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
제36화. 발발
밤낮없이 달리고 달려 브라츠 영지에 도착한 수. 그녀는 새벽 동이 트는 시간, 어둠을 틈타 저택에 침입했다. 그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 경비들의 동태를 조심스레 살폈다.
‘저자들이 황궁 조사단이군. 본채를 숙소로 쓰는 것 같고, 경비가 삼엄한 것이 별채. 이안과 우리가 썼던 건물 아닌가.’
이내 그녀는 창가로 어른거리는 데르가의 모습을 확인했다. 드디어, 등에 지고 있는 찝찝한 시체 머리를 내려놓을 시간이었다. 수는 단박에 나무를 내려가 별채 뒤쪽으로 돌았다.
스윽!
베릭과 한판 떴던 그날처럼.
그녀는 가뿐하게 창문을 타고 데르가가 묵고 있는 층까지 올라갔다. 굳게 잠겨있는 빗장. 안에서 잠근 것이 아니라, 밖에서 때려 박은 것이었다. 수는 단검을 꺼내 나무판자를 박살 냈다.
콰직!
“어머!”
인기척을 듣고 온 메리 부인이 커튼을 치다가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이내 달려오는 데르가 백작. 며칠 감금되어 있었다고 꼴이 말이 아니었다.
철컥.
수는 수월하게 창문을 열었다. 데르가가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으나, 그녀는 난간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을 뿐이다.
“자네는 네르사른과 함께 왔던 부하 아닌가?”
“기사는? 기사 벨은 어딜 가고…….”
“꼴이 말이 아니시네요. 창문도 못 열게 해요?”
수가 육포를 씹어대며 보따리를 풀었다. 집사가 탈출한 것을 알고, 조사단이 못질을 박은 것이었다. 데르가는 뭔지도 모르고, 수가 건네주는 작은 상자를 받아들었다.
“이것도 받으세요. 카칸의 답신입니다.”
“족장이 뭐라 하던가? 이안은? 이안은 죽였겠지?”
하지만 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구석에 숨어서 달달 떨어대는 첼을 힐끔거린 다음, 고개만 까딱이고서 아래로 떨어졌다.
“꺅!”
메리 부인이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을 질렀으나, 그뿐이다. 추락하는 소리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처럼 왔던 수는 그렇게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게 대체…….”
“여보, 어서 답신 읽어봐요. 제가 상자를 열게요.”
“엄마, 천려족이 우리 도와주는 거죠? 그렇겠죠?”
“쉬이. 첼. 걱정할 것 하나 없단다.”
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만, 천려족의 사자가 직접 와주지 않았나. 창문까지 뜯어주고서.
메리는 아들의 머리를 감싸며 신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데르가가 그릇을 집어 던지지 않았더라면, 계속됐을 기도다.
쨍!
“쳐, 쳐 죽일!”
“여보?”
“아버지, 왜, 왜 그러세요?”
“죽여! 죽여버릴 테다! 내 손으로 목을 분질러 버릴 것이야! 으아아악!”
데르가는 테이블을 거칠게 쓸어버렸다. 허겁지겁 메리의 품으로 숨어든 첼이 두려움에 떨며 울기 시작했다. 백작은 의자를 벽에 내던지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동맹을 파기해? 파기? 더럽고 추악한 야만족 새끼들. 천박한 핏줄 썩은 내가 여기까지 진동하는구나! 받아 처먹을 줄만 아는 것이 개새끼와 진배없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거지! 이곳만 정리되면 당장 전쟁을-! 단단히 찢어 죽여 짐승 밥으로 던져주마!”
“여보!”
데르가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두서없는 고함에 메리는 그제야 남편을 몸으로 뜯어말렸다. 상처도 상처지만, 더 이상의 큰 소리는 조사단에게 의심을 살 수 있다.
“진정해 봐요. 동맹 파기라니요? 그럴 수는 없어요.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중에 그들의 입지만 곤란해지는 것 아닌가요? 그 정도는 나도 아는 것인데, 어찌하여 족장이 이런 결정을…….”
명분이 없지 않나. 명분이.
이런 식의 행태는 저들이 야만족이라고 공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메리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찢어진 답신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가렸다.
“이게 사실이에요? 구룻잎 밀수라니요?”
“젠장! 젠장!”
쾅!
동맹 파기 이유로 거론된 것은 두 가지.
이안의 비(非)입적과 구룻잎 밀반입 시도.
그중 후자가 중대 사안으로 취급되었다. 백작이 직접 화친 대상자인 이안을 사주하여 금수 물품을 빼돌리려 하였으니, 이는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여 동맹을 이어갈 수 없다는 통보였다.
“이안 이 새끼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분명 제 어미 필리아의 사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들키더라도 꼬리를 자를 수 있게 조치해 둔 것인데, 어찌 뒤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알았지?
데르가는 이를 빠득빠득 갈아대며 욕설을 지껄였다.
“저 상자, 열어봐.”
“아차, 맞다!”
데르가의 명령에 메리가 재빨리 끈을 풀었다. 희망이 깨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꺄아아악!”
“으아아악!”
하지만 거기 들어있는 것은 처참하게 죽은 기사, 벨의 머리통. 거꾸로 열었던 것인지, 끔찍하게 잘린 목 단면이 위로 향해있었다.
똑똑.
“백작님. 문제 있으십니까?”
그때, 밖에서 조사단원이 문을 두드렸다. 순간 모든 긴장감이 뚝 하고 끊어지는 분위기였다. 전복하기 위해 천려족과 접촉한 것이 알려지면, 즉결처형도 가능했다. 단장의 아량에 호소하여 목숨을 구걸하는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벼, 별일 아니다.”
“안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조사단원의 말에 메리가 고개를 휙 돌렸다. 뜯긴 창문의 흔적이 여실했다. 그녀는 새된 소리를 지르며 거절했다.
“아, 아, 아니! 나 지금 옷 벗고 있어!”
“…예?”
“나, 나를 모욕 줄 생각이 아니라면, 절대, 절대 문을 열지 마시게나!”
“부인. 잠시 시간을 드리지요.”
“기다리게! 기다려! 제발!”
메리는 그렇게 외치며 창문을 닫았다. 아래에 흩어진 나무 조각 잔해를 손으로 집어 침대 아래로 던질 뿐만 아니라, 커튼까지 단정하게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데르가는 분노에, 첼은 두려움에 휩싸여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흐윽.”
그녀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상자 뚜껑을 덮은 다음, 옷장 구석에 밀어 넣었다.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자, 잠깐!”
끼익.
조사단원은 옆구리의 검집에 손을 올리며 문을 열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두 사람 그리고 구석에 웅크리고 훌쩍이는 첼.
“뭐하셨습니까?”
“무엇을?”
단원은 박살 난 의자와 잡동사니를 힐끔거렸다. 분에 못 이겨 난리를 친 모양이다. 천천히 방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절도 있게 허리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소란은 서로 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자중해 주십시오.”
“꺼져. 같잖은 게.”
“…쉬십시오.”
데르가의 노골적인 모욕에도 단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 그래봤자, 데르가는 곧 죽을 목숨이고 그는 주인 따라 출세할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끼익.
“젠장.”
데르가는 테이블을 짚으며 현실이 악몽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메리와 첼은 주저앉아 무거운 침묵만 유지했다. 문득, 데르가가 이를 아득아득 갈며 중얼거렸다.
“그래, 좋아.”
해보자 이거지.
이렇게 나오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뿐이었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 천려족의 도움이고 뭐고, 자신의 영지인 것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사단과 중앙군을 몰아내는 것.
그리하여, 바리엘에서 독립하는 것.
어차피 반역 혐의로 찍혔다. 뭐 거리낄 게 있겠나.
오히려 성공하면 중앙으로 개떡 같은 조세 보낼 일도 없으니, 그 얼마나 좋겠나.
“…여보?”
“부인, 당신은 첼과 함께 저택에 남아있어. 비밀창고는 알고 있겠지? 가서 몸을 피한 다음, 내가 찾으러 갈 때까지 절대 나오지 마.”
“…여보는요? 가, 같이 가요.”
“그래요. 아버지.”
“시끄러워!”
머릿속으로 계산이 끝났다.
천려족의 도움이 없다면, 그에게 남은 카드란 오직 ‘시간’. 중앙지원군이 도착하기 전, 조사단을 정리해야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
촤아아악!
데르가는 커튼을 죄다 뜯어 로프로 엮었다. 어리둥절한 메리와 첼은 한 걸음 떨어져 침만 꼴깍 삼켜댔다.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다.
“아…….”
한데, 막상 나갈 생각을 하니 현실감이 훅 밀려와,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다. 데르가는 대충 묶은 커튼을 창문 아래로 늘어트렸다.
“자. 내려가. 가서 지하창고에 숨어있어.”
“여보는…….”
“어서!”
데르가의 호령에 메리와 첼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창틀에 올라섰다. 그리고 꾸물꾸물, 어쩔 줄 몰라 하며 천을 잡고 매달렸다. 데르가는 메리와 첼이 나가는 동안, 종이를 그러모아 랜턴 불을 붙였다.
화아악.
조금씩 살아나는 불길. 데르가는 불씨가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부채질까지 해댔다. 연기가 심하게 올라올 때쯤, 그는 창문 아래를 내려다봤다.
부인과 첼이 보이지 않았다.
비밀창고로 이동한 게 분명했다.
쿵!
“으윽. 제기랄.”
데르가 역시 커튼을 잡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욱신거리는 발목을 절뚝거리며 마구간으로 향했다. 점점 시커메지는 연기가 식당 연기와 섞여 하늘을 가득 채웠다.
쿵쿵쿵!
“큰일 났습니다!”
본채에서 서류 분류 작업을 하던 에리카가 난데없는 소란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부하의 식겁한 얼굴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백작이 별채에 불을 내고 도망친 것 같습니다.”
“사서 명을 재촉하는군.”
“검을 들어라!”
“죽여도 상관없어. 저택 밖을 못 빠져나가게 해.”
“필립! 너는 중앙지원군에게 상황을 알려.”
“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나와 함께 움직인다.”
에리카는 머리를 단단히 묶으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일만 잘 정리되면 저의 저택이 될 곳이었다.
그런데 감히, 불을 내?
“아아악!”
“살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불이야! 불이야!”
“무, 물을 좀 끼얹어! 모래도!”
“데르가를 찾아라! 멀리 못 갔을 것이다!”
촤아악!
별채 아래층은 사용인들의 방이었다. 그들도 데르가처럼 구금되어 있는 상황인지라, 불이 났음에도 쉽게 도망칠 수 없었다.
“살려줘! 제발, 제발!”
“아아악! 여기 사람 갇혀있어요! 여기!”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말하라는 거 다 말할게요!”
여기저기서 절규가 들려왔으나, 에리카는 쉽사리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데르가는 사라졌고, 조사단원들은 전력이 흩어졌다. 구조된 사용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면, 수습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어, 어떻게 할까요? 단장님.”
물과 모래를 끌어 쓰는 부하들 사이로, 화염이 더욱 거세게 솟구쳤다. 에리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을 거듭했다.
“어차피, 데르가가 죽으면 같이 죽을 목숨들.”
사실상 누락된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노예시장으로 팔려가겠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똑같지 않겠나.
에리카는 고개를 돌려 정문 쪽을 쳐다봤다.
“화재만 적당히 진압해. 별채다 보니 중요한 자료는 없을 것이다. 구조할 전력이 있으면 데르가를 잡는 게 우선이니까.”
“네. 단장님.”
“다들 데르가를 쫓아라!”
“소수만 저택에 남고, 나머지는 다 밖으로 가!”
“서둘러라!”
에리카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뒤로 뜨겁고, 끈적하며, 처절한 절규가 불과 함께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