”
“둘 아니면 셋이라는 소문이 거리에 파다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주목할 만한 사안이 아닙니다.”
“둘 아니면 셋? 의미가 너무 다른데.”
“클리포포드에 마법사들 대부분이 주둔해 있습니다. 이안 경을 비롯하여서요. 상태가 일반인에 가까운 불능이라 바리엘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왕궁에 심어두었던 자가 확언을 한 것이니, 이는 믿을 만한 정보입니다.”
티모시의 보고에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살면서 이런 사례는 본 적이 없다. 마법사들 대부분이 중앙을 떠나 있는 것도 놀라운데, 그 상태가 심각하여 돌아갈 수 없을 정도라니? 이만하면 신이 내려주신 기회 아닌가?
귀족 중 한 명이 흥분하여 덧붙였다.
“전하. 마법사들 상태가 그 정도라면 명분이고 뭐고, 바로 들어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마법사들을 잡아두어 바리엘의 개입을 막아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마법사들을 잡아내려면 중앙 깊숙이 들어갈 거, 지금 바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습니다. 놓치면 안 될 기회입니다.”
“클리포포드에서 왜 시간을 끌려고 했는지 이제 좀 알겠군요. 마법사들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바리엘과 모종의 동맹은 합의된 듯싶고, 마법사들을 전면에 내세워 방어할 요령일 게 분명합니다.”
“루스웨나 측에서 연락 왔을 때로부터 시일이 얼마나 지났지요? 그, 검은 달이라는 걸 띄웠을 때 말입니다.”
“채 사흘이 안 지났어요. 아마 그것으로 인한 마력 소모가 컸던 것 같습니다.”
“이안 경을 데리러 갔다 하는 것 같은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안 경에게 개인적인 문제라도 생겼던 것일까요?”
“마법사들의 문제를 어찌 우리가 알겠소. 잡아서 물어보면 될 일이지. 전하. 지체 없이 일을 진행하시지요. 명분은 병으로 쓰러진 사신들을 직접 데리러 가겠다 하시면 되겠습니다.”
“예. 그러니 길을 열어달라 하십시오. 분명 저쪽에서는 거절할 것이니, 이를 꼬투리 삼아 들어갑시다.”
귀족들이 이때다 싶어 매끄럽게 각본을 지어냈다. 저쪽에서 사신들의 병환을 공식으로 인정했으니, 버고스에서 직접 데려가겠다 하면 할 말이 있겠는가?
물론, 그 마중의 규모가 군대 단위라, 클리포포드에서는 절대 국경을 열어줄 일 없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전쟁의 작은 불씨가 되어줄 것이라.
“그리고 왕궁에서는 저희의 입국과 변절자의 접촉을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림자가 붙었더군요.”
“그래? 피해는?”
“한 명이 사망하였지만, 즉사하여 누설은 없을 것입니다.”
클리포포드에서는 버고스의 정보전을 눈치챘다. 이는 사신이 몇 명 죽었든, ‘죽었다’라는 것 자체가 새어나갔음을 의미했다. 버고스에서 빌미 잡아 문제 일으키는 게 시간 문제라는 걸 안 게다.
다몬은 턱을 괸 채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손가락을 튕겨댔다.
“국경에서 사신들을 데리러 왔다고 할 때, 군의관들을 앞세워라.”
난리 통에 물자와 의료품 보급에 혼란이 있어 사신들이 죽었다고 할 수 있기에, 군의관들을 앞세워 그들의 치료 명분을 더욱 극대화하려는 의도였다. 귀족 및 신하들이 다몬의 명을 받아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출정 준비를 할까요?”
“그래. 날이 뜨기 전까지 준비해놓도록.”
“예. 전하.”
다몬이 모두에게 물러가 보라며 손짓하자, 귀족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알현장을 빠져나갔다.
티모시 역시 그들의 뒤를 따르려고 하는데,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함께 온 신하 한 명이 꿈쩍도 안 하는 것이다. 티모시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는 납작 엎드려 다몬에게 고했다.
“전하. 제 개인적으로 말씀드릴 것이 있사온데, 잠시 독대할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책상에서 일어나 서류를 뒤적거리던 다몬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인지 아느냐는 듯 티모시를 바라봤지만, 그 역시 알 턱 없다.
다몬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개인적인 용무에 내 시간을 내어달라? 참으로 발칙하도다.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가당키나 하겠는가?”
“전하. 꼭 드릴 말씀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래. 일단 들어나 보지. 티모시, 나가 보아라.”
“예, 전하.”
티모시는 부하를 힐끔거리며 알현장을 나갔다.
모두가 떠나고, 단둘만 남게 된 상황. 그는 슬쩍 상체를 일으켜 다몬을 올려다봤다. 그는 다리를 꼰 채 속히 일러보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긴 회의로 인해 피곤함이 누적된 상태라, 별것 아닐 시에는 엄벌에 내려질 것이라는 경고 또한 서려 있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나갈 수밖에.
“티모시가 변절자인 것 같습니다.”
다몬이 멈칫했다. 이와 같은 말은 전생에서도 들은 적 있었다. 이르는 자는 달랐지만.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왕궁의 사람과 접촉할 때, 그림자 외 제삼의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자들은 티모시를 찾는 것으로 보였는데, 살의나 어떠한 부정적 반응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티모시에게 클리포포드 내 모종의 관계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부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제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귀로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상사를 고발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왕이 티모시의 손을 잡아준다면 자신은 오갈 데 없이 완벽히 추락할 것이다. 하지만 왕이 조그만 의심이라도 품으면? 티모시의 자리는 자신의 자리가 된다.
상사를 밀어내고 한 단계 더 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 나아가 왕의 신임을 보다 돈독하게 얻어낼 수 있는 기회. 그는 목숨을 건 도박에 참가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게라.
“…….”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부하가 슬쩍 고개를 틀어 다몬을 쳐다봤다. 그는 아주 기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좌절과 슬픔까지 느껴지는 표정이다.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왕의 반응에 부하는 다시금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소리쳤다.
“제 모든 걸 걸고, 진언입니다. 전하!”
“소리를 죽여.”
다몬은 이마를 짚은 채 인상을 구겼다.
전생과 같이 티모시가 버고스를 저버리고 있다. 관계의 깊이나 거리를 달리했음에도 변함없는 결과. 이는 버고스의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다몬에게 선고가 떨어진 것과 같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미래를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티모시라는 작은 인생 하나 바꾸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버고스라는 거대한 물길을 비틀 수 있겠는가?
이 모든 물음이 이안의 육성으로 바뀌어 다몬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쨍그랑!
째앵!
다몬은 손에 잡힌 장식품을 벽으로 집어 던졌다. 숨이 가빠지고,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이안의 목소리가 흩어지는 것 같았다.
부하가 덜덜 떨며 납작 엎드려 왕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티모시는 사절단의 대표이자 왕의 최측근. 그자가 변절하였다면 저만한 반응은 정상적인 것이라. 산산이 조각난 유리가 자신에게 닿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아, 하아…….”
한참이나 다몬의 분노가 계속되었고, 이내 거친 숨소리만 적요하게 울렸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궐련을 찾아댔다.
“티모시에게 가족이 있지?”
“아, 예예. 처와 자식이 있습니다.”
“티모시는 이번 전쟁의 선두를 맡게 될 것이다. 너는-”
후우, 한숨 섞인 연기와 함께 다몬의 잔인한 명령이 흩어졌다.
“그사이 처와 자식을 잡아들여라. 가족에 대한 책임은 응당 목숨으로 갚아야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다.”
살벌한 읊조림. 부하는 식은땀이 뒤로 흐르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티모시가 없는 사이, 처와 자식을 어찌하려는 거지? 순간, 자신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해주었던 부인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노릇. 그는 눈을 꽉 감은 채 미래의 자신만을 그려냈다.
“그리고 너.”
“예, 예 전하.”
“티모시에게는 전쟁에 참여할 수 없음을 내게 호소했다고 일러라. 직위 해제를 대가로 버고스에 남을 것이며, 티모시의 가족을 잘 보살피고 있겠노라 일러.”
분명 티모시는 궁금해할 것이다. 자신을 건너뛰고 왕에게 직접 전언할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조금 석연치 않지만, 곧 휘몰아칠 전쟁에 의심할 시간도 없을 터. 부하는 다시금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하. 완벽히 수행하겠습니다!”
“…나가.”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부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겨우 알현실 밖으로 빠져나욌다. 아무런 증거 없이 그저 언질 하나로만 자신의 말을 믿는 왕에게, 어떠한 의구심도 가지지 못했다. 그저 평소에도 왕께서 티모시에게 무언가 의심이 있었구나, 싶을 뿐.
‘티모시. 결국 이렇게 다시-’
다몬은 궐련을 비벼끄며 다시금 발길질로 책상을 걷어찼다. 겉으로는 버고스를 위하는 척, 자신을 위하는 척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라.
이는 개인에 대한 실망이요, 분노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바꿀 미래가 굳건한 데 있어 나오는 좌절이기도 했다.
“아니. 아니아니, 그럴 수는 없어.”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자잘한 자갈 따위는 그 자리에 있되, 다몬이 이끄는 버고스의 강물은 궤를 다르게 그릴 것이다. 바리엘을 범람하고, 황궁을 가득 채우며, 그 위에서 찬란히 반짝이는 수면을 감상하고 말 터다.
이번 생의 버고스는 다르다. 이번 생의 자신은 달라. 다몬은 머리를 감싼 채 그리 중얼거렸다. 거대한 알현실을 떠다니는 망령의 속삭임 같았다.
* * *
“티모시를 못 만났다고?”
“엉. 다른 애가 와 있던데? 그 왕궁 변절자는 죽어서 그림자가 시체 끌고 갔고, 우리는 그대로 튀튀.”
베릭이 고기를 와앙 뜯어먹으며 보고하는 와중, 바르사베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베릭은 몰라도 바르사베는 여태껏 맡은 임무에서 실수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어떠한 성과도 가져오지 못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런데 밖에 나가서 기껏 한 게 지붕 타기라니. 황궁친위대 명성에 먹칠을 한 기분이다.
“죄송합니다. 워낙에 인파가 많아서 따라붙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그림자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 아래 추적을 금지하고 먼저 궁으로 복귀했습니다.”
“아니, 적절한 판단이었다. 현 상황에서 두 사람이 접선에 관련하였다는 걸 클리포포드가 알면 이상해지니까. 수고하였어, 바르사베.”
“나는? 나도 고생 엄청 했어. 지붕 넘고, 막 기어올라 가서 난간에 대가리 끼고, 이거 봐라. 목에 상처 난 거. 아오, 나으려면 일 년 걸려.”
긁힌 정도의 상처로 엄살을 피워대며 고기를 씹어대는 베릭. 이안은 자신도 칭찬해달라는 노골적인 요구에 어이가 없어 웃었다.
“너도 고생은 했겠지.”
“고생은 했겠지? 했겠지가 아니라 했다니까.”
“그래. 많이 먹어라. 왕궁 요리사가 네 이름을 외웠더구나.”
‘많이 먹어라’가 곧 칭찬이자 포상이다. 베릭이 크하하 웃으며 양손에 고기를 집어 드는 순간.
타닥타닥!
콰앙!
“아, 깜짝아!”
“큰일 났습니다!”
왕궁의 시종들이 마법사가 있는 별궁으로 달려와 인기척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슬슬 정신 차려 움직이던 마법사들이 일동 멈추고 문 쪽을 바라봤다.
“구, 국경에 버고스의 군대가 나타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