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7
제37화. 대사막의 배신자
“이랴앗!”
데르가는 말 옆구리를 빠르게 차대며 숲으로 내달렸다. 접경한 대사막 쪽과 정반대인, 메렐로프 영지와 인접한 숲이었다. 이전 세대에 그곳을 선점하기 위해 세워둔 임시훈련장이 있다.
데오가 그곳에서 사병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만 해!’
조사단의 압박으로 저택에 있던 병사들은 소집 해제되었으나, 데오를 중심으로 한 사병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데오오오!”
데르가가 말에서 내려 임시훈련장 쪽으로 내달렸다. 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치자, 그는 곧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주위가 조용했다.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이.
“설마, 설마…….”
최악 다음에도 최악은 남아있는 걸까?
데르가의 머릿속으로 온갖 끔찍한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도망친 집사가 데오에게 전언을 하긴 했을까? 했다 하더라도, 데오가 도망을…….
“백작님!”
그때였다.
훈련장 깃발이 흔들리며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데르가는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들어섰고, 이내 숨어있던 병사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데오!”
“백작님. 괜찮으십니까? 천려족은요?”
원래라면 천려족이 당도하여 조사단을 흔들 때, 후방에서 전력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중앙군과의 전면전은 대항 이상의 의미가 있었기에, 완충작용으로 천려를 중간에 끼우려 한 것이다.
“불발되었다. 녀석들이 배신했어. 서둘러 중앙군이 오기 전에 저택을 탈환하여야 한다. 1황자 마리브 저하의 답장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해.”
변경이라는 이유로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지만, 또 변경이라는 이유로 할 만했다. 브라츠는 다른 영지보다 병사 수가 두세 배는 많았고, 특이한 지형으로 인해 변수가 많았으니까.
그뿐인가?
천려족의 존재로 인해 언제고 전시에 들어설 수 있는 준비성도 철저했다. 갑작스러운 조사단의 습격에도 병사들을 결집할 수 있었던 게 바로 그 증거다.
데르가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제 영지와 병사에 자부심을 느꼈다.
“명 받들겠습니다.”
“중앙군과 달리 조사단의 병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아. 가자. 가서 다 죽여버려. 갈기갈기 찢어 짐승 먹이로 만들 테다.”
데오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언제나 전쟁을 원하는 자는 존재하기 마련. 그리고 지금은 데오가 그러했다.
‘이번 전투에서 이기면, 군 통솔권은 확실히 나에게 오겠군.’
그렇다면 브라츠 영지에서는 데르가 다음으로 권세를 누리게 될 것이다. 첼? 그 덜떨어진 게 후백작이 된다 하여도 이날 데오가 흘린 피와 땀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 역시 밑바닥 출생, 인생의 정점을 눈앞에 둔 사내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가자! 우리의 일상을 되찾으러!”
“우아아아아!”
데오가 소리치자 병사들의 함성이 파도처럼 메아리쳤다. 조용했던 산이 울릴 정도로 거센 기합이다. 산새들이 놀라서 날아올랐고, 그 사이를 거대한 매 한 마리가 유유자적 돌고 있었다.
휘이익.
저 멀리, 길게 이어진 중앙군의 행렬이 매의 눈동자에 담겼다. 수 대째 내려온 브라츠 영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을, 자국끼리의 혈투가 성큼 다가왔다.
그걸 지켜보던 수는 손을 뻗어 매를 받아냈고, 쿠실레의 머리를 대사막 방향으로 고정했다.
* * *
베릭의 몸이 식은땀으로 절어있었다. 노쇠한 의원은 약초를 뭉텅이로 집어서 구멍 뚫린 옆구리에 쑤셔 넣었고, 알 수 없는 검은 물을 계속 입에 흘려 넣었다.
카칸티르는 막사 입구에 기대 그 모습을 보더니만, 넌지시 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한 달?”
“카칸이시여. 천려의 일족이 아닌 자들은 회복력이 낮습니다. 일반인이었다면 아마 즉사했을 터지요. 하나 성깔 까랑까랑한 것으로 보아, 서너 달은 보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너 달이라. 이안 경, 좀 난감하겠군.”
데르가와 중앙군의 전투가 일촉즉발이었다.
이안이 천려족을 등에 업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의 개인적인 전력은 베릭뿐.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마저도 없다면…….
이안은 희미하게 웃으며 베릭의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땀과 모래가 엉켜 엉망이다.
“괜찮습니다.”
“생각이 따로 있는 모양이군”
“베릭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못 일어나면 못 일어나는 대로. 방법은 늘 있지 않겠습니까.”
카칸티르는 밖에서 부르는 네르사른의 목소리에 자리를 떠났다. 의원 역시 계속해서 피에 절은 약초를 갈아대며 베릭을 치료했다. 시간이 갈수록 베릭의 까무잡잡한 피부가 창백해지는 것 같았다.
“잠시만 보고 계시오. 약을 새로 갈아야겠소.”
의원은 이안에게 당부한 다음, 잔해를 잔뜩 이고 밖으로 나갔다. 조용해진 공간. 이안은 숨을 들이쉬며 베릭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잘 될지 모르겠다. 베릭.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전에 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마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상태가 심하지만 분명 도움은 될 것이다. 베릭은 마검사로서의 능력을 스스로 보이지 않았던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가 뚜렷하리라 믿고 싶었다.
지이잉. 지잉.
이안은 마력을 발동했다.
조금씩만 밀어주었던 이전과 달리, 계속해서, 계속해서. 덕분에 숨을 멈추지 않고 계속 내쉬는 기분이었다.
“아…….”
몇 분 지났을까?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 쏟아지고,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베릭은 반응이 없다. 이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손을 떼었다.
차악.
“뭐하시오? 이안 경. 괜찮으시오?”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의원이 멈칫거리며 물었다. 이안은 침대 끄트머리를 지탱하며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괜찮네.”
“왜, 왜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그러하오. 신경 쓰지 마시게.”
“잠시만 기다리면, 내 약초만 갈고 바로 현기증에 좋은 것을 가져오겠소. 어어? 이놈 봐라?”
헝겊을 갈던 의원이 베릭의 얼굴을 보고 멈칫거렸다. 끙끙 앓으며 기절했던 것이, 꽤나 안정적인 숨을 되찾지 않았나. 그가 축축한 약초를 손으로 매만졌다. 피가 훨씬 덜 묻어 나왔다.
“이놈 대체 뭐요?”
“…베릭?”
“이름 말고. 내가 전투를 직접 보지는 못했소만, 다들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던데.”
의원이 중얼거리며 치료를 이어갔다. 대답을 원하는 듯 힐끗거렸으나, 이안은 힘이 쭉 빠지는 탓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카칸?”
카칸티르가 손에 뭔가를 쥔 채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이안의 상태를 보며 의아하게 웃었다.
“이런. 모자라려나?”
“무엇이 말입니까?”
카칸티르는 말없이 둥근 촛대 위에 구룻잎을 올렸다. 바사삭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막사 안을 가득 채웠다. 족장은 잎을 잘 만 다음 베릭의 코에 대주었고, 이내 이안에게도 건넸다.
“천려가 죽음을 피하는 방법일세.”
“베릭에게도 효과가 있을까요?”
“글쎄. 외부인이 피우는 걸 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연회에서 보니까, 반응이 좀 있는 것 같던데.”
고통을 잊게 해주며 온몸의 기운을 단번에 끌어올리는 일족의 비기. 그들은 자체로 강하지만, 구룻잎이 주는 효과를 무시할 순 없었다. 하여, 브라츠와의 무역에서도 구룻잎만큼은 금수 물품으로 지정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걸 외지인에게 나누어주다니.
의미가 남다르고, 감회가 새로웠다.
“감사합니다.”
이안은 잎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씁쓸한 맛에 이어 시큼하고 톡 쏘는 맛이다. 카칸티르는 그런 이안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다음, 말을 이었다.
“수와 함께 보냈던 률이 먼저 돌아왔네. 수는 접경지에서 대기하기로 했어.”
“그 거대한 매 말씀이십니까.”
“그래. 경의 말대로, 데르가가 궁지에 몰렸더군. 병사를 모은 것 같네만.”
브라츠의 전력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저택에서 살면서 보고 들은 게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병 유지에 얼마씩 들이부었는지를 봤기에,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중앙군은요?”
“그건 아직 보고가 없었네.”
문제라 함은 중앙군과 조사단의 규모. 그걸 알아야만 대략적인 교전 상황을 예상하고 대응할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이안은 심장이 조금씩 세게 뛰는 걸 알아채고 구룻잎을 뱉었다.
“며칠 간은 시간이 있으니 좀 쉬게.”
이안은 카칸티르가 나가자마자 옆으로 쓰러져 몸을 말았다. 의원이 슬쩍 보며 담요를 어깨까지 올려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아아악.
이안은 갑자기 훅 들어오는 찬 바람에 눈을 떴다. 밤이 어둑했다. 의원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초는 꺼져있다. 희미한 구룻잎 냄새만 어렴풋이 느껴졌다.
“…베릭?”
베릭은 더 이상 식은땀을 흘리지 않았으나, 여전히 혼수상태였다. 이안은 침상에 등을 기대고 몽롱한 잠을 깨우려 얼굴을 비볐다.
스윽.
그런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안을 깨운 것이 바람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가만히 입구 쪽을 노려보며 바닥을 더듬거렸다. 베릭이 벗어놓은 혁대에 단검이 달려있었다.
“누구지?”
대답이 없다.
이안은 쏟아지는 달빛을 뒤로하고 천천히 입구로 걸었다. 길게 늘어지는 이안의 그림자. 문 앞에 누군가 있음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젠장. 이해가 안 되는데.’
필시 바깥의 존재는 천려족일게 분명했다. 대사막에서 일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는 그들이 유일했고, 설령 데르가가 첩자를 보냈다 한들 천려의 경계를 뚫고 여기까지 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안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낮만 해도 구룻잎을 내줄 만큼 이안과 베릭에게 호의적이었건만, 어찌하여 바깥의 존재는 살의를 띄고 있단 말인가.
촤악!
문을 걷어 올린 것은 바깥쪽이었다. 이안이 머뭇거리고 있음을 알아채고, 먼저 행동한 것이다.
털가죽으로 만든 가면 그리고 어깨를 감추는 깃털. 사내는 바로 검을 휘둘러 이안에게 덤벼들었다.
챙!
“윽!”
막아냈다기보다 운 좋게 쳐냈다는 게 맞겠다.
이안이 반사적으로 휘두른 단검은 반으로 부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괴한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는 이안의 얼굴을 한 손으로 우악스럽게 잡은 다음, 다른 쪽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쿵!
“으읍!”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아예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이안의 발이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숨이 꼴딱 넘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감히 누가 황제 이안의 목덜미를 잡았겠는가.
“천출이면 천출답게 처박혀 있을 것이지, 어디서 간계를 부려?”
목소리가 영 낯선 건 아니었다.
“지금 네놈이랑 저 빨간 대가리 때문에 일이 얼마나 꼬였는지 알아? 하여간, 이래서 제국 놈들은 도움이 안 된다니까. 네놈 아비도 그래.”
데르가를 언급한다?
이안은 밀어내듯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털가죽 가면이 마력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지만…….
지이잉. 지잉.
“지금이라도 조용히 죽-!”
솨아아악!
펑!
이안은 폭발시키듯 마력을 쏟아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괴한의 몸이 뒤로 밀리고, 덩달아 이안 역시 공중에 붕 뜨며 떨어졌다.
쿵!
“…젠장.”
이안은 바닥에 엎드린 채로 콜록였다. 잘못 떨어졌는지 팔목이 아릿하다. 동시에 막사 밖에서 불빛이 하나, 둘씩 켜졌다.
잠귀가 밝은 천려족이 소란을 느끼고 깨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