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6
제366화. 술에 물을 타다
“전하.”
다몬은 자신을 부르는 티모시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펜을 멈추는 것으로 반응할 뿐이다.
시간을 보아하니, 북쪽의 소수민족 계승자들이 모두 모인 것이라. 사이가 좋지 않은 자들이 한 방에서 대면하고 있을 터.
서둘러 가는 게 좋을까, 아니면 갈등이 고조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까. 다몬은 옷깃을 바로잡으며 시종들을 불렀다. 최대한 천천히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다들 모인 것인가?”
“열다섯 개의 부족 중 열 곳에서 응하였고, 모인 자들은 도합 열일곱 명입니다.”
“나머지 다섯 부족은 뭐지?”
입매는 비틀려 웃는 중이나, 눈에는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 고작 소수민족 주제에, 버고스에서 청하는 제안을 거절하다니. 단단히 그 존재를 알아두고 넘어가리라.
티모시는 서류를 넘기며 조심스럽게 일렀다.
“그것이, 카트리카족(族)을 비롯하여 ‘균열’ 인근에 서식하는 자들이 대거 불참했습니다. 요즘 들어 마물의 습격 및 범람이 급격하게 늘어서 인력을 차출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그럴수록 와야 하거늘.”
“재차 서신을 보내볼까요?”
다몬 왕이 인상을 찌푸리자, 옷깃을 정리하던 시종이 흠칫거리며 긴장했다. 왕의 기분이 상당히 저조해 보이니, 이럴 때 흠이라도 잡히면 죽음이라.
“되었다. 기회는 한 번밖에 없어서 기회인 것이다.”
“아, 그리고 제 사견입니다만 아무래도 균열 인근 지역에는 다른 곳보다 내란 정도가 덜합니다. 그래서 외세의 힘을 받았다가는 되려 추종자들의 신임을 잃을 수 있기에 그러지 않았나…….”
“아악!”
다몬은 시종의 손을 잡아 비틀며 짜증스럽게 거울을 노려봤다. 그 시선의 끝은 티모시에게 닿아있었다.
“알고 싶지 않아. 티모시.”
“…송구합니다. 전하.”
티모시가 납작 엎드리며 사죄했다. 평소에도 신경이 날 선 분이긴 하셨지만, 요즘 들어 특히 더더욱 그러하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였을까? 그랬다면 전하의 성격상 이리 에둘러 화를 내진 않았을 터인데. 분명 심기를 거스르는 무언가가 있는 게라.
티모시는 손목을 붙잡은 채 울먹이는 시종에게 나가라 눈짓하고는 왕을 모셨다.
“응접실로 가시지요. 전하. 가시는 동안 소수민족들의 특이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아스타나입니다. 아스타나는 북쪽 지역 중에서도 가운데 위치하여 그 혼란의 깊이가 제일 심합니다.”
“아스타나. 술사들의 나라라 들었는데.”
“예. 맞습니다. 현재는 사령술을 사용하는 부족과 심령술을 사용하는 부족이 크게 대립 중에 있다고 합니다. 버고스에 온 것은 사령술을 계승하는 자입니다. 이름은 하샤, 나이는 확실치 않지만 서른 정도인 것 같고-”
다몬이 걸음을 멈추고 눈썹을 찌푸렸다.
“서른? 아스타나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갓 난 놈이 아닌가. 그런 게 계승자라고?”
“원래는 계파 간의 다툼에서 밀려 거의 사멸하다시피 했답니다. 사령술의 지도자였던 노인이 아이를 데리고 잠적할 정도였다 하니까요. 사실 이건 대외적인 소문이고, 바리엘에 연구 초청받아 갔다가 행방불명 됐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살아 돌아와 세력을 정리하고 있다?”
“예. 그렇습니다.”
“실력은 예사롭지 않나 보군. 지도자였던 노인과 혈육 관계였나?”
“손자였다고 합니다.”
다몬은 티모시의 보고를 들으며 이상하게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특별한 내용이 없는데 말이다. 그들의 행적에 바리엘이 끼어있어서 그런 것일까?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그놈의 대제국. 다몬은 혀를 쯧, 차며 이어서 말하라 일렀다.
그렇게 종이가 한 장, 두장 넘어갈 때쯤 도착한 응접실. 시종들이 문을 좌우로 젖히며 그를 맞이했다.
“다몬 전하 드십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마자 낯선 이국의 향이 훅 끼쳐왔다.
타원형의 기다란 원탁에 모여 앉아있는 자들. 제각각의 옷차림과 생김새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까지 개성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가이아의 북쪽이라는 같은 지역에 사는 자들이거늘, 달라도 저리 다를 수가 있나.
“앉으시오.”
다몬 왕은 그들에게 인사받은 다음, 가볍게 손짓했다. 눈빛에 숨길 수 없는 분노와 흥분이 서려있다. 다몬이 오기 전, 아마 저들끼리 한바탕한 것이 분명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였소.”
“아닙니다. 전하, 이리 불러주시니 영광이지요.”
“예. 버고스가 제 기대만큼이나 멋진 나라입니다. 마쿤족이 길만 터 주었다면 더 일찍 도착하여 돌아볼 수 있었을 터인데요.”
“그거 죄송하군요. 마쿤족이 들어서면 썩은 마물 내가 난다는 항의 때문에 허가하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시는 길은 어찌, 한번 힘 써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물 고기 먹는다고 모욕하는 것이오?”
“그럴 리가요. 괜히 확대 해석하시네요.”
“어허! 다들 무엇하십니까! 다몬 전하를 앞에 두고!”
쾅쾅쾅!
다몬은 흥미롭게 그들의 말싸움을 관전했다. 아등바등, 그 작은 땅을 차지하고자 저리 날 세우는 것들이 참으로 가소롭고 우스웠으니.
저들의 분란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버고스의 힘과 도움을 원할 터. 이는 곧 이득인지라 굳이 말릴 기미 없이 웃음만 짓고 있었다.
“괜찮소. 여기 모인 자들의 수많은 다른 문화가 있음을 내 알고 있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다몬이 손짓하자 시종들이 그들 앞에 와인 한 잔씩 내밀었다. 무슨 술인지도 모를 검붉은 액체. 암살에 워낙 예민한 자들이라 딱히 달가워하는 낯이 아니었다.
“다만 잡담보다는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
“각 부족의 도움을 원하신다고…….”
“버고스는 조만간 클리포포드에게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그때 그대들이 작은 힘을 보태주었으면 하는데.”
전쟁? 그것도 클리포포드와?
그들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해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눈치로 보아, 그 누구도 미리 알던 자가 없는 게라.
“전하. 송구하오나, 클리포포드와의 전쟁은 조금 민감한 사안입니다. 이리 갑작스레 전하시면…….”
“문제 있나?”
문제 있지. 우선 버고스 만큼의 의존도는 아니지만, 클리포포드와 교류하는 부족이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국 내, 북쪽 대륙 내의 전쟁에도 세력 소모가 컸다.
그런데 타국의 전쟁에 참전하라니. 이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버고스는 그대들의 전력을 원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의 능력을 원해. 병사를 동원하고 할 필요 없네. 원하지도 않고.”
그거 해봤자 얼마나 되겠나? 소수민족들이거늘.
“전쟁에 술사를 동원하시겠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다. 특히 사령술사들의 힘을 원해.”
“음…….”
다들 머뭇머뭇, 쉽사리 도움을 주겠노라 결정하지 못했다. 자국의 이념이 섞여든 전쟁이 아닌지라, 혹여 버고스가 지기라도 하면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지는 것이다.
지금은 버고스와 가까우니 이리 영향력이 있지. 하지만 혹 클리포포드가 승리하여 북쪽까지 기세를 뻗는다면? 지금 참전한 소수민족들을 가만둘까? 한 번의 선택에 꽤나 먼 미래까지 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망설이는 침묵. 다몬은 궐련을 태우며 가볍게 웃었다.
“분위기가 왜 이러는가?”
“전하, 이것은 사실 섣불리…….”
“승리할 것이다.”
“예?”
“클리포포드와의 전쟁에서 버고스는 무조건 승리할 것이다. 그 이유를 듣고 싶은 자는 와인을 마셔라. 그리하면 내 달콤한 비법을 알려주겠다.”
한껏 당당하고 흔들림 없는 단언.
“또한, 전쟁에서 얻은 과실은 더더욱 달겠지.”
다몬이 먼저 잔을 들었다.
몇몇은 망설임 없이 함께 들어 올리며 뜻을 같이하겠다는 걸 보였다. 내란으로 지지 기반이 특히나 약한 부족들이었다. 그들에겐 버고스의 도움이 필수적인 상황.
그러자 다른 자들도 웅성거리며 천천히 잔을 들었다. 타국이 안정되어 강병(强兵)해진다면, 그것은 곧 자신들의 위협이다. 혼돈의 평준화를 위하여, 나아가 안정의 평준화를 위하여. 누군가 버고스와 손을 잡는다면 그들 역시 선택지가 따로 없었다.
스윽.
이내 모두가 잔을 들었다. 허공에서 소리 없이 부딪히는 건배. 그들은 한 번의 목 넘김으로 잔을 비웠고, 곧 만족스러운 다몬의 웃음이 들려왔다.
“좋아, 좋아. 우리 모두 피를 나눠 마셨다고 생각하자고. 형제와 다름 없어졌으니, 내 그대들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도록 하지.”
형제 같은 소리. 그들은 버고스의 왕이 저들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북쪽에서 저들이 마물들을 막아서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다몬 왕의 첫 번째 영토 확장은 클리포포드가 아니라 북쪽으로 향했을 것이라.
“최근 북쪽의 균열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예. 해가 지날수록 마물 수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 피해도 점점 심각해지고요.”
“그 균열의 힘을 클리포포드 쪽으로 옮길 것이다.”
“……!?”
뜻밖의 말에 다들 놀라서 멈칫거렸다.
균열의 힘을 옮기다니?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가이아 대륙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곳은 북쪽에만 한정된 것 아니었습니까?”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요. 클리포포드라니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시종들이 잔에 다시금 술을 채워줬다. 다몬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그대로 테이블에 술을 엎어버렸다. 촤아악, 붉은 액체가 퍼지다가 멈춰버렸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자들과 같이.
“우리가 딛고 있는 이 가이아 대륙 아래에는 미지의 세계가 형성되어 있다. 응축된 힘이 팽창하다 결국 대지를 가르고 나오면서 마물을 생성하고, 자연을 헤치며, 우리들의 생존을 위협하지. 이 술이 그 힘이라 치자고. 응?”
그는 천천히 반대쪽 테이블로 걸어갔다. 긴장으로 점철된 자들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구르며 그 뒤를 쫓았다.
“그런데 반대쪽에서도 틈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북쪽으로만 흐르던 길에 다른 길이 트이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어서 다몬은 물을 쏟아냈다. 천천히 퍼지던 그것은 술과 만나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 투명했던 물에 색이 들고, 그와 만나는 지점의 술 색은 옅어졌다.
“클리포포드에 곧 대지진이 있을 것이다. 그 틈을 노린다면 북쪽에서 흐르던 피가 클리포포드 쪽으로 움직이겠지. 여러모로 그대들에게 이득 아닌가?”
이득이라고 칭할 정도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맞서왔던 마물과의 전쟁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자신의 후손들에게는 새 생명의 땅을 넘겨줄 기회와 마찬가지다.
“어,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방금 내가 한 것과 같이하면 된다. 술은 아니지만 비슷한 형질의 것을 흘려주면 스며들게 되어 있으니. 사실 자세한 것은 그대들이 알 필요 없지.”
하샤는 테이블 밑으로 뚝뚝 흐르는 물을 쳐다봤다. 북쪽에서 마물이 계속 범람하게 되면 결국에는 어느 순간 버고스에도 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 전에 클리포포드 쪽으로 힘을 넘기고, 그쪽 땅을 차지하여 관리하며, 소수민족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속셈이다.
모두가 이득이지만, 하샤는 어쩐지 내키지가 않았다. 흥건한 테이블이 주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았기에.
“그럼, 다시 한잔할까?”
다몬은 즐겁다는 듯 빈 잔을 들어 올렸고, 가까이 있던 자가 급하게 술을 채워줬다.
하샤는 술을 마시면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
* * *
“예. 잘 들었고요. 하급 마력석인가요? 소리가 좀 빠지네. 보자, 이게 뭔지…….”
마력석을 이리저리 살피는 아코렐라와 달리, 노아는 경악한 것처럼 제 입을 틀어막았다. 클리포포드의 장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기름진 땅을 마물로 짓이기려 하다니.
“…전쟁이다. 이는 돌아갈 수 없는 전쟁이야.”
“왕자님. 버고스 측에 지진을 예상하는 기술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당장 전하께 보고하겠습니다.”
타닥타닥!
마법사들은 노아와 하샤를 번갈아 보며 난처하게 눈을 돌렸다. 클리포포드의 주인과 그걸 망가트리려 한 자의 만남인지라, 영 어색한 분위기를 감출 수 없었다.
“다몬 왕이 말한 비슷한 형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자세히 모르오. 다만 확실한 것은 대지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고-”
“네 이놈!”
“아이고, 왕자님! 이러지 마세요!”
“이제 한편, 응? 한편이라니까요?”
노아가 다시금 하샤의 목덜미를 잡아채자 마법사들이 떼로 달려들어 막아섰다.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대륙의 판도를 바꾸려는 자들의 싸움이 될 터.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다몬도 참 어지간하다.’
전생과 다른 버고스의 미래를 그린다는 것이 고작 이런 그림인가? 회귀하였으니 대지진에 대한 정보는 확실한 것 같은데…….
“간과했습니다.”
타악.
“무어라?”
“다몬 왕이 간과하였다고요. 길을 새로이 트면 분명 원래의 피는 옅어질 것이지만-”
북쪽의 마물은 조금 줄어들겠지. 하지만 가이아 전체의 마물 피해를 따지자면 그 양이 늘어난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물과 섞인 만큼 넘쳐나게 됩니다.”
이드갈로 그걸 제어할 수 있다고 보나? 이드갈, 새로운 균열, 다몬…….
“아.”
이안은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쩌면 러더포드가 원하는 것이 이것일 수도 있겠다. 마물의 범람으로 이드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러더포드가 주도하는 가이아.
“이안 님. 다몬 왕이 말한 ‘비슷한 형질’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에 대한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이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과 비슷한 형질.
“마력을 쓰고 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백각이 그러하고, 합성 마물이 그러하며-”
마법사와 마검사.
“우리가 그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