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1
제361화. 잡아먹히다
클리포포드 병사들은 깨달았다. 흔들리는 옷깃, 발돋움에 따라 덜그덕거리는 갑옷과 누구의 고함인지도 모를 소란 속에서, 그들은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라.
적과 대치는 하고 있지만, 저들의 검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자신 역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닥쳤음을, 지금까지 그저 액자에 걸린 그림으로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팽팽한 긴장과 시끄러운 소란이 팽배한 지금도, 저 멀리 주둔해있는 버고스군은 환영 속의 존재와 같았다.
사이가 안 좋긴 했지만, 접경한 나라인지라 은근히 스며들어 있던 두 나라였다.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어울리지는 못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지켜보는.
“으아아악!”
“가자아아!”
“물러서는 자는 군법으로 엄히 다스린다!”
“앞장서라! 앞서서 적군의 목을 베어라!”
누가 소리치는 것인가. 누가 상대의 죽음을 갈망하는 것인가. 그리고 누가 자신에게 죽을 것이며, 자신 또한 누구에게 죽임당할 것인가. 맹렬하게 내달리는 외관과 달리, 병사들의 머릿속은 백지처럼 텅 비어있었다.
뜨거운 불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불나방도, 어쩌면 이렇지 않을까?
죽을 것을 알지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나는 어쩐지 살아올 것만 같다는 근본 없는 자만심으로, 세상의 중심이었던 자신조차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는 한낱 모래알과 같은 존재라는 걸 모르는 채로.
타닥타닥!
“클리포포드군이다! 다들 진형을 정비하라!”
“장군! 장벽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력이 내달리고 있습니다! 앞과 뒤가 소란스러우니, 서둘러 한쪽을 정리하심이 좋겠습니다.”
어스름해지는 저녁.
후미에서 문제가 터졌다는 보고는 버고스군 장군이 갑옷을 벗었을 때였다. 소수정예로 보이는 자들이 갑자기 습격하여 숲으로 들어갔다가, 위치를 바꿔 다시 나오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장군은 곧바로 그자들이 바키 마을에서 맞붙었던 클리포포드군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말인즉, 바키에 남았던 버고스 측은 생사가 불명하다는 것이겠지.
“소수정예?”
“예. 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소수정예.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있다면 필시 복귀하여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저들은 죽음의 계곡을 넘어 다시금 벌어진 틈에 뛰어든 게다.
그 말인즉슨, 부하들에게 적합한 명령을 내릴 만한 자가 섞여 있고, 그는 높은 확률로 클리포포드의 중요 인물이라는 게다. 예컨대 장군급이거나 그 이상. 어쩌면 왕족일지도.
‘노아 왕자일 가능성이 있다. 인상착의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장군!”
그때, 티모시가 천막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어찌하면 좋을지, 의견을 듣기 위함이라.
“후미를 덮친 자가 아무래도 클리포포드의 고위직인 것 같소. 장벽을 지키고 있던 자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아마 시선을 잡아끌려고 하는 듯한데.”
“그러면 어떡합니까? 명령을 서둘러 내려주셔야 합니다.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어요.”
장군은 티모시를 위아래로 훑은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몬 왕이 그러했지. 티모시를 선발에 세우면 피해가 최소화될 것이라고. 그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왕의 조언을 참고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후미를 덮친 자들을 생포할 것입니다. 그쪽으로 병력을 돌릴 것이니, 티모시 경은 장벽에서 오는 자들을 막아주십시오. 천천히 후퇴하며 거리를 더욱 벌릴 것이니, 적당히, 시간만 끌어주시면 됩니다.”
“제가요? 제가 병사들을 통솔하는 것입니까?”
“통솔이라기보다는, 함께 나서서 사기를 채워주신다고 보면 되겠지요.”
장군의 부하들이 계속해서 천막으로 들이닥치니, 티모시에겐 무어라 항변할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전장에서 장군의 명령은 곧 법과 같다. 장군이 저리 말하였으니 티모시로서는 딱히 거절할 방도가 없긴 했다. 무엇보다, 그는 버고스의 사람이었고, 버고스의 영광을 위해 함께하였으니까.
티모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들겠노라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부하를 붙여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제 안위를 위한 것이라면 거두어주십시오. 이미 저는 다몬 왕께 삶을 맡기고 왔으니.”
그리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천막 밖으로 나갔다.
아직 적을 식별할 수는 있지만, 곧 있으면 해가 질 터. 검은 옷을 입은 버고스군을 구분하기 어려워질 게 분명했다. 티모시가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쿠웅! 쿵!
“방금 하늘에서 뭐가 떨어졌습니다!”
“하늘에 사람이, 사람이!”
“마법사입니다!”
내달려오는 클리포포드 병사들보다 훨씬 가까이 접근한 신원 불명의 정체. 티모시가 소리쳤다.
“대항할 무기를 들어라!”
처억!
병사들은 검과 화살 따위를 집어 들었다. 그 끝마다 하나같이 호박색으로 제련되어 있었다.
이드갈이었다. 마법사들의 개입을 예견한 다몬이 철저하게 준비하여 실력 있는 기사들 위주로 이드갈 무기를 분배한 것이다. 물론, 일반 병사들 또한 품에 이드갈을 먹인 단검을 숨기고 있었다.
바리엘과 클리포포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이드갈. 아마 버고스가 쥐고 있는 수를 바리엘 측에서 알게 된다면, 전세가 틀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클리포포드라는 제3국을 위해, 마법사들을 희생할 필요는 없으니까.
“마물 두 마리를 앞으로 배치하겠습니다!”
“서둘러라!”
버고스의 진영이 혼란스러웠다. 병사들은 날아다니는 마법사 두 명에게 연신 화살을 쏘아댔고, 그들은 더더욱 높게 날아 쉽게 공격을 피했다. 제대로 맞히려면, 티에페의 혀가 필수적이었다.
“나하아아아!”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티모시가 검집에 손을 올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딘지 모르게 정신 한 곳이 온전치 않아 보이는 웃음소리. 그와 동시에-
툭.
진영 한가운데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웃음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으나, 어둑해지는 상황에서 마법사들이 떨군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그때.
콰아앙! 쾅!
퍼엉!
“나 지금 분명히 말했다!”
촤아악!
“나는 마물 베러 왔고, 사람 대가리는 관심 없어! 그러니까 물러서면 살려준다아아! 막아서도 괜춘괜춘! 환영합니다아아!”
“으아아악!”
“끄어억, 어억!”
티모시는 바로 알아챘다. 마법사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트린 게 베릭이라는 걸.
지하 소굴에서 철장을 등에 업은 채로 수십 명의 괴한을 상대하던 미친 자. 마검사라 하였던 걸 기억하고 있으니, 병사들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티모시는 즉각 재촉했다.
“병사들을 물려! 대응하지 마라! 저자는 마검사다!”
“티모시 경,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하지만 그의 명령을 막아서는 자가 있었으니. 후미로 깊숙이 들어가려던 장군이었다. 선두에서 밀려오는 병력을 막으라고 했더니, 대응하지 말라니?
티모시가 다급하게 외쳤다.
“상대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마검사라고요!”
“마법사가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왔잖습니까. 갑자기 새삼스럽게 무슨. 됐고, 지시한 대로 하시오! 앞서 걷는다고 그대가 나와 같은 입장은 아닙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버고스 병사들의 찢어지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티모시는 이를 바득거리며 굳게 마음먹은 채, 소란이 일어난 쪽으로 내달렸다. 그걸 본 장군이 덧붙여 명령했다.
“마물 두 마리가 아니라, 최소한만 두고 전면 배치해라! 그, 아스타나 출신 사령술사만 후미를 맡고 나머지는 다 앞으로!”
“예. 알겠습니다.”
“해 지면 어찌 될지 모르니, 서두르자.”
버고스 측이 검은 옷을 입고 있어 은폐에는 유리하지만, 지형지물엔 어두워 확실히 불리한 점이 있다. 클리포포드가 포위하여 기습하면 손쓸 새 없이 당할 수도 있는 노릇.
앞이든 뒤든 우선 숨통을 트는 게 급선무였다.
* * *
“이, 이, 죽어어어!”
“아이고, 오셨습니까, 손님! 칼빵 맞으세요오! 쬐끔 아픕니다!”
“으아아악!”
“일대일로 맞서지 마! 둘러싸란 말이다! 단번에! 단번에!”
타닥타닥!
적진 한가운데로 돌진한 베릭. 그의 붉은 머리칼 아래로 핏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선혈은 목선을 타 내려가 옷깃을 흠뻑 적셨다. 언뜻 보기에는 곧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모양새다. 그것들이 베릭의 피였다면 말이다.
“하나, 둘-!”
“흐아압!”
병사들은 베릭을 포위하여 동시에 창을 찔러넣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가볍게 도약하여 날아오르는 베릭. 이내 가지런히 모여있는 창끝으로 사뿐하게 착지하여, 가까이 있는 병사와 눈을 맞췄다.
“훈련이 잘 되어있네. 합이 좋아. 응. 합격!”
“으아악! 마물이다! 마물!”
“누구보고 마물이래? 미친놈들 아녀?”
채앵! 챙!
베릭이 검을 휘두르자, 병사가 겨우 쳐냄과 동시에 뒤로 나뒹굴었다. 순간 한쪽 날이 호박색인 게 베릭 눈에 들어왔다.
‘이드갈.’
베릭은 마법사가 아니지만, 마력을 운용하여 초인적인 힘을 내는 원리는 서로 같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즉, 이드갈을 조심해야 한다.
“오케오케, 문제없지!”
촤아악!
베릭은 쓰러진 병사의 가슴팍을 발로 밟고서 그대로 목을 베어버렸다.
그의 잔혹하고 무자비한 살육에, 지켜보던 병사들이 모두 멈칫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어찌하여 저리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이는가? 같은 사람이 맞나? 다들 덜덜거리며 침을 꼴딱 삼키는 순간.
“베릭.”
티모시가 병사들을 헤치며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어쩐지 장소가 영 좋지 않은 게 흠이다. 베릭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티모시! 안 그래도 이안이가 너 찾았는데!”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안 그러면 죽는다.”
“며칠 전에 클리포포드 왔을 때 있잖아, 그때도 그쪽 찾았거든. 아우, 얼굴 보기 어렵더라!”
“다시 한번 말한다. 무기를 버리고 물러서. 이 전투는 버고스와 클리포포드 사이의 문제니까.”
“이안이도 곧 올 건데, 너 잡아두면 좋아하겠지?”
도무지 맞물리지 않는 대화. 티모시는 어쩔 수 없이 검을 뽑아 들고 베릭과 대치했다. 베릭은 흥건하게 묻은 얼굴의 피를 닦아내며 씨익 웃었다.
“죽이지는 않을게. 이안이한테, 너 필요해 보여서.”
“나는 널 죽일 거다.”
“듣기 좋은 농담이네!”
타아아앗! 탁!
채앵! 챙! 챙!
엄청난 거구의 티모시가 있는 힘껏 검을 내려쳤지만, 베릭은 가볍게 받아낼 뿐이다.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 진심인지, 섣부르게 반격하지 않았다. 단번에 기절시킬 수 있는 빈틈을 찾으려는 게다.
병사들이 우물쭈물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때, 장교들이 소리쳤다.
“멍청하게 뭘 서 있는 것이냐! 앞을 봐라! 클리포포드군이 다가오고 있다! 전진!”
“저, 전진!”
“으아아악!”
그래, 인간이 아닌 자들의 싸움에 낄 필요 없지. 병사들은 재빨리 대열을 정비하고 클리포포드 장벽 쪽으로 진격했다. 적과 적 사이의 한 지점을 위하여, 그래서 높으신 분들의 대의를 위해. 이대로 인생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돌아서는 순간을 겸허히 맞이할 것이다.
베릭은 자신을 지나쳐 내달리는 병사들을 힐끔거리며 고민했다. 어쩌지? 마법사들이 사람은 최대한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저러다가는…….
“역시 마검사군.”
채앵!
“아, 티모시는 모르는구나? 내가 바리엘 1등이거든. 영광인 줄 알아.”
“너를 이기면 바리엘을 이기는 게 되는 건가?”
“아하하하! 너도 개소리 잘하네! 나도 잘하는데!”
“티모시 경!”
계속해서 합을 맞추고 있었으나, 티모시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결코 이길 수 없다. 베릭은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공격을 섣불리 하지 않고 그저 검을 막아내고만 있었다. 그것도 아주 유유히.
어찌하면 좋을까. 티모시가 고민하던 그 순간.
“티모시 경!”
쿠웅. 쿵.
뒤쪽에서 티모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훅 끼쳐오는 썩은 사체의 냄새. 베릭이 인상을 찌푸리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합성 마물이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와씨, 냄새 진짜!”
베릭은 저도 모르게 검을 내리고 코를 쥐어 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으려는 티모시. 하지만 그것보다 빠른 것이 있었으니.
쉬이이익!
쉬익!
“오으앗!”
티에페가 순식간에 수십 미터 떨어진 베릭의 허리를 혀로 감아챈 것이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재빨랐다. 베릭이 인지했을 때는 이미 잡아채여 그쪽으로 끌려가고 있었으니.
쩌억.
도마뱀은 베릭을 단숨에 삼켜버리곤 입을 다물었다. 볼 부분이 몇 번 움찔거렸지만, 그뿐이다.
목울대가 꿀렁거리고, 도마뱀이 썩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를 딱딱거렸다. 포만감에 기분이 좋다는 표현이었다. 죽은 사체의 봉합체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본능적인 만족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