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5
제365화. 균열 분배
부우우- 부우-
왼쪽과 오른쪽. 퇴각을 알리는 나팔이 동시에 울렸다.
버고스 측에서는 사령술사의 신분 노출 및 마법사의 개입으로 인하여 전세에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고, 클리포포드 측에서는 노아 왕자의 무사 귀환을 확인하였으니 다시금 장벽으로 돌아와 수비를 견고히 하라는 의미였다.
서로의 가슴팍과 등에 검을 밀어 넣던 병사들이 일순 멈칫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각자의 진영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에도 서로를 끝까지 지켜보며 뒷걸음질 쳤다.
발치에 걸리는 수많은 시체.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기에는 오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시체, 피 냄새, 나팔 소리, 씁쓸한 흙과 먼지의 맛.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깨닫지 못한 아릿한 상처의 아픔.
“퇴각하라! 퇴각하라!”
보통은 전세가 기운 쪽이 퇴각하여 상대편이 그 뒤를 쫓는 게 일반적이었다. 도망가는 자를 완전히 짓밟아 승기를 잡아 흔드는 것만이 전쟁의 끝을 보는 방법이니까.
“하아, 하아…….”
“돌아가자! 되돌아가!”
“부축, 부축을 좀 해줘!”
“으어어…. 나, 나도…….”
“부상자를 도와라! 살아남은 자를 살펴!”
기이했다. 나팔 소리에 서로 죽일 듯이 덤벼들다가도 다시금 들려오는 신호에 이제는 등을 맞대고 각국의 부상자를 가려내기 시작했다.
터덜터덜, 멀쩡한 자 하나 없이 진영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만큼 모순되는 게 세상에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땅거미가 완전히 져버리면서 그 모습조차 어둠에 가라앉았다.
쉬이익!
“아니, 이거 놔봐, 아직 한 마리 남았어!”
“진짜 놔? 여기서?”
“너 솔직히 말해봐. 나 떨어트려서 죽이고 싶지?”
“놔달라고 한 건 너야, 베릭.”
마법사들은 이안의 명령대로 베릭을 잡아채서 장벽으로 끌고 갔다.
아코렐라와 그의 부하도 마찬가지. 장벽 문이 활짝 열리고, 병사들이 되돌아오는 길을 따라 하늘을 날았다. 이내, 모두가 장벽 위, 전술실에 모일 수 있었으니.
“냄새! 미친!”
“이게 마물 쪼가리란 말이지. 마력봉인석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지 않아? 사체에도 남아있는 마물의 능력치가 어디까지고, 거기에 반응하는 제각각의 마력석을 분류, 구분하면 앞으로-”
아코렐라가 티에페의 잘린 혀를 든 채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으나, 다들 코를 부여잡은 채 인상만 찌푸릴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대장한테, 그것도 아코렐라 대장에게 섣불리 대들 수 있는 마법사가 있을 리 없다.
‘이안 님 언제 오시지?’
그저 이안이 서둘러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
염원이 닿았을까. 이안은 파란 머리의 사내와 함께 클리포포드 장벽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가 흠칫했다. 옷이 버고스 병사의 것 아닌가. 놀란 경비들이 검을 겨누며 경계했으나, 이안이 손짓으로 물렸다.
“되었다. 이자는 나의 포로다.”
“포, 포로라니요. 버고스와 클리포포드 전쟁에서 어찌 바리엘의 포로라 하십니까. 그, 그자는 누구입니까? 장교직은 아닌 것 같은데…….”
경비가 마법사들을 힐끔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마법사들조차 이안이 데려온 자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다. 베릭은 사내에게 가까이 다가가 코를 킁킁거렸다.
“썩은 내가 나는디.”
“베릭, 여전하구려.”
“너, 나 알아?”
푸른 머리칼에 살짝 뾰족한 귀. 베릭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낯익은 모습을 떠올리고자 노력했다. 하샤가 소리 없이 ‘앙’ 하며 강아지 흉내를 내자, 베릭이 인상을 찡그렸다.
“귀여운 척하지마. 나 아직 속 안 좋으니까.”
“…나 하샤일세.”
“…하샤?”
“그렇소. 하샤.”
“…하샤!”
어디서 봤다고 했더니, 아스타나인의 외형이었구나! 하샤가 할머니와 함께 있던 사진을 보았던 게 번쩍하고 떠올랐다. 베릭은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하샤를 빙그르르 돌려댔다.
“뭐여, 너 어떻게 사람 됐어?”
“나는 원래 사람이었느니라.”
“아니, 개였잖아. 복슬복슬, 흰색 개.”
“크흠, 저기 이안 님?”
알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가자, 마법사들이 슬쩍 손을 들었다. 자신들도 대화의 흐름에 끼고 싶다는 걸 알린 게다.
클리포포드군 장교들도 마찬가지. 갑작스레 포로를 한 명 데리고 왔는데, 그자와 아는 눈치이다 보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가늠할 수가 없다.
그때였다.
“왕자님이 귀환하셨습니다!”
노아 왕자가 살아 돌아왔다는 전언.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틀었고, 이안은 잘되었다는 듯 웃었다.
“왕자께서 오셨으니, 다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겠군. 모두 안으로 드시게.”
“예, 그러지요.”
“경계를 계속 강화하고, 상대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바로 보고하라.”
“들어갑시다, 들어가요.”
“아코렐라.”
“넹?”
전술실로 들어서려던 아코렐라를 이안이 우아한 손짓으로 막아섰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잘린 티에페의 혀를 쳐다봤다. 그것 좀 저리 치우라는 게다.
아코렐라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부하에게 사체 덩이를 넘겨주었고, 손에 묻은 오물 따위를 베릭 등에 슥슥 닦으며 능청스레 들어섰다.
“자자, 우리 똥강아지, 들어가자.”
“등? 방금 뭐 닦았지?”
“사체 안에서 구르다 온 녀석이 뭘 그렇게 따져? 티 도 안 난다. 가자!”
이안과 마법사들, 클리포포드군의 참모, 장교들, 그리고 이내 노아 왕자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전투가 잠시 멈춘 지금. 버고스 측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으리라.
* * *
“그러니까 이쪽이 아스타나의 계승인이시라고? 그, 이안 님이 작위 받으러 중앙으로 올 때 만났던 지인?”
이안과 베릭 그리고 하샤의 관계를 전해 들은 자들이 놀라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카렌나에서 만났던 작은 인연이 이곳 클리포포드의 전장까지 이어져 머리를 맞대고 있었으니.
‘웨슬리 전 장관은 금언(禁言)이다.’
이안이 눈짓으로 마법사들을 속단했다. 바리엘의 치부를 굳이 클리포포드 쪽에 공식적으로 알릴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녀가 죽어가며 게일에게 저주를 남겼다는 건 암암리에 가이아 전체로 퍼져나갔지만 말이다.
“그래서 모종의 사건으로 개의 몸이 되었다가, 아스타나로 돌아가서 제 몸을 찾은 겁니까? 거참, 세상은 생각보다 너무 깊고 넓습니다.”
장군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마물이니 마법이니, 알고는 있었지만 클리포포드에서는 쉬이 접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자니 인지 부조화가 오는 것만 같다.
“제 몸을 찾았다기보다, 사람의 몸을 빌리는 법을 찾은 게지요. 이 몸은 제 사촌의 몸입니다. 병으로 운명을 하여, 제가 잠시 빌리고 있는 게지요.”
“그러면 너도 시간 지나면 썩어?”
“…베릭은 정말 변한 게 없구려. 그렇다.”
“그래도 몸 계속 바꿔가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잖아. 그거는 좋네. 죽어도 죽지 않는 거.”
베릭이 그리 말하자 아코렐라가 그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생각이 짧으니 볼이라도 길어지라면서.
“너는 죽지 않는 게 좋다고 봐?”
“싸을 때 안 주그면 내가 다 이기는 그라고! 아악!”
“다 죽고 너 혼자 남으면 뭐 할래? 응? 고기 혼자 다 처먹을래?”
“아아악! 아프다고! 해보자는 거여?”
“물 한 방울조차 완벽한 구조를 지니고 굴러가는 게 이 자연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이 딱 알맞게 새겨져 있는데, 그걸 넘어가면 행복하겠어?”
하샤는 허둥지둥 아코렐라와 베릭을 말려댔고, 이내 소리쳤다.
“아스타나인의 수명은 인간의 세 배에 달하오! 길긴 하지만 몸을 옮겨갈 때마다 영혼이 갉아지는 게 느껴져서, 아마 몇 번 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요? 궁금하네. 그거 상쇄할 마력석 같은 건 아스타나에 없나?”
“없습니다. 우리는 사령술을 쓰는 자들이오.”
쿵쿵.
클리포포드의 장군이 조심스럽게 테이블을 두드리며 자중하라 일렀다. 귀환한 노아가 아까부터 침묵을 유지한 채 낯을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여 명에 가까운 병사들을 데리고 나가서 돌아온 것은 소수였으니, 지도자로서의 그 참담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크흠. 아무튼 아스타나 출신의 사령술사 하샤. 버고스 측에 가담하긴 했지만 이안 경과 연이 있으니 이제는 우리 쪽에 협조할 것이라 여겨도 되겠습니까?”
장군의 물음에 하샤가 잠시 멈칫거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그 침묵을 이기지 못한 노아가 갑자기 격분하여 하샤의 목덜미를 잡아 끌었다.
“대답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네놈을 벨 것이라. 사령술사들 때문에 우리 쪽의 피해가 얼마나 되는 줄 아는가? 백각은? 백각도 너희들이 버고스 측에 다루는 법을 일러준 것이지? 말해!”
“왕자님, 진정하십시오!”
“아이고, 왜 이래! 하샤 목덜미 또 뜯기겠네!”
“클리포포드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당장 너를 죽이고, 아스타나 또한-”
“노아 왕자.”
타악.
이안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주 작은 손짓이었고 나지막한 부름이었지만, 전술실 분위기를 진정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메이 사절 때문에 그렇습니까?”
소수 정예를 비롯한 메이의 죽음. 그 합성 마물을 직접 움직인 것이 하샤였으니, 당연지사 불 같은 반응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도, 노아는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메이는, 하아.”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아직 모릅니다.”
“앞으로는 마물에, 뒤로는 병사로 둘러싸였다.”
“시체를 보기 전까지는 살아있다 여기십시오. 그것이 전쟁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자들이 버티는 힘입니다. 왕자님께서는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수밖에 없습니다.”
노아는 하샤의 목덜미를 풀어주며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우는 것도 아니고, 분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차분하게, 풍랑처럼 이는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는 게다.
“왕께서 말씀하시지 않더이까?”
“…무엇을.”
“왕자님이 세상의 중심이라고요. 메이 사절이 죽었다 생각하면, 세상 모두가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노아가 놀란 듯 눈을 잠시 크게 떴다.
왕실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저것은 마치 가이아 대륙 모든 것을 관장하는 황제의 마음가짐과 같지 않나.
황제를 모시는 자라 그런가? 제국과 왕국의 차이가 저런 것인가? 노아가 잠시 멈칫거리자, 하샤가 내막을 알렸다.
“버고스 왕이 북쪽 지역의 소수민족 계승자들에게 제안했소. 클리포포드와 전쟁을 일으킬 것인데, 거기에 응한다면 부족 내의 권력 다툼과 승계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다는 제안이었지.”
북쪽은 말 그대로 혼란의 시대였다.
아스타나 안에서도 몇 개의 부족이 끝없이 분쟁 중이었고, 그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하고 강력한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샤로서는 거절할 필요가 없는, 아주 적당한 제안이었던 게다.
“그래서 합성 마물을 만들고, 이리 동원했다?”
“맹세하건대, 바리엘이 있는 줄 몰랐소. 이안 경.”
“너는 지금 클리포포드에 사죄해야 마땅하다!”
“워워, 다들 진정 좀. 머리가 울리면 나 또 속 울렁거려.”
노아가 벌떡 일어서자, 베릭이 헛구역질 하는 척하며 분위기를 상쇄시켰다.
하샤는 입술을 짓이겼다. 아스타나의 이익을 위하여 클리포포드를 위협한 것은 오롯이 자신의 의지였고, 추종자들의 의지였으며, 나아가 아스타나 전체의 의지가 될 터였다. 그러니 어찌 사죄를 하겠는가? 아무리 상대가 일국의 왕자라 할지라도, 하샤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하샤. 되었다. 여기서 사정 없는 자는 없어. 대신에 이제 그대가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싶은데.”
이안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상 바리엘에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타국인 클리포포드의 문제였으니까 적당히 조율하는 편이 효율적이고 이득일 것이라.
“물론. 내가 이안 경에게 신세 진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혼을 모두 바쳐도 모자라지.”
“나는? 하샤, 나도 있어!”
“베릭 자네는, 음. 그래 고마웠어.”
하샤는 슬쩍 웃으며 자신의 목에 걸린 것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다몬 왕이 클리포포드를 노리는 것에 수많은 이유가 있는 것과 같이, 북쪽의 소수민족이 참전한 데에도 못지않게 많은 이유가 있소.”
달그락.
브라츠의 붉은색 브로치. 목걸이로 위장한 그것을 보고 있자니 예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다.
“이유? 무엇이지?”
“북쪽은 현재 마물이 넘쳐나고, 그들의 근원이라 불리는 ‘균열’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 우리가 땅을 버리지 않는 이상, 그곳에 나타나는 마물들은 사라지지 않을 터.”
“그런데?”
“다몬 왕이 일러주었소. 클리포포드에도 비슷한 균열이 있으니, 그쪽을 개발하여 마력이상반응을 응집시킨다면, 북쪽의 균열 사태가 조금 나아질 수 있다고.”
노아 왕자와 클리포포드 장군의 얼굴이 희게 변했다. 그러니까 지금, 대륙 북쪽의 혼돈을 클리포포드로 분산시키겠다는 것과 같은 말로 들리는데?
“자세한 것은 이걸 들어보시면 되오. 이안 경.”
“아아. 그래. 이것이 생각보다 요긴하기는 하지.”
브라츠 브로치에는 녹음 기능이 달려있었다. 이안은 가볍게 마력을 주입했고, 보석은 붉게 달아올랐다.
이어서, 다몬 왕이 소수민족 계승자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