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8
제368화. 각자의 자리로
콰앙!
버고스 장군은 테이블을 내려쳤다.
아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고, 장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클리포포드의 장벽을 허물었을 때, 아니, 바키 마을을 비롯한 두 개의 마을을 격파하여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금방이라도 승리를 거머쥔 것처럼 기세가 강건했다.
하지만 그것은 해와 같이 타오르던 일시의 열기일 뿐이었을까. 밤이 오자마자 그들의 사기(士氣)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계속 보고해.”
“아, 예.”
전면에서 맞붙었던 전투에서는 큰 소득 없이 병사들만 죽어나갔다.
그들은 본국을 떠나와 한정된 전력으로 적진에 와있는 상태였다. 지원군이야 오겠지만 바키 마을 다리가 파괴되었으니, 아마 이쪽으로 당도하기가 쉽지 않을 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장교는 더듬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현재 사령술사들을 모두 대피시켰고, 복장을 바꾸도록 조치했습니다. 마법사가 어떻게 구분한 것인지는 파악되지 않습니다. 부족 간의 문화적 차이가 커서, 특별히 공통되는 특이점도 보이지 않았고요. 아무래도 마법을 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령술사들의 힘은 마력과 다르다 하지 않습니까. 그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사령술사를 단번에 채갈 수 있었던 연유를 감히 짐작하지 못하는 게다. 변경 출신의 서자 마법사가 북쪽의 소수민족과 안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자가 들고 있던 것이 브라츠의 브로치라는 것을.
“하아.”
장군이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사령술사를 죄다 진영 밖으로 빼냈으니, 전략을 다시 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령술사 한 명의 손실은 곧 합성 마물 하나의 손실. 이미 마법사 일행의 미친놈들 때문에 네 마리가 구실을 못 하고 사그라들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말이지.”
장군이 살벌하게 중얼거리며 장교들을 둘러보자, 그들의 얼굴이 더더욱 굳어졌다. 후미에서 대놓고 치고 빠졌던 노아 왕자조차 놓치지 않았던가?
크고 작은 전투에서 그들이 얻은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도.
“장군님. 날이 밝는 대로 장벽에 진입하는 게 좋겠습니다. 보급 문제도 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유리할 게 없습니다.”
“예. 그건 사실입니다. 마법사의 존재를 직접 눈으로 본 병사들 기세가 확 꺾였으니, 이는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장벽을 성공적으로 허물면, 사기는 다시금 회복될 것입니다.”
“흐음.”
장군은 고민했다. 안 그래도 다몬 왕이 출전 시 전언 내리길, 일정한 날짜에 왕궁 혹은 수도에 들어서 있으라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손을 까딱거리면서 날짜를 헤아렸다. 시간이 별로 없는 탓에 장군의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런데 클리포포드, 아니지, 바리엘 마법사들은 사령술사를 데려가서 어떻게 했을까요?”
“하샤라고 했지. 아스타나 출신.”
“예. 그렇습니다. 그자가 알 만한 중요 정보랄 게 없긴 하지만, 그래도 좀 걱정됩니다. 사령술사들의 인상착의 따위를 넘겼으면 어찌합니까? 술사들은 기운이 비슷하여 저들끼리 알아채는 것에 예민하다고 하던데.”
“되려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술사로 마법사들을 유인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저 저 합성 마물 한 마리가 꿈쩍도 않는 것이 아쉬울 뿐.”
썩은 내를 풀풀 풍기는 게 후미에서 딱 버티고 있으니, 그들의 진영은 가위처럼 좌우로 나뉜 상태였다.
그때, 천막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티모시다.
“장군. 보고할 게 있습니다.”
“티모시 경? 들어오십시오.”
전장에서는 앞서지만, 이토록 중요한 회의에서는 정작 배제되었다. 당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모르겠다만, 전하께서 뜻하는 바가 있으시니 그저 묵묵히 버텨낼 뿐이다. 티모시는 안쪽을 잠깐 훑어본 다음, 고개를 까딱거렸다.
“포로로 잡혀 온 자 말입니다, 신원 확인했습니다. 클리포포드의 사절단 중에 한 명인데, 바리엘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노아 왕자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왕궁의 실세입니다.”
작은 탄식이 터졌다. 그래도 건진 게 있구나 싶은 게다.
사령술사를 빼앗겼지만, 노아 측의 최측근을 포로로 잡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다. 장교들이 화색을 띠며 덧붙였다.
“그래, 어쩐지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했습니다. 그리고 노아 왕자와 함께 소수 정예로 움직였지요. 분명 협상할 가치가 있습니다. 저자와 사령술사를 맞교환하시지요.”
“흐음. 뭐, 얼마나 실세입니까? 사절단이라고 해도 수가 꽤 될 터인데.”
“티모시 경께서 기억하는 정도면 딱 이해하셔야지요. 전하를 모시는 경과 같이, 아주 중요한 존재일 것입니다.”
티모시는 장교들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다몬에게 정말 자신이 중요한 부하가 맞는지, 확신을 담아 긍정할 수 없었기에. 그는 일부러 말을 돌렸다.
“제 생각에는 노아 왕자의 연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리엘에서 봤던 두 사람의 관계가 상당히 친밀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다고 한들, 왕족과 그 부하인데 허물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연인! 아, 좋습니다.”
“재밌군요. 재밌어.”
“추궁은 계속하고 계십니까?”
“예. 그런데 한번 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기개가 상당하여 어지간한 자들은 당해내지 못하니. 장군께서 직접 보시고 어찌할지 판단하시지요. 제 부족한 소견으로는…….”
메이는 만만치 않은 자였다. 그런 자를 살려 보내는 것과 사령술사를 되찾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현 상황에서 이득 될지는 티모시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던 게라.
메이가 무사히 돌아가면 노아 측의 유능한 부하가 복귀함과 동시에 왕자의 정신력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그때 바리엘에 봤을 때, 노아 왕자는 감정 기복이 좀 있고 성격이 예민 혹은 까칠해 보였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메이를 여기서 죽이고 사령술사를 포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사령술사는 어차피 합성 마물 하나만 담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리를 제일 멀리 조종할 수 있는 자입니다. 합성 마물의 힘을 보셨잖아요? 마법사가 개입하는 지금, 저것들이 없으면 필패입니다.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그러니 필히 사령술사를 찾아와야 합니다.”
장교 몇몇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손을 내저었다. 다른 자들도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 같았다. 어차피 죽을 목숨, 사람 하나 살려 보내서 마물의 주도권을 얻는 게 낫다 여기는 것이다.
티모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천막을 걷어주었다. 장군과 장교들이 천천히 입구를 빠져나와 메이가 묶인 곳으로 향했다.
“읍! 읍읍!”
“와, 그만 좀 해라. 어?”
퍼억! 퍼억!
“잡아! 다시 잡아!”
단도로 제 목을 그으려고 하여 손을 묶었고, 혀를 깨물려고 하여 재갈을 물렸다. 하지만 메이는 포기하지 않고 연신 땅바닥에 이마를 찢어대며 죽음을 울부짖었다. 적군에게 포로로 잡혀 클리포포드에 흠을 내어주기보다, 차라리 죽는 걸 선택하겠다는 의지다.
“어허.”
장군은 티모시를 힐끔거리며 혀를 찼다. 티모시의 의중을 바로 알아챈 것이다. 강건해도 저리 강건할 수가 없다.
병사들이 결국 그녀를 나무 말뚝에 묶었고, 메이는 뚝뚝 흘러내리는 핏방울을 내려다보며 한숨 쉬었다. 숨을 자의적으로 멈출 수 있을까. 그리하면 제 속에 담겨 있는 클리포포드의 비밀도 영원히 묻어둘 수 있을까.
제 시체와 함께, 썩어 널브러져 형체 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실히 왕궁 실세가 맞는가 봅니다. 아는 것이 많은 게지요. 고문당하기 전에 자결하려는 속셈입니다.”
장군 가까이 선 장교가 작게 속삭였다.
연신 거친 숨과 흐려지는 시야, 메이는 자갈 틈으로 줄줄 흐르는 것이 제 침인지 피인지 구분하지도 못했다.
“포로로 넘기기 전에 잠시 손을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혹 유용한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장교의 발언에 티모시가 바로 반박했다.
“필시 고문의 흔적이 발견될 겁니다. 혹 정말 노아 왕자의 연인이라면, 상대를 자극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실 거면 차라리 넘기지 말고 우리 쪽에서 마무리하는 게 옳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리고 보십시오. 저자가 고문 좀 한다고 입 열 자처럼 보이십니까? 전장에서 장군과 장교들은 책임자이자, 지도자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포로 교환 교섭은 외교와 많이 닮아있지요. 이쪽에서는 제 의견을 따라주십시오.”
단호했다. 고문할 거면 죽이고, 사령술사를 포기. 아니면 최대한 온전하게 돌려주라는 제안이다.
장군은 수염을 연신 쓸어내리며 고민했다. 가능하다면 고문도 하고, 포로 교환하여 하샤를 찾아오는 게 제일이지만, 티모시의 논리가 마땅했다.
“클리포포드 쪽으로 전언을 보낼 것이다. 전령을 준비하라.”
“예. 장군.”
“그리고 저자의 상처를 최대한 감춰.”
안 그래도 불리한 전세로 일단락된 전투. 괜히 클리포포드를 자극하여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장군의 명령에 다들 고개를 숙이며 흩어졌고, 티모시 또한 그 뒤를 따랐다.
메이는 앞을 왔다 갔다 하는 환영에 인상을 찌푸렸다. 누군가 시원한 헝겊으로 그녀의 이마를 문질러주는 것 같았다.
“노아…….”
메이는 작게 중얼거리며 정신을 잃었고, 병사는 방금 그녀가 무얼 말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곧이어 전령이 버고스 국기를 흔들며 장벽 쪽으로 내달렸다.
* * *
장벽 위로 횃불이 하나씩 번져갔다.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붉은색 벽돌이 조금씩 모습을 보였고, 이내 그 옆에서 활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위엄도 밝혀졌다.
클리포포드의 깃대가 크게 휘날리자, 장벽 문이 열렸다. 장벽 앞을 지키고 있던 클리포포드 병사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텄고, 이내 정문을 나온 자는 버고스 측 병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타닥타닥.
말 끄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포로 교환은 일종의 불가침 상태나 마찬가지. 여기서 기습을 한다면 대외적으로 불명예와 비난을 면치 못하겠지만, 승리에 그런 것이 중요하던가? 꽤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인지라, 다들 주의하며 포로 교환을 진행했다.
“나는 버고스의 제1대대장 라칼이다! 클리포포드 측에서는 아스타나 출신의 사령술사, 하샤의 모습을 보여라! 여기, 너희들이 원하는 자가 있으니!”
스윽.
그는 횃불을 메이 얼굴 가까이에 가져다 대며 신원에 문제가 없음을 보여줬다.
그러자 클리포포드 쪽에서도 불이 비쳐왔다. 포박당한 하샤가 서 있었다.
“호각이 울리면 동시에 포로를 반대로 걸어가게 하라! 허튼짓을 했다가는 후회할 것이니!”
“닥쳐라. 그건 우리가 할 말이다.”
“하나, 둘, 셋!”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게 해!”
부우우-
아닌 밤중에 울리는 호각.
메이와 하샤가 천천히 걸어서 서로를 지나쳤다. 메이가 클리포포드 측에 닿았을 때는 담요 따위가 덮이며 의사의 진찰이 바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하샤가 도착했을 때는-
“손, 좌우로 벌려.”
혹여 클리포포드 측에서 장치를 해놓았을까 싶어 몸수색이 먼저 이뤄졌다. 그는 하샤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보더니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것은 내가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오. 함께한 다른 자들이 증명할 것이오.”
“흐음.”
몇 번이나 몸수색을 한 그가 고갯짓했다. 병사들이 하샤를 말에 태워 버고스군 진영으로 내달렸고, 대대장 역시 장벽 쪽을 경계하며 천천히 뒷걸음질 했다.
타닥타닥!
급하고, 긴박하며, 서로의 이해 간에 하나의 잡음 없이 이루어진 포로 교환. 하샤는 목걸이를 꽉 쥔 채 속으로 이안의 명령을 떠올렸다.
‘진영 흔들기, 사령술사 위치 확인. 그리고-’
티모시에게, 가족이 죽을 운명이라고 언질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