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6
제356화. 그대 이름은
이안 일행을 처음 클리포포드에 데리고 왔을 때와 같이, 노아는 수풀을 헤치며 거침없이 내달렸다.
싱그러운 흙냄새 사이로 희미하게 탄 내가 섞여 있는 것 같다.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저 멀리, 국경 쪽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이니까.
푸른 하늘을 태우고자 할 셈인가. 불길과 함께 잿빛의 먼지들이 사방에 휘날리는 듯했다.
히이잉!
노아는 말고삐를 잡으며 급히 속도를 낮췄다. 숲 위, 절벽에 다다른지라 아래 전황이 훤히 보였다.
장벽 중 일부가 허물어져 있었으며, 그 구멍을 통하여 시커먼 버고스 병사들이 끊임없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저 매캐한 연기의 근원지는 국경의 초소일 터.
“왕자님.”
메이가 망원경으로 그걸 확인하곤 노아를 불렀다. 생각보다 수가 많은 것은 물론이요, 장벽이 무너져서 계속 침입하는 자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왕자 뒤를 따르던 장교가 제안했다.
“군단이 두 개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모두 5천 정도입니다. 왕자님. 저들이 왕궁 쪽으로 진격하고 있으니, 저희는 후미를 잘라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왕궁에서도 계속 병력이 차출될 것이니, 앞과 뒤를 동시에 막으시지요.”
“그러면 저자들의 이동을 조금 지켜봤다가 시기를 살피는 수밖에 없습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어요.”
“지켜봤다가는 마을의 죽음만 보게 될 것이오.”
“수를 보세요. 전면전으로 들어갔다가는 무의미한 출혈만 생길 뿐입니다.”
“바키에는 중앙으로 통하는 다리가 있습니다. 그곳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왕자님.”
“왕자님. 결단을.”
노아는 잠시 고민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까마득히 먼 거리인지라, 움직임이 마치 개미처럼 보였다.
발로 짓밟을 수만 있다면 당장이고 그리할 터인데. 상대측은 5천의 병사였고, 노아가 먼저 이끈 선발대는 1천에 불과했다. 그가 검을 빼 들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왕자님. 뭔가 이상합니다.”
망원경으로 국경선을 주시하던 메이가 손을 들었다.
이미 무너진 부분이 있어서 버고스 측의 이동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 다른 장벽에서는 여전히 폭발과 진동 그리고 화염이 휩싸이고 있었는데 이는 의아한 부분이었다.
사기를 위해 모조리 무너트린다? 당장 진격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이는 비효율적. 게다가 장벽 잔해를 뒷수습하는 병력도 보이지 않았다.
“장벽이 계속 폭발하고 있어요.”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아…….”
메이는 초점을 조절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기이한 생명체가 보였다. 사람의 팔뚝만 한 지네 같았는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발화(發火)하여 스스로 터져나갔다.
“마물입니다…….”
백각(百脚)이라 불리는 하급 마물이다. 주로 버고스 북쪽에서 볼 수 있고, 클리포포드에서는 쉬이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백각은 희게 타올라 붉은 장벽을 터트리고, 불태웠으며, 이내 알 수 없는 오염 물질을 흘려대며 흩어져나갔다.
“버고스가 마물을 이용했습니다.”
“왕자님. 백각이 서식하는 곳은 흙이 마르고 죽어버려 잡초 하나 나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버고스 이 새끼들이, 클리포포드를 완전히 말려 죽일 생각인가 봅니다.”
“왕자님! 당장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예, 앞이고 뒤고 가서 맹렬히 쓸어버리겠습니다!”
노아가 입술을 짓이겼다.
저 끔찍한 흰색 지네들이 클리포포드의 대지 곳곳으로 숨어들어 알을 낳는다면? 당장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잡아채는 것과 무관하게 클리포포드의 미래는 불 보듯 빤했다.
영원히 볼 수 없으리라. 탐스럽게 익어가는 포도밭과 굵직한 나무줄기, 그리고 그 사이로 내려앉는 백성의 웃음을.
“하지만 왕자님.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놈들이 백각을 이용한 게 단순히 장벽 폭파와 클리포포드의 대지 훼손을 위한 게 아니라, 저희를 후미에 잡아두기 위해서일 수도 있어요.”
그때, 메이가 낮은 목소리로 첨언했다.
그것 또한 일리가 있다. 버고스 측에서는 우선 왕궁을 점령하고 마법사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선발대의 시선과 전력을 뒤쪽으로 묶어두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노아가 쉬이 뿌리칠 수 없는 덫이다.
“…왕궁에 전력이 있다. 우리는 후미를 자르고 장벽을 수습한다. 바키를 기점으로 버고스 군단을 반으로 가를 것이다. 백각 역시 바키를 넘어서 중앙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처치하라.”
“네. 왕자님.”
“가자! 1대장과 2대장은 왼쪽 숲을 넘어서 가고, 우리는 오른쪽 절벽 아래로 갈 것이다.”
히이잉!
노아가 결단을 내리자, 모두 한마음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버고스 군단보다 먼저 바키로 들어가는 길을 알고 있었으니.
이곳은 그들이 태어나면서 평생을 오갔던 곳이고, 더 나아가 선조들 또한 나고 자라 잠든 땅이다. 지리적인 이점을 따지자면 당연지사 말할 것도 없다.
노아와 병사들은 숨을 죽이며 가파른 길을 내달렸고, 이내 저 멀리, 또 한 번 피어나는 연기를 확인했다.
콰아앙! 콰앙!
“길을 터라! 트지 않으면 모조리 죽을 것이다!”
“이, 이놈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으아악! 으악!”
“경비대! 경비대는 어디갔어어!”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버고스 이놈들-!”
촤아악!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작은 마을.
곳곳이 불길에 휩싸였고, 농작물들은 짓밟혀 숭고했던 모습을 잃어버렸다. 도망치고, 넘어지며, 구르는 사람들 사이로 아이들과 어른들의 비명이 스며들었다.
몇몇은 괭이와 단검 따위로 덤벼들었지만, 철갑을 두른 병사들에게 스치지도 못한 채 기울었다.
“왕자님, 서둘러서-”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조금만 더 기다려. 노아는 그리 중얼거리며 사태를 지켜봤다. 당장이라도 덤벼들면 한둘 정도의 목숨을 구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되려 잘못하면 적군의 가운데 끼어서 참패를 당할 수도 있음이라.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후미를 정확히 잘라내는 것.
타닥타닥!
버고스 병사들이 피 묻은 칼을 시원하게 휘두르며 마을을 지나쳤고, 이내 그 수가 절반에 달했을 때였다.
노아가 손을 올려 들자, 부하가 물소뿔을 힘차게 불어 신호했다. 왼편으로 갔던 대장들이 숲에서 뛰쳐나와, 버고스를 덮쳤다.
채앵! 챙!
“죽여라! 우리나라를 탐내는 자들이다!”
“대장님, 클리포포드 병사들입니다!”
“아직 다리를 다 건너지 못하였는데요.”
“1군단은 계속 진격하고, 2군단은 대치하라. 앞으로! 우리는 계속 앞으로 간다!”
흑색의 버고스 병사와 자줏빛의 클리포포드 병사가 얽히며 난투를 벌였다. 아군과 적이 구분되지 않는 아수라장.
클리포포드 국민들은 잔해물 틈 사이로 기어 들어가 자국의 승리를 기원했고, 앞서 나가던 티모시는 이런 습격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 위에 선 버고스의 병사들이 거대한 천 주머니 입구를 열었다.
사아악.
수십, 수백에 달하는 백각이 쏟아졌다. 다리를 점령한 지네들이 득실거리며 강물 아래로 떨어졌고, 메이가 그걸 확인했다.
‘다리를 부수려고 해?’
이상했다. 퇴로를 없애는 것은 버고스에게 분명한 부담이다. 모두 죽기를 각오한 게 아닌 이상, 전투 패배 시 도망칠 길을 터놓는 게 당연지사 아닌가? 다리를 무너트리는 것은 되려 클리포포드가 원하는 일인데.
백각이 점점 열을 내며 폭발에 박차를 가하자, 메이가 소리쳤다.
“왕자님!”
채앵!
촤아아악!
손수 버고스 병사들의 목을 베며 전장을 누비던 노아. 메이의 부름에 고개를 틀었다. 이미 그의 갑옷과 검은 누구 것인지도 모를 피로 낭자했다.
“버고스가 다리를 폭파하려고 합니다!”
“뭐?”
노아 역시 버고스의 행동이 비정상적인 것을 바로 알아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터져 울리는 굉음.
콰아앙! 쾅! 쾅!
백각이 발화하여 다리를 무너트렸고, 그 진동으로 인해 인근을 둘러싼 숲에서 흙과 돌들이 굴러떨어졌다.
노아는 왕궁으로 가까이 진격하는 버고스 군단의 뒷모습을 보며 기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저자들…….”
“크억!”
콰악!
촤아악!
저만한 전력을 모두 죽음의 구렁텅이에 집어던지려는 속셈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퇴각을 하더라도, 왔던 길로 가지 않겠다는 걸 의미했다. 사실상 버고스와 닿아있는 접경지가 여기만 있는 게 아니긴 했지만…….
“죽여라!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
왕자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저들의 의중을 알 수가 없으니, 혹여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불안감이 급습했다. 서둘러 여기를 정리하고, 다리가 아닌 다른 숲길에서 정면으로 붙을 수밖에.
그때, 노아가 지휘관이라는 걸 알아챈 버고스 병사 다섯이 말을 향해 달려들어 동시에 검을 꽂아 넣었다.
히이잉!
고통에 몸부림치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말. 노아 역시 낙마하여 바닥을 굴렀고, 메이는 놀라서 그쪽으로 달려가 왕자를 호위했다.
“비켜! 비켜라! 왕자님!”
“왕자님을-!”
“젠장!”
촤아악! 촤악!
채앵!
칼날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 노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공격을 쳐내고, 흘려냈으며, 다시 굴렀다. 메이가 말 위로 끌어 올리려 했으나, 쉽지 않은 일이다.
주인 모를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전장을 발로 누비는 노아. 그러다 문득. 발목을 휘어 감는 이질감에 멈칫거렸다.
사아악.
백각이다. 무너진 다리 잔해 속에서 기어 나온 것들이 전장 틈으로 스며든 것이라.
마물의 희멀건 배에 빛이 들어차려는 순간. 노아가 검을 찔러 넣었다. 뜨겁고 역한 액체가 검 끝을 무디게 만들었다.
‘백각이 있다는 것은 곧-’
콰아앙! 쾅!
폭발이 여기저기서 일어날 것이라고, 노아가 그리 짐작함과 동시에 천지가 흔들렸다.
시체가 산산이 훼손되어 날아오르고, 산 자들은 죽음과 함께 터졌으며, 고통에 울부짖으며 쓰러지는 자들은 버고스와 클리포포드를 가리지 않고 속출했다.
“왕자님! 제발!”
메이는 인파를 헤치고 헤쳐 노아에게 닿으려고 했지만, 불가했다. 노아는 그런 메이에게 소리쳤다.
“적을 베는 것에만 전념해!”
“백각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숲으로 피하심이!”
“예! 왕자님! 가서 올라오는 버고스를 찍어 내리는 게 낫겠습니다!”
“메이! 저기, 아이!”
“하지만-!”
채앵!
백각은 버고스와 클리포포드를 가리지 않았다. 살고자 하는 적군들 역시 숲으로 올라가려 할 터이니, 미리 자리를 선점하여 적군을 떨구는 게 유리하다.
노아에게 다가가려던 메이는 왕자의 손끝을 따라 몸을 틀었다.
“어서!”
타닥타닥!
노아가 적군을 헤치며 내달렸고, 메이는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왼손으로 품은 채 숲으로 올라섰다.
말을 탄 자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피신하였지만, 노아는 여전히 전장 한가운데서 벗어나질 못했다. 메이가 아이를 내려준 다음, 다시금 그 아비규환으로 뛰어들려는 순간이었다.
사아악.
바키 마을 바닥 전체가 천천히 빛났다. 혼란 속에 있는지도 몰랐던 백각들이 또다시 발화하려는 게다.
쓰러진 시체와, 건물 틈으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온기. 노아는 물론이고, 버고스 병사들조차 당황하여 모두 멈칫거렸다.
“이게, 어느 틈에…….”
“왕자님!”
“메이, 안 돼! 곧 터진다!”
노아가 있는 힘껏 시체들을 밟으며 뛰었다. 그 와중에도 덤벼드는 자들을 베어냈으며, 점점 올라오는 열기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아.’
콰아앙!
퍼엉! 펑!
연쇄 작용하듯 우르르 터지는 백각.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폭풍이 들이닥쳤고, 불길이 사방을 휘둘렀다. 메이를 비롯한 클리포포드 대장들이 순간 눈을 뜨지 못하고 얼굴을 가릴 정도였으니.
메이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와, 왕자님?”
쓰러져 있는 자들의 피부가 녹아내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오로지 복장만으로 구별하여, 기어오르는 버고스 병사들을 검으로 내려치고 발로 떨어트렸다.
그 와중에도 메이는 눈으로 왕자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메이! 정신 차려! 왕자님 저기 있잖아!”
촤아악!
한 대장이 고갯짓으로 허공을 가리킬 때까지 말이다.
노아는 누군가의 손을 잡은 채 하늘에 떠 있었다. 신의 힘에 가장 가까운, 신성한 자라 일컫는 마법사.
“하…….”
노아는 자신의 발치에서 엉망이 된 마을을 내려다보곤 마법사를 올려다봤다.
“정찰 나왔는데 큰일 날 뻔했네요.”
“이안 경이 보냈나?”
“예예. 뭐, 그런 셈이지요.”
“그대 이름이?”
마법사는 부서진 다리와 백각 그리고 처참한 마을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미친놈들, 아까 그 이상한 마물을 비롯해서 대체 뭘 들고 쳐들어온 건지, 원.
“저 같은 놈 이름 아실 필요 없습니다. 이안 님의 사람이니, 이안 님이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