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74
제374화. 귀화
한편, 티모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숲길을 뛰었다. 목에서 피 맛이 올라왔지만,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외교관으로서 당당하게 검문소를 지나던 자신이, 어찌하여 이렇게 밀입국 하는 신세가 되었나? 그것도 자신의 나라에.
“하아, 하아…….”
한참 내달리던 그는 결국 나무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여전히 혼돈 속에서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버고스 진영을 탈출할 때, 우연의 일치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후미에서 합성 마물의 소란으로 인하여 시선이 다소 분산되었음을 기억했다.
하샤, 그자인가? 그자가 자신을 도와준 것인가? 그렇다면 역시 함정?
“젠장.”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장군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진영을 탈출하였으니, 이는 군법으로 엄히 다스려 즉결 처분 소지에 해당했다.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이 무사히 있는 걸 확인한 다음, 주변인에게 도움을 청하여 다음을 정하는 게 최선일 듯했다. 가족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그 무엇이 문제겠는가?
오인하여 전장을 탈출하였지만, 자신은 평생 버고스를 위해 살아온 자였다. 왕께서는 냉정하지만, 영민하시지. 한 번의 실수로 죽음까지 내놓으라 하지는 않으실 터. 아마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아니면 신체 일부를 잃고 살아가겠지.
그래도 괜찮다. 가족이 살아만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타닥타닥!
촤아악!
숲 비탈길을 내려오자 주거지와 맞닿아있는 공원이 보였다. 해가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노을을 잎으로 받아내던 클리포포드와 달리, 버고스의 밤은 차갑고 황량하며 쓸쓸했다.
그는 후드를 뒤집어쓴 다음, 익숙한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낯선 것은 기분 탓일까? 그는 반쯤 열려있는 저택 대문을 확인하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여보?”
끼이익.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현관에 쓰러져 있는 화분과 잡동사니들. 바닥에는 수십 개의 발자국이 찍혀있었고, 카펫과 소파 따위가 엎어져 있었다.
티모시는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말도 안 된다. 대체 이게…….
스윽.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티모시는 바로 검을 잡았고, 거실로 들어오는 자를 왼손으로 낚아챘다. 잘 벼려진 검이 침입자의 목에 바짝 붙었다.
채앵! 콰앙!
“아악!”
“누구냐!”
“티모시 님! 접니다, 저!”
티모시가 마주한 것은 자신의 부하였다.
그의 목덜미로 주르륵 흐르는 피. 티모시는 넋이 빠진 것처럼 부하를 쳐다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검에서 힘을 빼지는 않았지만.
“이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티모시 님.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다몬 전하께서 반역자라 하여 저택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동시에 가족들 모두 왕궁으로 잡혀갔고요.”
“뭐?”
그제야 티모시의 손에서 힘이 풀어졌다. 부하는 목을 더듬거리며 피를 닦아냈다. 한숨이 나오지만, 지금 그것보다 급한 일이 있었으니.
“저번에 클리포포드 잠행에 나카스타 님이 가셨지요?”
“나카스타? 그랬지.”
“제 생각에는 그분이 고발한 것 같습니다. 지금 왕궁에서 티모시 님 자리를 그분이 대신하고 있어요. 혹시 클리포포드 갔을 때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무슨 일이라니. 아니. 전혀.”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떠한 증거도 없이 그저 나카스타 님 말만 믿고 이런 사달을 일으키다니. 티모시 님이 왕궁에서 일한 게 몇 년째인데, 안 그렇습니까?”
“아내는? 그리고 아들은?”
혼란 속, 티모시는 가족의 안위를 먼저 물었다. 나카스타가 어떤 음모를 제기해 왕께서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것은 가족의 생사였다.
부하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하는 것을 주저했다.
“말해!”
콰앙!
“티모시 님. 지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티모시 님이 탈영했다는 게 왕궁까지 알려졌어요. 전하께서 다시 저택으로 병사를 보낼 것입니다. 잡히면 안 돼요. 반역죄의 끝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내와 아들을 두고는 못 간다. 전하를 뵙겠어. 이것은, 이것은 오해라고. 나는 맹세코 버고스를 배신하지 않았어.”
티모시의 목소리는 모래를 삼킨 것처럼 까끌까끌했다.
부하가 연신 밖을 살피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왕궁에서 인력을 차출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먼저 저택으로 온 것이라. 그 역시 티모시를 돕고 있다는 게 들키면 곤란해질 터.
“티모시 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미 오해를 풀기에는 너무 멀리 왔습니다.”
티모시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제발,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형수님과 아드님, 두 분 다 죽었어요.”
“…….”
“심문 따위도 없었습니다. 왕궁으로 호송된 즉시 고문 후 처형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증거는 없지만 전하께서 확신하고 계십니다. 티모시 님의 변절을요. 그러니 서둘러 대피하시고 우선 목숨을 챙기시는 게-”
티모시가 결국 무릎 꿇었다. 어지러워서 서 있을 수가 없는 게라. 다몬 왕께서 어찌 그러실 수가 있나? 자신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은 절대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는데, 대체 무얼 보고 그리 믿으셨단 말인가? 영민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우둔하고, 성급하며, 이토록 잔인한 분이었나?
“티모시 님!”
부하가 발을 동동 굴리며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버고스 안의 경비가 삼엄해질 것이다. 전시인 것도 있지만, 티모시의 행방을 찾기 위하여. 그러니 지체할 수 없었다.
부하가 그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정신 좀 차리십시오!”
“시체, 시체를 봐야겠다.”
“제가 봤습니다! 그리고-”
부하는 입술을 꾹 깨물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주었다. 아내와 아들의 머리칼이었다. 피가 뭉근하게 묻어있는. 그나마 깔끔한 부분으로 잘라내려 했는데, 이목이 있다 보니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시신을 지키는 자들이 많아 쉬이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만이라도 가슴에 품으십시오. 저는 티모시 님이 변절하지 않았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요. 가족의 시신은 제가 잘 수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반역죄로 처형당하면 그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갈가리 찢긴다. 혹여 영혼이 되돌아오더라도 살아나지 못하게 여기저기 흩뿌려지며, 버고스의 역사에 영원한 변절자로 기록될 것이었다.
“의탁할 곳을 찾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시신 일부라도 전해드리겠습니다. 챙길 게 있다면 서둘러 챙기세요. 제가 탄 말이 있으니 수도를 나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날이 어두워졌으나 인기척이 줄어들지 않았다. 도로를 돌아다니는 경비병들이 많아졌다는 증거다.
그는 연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티모시를 재촉했고, 티모시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탁자 위에 놓여있는 아내의 그림, 아들의 장난감을 품에 챙겼다. 이어서…….
드르륵.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바리엘 통행증.
버고스는 필시 자신의 수배를 다른 나라에도 걸어둘 터였다. 그것에 자유로운 곳은 단 두 곳. 바로 클리포포드와 바리엘이다. 클리포포드는 전쟁 중이니, 당연지사 갈 곳은 한 곳밖에 없다.
‘이안 경은 이걸 모두 알고 있었을까?’
이리 될 줄 알고, 통행증을 내어준 것일까?
고마워할 수도 없고 원망할 수도 없는 복잡한 심경. 그는 통행증을 잘 챙긴 다음, 천천히 집 안을 돌아봤다. 클리포포드에서 이곳으로 달려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눈으로 보니 확연했다.
생생히 담아가리라.
가서, 영원히 잊지 않고 새겨두리라.
“티모시 님!”
타닥타닥!
부하의 재촉에 티모시가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그는 2층 서재로 올라가 책장을 뒤적거렸다. 오래도록 버고스를 위해 일해왔다는 것은, 그만큼 나라에 대해 깊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전쟁 중인 현 상황, 아무리 이안 경이 통행증을 내어주었다 한들 바리엘 황궁에는 현재 그가 없다. 입국하되, 그쪽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콰앙!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 어쩐 일이긴? 티모시가 탈영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그자를 찾기 위해 왔지. 자택으로는 온 것 같지 않아. 왕궁은?”
아래층에서 소란이 들렸다. 경비가 들이닥친 것이다. 부하는 일부러 큰 소리를 내주었고, 티모시는 주요 서류 뭉치를 몸에 묶은 다음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타앗!
“어?”
“뭡니까? 방금 그 소리?”
“어디서 났지?”
티모시는 부하가 타고 왔다는 말을 바로 알아보았다. 외교부가 주로 쓰는 안장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장 말에 올라탄 다음, 고삐를 잡아당겼다.
히이잉!
타다타닥!
“티모시다! 이봐! 저기!”
익숙한 도로가 티모시의 시야로 스쳐 지나갔다. 날 때부터 자라 죽을 때까지 함께할 줄로만 알았던 곳. 이제는 영원히 돌아올 수도 없고, 돌아오고 싶지도 않은 곳.
티모시는 후드를 깊숙이 눌러쓴 몸을 바짝 눕혔다. 서둘러서, 가족의 시신이 모욕당하기 전에 서둘러서 바리엘에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다몬 전하. 어찌 제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당신에게 바친 삶의 무게를 알고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제 여인이 무얼 하였다고, 제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그리 숨을 거두어 가십니까. 제 항변 하나 듣지 않고.’
슬픔은 원망이 되고, 원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그의 인생이 휘발된 기분이다. 흔적만을 남겨둔 채 말이다.
아내의 그림과 아이의 손때가 묻은 장난감. 그것만이 티모시가 살아왔고,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듯했다.
타닥타닥!
그래도 외교부의 다른 부하들이 힘을 써둔 덕인지, 생각보다 국경까지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말의 기력이 떨어져가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저 멀리, 바리엘의 국경검문소가 보였다.
“멈추시오! 속도를 줄이시오!”
바리엘의 깃발이 크게 흔들리며 티모시의 발걸음을 늦췄다. 뒤를 돌아보니, 쫓아오는 자 하나 없다. 다행인 한편, 이렇게도 허망했나 싶다. 티모시 자신이 저버리면 저버릴 조국이었던 게라.
“버고스인이오? 알고 있겠지만, 요즘 버고스와 클리포포드와의 전쟁으로 검문이 좀 까다롭소. 우선 안장에서 내려온 다음 외투를 모두 벗고 뒤로 도시오. 신분증은?”
티모시는 순순히 말에서 내려 후드를 걷어냈다. 그러자 국경수비대원들이 동시에 흠칫거렸다. 남자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었던 것이다. 당사자는 울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지만.
스윽.
티모시는 말없이 이안이 내어준 통행증을 보여줬다. 수비대는 마법부의 인장을 확인한 다음, 진위를 판단하며 질문했다.
“어이고, 마법부 장관께서 내어주신 거네. 귀족이십니까? 몰라뵈었습니다. 신분증 안 주셔도 되고, 작성할 서류도 없습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통행증은 세 명분인데, 일행이 또 있습니까?”
콰앙!
대답하기도 전에 통행증에 입국을 허가한다는 도장이 찍혔다. 이리도 쉬운 길이었나. 티모시는 힘없는 손으로 다시 받아든 다음,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제 이곳을 넘어가면, 다시는 버고스로 돌아올 수 없다.
티모시는 연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답했다.
“…혼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