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72
제372화. 재수 없어
이안의 의견서를 품은 병사가 장벽에서 왕궁으로 출발했다.
클리포포드의 깃발이 흔들리고 있건만, 어찌하여 기분이 이상한 것인가. 장교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궐련을 입에 물었다.
“이래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이안 경 말이지?”
“정확히는 마법사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존재 자체만으로 클리포포드를 소국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리엘 출신들이다. 현 전쟁에서 저들의 힘이 필요한 건 자명한 사실. 하지만 그로 인해 저들의 지배력이 더더욱 강해진다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 할 것인가?
기회조차 없이 깨닫고 말 것이다. 아, 이미 클리포포드는 바리엘의 뱃속에 들어와 있노라고.
“사모보, 네가 왕자님께 언질을 드려보는 게 어때?”
장교들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몰렸다. 사모보, 왕자님과 어릴 때부터 친우였으며, 이들 중 제일 사적으로 친하고, 왕족에 가까운 혈통을 지닌 자.
사모보는 잠시 궐련을 씹어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뱉었다. 민감한 사안이었기에 말 꺼내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이라. 한숨과 섞인 궐련 연기는 전술실로 걸어가는 사모보의 뒤를 따라 흩어졌다.
똑똑.
“왕자님.”
“들어오라. 서신은 출발했는가?”
“예. 막 나갔습니다. 실력이 좋은 자이니 금방 닿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노아는 고개를 들어 사모보를 쳐다봤다. 할 말이 있다면 허락하겠다는 듯이. 사모보는 몇 번이나 입술을 떼었다 붙이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저는 그 누구보다 클리포포드를 위하고 있음을 알아주십시오. 또한, 그 누구보다 왕자님을 존경하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럼, 알지. 나라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히고, 제 죽음을 내놓은 전사라. 그보다 더한 마음은 없다.”
“전선에서 마법사들과의 경계를 확실히 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 이안 경은 바리엘 장관의 역할이 아니라, 지도자의 역까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도움이 될지라도, 추후 클리포포드에 더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노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는 곧 자신의 능력 부재를 말하는 것과 같다.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부하의 입으로 전해 들으니 그 충격과 모멸감이 배로 느껴졌다.
그걸 알아챈 사모보가 노아의 손등에 손을 올렸다.
“노아, 지금만큼은 장교가 아닌 너의 친구이자 클리포포드의 국민으로 이르는 거다. 나의 걱정을 부디 이해해줘.”
알고 있다. 충분히 알고 있으며,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부터가 먼저 느끼지 않았던가. 자신을 보던 국민들의 시선으로, 이안을 바라봤으니까.
노아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생각을 정리했다.
“…사모보, 나도 그에 관한 우려를 했다. 아니, 하고 있어.”
사모보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의 어깨를 토닥이는 노아의 손길.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바리엘이, 아니 이안 경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선택지가 없어. 그자를 볼 때면 나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그렇지만 내 좌절보다는 클리포포드의 안위가 우선이며, 버고스 사태가 진정된 후에는 성장해 있을 거라 믿어. 나와 클리포포드 전체가 말이지.”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끼게 하는 자와 함께 숨 쉬는 것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조차 노아가 할 일이며, 클리포포드를 수호하기 위한 일종의 고난이다.
사모보가 그의 의지를 깨닫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왕자님은 어릴 때부터 못 하는 게 없으셨어요. 분명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성장하실 것입니다.”
“다시 왕자라 부르는구나.”
“아까 노아라 부르지 않았으면 혼났을 것 같아서요.”
둘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메이도 없는 지금, 노아는 오롯이 혼자 적군과 맞서고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저자들을 막아내야 한다고,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쩐지, 사모보와 대화하면서 인지(認知)했다. 그는 클리포포드 앞에 나서있는 게 아니라, 클리포포드 안에 함께 있다고.
“축복이라 생각하자고. 신께서 클리포포드를 위해 내려준 축복. 혹 이안 경이 버고스 측으로 갔다 생각하면 나 정말 골치 아프거든.”
“그건 저도 좀 끔찍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미래 걱정은 하지 말고 지금 해치울 일부터 하자. 버고스를 몰락시키면 그 힘이 일정 부분 클리포포드로 흘러들 것이다. 우리는 그걸 발판 삼아 나아갈 수 있어.”
“예. 왕자님.”
“다르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가 바리엘을 이용하는 것이고, 그 득을 보는 것이다. 다른 장교들에게도 그대가 잘 일러줘.”
물론이지요. 사모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슬쩍 뒤를 돌아본 다음, 문이 완전히 닫혀있는 걸 확인하곤 속삭였다.
“그런데 이안 경, 조금 재수 없지 않습니까?”
엄청난 미색에다가 마법사, 최연소 장관, 게다가 영민한 처세까지. 흠잡을 것 하나 없는지라 마치 자신과 같은 인간이 맞는지 의문이다. 노아는 바로 긍정한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인생에서 저리 재수 없는 자는 처음이다.”
“두 번 만나면 죽겠습니다. 진짜.”
“그러게나 말이다. 짜증 나.”
두 사람은 동시에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살다 살다 저런 자는 처음이지 않나. 바리엘의 죽은 두 황자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안 저자보다는 덜했을 것이라.
노아는 웃음을 머금으며 손끝으로 지도를 훑었다. 이안이 일러준 보급로 예상 경로였다.
“붉은 숲으로 통하는 길은 우리가 가까우니 병사를 조금 차출해서 보내는 거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버고스 측과 가까워질수록 전세를 가늠하기 힘들어지니 발견하는 즉시 섬멸, 불가피하다면 보고 후 지원병과 함께 급습.”
이때의 지원병엔 아마 마법사도 함께할 터였다.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노아의 명령을 받은 장교가 경례하며 전술실을 나섰고, 홀로 남은 노아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잘하고 있다, 자신은 잘하고 있다, 최면 걸듯 속삭이며 말이다.
* * *
에리포니는 소파에 누워 긴 머리카락을 정돈 받고 있었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호박빛 보석. 그녀는 천장에서 스며드는 빛에 대고서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당최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돌덩이가 어찌 신의 힘을 파훼한다는 걸까?”
답을 원하는 물음이신가? 시종들이 일순 멈칫거렸으나, 다들 묵묵히 하던 치장을 계속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내 왕께서 귀찮다는 듯 테이블 쪽으로 이드갈을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에리포니는 고개를 꺾어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루스웨나를 제외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 가늠하기 위해서다.
똑똑.
“전하, 엘더트 경입니다.”
“들라 하라.”
에리포니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여 고개만 튼 채 엘더트를 맞이했다. 손에 들려있는 금쟁반. 그리고 그 위에 놓여있는 서신들. 에리포니는 그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채고 시종들을 물렸다.
“버고스에서 온 서신인가?”
“그렇습니다.”
“내어라.”
그녀는 거추장스럽게 할 것 없다며 손수 종이를 집어 들었다. 글자를 읽어내리는 청록빛 눈동자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엘더트 또한 주군의 표정을 살피며 서신에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지를 살폈다.
“버고스군이 클리포포드의 장벽을 무너트리고 진입했다 한다. 바키 마을을 지나 수도로 들어가는 장벽 앞에 진영을 꾸렸고, 현재 대치 중이라. 마법사가 개입했다고.”
“서둘러 연락 내리겠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움직이시지요.”
전쟁이 일어났다.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목숨을 조이던 것이, 이제는 대놓고 무기를 내세우며 피를 부르는 게다. 에리포니는 연신 서신을 읽어내리며 웃었다.
“그래. 장벽 앞에서 대치 중일 때 버고스 측에서 추가 병력을 보낸다고 하는군. 당장 클리포포드와의 접경지에 흑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를 보내라. 5백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저 시선을 잡아두기 위한 짓이었다. 클리포포드의 앞과 뒤를 동시에 압박하면서, 마법사의 개입에 대한 무력시위.
혹여 마법사들만 소수로 차출하여 보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렇다면 그들을 산 채로 잡아 루스웨나의 밑거름으로 쓰리라. 죽을 때까지 마력을 만들어내며, 연구하고 또 발전시키리라. 하여 바리엘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하게 눈부신 영광을 맞이하리라.
에리포니는 손을 튕기며 정정했다.
“아니. 3백 정도가 좋겠어.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상대가 방심하기 마련이니까.”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해서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드래곤 각린을 버고스로 보낼 시간인데.”
에리포니가 손을 까딱거리며 지도를 가져오라 명했다. 하도 바리엘에서 드래곤 각린 전염병이 어쩌고저쩌고하기에 돌아오자마자 조사를 실시했더니, 이게 웬걸. 실제로 하이만 가와 거래한 적 있는 불법 농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역사의 패권이 바뀔 판도인데.
선대(先代)의 약조 따위가 그녀의 발걸음을 막을 순 없었다. 에리포니는 운영자를 정리한 다음, 아예 농장을 왕궁에서 관리하도록 지시했다.
“남쪽으로 난 길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이쪽은 험준한 데다 나라가 없는 땅이라 알맞은 걸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클리포포드 국경과는 좀 먼 길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그만큼 안전합니다.”
엘더트의 손끝을 따라 움직이는 에리포니의 시선. 그녀는 턱을 괸 채 무언가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클리포포드에 이안 경이 있다고 했지?”
“예. 마법사가 개입했다는 것은 동맹을 시사한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만, 진 황태자가 바리엘 황궁에 있으니 어디까지나 임시일 것입니다.”
“그럼 안 돼. 그쪽 나라 왕가라면 모르겠지만, 이안 경은 필시 보급의 존재를 알 것이다. 하이만가를 숙청한 게 그자이지 않나?”
“그러면 어찌…….”
톡톡, 에리포니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지도를 짚었다. 그것은 바로 바리엘.
“바리엘을 통해서 가지, 뭐.”
“네?”
“왜 그렇게 놀라지?”
엘더트의 계산에는 전혀 없는 경로였기 때문이다.
루스웨나에서 버고스로 가기 위해서는 마물 지대인 북쪽을 거치거나 클리포포드를 거치는 수밖에 없었는데, 당연지사 북쪽은 위험도가 높아서 제외. 그러니 클리포포드를 거쳐 남쪽 길을 따라가는 것밖에 없다 여겼다.
그런데 지금 왕께서는 아예 중간, 바리엘을 가로지르자 이르시는 게다.
“흑갑옷으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각린을 비롯하여 제조에 필요한 물건을 모두 추려보아라. 가볍고 운송이 용이한 것은 국경수비대가 없는 쪽으로 넘어 돌아가고, 마차가 필요한 것은 따로 포장하여 바리엘 안쪽에 있는 루스웨나 상단에게 협조를 요청해서 유통해.”
“물품적합검사가 있을 터인데요.”
“이봐, 엘더트. 귀족 나부랭이인 하이만도 했던 것인데, 어찌 내가 못할까? 응?”
그녀의 말이 맞았다. 바리엘이라고 한들 모든 국경선을 수비대가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제조에 필요한 것들도 하나하나 따져봤을 땐 금지 물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린만 밀입국하여 넘기면 되겠네. 내 생각에는 이 숲을 둘러서 간다면 클리포포드 남쪽으로 가는 것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빠를 것 같은데?”
“저도 그리 예상됩니다. 그러면 버고스 측으로 연락하겠습니다. 보급품 받는 위치를 변경하라고요.”
“그래. 바리엘 황궁에서 움직이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을 게다. 버고스 측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가져와.”
“예. 전하.”
그녀는 다시금 부채를 팔랑거리며 웃었다.
아무리 이안이라도 이것은 생각하지 못했을 게다. 마법사의 개입만 있었을 뿐이지, 바리엘 측에서는 어떠한 공식 입장이 없지 않은가.
이를 이용하여 그쪽 길을 이용하는 것. 무모하면서도 대담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것이라 기분까지 좋아지게 했다.
에리포니가 궐련을 하나 태우려는 순간.
타닥타닥!
“전하!”
“무슨 소란인가.”
“저기, 큰일 났습니다. 바리엘에서 루스웨나와의 무역을 모두 중단하겠다는 서신이 왔습니다.”
에리포니는 지금 자신이 잘못 들었는가 싶어 눈썹을 찌푸렸다.
“다시 말해봐.”
“그러니까, 정확히는 그, 루스웨나에서 수입을 하지 않겠다 합니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궐련을 툭 내던졌고, 엘더트는 슬그머니 지도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황궁에 마법사가 없다 한들, 완전히 비어있는 게 아닌 게다.
얼마 전, 그 사납던 피바람을 견뎌내고 정식으로 임명된 황태자, 진 베로시온이 있지 않나.
“…전하. 보급 경로를 다시 정하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