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71
제371화. 돌아가고 들어오다
깨닫는 것은 눈을 뜨는 것이다.
장군의 천막을 나온 티모시는 눈을 떴다. 낯선 이국, 검은 구름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으며 수많은 병사의 시선이 저를 감시 중이었다.
눈 마주친 자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자는 별다른 의도가 없었으나, 티모시는 영 시원치 않았다. 무언가를 속닥거리는 자들은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았으며, 뒤를 돌아보면 모두가 모른 척 고개를 돌릴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기분이란 말인가? 자신은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어왔을 뿐인데, 뒤를 돌아보니 그 길이 휘어져 있는 듯했다. 무언가, 그 무언가가 티모시의 발걸음을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티모시 님?”
“안에 계시는가?”
“아, 예예. 중대장님! 티모시 님입니다!”
아까 자신을 말렸던 장교의 천막이다. 그는 놀라면서 일어나 티모시를 맞이했고,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넋이 나간 것 같은 동공. 거대한 몸집의 티모시가 들어서니, 장교의 책상 앞으로 그림자가 길게 졌다. 그 덕인가? 장교는 티모시가 창백하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무슨 일이시오? 티모시 경?”
“아까…….”
장군에게 된통 깨지고 자신에게 화풀이 하러 왔구나. 장교는 침을 꼴깍 삼키며 손끝을 슬금슬금 움직였다. 무거워서 내려두었던 검집으로.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예?”
“제가 흥분하여 사령술사를 해치기라도 했다면, 이리 꾸중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클리포포드와의 중대사를 앞둔 지금, 중요 전력을 제가 실수로 놓칠 뻔하였어요. 말려주심에 고마웠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아아.”
장교가 그제야 안심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 역시 외교관이라서 그런지 성격이 융통성 있고 정당하다.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게 맞지. 암.
장교는 티모시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뭘 그런 걸 갖고 그러시오. 원래 전쟁을 하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고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법이니. 티모시 경은 이런 경험이 없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오. 혹 그 사령술사가 무례한 짓을 하였다면 내 나중에 갚아주리다.”
“아닙니다. 그럴 것 없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 내 잘못이다. 장교는 문득 그 말의 깊이가 가볍다는 걸 느꼈다. 마치 눈앞에 있는 자신이 아니라, 저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날리는 것처럼 말이다.
“차 한잔 주시겠습니까?”
티모시는 자리에 앉으며 그리 요청했다. 장교는 손짓으로 부하에게 지시했고, 두 사람은 이내 사소한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출신은 달라도 이리 전장에서 함께 구르면 그게 전우고 동지이며, 식구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중대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나저나, 무예 실력이 출중하시더이다.”
“아무래도 오지를 돌아다니다 보니…….”
티모시는 장교의 말을 맞장구치며 테이블을 은근히 내려다봤다. 버고스에서 파악한 클리포포드의 지도다.
아무래도 전쟁 시 전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다 보니, 각 나라에서는 타국인의 지리 조사 따위를 엄격하게 막고 있었다. 제공된 최소한의 지도에, 오가는 무역상 또는 외교관이 덧붙이고 덧붙여서 만든 시간의 산물인 게다.
티모시의 시선이 기민하면서도 민첩하게 움직였다.
‘지금 자신들이 여기 있으니 바키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막혔고. 아까 노아 왕자가 기습했던 부분에 통하는 길이 있다. 그쪽으로 돌아가면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전쟁 소문 탓에 쉬이 접근하기 힘들 터. 그렇다면 역시 절벽을 내려가…….’
“티모시 경?”
“아.”
버고스로 돌아가자. 티모시는 자신을 움직였던 무의식을 깨달았다. 얼추 길을 찾게 되자, 그는 더 이상 볼일 없다는 듯 바로 일어났다.
“차 고맙습니다. 푹 쉬십시오. 내일을 위하여.”
“…그, 그래. 그대도 쉬시오.”
망설임 없이 나가는 티모시의 뒷모습을 보며, 장교는 연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그가 차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다. 참으로 이상한 자인 게다.
스윽.
한편, 티모시는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요긴하게 쓸 밧줄과 무기 그리고…….
‘바리엘 통행증입니다. 총 3회인데 동행이 있을 시 함께 차감됩니다.’
티모시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통행증을 갖고 나오는 것인데.
혹여 이안 경이 이 모든 걸 예견하고 내준 것은 아닐까? 나아가 함정?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장군의 태도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티모시는 이를 꽉 깨물며 밤이 더욱 깊어지길 기다렸다. 모두가 잠들고 최소한의 인력만이 경계를 서는 시간이 되면, 말을 타고 진영을 빠져나가 버고스로 돌아가리라.
그는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부인과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젠장.”
불안해서 그렇다. 머리가 복잡해서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을 리 없다. 그러고 보니, 언제 아들과 함께 놀았더라? 언제 아내와 차를 놓고 담소를 나눴더라?
당최 기억나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볼수록 궤가 확실히 어긋났다. 다몬 왕의 얼굴만 똑똑히 기억나는 걸 보면 말이다.
티모시는 지도를 연신 되뇌며 눈을 감았다. 제발, 서둘러 더 깊은 어둠이 오길.
* * *
간이 난로의 열기가 거의 식어가는 새벽.
이안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작과 끝이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마치 얽히고 얽힌 인간의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전시이긴 하다만, 해마저 잠들어있는 지금. 이곳은 유난히 평화롭다. 마법사들과 등을 맞댄 채 잠든 베릭의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만 빼면.
“움직인다, 움직여…….”
혹여 마력석에 문제가 생길까, 뜬눈으로 밤샌 아코렐라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마력석은 아주 조금 비스듬한 각도로 기울고 있었다.
오른쪽? 이안이 창밖을 확인하려는 순간, 복도를 빠르게 뛰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클리포포드의 병사였다.
타닥타닥!
벌컥!
“저기, 마법사님들!”
“문 살살 열어요! 돌 흐트러지니까! 그리고 노크 몰라요? 냅다 벌컥! 뭐야, 정말.”
“아, 죄, 죄송합니다. 지금 왕궁에서 전언이 왔는데 노아 왕자님이 모두 모이라 하셔서요.”
몇몇 마법사가 소란을 느끼고 일어났다. 하지만 비몽사몽. 눈만 끔뻑거리며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는 중이었으니.
이안은 소파에서 일어나며 조용히 하라 손짓했다.
“아코렐라. 여기 계속 있거라. 다녀오마.”
“네네. 나갈 때 문 살살 닫아주세요. 흐음. 조금 흔들린 것 같은데.”
별일 아니구나, 부스럭거렸던 마법사들이 다시금 단잠에 취했다. 베릭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배를 혼자 긁어대며 연신 실실거렸다.
“저기, ‘모두’ 오라고 하셨는데요.”
“나는 이자들의 상관이자 책임자다. 그러니 나 하나만으로 모두가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무슨 전언이 왔는지 들어보고 결정할 것이라. 앞장서라.”
끄응. 병사는 괜히 혼날 것 같은 기분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아코렐라가 당부한 대로 문을 최대한 살살 닫고는 이안을 안내했다.
여기저기서 장교들이 무장(武裝)하지 못한 채 속속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인근 막사에서 잠을 청하다가 마찬가지로 호출을 받고 온 것이라.
끼이익.
“왕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부르셨습니까?”
노아는 이마를 짚은 채 왕궁 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이안이 혼자 온 것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다 함께 오라 하였을 터인데.”
“갑작스러운 호출이니 급한 일인 걸 알고 있습니다만, 마법사들이 마력을 충전하는 중이니 효율을 위해 저 혼자 왕자님을 뵙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크흠. 장교들은 노아의 눈치를 보며 헛기침을 해댔다. 대놓고 명령 어긴 걸 고한 게라. 만약 자신들이었으면 당장 목이 베였을 일.
하지만 왕궁에서 온 것이 정말 다급한 일이었는지, 노아는 한숨만 한 번 쉰 다음 고개를 틀었다.
“지원군이 왔다는군.”
“지원군이요?”
“오! 정말입니까? 그래서 마법사들도 모두 오라 하셨군요. 그거 다행입니다. 장벽 안에 있는 저희가 유리하긴 하지만, 저쪽에서 또 지원 병사가 오면 곤란해지지요. 마물 따위를 달고 오니.”
“그러면 당장 날이 밝는 대로 치는 게 좋겠습니다.”
“예. 맞습니다. 저쪽에서도 합류하기 전, 저희가 먼저 처리를-”
노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들었다. 그게 아니라는 뜻이다.
“버고스의 지원군이 왔다고.”
“왕자님, 그게…….”
“루스웨나.”
자다 깬 장교들을 대신하여 이안이 일러주었다.
버고스와 손잡은 세력이라면 또 있겠는가? 아마 전부 국경에서 대치 중일 것이다. 하여, 전시 상황이 공유되는 대로 진격하여 클리포포드를 좌우로 짓누를 셈인 게라.
“루스웨나에서는 기다리고 있다 하더이까? 전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전세는 어떠하고 혹여 바리엘이 개입했는지 따위를 전달받기 위해서요.”
이안의 물음에 노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왕궁 서신을 보지도 않고 저리 정확하게 읊으니, 이제는 놀라움을 넘어 짜증이고 소름이다. 노아는 모두에게 보라는 듯이 종이를 테이블 가운데로 밀었다.
“병사 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아. 우리 쪽에서 무슨 일인지를 계속 물어도 대답이 없다 하는군. 철저한 벽이라. 앞과 뒤, 동시에 밀어붙여서 클리포포드 병력을 분산시킬 전략인 게다.”
그들은 클리포포드를 풍선처럼 터트리길 원하고 있었다. 노아는 이안을 바라보며 부탁했다.
“그래서 그런데, 마법사 몇 명을 차출하여 동쪽으로 보내줄 수 있겠나? 병사 수가 얼마 안 된다고 하였어. 필시 소수만으로도 가능하다.”
수긍만 한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보낼 요령이었다. 그래서 모두 오라 한 것인데, 이 잘난 마법부 장관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국의 왕자 명을 잡아드셨다.
“…….”
“이안 경?”
쉬이 수락할 것이라 예상했거늘, 어찌 이안의 고민이 깊다. 장교들은 서로 눈치 보며 이안의 얼굴만 쳐다봤다.
“안 될 것 같습니다.”
“뭐?”
뜻밖의 대답.
동맹을 맺은 것이나 마찬가지고, 현재 그들의 입지는 용병과 다를 바 없었다. 모두 보내는 것도 아니고 몇몇만, 그저 전력이 분산되는 걸 막기 위해 뒤를 지켜달라는 것인데, 그걸 못 해주겠다고?
장교들이 한마디씩 얹으며 이안을 설득했다.
“그, 이안 경. 우리 모두 마법사의 힘을 보았고, 느꼈습니다. 부하들을 따로 보내는 게 부담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한둘 정도만 배치해도-”
“그들이 무엇을 입고 있다 적혀있지 않아요.”
“예?”
뭔 소리? 당연히 루스웨나 군복을 입고 있겠지. 장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잘못 말했다가는 클리포포드의 명운이 달라질 걸 예감했기에.
“모르십니까? 하이만에서 썼던 흑갑옷. 그 주재료가 드래곤 각린입니다. 하이만 부인은 루스웨나의 왕족 출신으로 그들과 긴밀한 연관이 있습니다. 당장 밀어붙여도 모자랄 판에, 병사 수를 조금만 보냈다? 의도가 너무 명백하여 거절합니다.”
가볍게 생각하여 마법사 한두 명을 보냈다가 개죽음당할 위험이 있었다. 이안은 서신을 살랑 흔들며 제안했다.
“우선 클리포포드는 루스웨나와의 대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주력하십시오. 전령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그 연락망을 끊는 게 우선입니다. 마법사를 국경으로 보내지는 않되, 인근을 수색하여 버고스와 루스웨나의 접촉을 차단해보라 명령하겠습니다.”
톡톡, 이안은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지도를 살피더니 클리포포드 동쪽에서 서쪽, 그러니까 루스웨나와 맞닿아있는 국경선에서 버고스와의 국경선까지 손가락으로 짚어 보았다.
“아마 이들은 흑갑옷을 공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찰대를 보내서 루스웨나에서 버고스 측으로 수송되고 있는 물자가 있는지를 확인하십시오. 이쪽은 죽은 땅이라 길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렵지 않겠지요.”
그쯤은 할 수 있겠지? 이안의 눈빛이 그리 되묻는 듯했다.
노아는 눈을 질끈 감더니 이내 체념한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네. 이안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