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76
제376화. 모두의 임무
노아는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수도로 입성하는 장벽 앞, 여전히 버고스 군단은 저 멀리서 진영을 구축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쳐들어온 입장에서는 무조건 단기전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내야 할 터인데, 그것이 고작 마을 두 개를 격파한 것에 그칠 리는 없잖은가.
장기전으로 돌입한다면 필시 전세가 클리포포드 쪽으로 기울 것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반응이 없는지 의아했다.
“지원군이 늦어지는가 본데. 이안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노아가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함께 바깥을 보던 이안이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입성하는 것이 목적일 터인데, 그 움직임이 희미합니다. 지원군을 기다림과 동시에 내부 문제가 발생했음을 가늠할 수 있겠군요.”
바로 티모시의 탈영.
일반 병사가 탈영했다는 소문이 나돌아도 술렁거릴 마당에, 선두를 내달리던 외교부의 고위급 관료가 밤중에 말을 타고 도망쳤다면 그 분위기가 어떠하겠는가? 병사들의 심리는 위축될 것이요, 버고스 왕궁에서는 신경 쓸 존재가 하나 더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다.
‘티모시. 이번에는 그대의 운명이 어떠할까.’
이안은 나움이 존재하길 바랐다. 존재하여, 자신이 없더라도 그의 인생을 오롯이 살아가길 바랐다.
그래서 티모시가 홀로 들어와 이전 생과 같은 길을 걷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뀌지 않을 먼 미래, 티모시의 가족이 다 함께 와도 그 또한 운명이라 여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연유로 세 명분의 통행증을 내어준 것이니.
티모시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똑똑.
“왕자님.”
그때, 병사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한 손에 서신이 들려있다. 이안의 제안대로 보급로 차단을 위해 왕궁에서 인력을 파병했다는 중간 보고서였다.
노아는 당장 끈을 풀어 테이블 위에 펼쳤고, 이안도 잘 볼 수 있게끔 각도를 틀어주었다.
“이안 경이 내어준 마법사 셋과 함께 막 남쪽으로 출발했다고 하는군. 죽은 땅에서 그나마 운송이 가능한 길이 세 갈래라. 마법사들이 창공을 누빈다면 필시 금방 얘기가 들어올 것이네.”
“예. 좋습니다. 클리포포드와 루스웨나의 국경선 대립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까?”
“응. 서로 대치한 채 계속 시간만 보내고 있어. 흑갑옷에 대해 정보를 나누었으니, 우리 측에서는 최대한 자극하지 않고 방어하는 쪽으로 전술을 짤 것이라.”
천천히, 하지만 면밀하게 보고서를 살피던 이안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바리엘이 루스웨나와 버고스와의 무역을 무기한 중단해버렸다는 내용을 읽은 것이다. 정확히는, 루스웨나의 수입과 버고스의 수출을 보다 엄격하게 제한한다는 게 맞겠지만.
“아.”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바리엘에서 오직 한 분이시다. 가이아에서 제일 명예로운 자이자 바리엘의 유일한 미래, 바로 어린 황태자.
이안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자, 노아가 의뭉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미소는 곧이어 웃음이 되었고, 그럴수록 노아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이, 이안 경?”
왜지? 왜 저자가 웃으니까 괜히 무섭지? 티끌 한 점 없는 아름다운 미소이건만,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안은 웃음기를 갈무리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왕자님. 죄송합니다.”
“그, 웃을 거면 같이 웃었으면 좋겠는데.”
“루스웨나에서 버고스로 통하는 보급로로 죽은 땅이 아닌 바리엘을 선택했을 시, 그에 관한 조치입니다. 제 주군께서 이쪽 전세를 굉장히 신경 써 주고 계십니다. 왕자님께서도 영광을 가슴에 새겨주십시오.”
“설마, 아무리 그래도 루스웨나가 그런 선택을 하겠나?”
“모르지요. 에리포니 왕의 성정으로 보아, 저는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바리엘이 엄청난 손해를 각오하고 클리포포드를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왕자님.”
수입과 수출로 인한 금전적 손해보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것이라 예상하고 내린 결정이다. 그만큼 클리포포드가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것이요, 나아가 마법사들의 무사 귀환을 우선시한다는 증거였다.
“알지. 아주 잘 알아.”
“아, 이거 뜻밖의 희소식입니다. 정말.”
주위에 수상과 로만드로 그리고 퀸타나 등 좋은 관료가 있으니 내릴 수 있었던 결단이겠지만, 아무튼 진의 성장이 눈부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안은 웃으며 보고서를 마저 읽어내렸고, 이내 다시금 눈썹을 휘었다.
“또 왜 그래?”
“바리엘에서 지원군을 보냈다고 합니다. 루스웨나와 클리포포드의 접경지를 타고 내려올 것이라 하는데…….”
제국방위부 장관 이름이 볼브가 아니라 맥심 트웰러였다. 제이럿을 비롯하여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구축했던 세력이 바로 제국방위부였다. 그런데 그 와중, 제국방위부의 장관이 바뀌었다?
격변. 이안은 자신이 없는 황궁에서 엄청난 격변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챘다.
“세상에.”
전하. 저는 간과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대가 저와 같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자라는 걸 말입니다. 나는 실패했지만, 그대는 성공하여 역사에 남았던 자인데…….
“이안 경?”
노아가 테이블 모서리를 툭툭 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차마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었거늘, 이안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와 방긋 웃어 보였다.
“바리엘의 지원군이 제대로 오고 있는 게 맞지?”
“물론입니다. 제국군의 목적은 마찬가지로 루스웨나의 개입 저지 및 마법사와 합류입니다. 나아가, 이곳에 균열이 일어나는 걸 막는 것이지요. 클리포포드는 저기 우직하게 서 있는 버고스와 맞설 생각만 하십시오. 뒤는 저희가 보겠습니다.”
버고스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지만, 바리엘에서도 지원군이 오고 있다. 서로의 기세가 세어지고 참전국의 수가 많아질수록, 안전해짐과 동시에 더한 파국으로 나아가게 되는 이 역설.
“바리엘의 무역을 막았으니, 루스웨나 측에서는 저희가 가늠한 경로 외 특별한 선택이 없을 것입니다.”
마법사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고, 이는 곧 무력 충돌 또한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안은 토미를 불렀다.
“예, 부르셨습니까?”
전술실 옆, 작은 방에 있던 토미.
그의 뒤로 아코렐라와 베릭이 밥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명의 시선은 계속해서 마력석에 가 있었고, 한 명은 두 손 가득 밥을 쥐고 있었지만.
“맥심 트웰러라는 자를 아는가?”
“맥심 트웰러요? 아, 아아. 예. 압니다.”
“이번에 제국방위부 장관이 되었다던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 볼브가 물러나고 제국방위부의 장관이 교체되었다고.”
뜻밖의 말에 아코렐라의 시선이 살짝 움직였다. 베릭 역시 흥미롭다는 듯 귀를 쫑긋. 그래봤자 크게 달라질 것 없는 모습이라.
토미는 당황했는지 턱을 쓸어내리며 감탄한 듯 혀를 차댔다.
“마물 전투 때 몇 번 본 적 있습니다. 아마 수상님과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데, 군사학교 출신이 아니라서 진급이 계속 누락되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하지만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시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강하십니다.”
힘의 강함을 뜻하는 게 아니라, 정신의 강함을 의미했다.
무시와 멸시 속에서 전장을 누비면서도 끝까지 무기를 놓지 않았던 진정한 무인(武人).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진리를 주 무기로 여기는 노장.
오가며 볼 때마다 그 기개가 상당했음을 토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전하께서 적확하게 인재를 등용하셨나 보다.”
“와, 제국방위부 조금 시끄럽겠는데요. 군사학교 출신 아닌 자가 장관직에 오른 건 처음일 겁니다. 위계질서 뚜렷한 곳에서 그런 파격 인사라니.”
토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황궁, 정확히는 제국방위부에 들이닥쳤을 피바람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토미가 파격 인사라 칭했다. 그런 일을 행할 수 있음은 전하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황궁친위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셨구나. 그렇지 않으면 불가한 일이다. 제이럿을 설득하셨어.’
이안은 일정한 간격으로 테이블을 두드려댔다. 생각이라는 심연에 깊게 잠긴 것처럼,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았다.
‘황궁친위대가 황제가 아닌 황태자를 따르기 시작했다 함은, 필시 폐하의 동결을 알리신 게라. 그렇다면 현재,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하여 총 네 명.’
“마법사를 추가 파견하겠습니다.”
“잠깐.”
“예?”
황태자 진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트웰러 장관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한다. 그러니 한 시라도 더 빠르게 보급 경로를 알아내는 게 옳다.
이안은 토미에게 고갯짓하며 적당한 자를 더 차출하라 명했다.
“나키나를 포함하여 세 명정도 더 동쪽으로 움직여라. 그들에게도 이 사안을 공유하고, 새로운 장관의 명에 충실히 따르도록.”
“아,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노아 역시 놀라서 멈칫거렸다. 이미 이안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효과를 계산하여 마법사를 보낸 게 아닌가? 그런데 더 추가하다니?
클리포포드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으나,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안 경. 괜찮겠나?”
“예. 그럼요. 무엇보다-”
이안은 자신의 손을 살짝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힘이 점점 되돌아오는 게 느껴집니다. 부하들을 더 내어드리겠습니다.”
* * *
클리포포드-바리엘 국경.
저 멀리 거대한 군단이 내달리는 게 보였다. 대지의 빛을 그대로 받아내는 갑옷, 크게 휘날리는 바리엘 제국기. 미리 언질을 받은 국경 병사들은 장벽 문을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바리엘에서 지원군이 온다! 문을 열어라!”
“멈춤 없이 통과하게 하라!”
“서둘러서 밀어! 밀어!”
“하나, 둘, 셋!”
끼이익!
굳게 잠겨 있던 장벽이 활짝 열리고, 그들은 장벽 위에서 다가오는 병사들을 지켜봤다. 타국의 군대가 조국으로 들어오는데도 이상하게 든든한 느낌이다.
“여길 지나서 바로 남단까지 간다지?”
“거기서 국경을 또 지나 죽은 땅까지.”
타닥타닥!
히이잉!
그와 동시에 바리엘의 병사들이 클리포포드 장벽을 통과했다. 힘차게 내달리는 말과 굳센 기상으로 그 뒤를 따르는 병사들. 하나같이 어깨에 푸른색 장식이 달린 갑옷이었다.
“이보시오들! 잘 부탁하오!”
“잘 부탁하오! 환영하오!”
부우우- 부우-
병사들이 크게 소리치며 환호하였지만, 그 소리마저 흔적 없이 묻힐 만큼 장엄한 물소뿔 소리다.
바리엘의 군 장교가 트웰러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장관님! 클리포포드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군단을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숲이 있으니 그곳을 기점으로 나눌 것이다. 모두 기억하고 있겠지!”
“예! 장관님!”
“그에로, 너는 루스웨나 남쪽 도시에서 바로 이어지는 경로로, 피즈! 너는 그 밑! 나는 제일 아래로 간다!”
“알겠습니다!”
“진 황태자 전하께서 말씀하시길, 마법사들이 먼저 정찰하여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게라 하였다! 마법사와 합류하면 각자 전서구를 내게 보내도록!”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얼마 동안 이리 달렸는지 기억하는가!?”
트웰러가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포효하며 소리쳤다.
“그 세월이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달렸던 것이다! 기필코 임무를 완수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죽을 것이니, 그대들 또한 따라 죽을 각오로 임하라!”
“무조건 해내겠습니다!”
“장관님! 숲이 보입니다!”
타닥타닥!
트웰러는 손을 뒤로 넘기며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손잡이가 투박하고 긴 도끼였다. 갑옷 입은 자들을 상대로 난투하기에 적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상징하는 무기였다.
“간다!”
“와아아아!”
부우우-
숲으로 들어서는 바리엘 군단. 처음 오는 숲이었지만,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기동하며 세 갈래로 갈라졌다. 오랜 세월, 온갖 전장을 누비며 체득한 움직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