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8
제358화. 합성 마물
티모시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바람과 함께 훅 끼쳐오는 피 냄새가 불현듯 속을 뒤집은 탓이다. 선발로 달리는 기병들. 그들이 흔드는 버고스 깃발에는 클리포포드 백성의 피가 스며들어 있었다.
티모시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있음을 알아챈 버고스 장군이 소리쳤다. 현 군단의 총지휘관이자 결정권자인 사내였다.
“티모시 경! 무슨 문제 있소?”
“아니, 아니오.”
“한눈팔지 맙시다. 뒤에 달린 ‘저것’이 언제 날뛸지 모르는데, 긴장을 늦춰서야 되겠습니까? 클리포포드 측에서도 병사를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더더욱 힘차게 나아가야지요!”
장군이 호탕한 웃음과 함께 손짓했다. 그러자 사기를 끌어올리는 군악병들이 있는 힘껏 나팔을 불어댔다.
부우우, 부우. 끊이질 않고 이어지는 소리에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다. 이파리로 가장하여 숨어있던 새들이 날아오르고, 크고 작은 짐승들이 숲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크고 묵직한 울림. 티모시는 되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티모시 경!”
“아니오, 미안합니다.”
“큰일을 앞두고 어찌 그러십니까?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면 왕께서 큰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나는 그대가 부러워요. 하하하! 그러니 그 자격에 맞게끔, 잘해봅시다. 수천의 병사가 우리를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장군은 티모시에게 뒤를 보라며 고갯짓했다. 되려 그것이 티모시의 심기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도 모른 채.
‘어째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가?’
티모시는 외교 사절 대표이니, 국경에서 버고스의 입장 표명과 명분 획득 혹은 외교적 타협에 있어서 꼭 필요한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어찌하여 자신이 장군과 나란히 달리고 있는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구간에 따라 자신이 장군보다 앞설 때가 있었으니. 이는 멀리서 본다면 자신이 수천의 병사를 이끄는 책임자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타닥타닥!
히이잉!
전쟁의 공로(功勞)는 무인들에게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었다. 죽음을 불사하고 다녀온 임무에서 인정받고, 그 대가를 받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무엇보다 병력의 확보는 무인의 권력이요, 곧 명예였으니. 자신 아래 병사들을 남과 공유한다는 것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일.
하지만 함께하는 저자는 그러고 있다. 티모시의 선발을 되려 반겼으며, 명령과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받아들였다.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찜찜함에 계속해서 생각이 어그러지는 것이다.
‘잘 다녀오세요. 여보.’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의 배웅 말이 유독 귓가에 맴돌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장이었건만, 그 목적이 전쟁이라 그런 것일까? 애틋하게 자신을 껴안는 부인과 자식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타닥타닥!
그런 티모시를 슬쩍 힐끔거리는 장군. 그는 출전하기 전, 왕과의 은밀한 독대를 떠올렸다.
‘티모시 경을 앞에 세우라는 말씀입니까? 그자는 군인이 아니옵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동행하는 것은 기정사실 아니던가? 그 자리를 앞으로 끌어내는 것뿐이라.’
‘전하. 혹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송구하게도, 선발에 선다는 것은 그 전쟁을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부하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면, 전투의 효율이 떨어질 것입니다.’
‘티모시를 앞에 세워야 피해가 최소화된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온지…….’
‘직접 나가보면 알 터. 잡음을 섞지 말아라. 전공은 모두 그대에게 갈 것이다.’
당최 왕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으나. 더는 묻지 말라는 눈빛이 너무도 명확하여 그대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뭐, 챙겨줄 것은 모두 챙겨준다고 하니 그로서는 반박할 말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솔직히 보기에만 의아할 뿐, 하나 문제 될 것 없는 배치였다. 누가 알 것인가? 혹 왕의 말대로 날아오는 화살을 티모시 저자가 대신 맞아줄지.
“소도시가 보입니다. 저기만 넘으면 바로 수도로 들어가는 중앙 외곽입니다!”
부하의 외침에 장군이 망원경을 들어 살폈다. 방어선을 구축한 방벽이 보인다. 국경의 것과 비슷하게 높고 두터웠으며, 그 위로 병사들이 오가는 게 보였다. 후미를 덮친 클리포포드군 외, 또 다른 중대일 것이라.
게다가 인근의 민가는 텅 비어있었으니. 공세에 대비해 이미 대피령이 떨어진 게 분명했다.
“백각이 얼마나 남았지?”
“다섯 자루입니다.”
한 자루당 수십에 가까우니 이번에도 쉬이 장벽을 허물 수 있겠다. 장군은 속도를 줄이라는 명령과 함께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한데 풀 것이다. 준비하라.”
“예. 알겠습니다.”
“지네 새끼들, 미물인지라 원하는 대로 움직이질 않아. 안 그렇소? 티모시?”
집중적으로 모여서 터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벌레 형상을 한 마물 아니랄까 봐 풀었다 하면 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기 일쑤라, 여러모로 번거로운 종자들이다.
티모시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멈칫거렸다.
스윽.
모두가 장벽을 바라볼 때, 티모시는 망원경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티끌만치 작은 점. 지나가는 새인가 싶다가도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의아했다.
티모시는 곧이어 그것이 사람의 형상을 띄고 있다는 걸 알아챘고, 장군에게 일렀다.
“마법사들입니다!”
* * *
“워우. 이렇게 보니까 진짜 바글바글하네.”
“아오, 무거워. 베릭. 너 살쪘어?”
“아니? 그대로인데?”
“저놈 배에 든 것만 해도 사람 몸무게 훌쩍 넘어. 손 놓치지 않게 조심해.”
“그래! 놓으면 나 뒤진다! 이 높이면 진짜로!”
티모시가 그러한 것처럼, 이안도 망원경을 들어 전체적인 병력을 훑었다. 노아 왕자의 저지가 꽤 효과적이었는지, 전해 들었던 수의 절반에 달해 보이는 규모다. 아마 선발로 나선 중대일 터.
우익과 좌익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쟁 경험이 있는 장군이 이끄는 게 분명했다.
“이안 님. 더 내려갈까요?”
“아니. 기다려라.”
보통 오른쪽에는 무기를 들고 왼쪽에는 방패를 들기 때문에 우익은 공격을, 좌익은 수비를 맡는 게 정석적인 전술이자, 배치였다. 물론 황제 이안이 살던 시대에는 이미 수많은 전쟁 역사를 통하여 병법이 더더욱 진화하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상태를 보아하니, 이번 사달을 그저 간 보기가 아니라 하나의 발단으로 삼으려는 다몬의 의도가 확실해 보였다.
‘장군이 누군지 알면 좋을 것 같은데, 국경에서 올라온 전언에는 티모시밖에 언급이 안 되어 있어.’
다몬의 전략일까? 자신이 티모시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짐작하여 의도한 전략. 그가 클리포포드에 들어서 변절자와 접촉했을 때부터 예견한 것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안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없었다.
‘…훗날의 나움을 위하여.’
자신의 존재로 인해 역사가 비틀린 부분도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직 큰 틀을 벗어난 건 없다. 티모시가 죽지 않는 이상, 그에게는 바리엘로 귀화할 기회와 미래가 남아있었고, 이는 곧 나움의 존재 가능성 또한 남아있다는 뜻이다.
황제 이안과 서자 이안의 사이에는 백 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가. 신의 관점으로 본다면 참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관점으로는 찰나의 순간이 억겁으로 쌓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찰나는, 운명을 가르고 인생을 바꾸기 충분한 시간이고.
“이안 님. 저겁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거요! 행렬의 허리에 거대한 마차가 보이시죠? 그 뒤에 있습니다!”
“봐봐! 나도 봐봐!”
“버둥거리지 마, 진짜로 떨어진다?”
마법사의 손끝을 따라 이안이 망원경 각도를 틀었다. 보급 물자로 보이는 마차들 사이로 의아한 생명체가 보였다.
“아…….”
“제가 왜 설명 못 했는지 아시겠지요? 저런 건 처음 봤습니다.”
이안 님은 알고 계시겠지? 한 치의 의심조차 없이 초롱초롱한 눈동자. 마법사는 어서 답을 일러달라는 듯 두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이안이 내놓은 답은 의외였다.
“나도 처음 본다.”
“예? 진짜요? 농이시죠?”
“농 아니라, 정말.”
무슨 엄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얼빠진 표정이다. 이안은 피식 웃으며 망원경을 베릭 눈에 대어주었고,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병사들 사이에서 걸어오는 괴생명체를 살폈다.
“어? 어어? 저거 그거네, 그거!”
“사령술로 만들어낸 마물이라 그렇다.”
“그래, 그거!”
“베릭, 아는 척하지 말고 다물어 줄래?”
“아니, 나도 알아. 나도 본 적 있어. 그, 카렌나 마을 지나올 때 하샤가 사람이었는데, 개였거든? 근데 그게 죽어서 그런 거라 하더라고. 이안아, 맞지? 내 말 맞지? 빨리 대답해줘어어!”
뭔 개소리.
마법사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손을 놓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안은 기특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카렌나에서 있었던 일은 나중에 시간 되면 알려주마. 우선 알아둘 것은, 저게 사령술로 만들어졌다는 거지. 보자, 무엇을 이어 붙였는지…….”
썩은 내가 나는지 마물을 이끄는 병사들 모두가 복면으로 코를 덮은 상태였다. 마차 크기만 한 곰의 몸체에 도마뱀 머리, 그 외피를 뾰족한 가시가 빼곡히 덮고 있었으니.
이안이 중얼거렸다.
“걷는 것으로 보아 몸통은 베르그만으로 추정되고, 머리는 티에페, 가시는 독이 묻어있는 무기로 보여.”
“베르그만, 아! 압니다! 적갈색의 곰 아닙니까?”
“그걸 버고스가 어떻게 잡았답니까? 병사들만으로는 좀 힘들었을 텐데.”
“아니면 사체만 구했을 수도 있지. 사령술이 그렇잖아? 필요하면 무덤도 파헤친다는 소문이 있으니.”
“근데 저렇게 느릿하게 기어다니는 거면 솔직히 별로 소용없는 거 아님? 슈바, 우리는 지금 하늘에 있자네!”
베릭이 장난스레 허공에 발차기를 하자, 마법사 둘이 휘청거리며 힘을 단단히 붙잡았다.
“우리는 그렇다 쳐도, 클리포포드는 다르지. 너 베르그만 본 적 없지? 쟤 저렇게 보여도 엄청 빨라.”
“너도 없잖아.”
“당연하지! 곰은 사람을 찢어.”
“나도 사람 찢을 수 있어.”
“…너랑 무슨 말을 하겠니. 됐다.”
마법사가 위험하다는 걸 강조하며 베릭에게 경고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마법사들이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 님. 어찌할까요? 성벽에 닿기 전에 저지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클리포포드의 왕께서도 도움을 공식으로 요청했고, 불필요한 충돌이 의미 있나 싶은데요. 다 죽여버리죠.”
이미 진격하여 들어온 버고스 측은 쓸어버리는 게 맞고, 여기서 불필요한 충돌이라 하면 클리포포드 측의 피해를 뜻했다.
이안은 조금씩 느려지는 군단의 행렬을 지켜보며 물었다.
“…다들 베르그만만 알고, 티에페는 모르는가 보군.”
앗. 정곡을 찔렸다.
아는 척 맞장구치고 넘어가려 했는데.
베릭이 마법사들의 낯을 살피며 웃음을 터트렸다.
“캬캬, 바보들. 딱 걸렸지.”
“안 되겠다. 베릭. 손 놓을게.”
“미안, 아아아, 미안!”
티에페는 기다란 혀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먹이를 잡아챘다. 덫처럼 바닥에 흘려두고 끌어당길 수도 있고, 손처럼 유연하게 날아가는 걸 낚아챌 수도 있는 것이라.
하지만 문제는 그 길이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데 있었다.
“여기까지는 안 닿겠지! 걍 빠바방 쏴버리자!”
“병사들은 그렇다 쳐도, 맞힐 수 있겠어?”
“뭔 상관? 사령술 걸린 애들 머리만 터트리면 되잖아! 도마뱀 대가리 졸라 크네! 걍 때려 박아!”
“여러 가지를 조합하여 만들어 낸 결과인데, 그 약점을 저렇게 대놓고 드러낼까.”
“응? 그럼?”
이안은 서서히 좁혀지는 좌익과 우익의 대형 변화를 알아챘다. 놈들이 끌고 온 합성 마물은 현재 파악하기로 서른 마리. 백각 외 다른 마물을 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독으로 바른 가시로 외피를 보호하고 있잖아. 진짜 머리는 저 몸 안에 있다는 거다. 갈라내서 터트리지 않는 이상, 죽일 수 없어. 말 그대로, 저것들은 원래 죽어있는 것이니까.”
“아, 접근해야 한다는 거네.”
“또 다른 방법이 있긴 하지.”
거대한 검은 물결. 저 속에 있거나, 아니면 따로 떨어져 은신해 있을 사령술사를 찾아 죽이는 것. 무엇이 되었든 조금 까다로운 전투가 될 듯싶었다.
이안은 고갯짓하며 왕궁으로 돌아가자 신호했다. 클리포포드와의 협공이 필요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