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4
제364화. 다시 만나다
아코렐라의 하강은 여러 의미를 가져왔다.
버고스와 클리포포드 사이의 전쟁에 마법사가 직접 개입했다는 걸 시사했고, 이는 곧 걷잡을 수 없는 사기(士氣)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신의 힘에 가까운 자들이 참전하여 전장을 누빈다면, 그 무게의 추가 어디로 기울지는 자명한 일 아니겠는가?
합성 마물로 인해 끔찍이 썩어갈 것만 같았던 전장에 싹이 터 오르는 신성함이 감돌았다. 아주 작지만 확실하여 그 생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꺄하아아!”
“아코렐라 대장, 조심하십시오!”
“그래, 까불지 말고! 걔 혀 엄청 길다!”
“와, 똥강아지한테 까불지 말라는 말을 듣다니, 이거 살다 살다 별일이 다 있네.”
지이잉. 지잉.
아코렐라는 눈빛을 번득이며 마력을 개방했다.
금빛으로 변하는 그녀의 눈동자. 마법부에서 연구를 주력으로 맡고 있었기에 타 부서 대장들에 비해서는 마력이 센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적인 체력도.
“흐아압!”
하지만 그걸 상쇄할 만한 그녀의 힘은, 바로 마력석이었다. 검사가 검을 잡아 들고 궁수가 활을 잡아드는 것처럼, 그녀는 마력석이 저며진 단검을 들고 재빠르게 마물 쪽으로 내달렸다.
티에페의 주둥이가 갈라지며, 기다란 혀가 아코렐라의 심장 부근을 노려 재빠르게 날아들었다.
“혓바닥 함부로 놀리면 잘리지!”
촤아아악!
아코렐라는 단검으로 티에페의 혀를 완전히 잘라버렸다. 마력으로 신체적인 강함을 끌어내긴 했지만, 그뿐이다.
도마뱀의 혀가 종잇장처럼 쉬이 잘린 것은 마력봉인석에 의한 효과였다. 날이 들어섬과 동시에 마물의 재생 능력 및 그 존재 자체를 파훼하여 한낱 덩어리에 지나지 않게끔 하는 것.
아코렐라는 바닥에 떨어져서 팔딱거리는 혀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아, 날 죽이네!”
“대장, 재생하지 않습니까?”
“어, 안 하는데? 어차피 죽은 거라서 재생력까지는 어떻게 못 할걸? 가죽도 잘리는지 한번 볼게. 그거 주워서 잘 들고 있어! 실험할 때 쓸 거니까.”
“예? 이걸요? 이걸 들고 있으라고요?”
“잃어버리면 혼난다!”
아코렐라는 그리 소리치며 이번에는 베르그만의 배 쪽으로 몸을 낮춘 뒤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날아들어 녀석의 배를 차는 베릭. 육중한 무게가 뒤로 밀리며 나뒹굴었다.
“이게, 쓸데없이 끼어들어!”
“그거 나도 좀 줘봐. 나도 썰고 싶어.”
“싫어, 인마. 조달 올 때까지 기다려.”
“아아아, 빨리! 나 저거 핵 어디 있는지 안다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째볼게.”
“싫다니까? 꺼져!”
아코렐라와 베릭이 투덕대는 사이, 합성 마물이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잘린 혀의 단면에서 진득하고 불쾌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사람으로 치면 피와 같을 것인데, 썩은 사체이다 보니 점액 자체가 참으로 기괴했다.
아코렐라는 코를 긁적이고는 베릭에게 단검을 넘겨줬다.
“아니다. 우리 똥강아지가 가자.”
“손 더럽히기 싫어서 그러지?”
“그게 효율적이잖니? 가라! 아,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해줘. 나, 저거 가져가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있거든.”
“예예. 갑니다요. 고기 자르는 건 또 내가 기가 막히지.”
웃기고 있네. 언제부터 고기를 잘라먹었다고 저런 소리인지, 원.
아코렐라가 옷깃을 툭툭 털며 주위를 둘러보자, 창으로 그들을 빙 둘러싼 버고스 병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긴장하고 공포스러운 낯을 숨기지 않았는데, 합성 마물을 뚫고 나온 베릭과 같은 자라면, 저들은 상대도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가 벽에 몸을 내던지고 싶어 할까? 던진다 하더라도 작은 물결 정도는 만들어내는 맨 마지막 순서를 원할 터.
병사들은 아코렐라를 빙 둘러싼 채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함께 움직였다.
“아하하하! 위협하는 거 맞아? 호위하는 거 같잖아.”
“마, 마, 마법사는 여기서 나가라! 클리포포드 사람도 아니잖아!”
“그래. 이건 버고스와 클리포포드의 전쟁인데, 어찌하여 바, 바리엘 마법사가 끼어들어?”
병사들 뒤로 서 있는 부사관들이 한마디씩 던져댔다. 무력으로 제압하지 못하면 설득이라도 해서 상대를 이탈시키는 게 제일이라.
아코렐라는 금빛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웃겨. 그러는 너희는, 왜 소수민족까지 끌어들였는데?”
* * *
메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곧 있으면 적군의 날붙이가 자신의 목을 베어 숨을 거두어 갈 것이니.
죽을 때가 되면 이전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고 하지. 노아가 처음으로 울며 자신의 저주를 고백한 날과 그를 껴안던 순간 그리고 왕궁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콰앙!
하지만 곧이어 그녀는 자신의 몸에 어떠한 이상도 없음을 알아챘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자, 합성 마물이 괴상하게 뒤틀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이상증세에 놀라서 뒤로 물러났고, 이내 메이는 죽은 동료의 시체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소란스러운 와중, 완연한 어둠이 내리면서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들어진 틈을 노리는 게다.
‘왜 저러지?’
메이에게는 기회였으나, 당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잘 움직이던 것들이 어찌하여 폭주하는 것과 같이 흔들리는가.
지이잉. 지잉.
“마법사다! 마법사가 여기까지 왔다!”
“어찌합니까? 대장!”
“화, 활을 꺼내라! 대형을 유지하고 흩어지지 마! 동시에 화살을 쏘아 올릴 것이다. 창공이라는 것을 염두하여 빈틈없이 쏘아내라! 올려붙여!”
마법사! 마법사가 후미까지 들이닥쳤다는 게 알려지면서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안은 그저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기 위해 하늘을 날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이안 님. 화살이 쏘아질 것 같습니다.”
“그래.”
꽈아악!
피잉! 핑!
병사들은 있는 힘껏 활시위를 당겨 이안 부근을 조준했다. 단번에 맞춘다기 보다, 물량으로 밀어붙여 쫓아내거나 견제한다는 느낌이 강한 대응이다.
지이잉. 지잉.
“이안 님!”
화살이 몰려들자, 이안은 가볍게 손짓하여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단 한번의 손짓으로 말이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바닥에 술식을 적어놓고 계산해가며 세워두는 벽을, 이안은 그저 허공에 선 채로 파리 쫓듯 창조해냈다.
티잉! 팅!
촉이 이드갈로 된 화살이 비처럼 쏟아진다. 그럴수록 이안의 보호막에는 금이 갔고, 그러하면 이안은 다시금 재빠르게 새로운 보호막을 생성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이안 님?”
“혹여나 눈먼 화살에 맞게 되면 곤란하겠지.”
전체적인 모습을 보았으니 이제 물러나자는 고갯짓이었다.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쉬이익!
합성 마물의 혀가 화살을 헤치고 이안 쪽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놀란 마법사가 마력구를 터트리며 저지했지만, 그것은 주저하지 않고 계속해서 솟아올랐다.
“이안 님. 위험합니다. 베릭과 아코렐라 대장이 있는 쪽으로 가시지요.”
“잠깐.”
마법사가 재촉하였지만, 이안은 어쩐지 인상만 찌푸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화살이 계속 날아오며 그의 보호막을 흔드는데도 말이다.
‘뭐지?’
움직임은 그저 공격하는 척만 하되,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는 천천히 아래를 살펴보았고, 이내 의아한 자를 마주했다.
무기를 든 채 연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자들 사이로, 손을 번쩍 든 누군가가 가만히 서 있는 게다. 그의 손에는 목걸이가 칭칭 감겨있었는데, 손목에서 붉은색 보석이 달랑거렸다.
“이안 님?”
“아, 이런.”
“이안 님!”
지이잉! 지잉!
이안은 손 뻗은 자 쪽으로 내려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화살의 위협이 커졌으나, 개의치 않은 모습이다. 계속해서 생성되고 부서지는 보호막의 수호를 받으며, 그는 보석 든 자에게 재빨리 접근했다.
“마법사가 가까이 온다! 기회다!”
“놓치지 마라!”
“대장님. 마법사가 사령술사를 알아본 것 같습니다!”
“뭐? 대체 어떻게?”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령술사를 지켜라!”
장교들은 이안이 사령술사를 죽이려 한다 오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죽으면 합성 마물 따위는 썩어버린 거죽에 불과했으니까.
새로운 명령에 병사들이 사령술사를 둘러싸고 이내 엎어지며 그를 온몸으로 막아섰다. 그 틈으로 여전히 보석을 보이고 있는 사령술사의 손.
“뭐 하십니까, 아래로 숨으십시오!”
“몸을 숨겨!”
하지만 그는 꼿꼿했다. 넘어지며 시야가 가려져도 보석만큼은 보이게 하겠노라는 의지가 굳건했다.
수 미터에 달할 정도로 다가온 이안. 이제는 궁수들뿐만 아니라 보병들까지 검과 창을 든 채 이안에게 덤벼들었다. 마법사가 호위하듯 계속해서 쳐냈지만, 마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안 님! 올라오십시-”
지이잉. 지잉.
콰아앙! 쾅!
「회록(回祿)」.
순간, 이안의 등에서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불길. 그것은 곧 거대한 여인의 형체가 되어 온몸을 기지개 켜듯 비틀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의 기운과 달리, 타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저 열기에 타버릴 것만 같은 인간의 두려움이 반사적으로 물러서게 할 뿐.
화염 형상의 인간은 바람과 어울리듯이 휘몰아쳐 이안 주위로 공간을 만들었다.
“으아아악!”
“물러서! 물러서!”
“불입니다! 불!”
정신 착란이라도 일으키는 걸까. 몇몇 병사들은 멀쩡한 제 손을 부여잡으며 뒹굴었고, 또 몇몇은 그런 자들을 구하기 위해 흙 따위를 퍼서 던져댔다.
바람과 함께 화르륵 타오르는 환영(幻影)의 불길. 마법사는 넋이 나가서 멍하니 이안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본 겐가? 보호막까지는 그렇다 쳐도, 어찌하여 저런 고급 마법을 일순간에 발동하여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마법사의 맹세를 세웠던 대마법사가 저런 경지라고 하던데, 정녕 이안이 자신과 같은 시간선을 걷고 있는 게 맞나?
타앗!
이안이 허공에서 보석을 낚아채듯, 남자의 손목을 잡아냈다. 병사들이 매달리며 저지하려 하였으나, 중력이 없는 것과 같이 가뿐하게 떠오르는 자를 어찌 막겠나?
이안은 보석을 가까이서 확인한 다음, 선언하듯 크게 일렀다.
“사령술사를 포로로 잡았다. 교섭을 원한다면 즉시 전투를 멈추고 소강상태에 돌입하라. 그렇지 않으면 남은 사령술사들도 모조리 찾아내어, 그들을 죽일 것이다.”
이안이 사라지는 방향 쪽으로 합성 마물 한 마리가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거리가 너무 멀어졌는지, 멀뚱히 서서는 주인 잃은 개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게 아닌가. 병사들이 밀려고 해도 꿈쩍하지 않은 채, 그대로 멈춰버렸다. 진정으로 죽은 것으로 돌아온 게라.
쉬이익.
“이안 님! 사, 사령술사 맞습니까? 데려오시면 어떡해요? 바로 죽이시지요!”
마법사가 쫄래쫄래 이안을 따라 나르며 소리쳤으나, 이안은 고개를 내려 남자와 눈을 마주칠 뿐이다.
푸른 머리칼을 지닌, 틀림없는 아스타나인의 특색.
그리고-
“하샤, 못 본 사이에 많이 변했구나.”
브라츠 가문의 브로치를 제련하여 지닌 자.
“오랜만이오. 이안 경.”
하샤였다. 소수민족의 계승민으로 버고스에 참전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터. 하샤는 자신이 곤란해지는 것을 우려한 이안의 행동임을 알아챘다.
“언제나 도움만 받는구려.”
“걱정 말거라. 이제는 나도 받을 요령이니.”
클리포포드와 바리엘이 모르는 버고스의 속내 그리고 소수민족까지 동원된 연유. 그 모든 것을 하샤가 알려줄 거라 이안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