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59
제359화. 북쪽에서 온 사령술사
다시금 왕궁 문이 열렸다. 노아 왕자가 출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그걸 지켜본 국민들은, 노아 왕자가 이끄는 중대에 무슨 일이 생긴 걸 직감하고 두 손을 모았다.
부디 클리포포드의 미래이자 자랑이신 왕자님께서 무사하시길. 하여, 함께 갔던 자신의 가족과 친우 그리고 연인 또한 무사히 돌아오길.
그때.
부우우.
두웅, 두웅-
긴급사태를 알리는 북소리에 모든 기도가 멈췄다.
국민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위해 다급히 움직였다. 누군가는 집 안의 음식을 한데 모아 끼니를 계산했고, 누군가는 문과 창틀에 판자를 박아 막았으며, 또 누군가는 담벼락에 농기구를 거꾸로 세워놓아 침입자의 공격에 대비했다. 선조가 겪었던 전쟁은 언제나 술자리의 안주였던 터, 클리포포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 기억을 물려받은 것이라.
집마다 나름의 방어선을 구축하는 와중, 왕궁에서는 2차 군단이 출정했다. 장군이 이끄는 2천의 병사가 왕의 축복을 잔뜩 머금은 채, 중앙 거리를 내달렸다. 자줏빛의 물결이 세차게 외곽 쪽으로 흘러갔다. 마치 포도주가 흐르는 것처럼.
타닥타닥!
“옵니다! 저기 왕궁에서 장군님이 왔어요!”
“대열을 정비하라. 각 중대와 휘하 소대는 전투 준비에 유념하여 긴장을 늦추지 말라!”
왕궁 인근에서 소집된 병사 2천과 외곽지에서 차출된 병사 3천. 합하여 5천의 병사들이 검과 방패를 든 채 상관의 명령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였다.
말에서 내린 장군은 바로 성벽으로 올라가 수호대장의 경례를 받았다.
“오셨습니까.”
“버고스 측은?”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클리포포드 수도로 들어가는 외곽 성벽. 그곳을 총괄하는 수호대장은, 장군이 망원경으로 전방 주시하는 것을 지켜봤다. 시커먼 무리가 흙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는 것이, 꼭 죽음의 폭풍이 다가오는 기분이다. 그는 손바닥의 땀을 은밀히 닦아내며 장군에게 물었다.
“성벽 안에서, 수성전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성벽이 높고 견고하니, 농성의 이점을 살리는 것이 유리하겠습니다.”
“국경도 그리 대응하다가 무너져 결국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그곳에는 충분한 병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만한 병력이라면 문제없이 수성 가능합니다.”
“병력이 많아도 성벽에 배치할 수 있는 병사 수는 한정되어 있다. 닭장 속 닭처럼 빼곡하게 세워두기만 할 생각은 아니겠지? 성벽을 끼고 싸울 거였다면, 애초 이만한 수를 소집하지도 않았어.”
성벽 위에서 내려다봄에도, 아직 적의 선봉밖엔 보이지 않았다. 이안이 허공에서 합성 마물을 바로 확인한 것과 달리, 정확한 전세 파악이 늦어지는 것이라.
장군은 비장하게 전투 목적을 모두에게 알렸다.
“그리고 상대는 마물 백각을 이용해 장벽을 터트리는 전술을 사용했다. 이 장벽마저 무너지면 수도로 직결되는 대로를 터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병사들을 성벽 바깥에 배치하여 요격할 것이다. 성문을 열어라! 방어선을 구축한다.”
“예. 알겠습니다.”
“으아아악!”
콰앙!
수호대장이 뒤돌려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머리칼의 남자. 나름대로 착지를 해보려고 했으나,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 장군의 발치 앞에서 대자로 뻗어버렸다.
채앵!
버고스의 공격인가? 다들 반사적으로 검을 빼 들었고, 베릭은 연신 이마만 문질거리며 허공으로 소리쳤다.
“야! 일부러 그랬지?”
“아니? 그만하면 네가 뛰어내릴 수 있다며.”
“조금 더 아래라고! 이씨!”
베릭의 시선을 따라 장군과 대장들의 시선도 허공으로 올라갔다.
마법사들이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자도 바리엘 측의 사람이겠군. 다들 안심하며 뽑았던 검을 거두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마법사님들과 함께하라는 전하의 명은 없었는데요.”
“아, 이제 곧 전령이 올 겁니다. 이안 님이 왕궁으로 가서 전하를 뵈러 갔거든요. 저기, 저저, 보이세요? 여기서는 안 보이려나?”
“뭐가 말씀이신지요.”
“버고스 군단에 합성 마물이 있습니다.”
합성 마물? 그런 이름을 가진 마물도 있던가? 장군은 연신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베릭은 볼록 튀어나온 혹을 매만지며 이때다 싶어 아는 척을 해댔다.
“이거랑 저거랑 섞은 마물을 만들었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로는 턱도 없지. 접근도 못할걸? 이 중에 곰 찢을 수 있는 사람?”
베릭이 활짝 웃으며 손을 들어보았으나, 다들 무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나밖에 없네. 그러면 도마뱀은?”
도마뱀 정도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수호대장이 슬쩍 손을 들려고 하자 베릭이 덧붙였다.
“대가리가 이따만 하고 혀가 졸라리 길어서, 막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몸 두 동강 남.”
그, 그러면 못 잡지. 수호대장이 손을 내리자 베릭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이걸 바로 원했다는 듯이.
“후후. 어쩔 수 없군. 이 베릭 님이 도와줄 수밖에.”
“바보 말은 무시하십시오. 적갈색 몸통의 곰은 베르그만이라 하고, 도마뱀은 티에페라 불리는 마물입니다. 둘 다 가죽이 쉽게 찢기지 않아, 이안 님이 수단을 취하러 가셨어요.”
“저 몸속에 진짜가 있거든! 그걸 터트리지 않으면 못 쓰러트려서!”
왕궁에 신속히 알리는 게 우선이긴 했지만, 저 합성 마물의 가죽을 찢을 만한 적합한 무기가 필요했다. 무엇을 어찌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코렐라를 만나러 간다고 하였으니, 그리 어렵지 않게 수급 가능할 것이라.
“장군께서는 클리포포드의 운명을 책임지고 계시지요. 올바르게 판단하여 대응하십시오. 저희는 이안 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마물을 붙잡아두는 쪽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군요. 대충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저쪽은 마물을 중심으로 공격하는 대열을 짤 것인데, 음. 잠시만요.”
장군은 지도를 펼치곤, 작은 전술용 돌멩이들을 가져오며 물었다.
“마물의 위치가 어디쯤입니까?”
“이쯤에 쌍으로 둘, 그리고 조금 뒤에 일렬로 오고 있습니다. 악취가 심하여 곳곳에 분포하기 보다는 한데 모아 움직이는 모습이었어요.”
마법사는 합성 마물의 위치를 짚어줌과 동시에 전체적인 행렬의 구도 따위도 일러주었다. 좌익과 우익의 움직임이 어떠한지, 주로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등등.
“그리고 이건 클리포포드에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딘가 저 마물을 부리고 있는 사령술사가 필시 있을 것입니다. 마물 수가 서른이니, 최소한 한 명에서 많게는 서른 명 정도요. 그자들을 잡아내면 조종을 멈추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술사는 마법사와 달리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여 그 기운을 추적할 수 없었으며, 수천 명의 버고스 병사들 사이에 숨어있을 자를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또 혹시 아는가? 장벽 안쪽에 있을지.
“단서가 있을까요? 저쪽 진영에 포함되어 있다면 전투 중 파악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혹 인근에 숨어있거나 내부에 있다면 특임대를 꾸려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쉽게도 단서가 없어요. 이안 님이 이르시기를, 사령술사들은 북쪽 혈통이 섞인 경우가 많으니 북방민 위주로 확인해보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클리포포드는 단일민족이었다. 특히 북방 계열과는 완전히 다른 외형과 특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장벽 안쪽을 살핀다면 어렵지 않게 사령술사를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가 저 군단 안에 있다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지.”
베릭이 검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다.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반짝.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하게 빛나는 중이다.
“베릭. 우리는 마물만 상대한다고 했잖아.”
버고스와 클리포포드의 전쟁에 공식적으로 파견되지 않은 마법사들이 개입하면, 훗날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이안의 헤아림이었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말이다.
“알아. 마물만 죽일 건데, 그 과정에서 휩쓸리는 것들은 어쩔 수 없잖아? 밥에서 콩 골라 먹는 거랑 똑같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인데.”
“맛있게! 가리지 말고 처먹다 보면 깨끗해진다, 이 소리지. 이래도 이해 못 했어? 바보네, 바보.”
처억.
베릭은 허리를 이리저리 틀어대며 몸을 풀어댔다. 아무리 봐도 작태가 너무 경박해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저런 자도 마법사란 말인가?
장군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마법사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예. 저희 애가 맞긴 한데요. 저리 보여도 실력은 봐줄 만합니다. 이쪽 신경 쓰지 마시고 장군님 하실거 하세요. 아까 대충 들어보니까 방어선 구축하신다고.”
“내가 바리엘 일등이거덩!”
“버고스 측이 계속 진군해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지 않겠어요?”
그래. 어느 집단이나 이상한 자는 있기 마련이지. 바리엘의 마법부라고 해서 뭐 다르겠는가? 오히려 더하면 더할 터. 장군은 정신을 바로 잡은 다음,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장벽 문을 열어라.”
“예. 장군님.”
“방어선을 구축하고, 동시에 장벽 안에서 문을 봉쇄할 것이다. 백각은 지네의 성질을 갖고 있다 하니, 벽을 기어오르지 못하게 조치하라.”
장벽을 따라 기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접착제를 채우는 작전으로 장벽을 보호하기로 했다.
“2군단은 방어선 구축을, 3군단은 그 뒤에서 땅을 파라. 적어도 백 미터는 여유를 두어야 한다. 백각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질 때의 위력을 알지 못하니. 인근의 주민들도 동원해.”
매일 같이 밭을 갈고, 흙을 퍼내는 일을 업으로 삼는 민족이었다. 포도밭과 달리 장벽 바깥의 땅은 딱딱했지만, 농사지을 것도 아니고 접착제가 고일 정도만 파면되는 것 아니겠나. 이르면 반나절 안에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장군의 명령에 각 대장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이내 성문이 활짝 열리면서 수천에 달하는 병사가 밖으로 내달렸다.
끼이익!
타닥타닥!
“적군이 다가올 것이다. 신호하면 3군단은 작업을 멈추고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2군단을 호위, 장벽 안의 병사들은 주민을 안으로 인도하고, 단단히 봉쇄하라!”
베릭은 슬그머니 탁자 위에 놓여있는 육포를 질겅이며 그 모습을 바라만 봤다.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버고스군이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왔을 때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는 장벽에 발 한쪽을 올리며 소리쳤다.
“와아아아! 날씨 좋다!”
“미친놈. 힘 빼지 말고 가만히 있어.”
“와라! 다 죽여버릴라니까! 으하하하!”
장벽 아래에서 작업하던 병사들이 힐끔거렸다. 별난 자의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긴장이 풀어지는 기분이다.
베릭은 저를 바라보는 농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정신없이 곡괭이질을 하면서도 베릭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 사람들. 몇몇은 베릭의 말을 따라 하며 사기를 북돋웠다.
“그래! 한번 와봐라!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
“잡으면 산 채로 코에 술을 들이부어 버리자!”
“아하하! 그건 아깝잖아.”
“클리포포드를 만만하게 보고 말이야, 이놈들. 오기만 해봐! 아주 곡괭이로 안면을 찍어버리려니까! 우리가 매일 힘을 얼마나 쓰는데.”
마법사들은 편히 앉아 기(氣)에 집중했다. 아코렐라가 준 마력증폭제는 최후의 수단. 그러니 상대를 마주하기 전, 최대한 힘을 정돈하고 끌어올리는 게 중요했으니.
지이잉. 지잉.
베릭은 그런 마법사들을 보며 발라당 누워 검을 들어 살폈다. 평소보다 훨씬 가벼운 흑검. 기분 탓인가 싶다가도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힘찬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킁킁, 베릭은 배시시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도 맡았지. 맛있는 냄새’
* * *
장벽 문이 열린 후, 그 앞이 소란스러워졌음을 걸 눈치챈 버고스군. 버고스의 장군은 망원경으로 그 모습을 살피며 고민했다.
방어선을 짜기 전에 도달하면 좋겠지만, 이미 그들은 버고스 왕궁에서 출정해 국경을 넘어 마을 두 개를 쉴 새 없이 뚫고 달려왔다. 말의 호흡이 가쁜데, 중무장한 보병들 상태는 불 보듯 빤했다.
‘서둘러 가는 게 제일이긴 하건만, 쉬어갈 때가 되었다. 후방에서 들이닥치기 전에만 움직이면 된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티모시가 묻자, 장군은 부하에게 지시했다.
“가서 사령술사들을 데려와라.”
“예. 장군.”
곧이어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서는 자들. 모두 열일곱 명이었으며, 적군이 알아채기 힘들게 일반 병사와 같은 차림새의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제일 먼 거리까지 조종 가능한 자가 누구였지?”
“접니다. 장군.”
장군의 부름에 한 청년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스타나 출신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제일 후방으로 빠져서 뒤쪽을 엄호하라.”
청년은 알겠노라 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슬쩍 삐져나오는 목걸이. 꽤 큼직한 붉은색 보석이 달려있었다.
전장에 나오면서 장신구라니. 사령술사들이란 당최 알 수 없는 자들이라며, 장군은 고개를 잘게 가로젓곤 정면을 쳐다봤다.
클리포포드의 장벽이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