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0
제360화. 전문가들
왕은 절망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합성 마물이라는 생소한 절벽 앞에서, 버고스가 예상외로 더더욱 날카로운 칼날을 품고 있었다는 놀라움 앞에서, 수도로 들어서는 길목까지 들이닥쳤다는 두려움 앞에서, 그는 표정을 갈무리하며 이안의 정보를 전해 들었다.
신하들 역시 마찬가지. 고개를 숙인 채 이 절망적인 상황을 어찌 타개하면 좋을지에 대해 머리를 굴려댔다. 사실상 아는 것이 없는지라, 백지 위에서 답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외곽의 장벽에 제 부하들을 조금 배치해 두었습니다. 시간을 끄는 것에 있어서는 무리가 없을 것이니, 그 사이에 대비하심이 맞겠습니다.”
“그래, 그, 무어라 했더라?”
“베르그만과 티에페입니다. 마물이라고 해서 가죽이 다 질긴 것은 아닙니다만, 그 두 놈은 개체 중에서도 특히 단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곰 가죽도 그러한데, 습성을 이은 마물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 문제는 그 안에 핵(核)이 있다는 것이라.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겠는가?”
“마력봉인석을 바른 무기들이 있지요.”
바리엘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 노아 왕자 역시 그것을 지닌 채 바리엘에 방문했었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왕국 내 소수가 그걸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였으니.
“그, 그렇소.”
“마법사 모두에게 내어줄 만한 수가 됩니까?”
다들 적막에 휩싸였다. 지금 이안이 내뱉은 말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사체이긴 해도 마력을 지닌 가죽입니다. 일반 검으로 자르는 것보다 수월하게 가능할 것이고, 무엇보다 티에페의 혀는 굉장히 긴 데다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놈의 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재생력도 우수하지요. 마력봉인석의 도움이 있다면 굉장히 유리하게 전투를 이끌 것으로 여겨집니다.”
“전하!”
왕국에서 지닌 마력봉인석을 바리엘 측의 마법사에게 넘기라는 제안이다. 이에 질겁한 신하가 대화를 잘라먹으며 왕을 불렀다.
이안이 보고 있는 터라 뒷말을 잇지는 못했지만, 그 눈빛이 이르는 게 확연했다. 절대 안 될 일이라고. 다른 건 몰라도 마력봉인석만큼은 클리포포드의 명운을 쥔 물건이라고.
이드갈에 대한 거래도 막혔는데, 여기서 가진 것까지 바리엘에 넘기면 클리포포드는 완전히 빈손이 되는 것이다. 당장 버고스군을 물리쳐 위험을 넘긴다 한들, 바리엘의 속국이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직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고, 또 하, 합성 마물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안을 보고 신중히 결정하심이 옳다고 사료되옵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전하.”
“마력봉인석을 먹인 무기가 마물에게 효과가 있는지부터 미지수입니다. 이안 경의 추측이지 않습니까. 전하,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한쪽 무리가 우르르 바닥에 머리를 박아대며 결사반대하는 뜻을 보였다. 그러자 반대쪽 신하들이 이안의 눈치를 보며 반박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시오. 마력봉인석은 말 그대로 마력을 봉인하는 것. 마물의 힘 역시 마력과 같으니, 효과가 있지 않겠소? 그러니 이안 경께서 내어주시길 원하는 거고요.”
“맞습니다. 일반적인 마물도 아니고 두 개를 섞은 놈이에요. 지금 마법사님들의 도움 없이는 필패(必敗)입니다. 패하면, 클리포포드도 없습니다. 한데 다들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겁니까? 타국에서 우리를 위해 이리 애써주시는 분을 앞에 두고!”
“예, 실례입니다. 다들 일어나세요. 전하. 이안 경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게 맞습니다. 장벽이 허물어지면 모든 게 함락될 것입니다. 시간문제예요.”
“이안 경의 추측이 아니라, 전문가의 견해라 보는 게 맞습니다!”
신하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게 갈렸다. 굉장한 고가에다 쉬이 구할 수 없는 희귀성.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섣불리 내줄 수 없음이 당연했다.
이안과 헤일 그리고 마법사들은 신하들이 목청 높여 싸우는 것을 지켜보며 잠시 기다렸다. 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까부터 미동이 없다.
“이안 님. 내부에서 분열이라도 생길 기세입니다.”
“쉬이. 괜찮다. 왕께서는 허락하실 거니까.”
헤일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걸 이안이 어찌 안단 말인가? 신하들의 반대가 저렇게 드센데. 하지만 이안 역시 눈썹을 까딱거리며 자신감을 보였다.
‘노아 왕자가 의문의 외부인으로부터 이드갈 거래 제안 받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이미 타국에는 이드갈이 대량으로 풀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력봉인석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니, 그 가치가 예전 같다 할 수 없지. 당연히 지금 내어주고 마법사 측의 도움을 받는 게 맞다.’
이안이 그리 생각함과 동시에, 왕이 손을 들었다. 핏대를 세워가며 싸우던 신하들이 멈추곤 고개를 돌렸다. 왕은 결심했는지 단호하게 명령했다.
“왕궁에서 소유하고 있는 마력봉인석을 모두 이안 경에게 내어주고, 그를 덧바른 무기 역시 제공해주어라.”
“전하! 아니 될 말입니다!”
“현명하십니다!”
“나의 선택이니, 나의 신하들이라면 한뜻으로 나를 따르시오. 이의는 받지 않겠소. 이안 경, 또 필요한 게 있는가?”
좌우로 나뉜 신하들의 반응이 극명했다. 한쪽은 안도를, 한쪽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니.
이안은 가슴팍으로 손을 올린 뒤, 가볍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소지하신 이드갈 역시 저희가 수거하겠습니다.”
“좋소. 경의 뜻대로 하시오.”
“그리고 왕궁의 대장간을 잠시 빌렸으면 싶은데요.”
“물론이요. 클리포포드에서 제일가는 실력자들이니, 그대가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줄 것이오. 여봐라, 이안 경에게 안내를 해주어라.”
“예, 전하.”
“그거면 되겠는가? 이안 경.”
신하 한 명이 문을 열어주자, 왕이 덧붙여 물었다. 등을 돌리려던 이안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웃어 보였다.
“일이 끝나면 고기를 듬뿍 준비해 주십시오.”
“고기?”
“가능하다면 소고기로.”
이안의 알 수 없는 말에 왕이 눈을 끔뻑거렸다.
소는 농경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동물이나, 나라를 구할 수 있다면 그깟 소가 문제겠는가? 아무래도 농담인 것 같으니, 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약조했다.
“물론. 원하는 대로 끝없이 내어주지!”
그 말, 후회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헤일이 걱정스러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이곤 이안을 따라나섰다.
“아코렐라는?”
“곧 내려온다고-”
“꺄하아아악!”
쉬이이익!
말하기가 무섭게 위쪽에서 아코렐라의 찢어지는 웃음이 들려왔다. 계단 난간을 미끄럼틀 타듯 내려오는 중이다. 그사이 왕궁에서 뭔가를 많이 챙겼는지, 등에는 보따리가 한 짐이다.
“뭐 훔친 거 아니지?”
“아니거든? 실담물약 만들면서 나온 쫌쫌따리들. 두고 가기에는 아까워서 챙겼어. 그런데 이안 님. 애들은 어디 가고,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대장간으로 갈 것이다.”
“대장간 좋죠! 그런데 왜요?”
“마력봉인석과 이드갈을 액화시켜 무기와 합성할 것이다. 거창하게 합성이라고는 해도, 날 근처에 묻혀서 공격과 동시에 마력이 재생하지 못하게…….”
투욱.
쨍그랑!
이안이 말을 잇지 못하고 아코렐라를 돌아봤다. 그녀는 넋이 나간 것처럼 멀뚱히 서서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내 그녀의 오른쪽 콧구멍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코렐라?”
“너 왜 그래?”
놀란 헤일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보따리에서 삐져나온 알 수 없는 물체들이 사방에 나뒹굴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이안을 바라볼 뿐이다.
“그, 그러니까 지금 이안 님 말씀은, 마력봉인석을 노, 녹여도 된다는 뜻인가요?”
“그래. 대장장이들과 합심하여.”
“이, 이, 이드갈도 녹여서?”
“물론. 클리포포드에서 지니고 있는 마력봉인석은 수가 얼마 되지 않을 터이니.”
아코렐라는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왼쪽 콧구멍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이내 우렁찬 함성. 기쁨과 환호 그리고 흥분으로 점철된, 짐승과 같은 울음이 폭발했다.
“꺄아아악! XXXX! XXX!”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마력봉인석을 제 손으로 부수고, 녹이고, 심지어는 다른 물질과 합성하는 날이 왔어! 이드갈 역시 바리엘에서 연구를 진행하긴 했다만, 그 수가 한정되어 있어 욕구를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아코렐라가 이안의 손을 덥석 잡으며 물었다. 코피가 줄줄, 눈물이 그렁그렁, 이는 바득바득 가는 것이, 제정신 아닌 게 분명했다.
“하, 핥아도 되나요?”
“마력봉인석을? 마력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아, 그렇네요. 그러면 나 대신 누가…….”
아코렐라가 마법사들을 돌아보자, 다들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이안의 뒤로 슬쩍 옮겨붙었다.
“베릭과 다른 마법사들이 합성 마물을 대상으로 저지 중이다. 무기가 완성되면 보급하러 직접 가도록. 하여, 마물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을 허락한다.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갑시다! 가자고요! 이보세요, 클리포포드 신하 씨! 앞장서서 빨리 대장간 갑시다아아!”
“예? 아, 예예. 이쪽입니다.”
“뛰어!”
“뛰, 뛰겠습니다!”
아코렐라가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며 소리치자 시종은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우다다다 달려가는 마법사들. 이안은 천천히 그 뒤를 따르며 헤일에게 지시했다.
“헤일, 자네는 이곳을 수습하고 오게.”
“예?”
아코렐라가 떨군 보따리와 잡다한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헤일이 의아하게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자, 이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네가 아코렐라 전담이잖아.”
“제가 말입니까? 언제부터요?”
“서둘러.”
헤일과 아코렐라를 차기 마법부 수장으로 찍었을 때부터. 이안은 피식 웃으며 사라졌고, 헤일은 멀뚱히 서 있다가 주섬주섬 물건을 주웠다.
* * *
“어허, 딱 저기서 멈췄네.”
베릭이 의자를 까딱거리며 망원경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던 버고스군 멈춰서 아예 천막을 쳐대고 있었다. 해가 짐에 따라 더 이상의 전진을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린 게다.
덕분에 장벽을 따라 어설프지만 기다란 구덩이가 문제없이 만들어졌고, 이어서 백각의 움직임을 저지할 접착제가 한가득 채워졌다. 클리포포드 병사들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버고스 측을 견제했다.
“장군님. 쟤들 안 오는데. 우리가 가면 안 되나요?”
“안 될 말입니다. 장벽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니, 거리가 멀어질수록 변수가 많이 생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가 곧 지려고 해요. 지형에 있어서는 우리가 우위에 있지만, 혹시 모를 일 아닙니까. 야행성 마물이 있을지.”
게다가 아직 왕궁에서 이렇다 할 전언이 오지 않았다. 마법사들의 수장이라는 이안이 대비책을 모색한다고 하였는데, 그 답이 없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
베릭은 하품을 쩌억 해대며 연신 발끝만 까딱거렸다. 가까이 오면 그냥 다 베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아, 거참. 감질나네.
“이안이는 뭐 하나. 혼자 고기 먹고 있나?”
“이안 님이 너니? 그리고 여기 있는 육포 네가 다 처먹었잖아. 왜 자꾸 밥 타령인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근데 너 아까부터 자꾸 반말 깐다? 너 몇 살이야?”
“서른 다섯이다.”
베릭은 못 들은 척 딴청 피우며 코를 훌쩍였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노을이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다채로운 푸른색이 어우러졌다. 노병부터 말단 병사까지, 클리포포드 진영의 모두가 참 평화롭다 느끼는 그 순간.
콰앙! 쾅!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병사들이 움찔거리며 검을 다잡았고, 베릭과 마법사들 역시 장벽 밖으로 몸을 빼고 망원경을 들었다. 버고스 측에서 난 큰 소리였다.
“뭐지? 쟤네 뭐 터진 것 같은데?”
“백각인가?”
“설마, 자기들이 가져온 걸 관리 못 했을까.”
“잠깐, 군사들이 움직인다.”
장군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포착하고 멈칫거렸다. 후미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그럴 만한 일이라면…….
“노아 왕자님?”
살아남은 노아 왕자 측이 무너진 다리를 우회하여 수도 쪽으로 올라오다 버고스 측과 마주친 것이다.
한마디로 적진 가운데로 뚝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 저기서 버고스가 좌익과 우익을 나눠서 포획한다면, 하늘을 날지 않는 이상 살아오기 힘들 터다.
장군은 급히 대장들을 소집했다.
“전원 주목하라! 2군단은 즉시 버고스 쪽으로 접근하여 시선을 분산시켜라! 북을 크게 울려! 왕자님이 빠져나올 틈을 만들어야 한다!”
부우우- 부우-
장군의 명령은 곧 물소뿔 나팔과 군기(軍旗)를 통해, 전군으로 퍼졌다. 때아닌 출격 명령에, 베릭은 방방 뛰며 마법사들 주위를 뛰어다녔다.
“가자, 우리도 가자!”
“시선만 끄는 거라잖아.”
베릭이 당장이라도 장벽 아래로 뛰어내릴 것처럼 몸짓하자, 마법사들이 옷깃을 잡아당겼다.
하나 베릭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떨어지면,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위잉- 날게 해줄 것이라는 걸. 그는 씨익 웃으며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그게 내 전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