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77
제377화. 진짜 시작
루스웨나의 보급병들은 마차를 호위하며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짐칸 뒤에 가득 실린 상자들. 죽은 땅답게 길 상태가 고르지 못하여 연신 흔들렸다.
말을 탄 장교가 천천히 걸으며 계속 주위를 주시했다.
“천천히 움직이되 멈추지는 마라!”
“예. 알겠습니다!”
질척이는 흙과 곳곳에 튀어나와 있는 자갈.
부하 중 한 명이 장교에게 제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은 아닌 것 같다. 보급품이라 하면 무엇보다 속히 옮기는 게 좋지 않겠나? 죽은 땅 중에서도 제일 먼 길을 돌아서 가고 있으니.
이는 효율적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병사들의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지금이라도 말 머리를 틀어 클리포포드와 가까운 쪽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장군. 조금만 더 가면 위쪽 길로 통하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병사들의 체력 소모와 마차의 내구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경로를 바꾸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후미는 조금씩 처져서 그 간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늦춰지고요.”
“안 된다. 클리포포드에서 최대한 멀리 둘러 갈 것이라. 에리포니 전하께서 말씀하시길, 바리엘에서 루스웨나와의 무역을 중단하겠다 했다더군.”
외교부에서 정식으로 항의서를 보냈으나, 그 답신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온다 하더라도 납득 가능할 만한 내용이 적혀있을 리도 없고.
“바리엘에서 보급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서두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정확한 전달. 추격대가 붙을 수 있으니 최대한 험한 길로 숨어들어 가는 수밖에 없다.”
그들이 싣고 가는 것은 드래곤 각린을 비롯하여 흑갑옷 제작에 필요한 몇몇 재료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몰래 숨어드는 행렬이다 보니 적재된 것이 적다는 것. 물론 거대한 마차 십수 대가 일렬로 움직이고 있었으나, 왕국 간의 거래임을 생각하면 소박한 수준이다.
‘아무래도 전하께서는 우리가 발각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 같지만.’
상대 전력에는 마법사가 있었다.
창공을 물속처럼 헤엄치는 자들이라, 쉽사리 저들을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하여 에리포니는 반쯤은 진짜로, 반쯤은 미끼를 낚듯이 보급로를 짠 것이다.
장군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부하들을 재촉했고, 여기저기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히잉!
“이놈의 말 새끼, 너까지 왜 그래?”
당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말 때문에 한 병사가 화를 내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런데 그 순간. 그자가 담당한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행한 모든 짐승들이 멈칫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게 아닌가?
행렬의 속도가 늦어지자 장군이 엄한 낯으로 뒤를 돌아봤다.
“무슨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짐승들이 움직이질 않아요.”
“짐승들 다?”
“예예.”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땅에 발을 딛자, 그는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아주 작고 희미하여 감각이 예민하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지진이다.
“지진이군.”
“지진이요? 저희는 모르겠는데요.”
“이참에 조금 쉬었다 가지. 십 분 휴식!”
“십 분 휴식!”
명령이 떨어지자 보급병들은 피곤한 숨을 내쉬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러자 그들도 그 흔들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아. 정말이네. 땅이 흔들려.”
“근처에 지진이라도 났나?”
“글쎄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은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신이 사는 세대에서 전쟁이라는 게 날 줄은 몰랐다. 그것이 비록 버고스와 클리포포드라는 외국 간의 일이지만 말이다.
루스웨나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참전하는 것은 곧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보급 임무를 완수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죽은 땅을 또 다시 건너야 할까?
“그때는 클리포포드 통해서 갔으면 좋겠네.”
“잠깐만. 이거 점점 울림이 커져.”
한 병사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눈을 크게 떴다. 평상시에도 별 잡스러운 소리를 하는 자라, 동료들은 또 시작이라며 혀를 차 댔지만 말이다.
타닥타닥!
타다닥!
병사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말발굽 소리다.”
그 순간, 하늘에서 번쩍거리는 빛.
다들 놀라 벌떡 일어섰고, 동시에 무기를 집어 들었다. 일직선으로 쭉 이어지는 빛은 그들의 머리맡에서 멈추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서 있는 지점의 창공.
“저, 저게 뭐…….”
마치 신께서 걷는 길이 있다면 저럴 것이라. 아름답게 반짝이며 너울 치는 것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멍하니 정신을 놓은 병사들과 달리, 장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재정비하라! 서둘러 출발해! 마법사다! 바리엘의 마법사다!”
저런 것을 행할 수 있는 자는 마법사밖에 없다. 그들이 보급 행렬의 위치를 파악해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
장군의 명령에 다들 허겁지겁 말고삐를 쥐었고, 우선 보급 마차를 앞으로 배치하여 먼저 출발시켰다.
히이잉!
“달려라! 멈추지 말고 달려! 갈림길이 나오면 갈라져도 좋다! 보급 위치에서 다시 만나도록!”
“예, 장군님!”
“보병들은 나를 따르라!”
하늘에 난 빛 길이 조금씩 그들에게 뻗쳐왔다. 그러자, 갑자기 숲에서 튀어나오는 말들. 하나같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뛰어내려 그들 앞을 막아섰다.
화려한 무늬의 견고한 갑옷. 그리고 파란색 표식. 바리엘의 병사들인 게 분명했다.
촤아악, 그들이 모습을 보이자 버고스 병사들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보급 마차가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바리엘군 아니신가! 먼 땅까지 무슨 일인지!”
“가이아 대륙의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자들이 있다 하여 대제국 바리엘의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보내셨다. 루스웨나의 보급병들이지?”
“그래. 우리는 루스웨나 소속이다!”
장군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의 갑옷에는 노란색 인장이 묶여있었다.
“우리는 도적이 아니며, 가이아에 혼란을 가져올 의도가 없다. 그럼에도 이리 위협적인 대치는 루스웨나에 대한 모독이며 공격이고, 우리의 왕께서는 이를 아주 엄중하게 받아들이실 것이라!”
명분 없이 어찌하여 루스웨나를 막아서려고 하는 건지 묻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리엘 측은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부하에게 나직이 지시했다.
“마차를 쫓아라.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을 게다. 반항이 심하면 모두 죽여도 좋다. 다만, 루스웨나와 버고스의 보급지를 확인하고 싶으니, 한 대 정도는 그림자를 붙여 따라붙어라. 국경을 넘기 전에 처리해.”
“예. 알겠습니다.”
바리엘 병사들이 뒤쫓으려 하자, 루스웨나군 장군이 앞으로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이놈들이 지금, 내가 누구라고-!”
촤아악!
콰악!
하지만 그때, 숲에서 날아오르는 마지막 한 사람. 트웰러는 단숨에 도끼로 장군의 목을 찍어 눌렀고, 그의 목은 반쯤 잘린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꿀렁거렸다.
스윽.
트웰러가 도끼를 빼내자 그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말이 놀라서 홀로 도망가고, 병사들 또한 너무 갑작스러운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자신들의 사령관이다. 그런데 그 미세한 틈을 통하여 목을 단숨에 노렸다고? 저 노인이?
“네가 누군데?”
“끄, 끄어어억…….”
“나는 맥심 트웰러. 제국방위부 장관이네만. 다시 묻지, 네가 누구지?”
장군은 부들대며 목덜미를 잡은 채 트웰러를 올려보았다. 여전히 일렁이는 환한 빛으로 인해 그의 안면이 역광으로 보였다.
트웰러는 일말의 동정도 없이 다시금 도끼 손잡이를 잡았다.
“말할 수가 없나 보군. 그대의 이름은 저승에서 다시 듣겠다. 그때는 나 역시 제국방위부 장관직을 떼고 다시 인사하지.”
촤아악!
나무를 베는 것처럼 트웰러가 힘주어 목을 내려쳤다. 그러자 뎅강 떨어져 나간 장군의 머리. 트웰러는 그자의 머리에 발을 올린 채, 덜덜 떠는 병사들을 쳐다봤다.
“항복할 자가 있다면 받아주겠다.”
“히, 히익-”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걸 알려주지.”
“으아아악!”
채앵! 챙!
장군의 부하였던 자가 검을 내두르려 달려들었다.
그러자 트웰러의 부하가 바로 막아서며 공격을 내쳤고, 이내 대여섯 번의 합 끝에 피가 묻어나왔다. 트웰러 부하의 검 끝에 루스웨나의 심장이 닿은 것이라.
그걸 기점으로 병사들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도망치는 자들과 그를 덮쳐 죽이려는 자들이 한데 섞여, 높고 낮은 신음과 괴성을 내었다.
“살려, 살려-!”
“항복하는 자는 살려두라! 병사로서 긍지를 잃은 자다! 대응하는 자들은 모두 죽여라! 언젠가 루스웨나의 전력이 되어 바리엘을 위협할 자들이니!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
트웰러는 피 묻은 도끼를 슥슥 닦아내며 소리쳤다.
점점 더 뻗어나가는 빛줄기. 이내 창공에서 마법사 한 명이 내려와 아수라장인 사태를 보고 입을 오므렸다.
“마법사님. 내려오셔도 되겠습니까? 마차를 놓치면 어찌하시려고요.”
“아, 마차 중 하나가 전복되어 멈췄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들은 서쪽으로 가고 있으니, 이곳을 서둘러 정리하시고 선발대에 합류하시지요.”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바리엘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위용 있게 내달리는 자들은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법사는 데구루루 구르는 장군의 머리를 못 본 척 고개 돌렸다.
“다른 쪽 경로 수색 중인 자들을 이쪽으로 모이라 할까요? 아무래도 전력을 합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안이 제국방위부 장관 명령에 따라 움직이라 명하였으니, 그의 의중을 물을 수밖에 없다. 트웰러는 가만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까 보니까 마차 수가 좀 적더이다. 분산하여 가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 각자의 자리에서 수색은 계속 잇는 것으로 하지요. 다만, 저희 쪽에선 보급로를 차단했다고 공유해 주십시오.”
“예. 장관님. 그,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마법사긴 하지만 트웰러는 장관의 신분이었다. 의외로 깍듯한 그의 행동에 되려 불편한 마법사다. 하지만 노인은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글쎄요. 적지에서 저는 제 동료들 외에는 다 낯설게 보는 걸 선호합니다.”
아무리 한편이라 한들, 제국방위부 소속이 아닌지라 선을 허물 수 없다는 답이었다.
거참 이상한 노인이시네. 마법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계속해서 빛을 따라가십시오. 저는 다른 분들께 현황을 전하겠습니다. 여기 뒤처리는 어찌합니까?”
“죽은 땅이니, 시체들이 굴러다닌다고 한들 문제 있겠습니까? 시체가 지닌 소지품이 따로 있는지 조사 후 바로 뒤쫓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마법사는 사라졌고, 트웰러는 순식간에 피바다가 된 주위를 둘러봤다. 항복한 자들이 땅에 머리를 박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부하에게 고갯짓하여 뒤처리를 명하였고, 이내 다시 말에 올라탔다.
“다른 자들은 나를 따르라! 마차의 뒤를 밟을 것이다. 하늘에 새겨진 저 빛이 우리가 갈 길이라. 헤맬 일 없고 늦을 리 없다. 가자!”
“네! 장관님!”
타닥타닥!
그들은 마법사가 일러준 빛을 따라 말 머리를 돌렸고, 이내 속도를 높이기 위해 몸을 바짝 숙였다.
뒤처리를 위해 인력이 반으로 줄었지만, 트웰러는 상관없었다. 마법사가 있었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지원을 요청할 자들이 주위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감이 뜨겁게 요동쳤다. 짜릿한 승리를 가져올 때마다 느꼈던 그 오감 이상의 감각. 노인은 기분 좋다는 듯 크게 웃었고, 그를 따르는 자들은 웃음을 듣고 미소 지었다.
저 멀리, 마법사가 말했던 전복된 마차가 보였다.
* * *
“좋은 소식입니다!”
숨을 가쁘게 쉬며 달려오는 병사.
이안과 노아 왕자가 동시에 고개를 틀었다. 아코렐라가 조심히 좀 다니라며 소리치려 하자, 베릭이 그녀의 입에 포도를 넣어주며 막았다.
“무슨 일이지?”
“바리엘 측의 지원군이 클리포포드 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 기세가 폭풍과 같아 병사들이 모두 감탄했다고요. 곧 있으면 보급로 전선에 대한 답신도 들려올 것입니다. 이안 경, 왕궁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병사가 넙죽 엎드리자, 이안은 고고히 고개를 틀어 웃기만 했다. 호의로 하는 것이 아닌데, 감사의 인사라.
“왕궁에 전해주십시오. 바리엘과 클리포포드 그리고 나아가 가이아의 미래를 위해 마땅히 내린 황태자 전하의 결정이셨다고요. 그나저나, 바리엘 측과 루스웨나가 맞붙으면 이제 정말 시작입니다.”
“시작이라니? 이안아, 뭐가?”
베릭이 묻자, 이안이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루스웨나 입장에서는 아무런 연유 없이 공격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선제공격으로 치부하여 명분을 확보할 것 아닌가? 본격적인 4국(國)의 대립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부터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게다. 베릭.”
이안의 말에 베릭이 놀란 표정으로 멈칫거렸다.
그리고 곧 미친 듯이 바쁘게 움직이는 손. 아코렐라가 집어먹으려는 것까지 뺏어 먹으며, 양 볼을 와구와구 씹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