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81
제381화. 이안의 편지
-전하, 강녕하십니까? 마법부 이안 히엘로 장관 보고서 올립니다.
방금 제국방위부의 맥심 트웰러 장관과 합류하여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장관께서는 루스웨나에서 버고스로 통하는 보급로 중 일부를 차단하였고, 또 일부는 보급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림자를 붙여 추적 중입니다. 오랜 세월 전장을 누볐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여유라, 클리포포드를 비롯하여 저 또한 장관의 다짐에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보급로에 관한 것은 전적으로 트웰러 장관께 맡기고 안심하심이 전하의 심신에 도움 될 것입니다.
전하, 아시겠지만, 보급로의 차단은 루스웨나에게 명분을 주는 것입니다. 클리포포드의 지각 아래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라, 마법사의 힘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여, 일격을 준비하고자 하는데 바리엘 황궁에서 차출 가능한 병력을 최대한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합니다. 현재 클리포포드로 들어온 버고스 군단은 진영을 친 채 움직임이 없습니다. 조만간 거센 격돌이 일어날 것 같으니, 속히 군단을 파견해 주십시오. 시간은 최대한 끌어볼 터이니, 그저 우리의 자랑스러운 병사들을 끝없이 내려주시길 청하옵니다. 이는 저와 트웰러 장관 그리고 클리포포드 왕가가 일심으로 바라는 사안입니다. 부디 황궁에서 문제없이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하. 강녕하신지 다시 묻고 싶습니다. 제가 없는 사이 황궁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더군요. 작은 칼바람일지라도 전하께서 상처를 입히진 않았을까 걱정되옵니다. 트웰러 장관의 전언을 듣고 있자면, 괜한 기우인 것 같지만 말입니다. 하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국방위부의 위상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을 것 같습니다. 부디 힘쓰시어 트웰러 장관 마음 깊이 전하가 자리 잡길 바랍니다.
전하, 베릭이 안부를 전해달라고 합니다. 시아오시가 작위를 받았다는 소식에 혼자 배 아파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릅니다. 저것이 단순한 질투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원래 베릭은 알기에 어려운 자 아닙니까. 로만드로 또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하, 바리엘에서 뵙겠습니다. 그때는 아래를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래를 보시고, 저는 전하를 올려다보아 비워진 시간을 채웠으면 합니다. 그럼, 바리엘의 무궁한 영광을 진 황태자 전하께 바치며, 이만 글자를 줄입니다.
-이안 히엘로 장관 올림.
시아오시는 시계를 확인했다. 삼십 분쯤 흘렀을까?
진은 이안이 보내온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글자 하나하나를 음미하는 것처럼 가슴에 새겼다. 지금까지는 전시에 관한 간단한 보고만 올라왔었는데, 이리 개인적인 안부가 적힌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진은 종이가 닳을까, 차마 손도 못 댄 채 정갈한 자세로 서신을 내려다봤다.
“시아.”
“예. 전하.”
“이안 경이 이제 나보고 아래를 보아도 된다는구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진에게는 좋은 소식인 게 분명했다. 아이의 볼우물이 보기 드물게 쏙 패였기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전하.”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많이 물러섰나 봐. 그랬나 봐.”
바리엘을 받들기 위해 필요한 알맞은 간격. 이안이 저를 떠나고 견제하며, 보란 듯이 공격을 유도했던 모든 것이 그것 때문 아니었나.
황태자로 즉위할 때, 이안은 저보고 아래를 보지 말라 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보아도 된다 하니, 이안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꽤 높은 곳까지 올라온 것이라.
“답신 준비를 할까요?”
“아, 그래. 회의도 소집하라. 트웰러 장관 또한 요청을 희망한다 쓰여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다만, 절차를 지키는 것이 모두에게 좋겠지. 병력을 추가 지원할 것이다. 이번에는 죽은 땅 쪽이 아니라 클리포포드 왕궁 쪽으로. 가는 시일이 더 짧겠지?”
“예. 죽은 땅은 클리포포드 땅 또한 지나가야 하지만, 그쪽 왕궁은 바리엘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이안 님이 원하는 적기에 도착할 것입니다. 서두르기만 한다면요.”
“좋다. 답신을 쓰는 동안 관료들을 모아라.”
시아오시가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진은 펜과 종이 따위를 꺼낼 생각도 못 한 채 계속해서 이안의 편지를 읽었다.
이안이 황궁으로 복귀하면, 더는 멀어지지 않아도 된다. 제국방위부와 황궁친위대, 더하여 행정부까지 진의 세력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존재 자체만으로 마법부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으리라.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진이 아무런 사심 없이 마법부에 놀러와도 걱정하는 자 없을 것이요, 균형이 어그러짐을 걱정하여 마법부를 공격하는 자 또한 없을 것이다.
이전처럼, 다시 이전처럼…….
스윽.
진은 경건한 마음으로 펜대를 잡은 다음 서문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몇 장의 종이를 구겨댔다. 아이는 다시 심호흡하며 머릿속으로 전할 내용을 정리했다.
‘이안 경이 클리포포드를 무사히 수호하여 돌아온다면, 그 동맹으로 인한 이득이 따라오겠지. 이는 간과할 수 없는 공이라. 귀국 시 작위를 승격하여 줄 것이고, 함께 전선에 나섰던 자들에게도 알맞은 포상을 내리리라. 베릭이 원한다면 그 역시 알맞은 작위를 하사해주어도 좋다. 하지만 작위에 따른 책임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으니, 그것은 이안 경에게 맡기는 것으로…….’
진이 싱긋 웃으며 펜을 종이에 대는 순간이었다.
똑똑.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펜촉이 갈라졌고, 그로 인해 잉크가 엉망으로 퍼져버렸다. 이번에는 정말 잘 적을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진은 인상을 찌푸린 채 시종에게 들라 전했다.
“무슨 일인가?”
“전하, 그, 루스웨나 측의 외교관이 본국으로 돌아가겠다 하였습니다.”
무역 중단에 관하여 항의하기 위해 온 자였는데, 갑자기 돌아가겠다고?
어차피 황궁에서는 답 내줄 생각이 없었고, 그는 도착한 이후부터 별궁에 감금되다시피 방치되어 있었다. 막상 돌아가겠다고 하니, 심히 의심스러운 것이라.
그렇다고 여기서 무력으로 저지한다면 이는 루스웨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을 쥐여주게 된다. 이미 보급로 습격 때문에 날이 서 있는 그때야 버고스 때문이라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이것은 오롯이 바리엘과 루스웨나 둘 사이의 문제이지 않나.
“언제?”
“짐이 챙겨지는 즉시요. 그리고 저희 쪽 외교부에서도 연락이 들어왔습니다만, 이게 문제가 좀 커진 것 같습니다.”
“우리 쪽 외교부라 하면, 루스웨나에 있는 바리엘 외교관 말인가?”
“예. 군사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에리포니 왕이 직접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회의에서 의논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에리포니가 직접 나선다면 다몬 역시 그럴 수 있다. 진은 잉크 번진 편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바로 나가지. 관료들은 모두 모였나?”
“황궁에서 항시 대기 중이니, 지금 나가시면 알맞을 것입니다. 시아오시 경이 모셔오라 하였습니다.”
다몬과 에리포니. 클리포포드를 건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그 아래 무언의 목적이 더 있다는 걸 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쪽에서 왕이 나온다고 한들, 바리엘은 제국. 격 맞지 않게 진이 나설 수도 없고, 나설 이유도 없었다. 아직 그는 어린아이였으니까. 그러니 트웰러와 이안이 황태자를 대신해서 양국을 상대할 수밖에.
타닥타닥!
끼이익.
“전하. 소식 들으셨습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 뒤집어지는 소식이 들려오니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모르겠다만, 내 들었소.”
회의장에 당도한 진이 상석에 앉으며 대꾸했다.
시아오시는 기민하게 아이의 기분 변화를 눈치챘다. 분명 아까 전만 하더라도 이안의 편지를 받고 좋아하던 기색이었는데, 어찌 저리 가라앉으셨을까. 아이는 아직 어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왕처럼 전선에 나설 수 없음을 한탄해 하고 있다는 걸, 시아오시는 알아채지 못했다.
“루스웨나와 버고스 측의 외교관이 돌아간다 하였습니다. 당장 짐을 싸고 있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본국으로 돌아간다 하는데 우리가 어찌하여 막겠소? 여기서 무력으로 잡아둔다면 가이아의 바리엘 명성에 흠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 시국에 황궁까지 들어온 자를 되돌려보내는 것이 영 석연치 않습니다. 무슨 수를 내서라도 잡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외교관을 건들지 않는 것은 암묵적인 합의요. 전하, 그쪽은 그쪽대로 흘러가도록 두시되 저희는 이안 장관과 트웰러 장관 쪽을 돕는 게 옳다 여겨집니다.”
관료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자유로이 이르며 회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진이 조용히 하라며 손짓하자 순식간에 죽어버렸지만 말이다.
“나 또한 별다른 명분 없이 외교관에게 손을 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혹여 저자들이 돌아가는 걸 원치 않은 자들은, 각자 ‘적당한’ 명분을 생각해내어 내게 보고서를 올려라. 합당한지 검토 후 명령 내리겠다. 그리고 이안 경과 트웰러 경에게 온 서신으로는 추가 병력을 지원해달라고 하는데-”
진이 눈짓하자, 제국방위부의 부장관인 자가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받아냈다.
“클리포포드의 사정 탓에 긴 전투는 불가한 듯싶어. 일격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현재 동원 가능한 병사를 순차적으로 내어버리게.”
“예.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제이럿.”
“예. 하명하십시오.”
“황궁친위대 대장 중에서도 차출하여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만. 이제는 어엿한 삼대장 아닌가? 그대가 가도 좋고, 아니면 신입 대장들에게 경험 쌓을 기회를 주는 것도 좋겠지. 이에 관한 결정은 그대에게 맡기겠소.”
“예. 명 받들겠습니다.”
제이럿은 황궁을 떠나지 않을 터였다. 아마 남은 두 대장 중 한 명을 보내겠지. 그리고 친위대는 어디까지나 황제, 즉 진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기에 많아봤자 대여섯 명 정도가 차출 될 터.
하지만 그들은 군단에 맞먹을 정도로 강한 자들이다.
“그리고 버고스와 루스웨나에서는 왕이 직접 전장에 나선다는 정보가 들어왔다는데, 이게 정확한 것인지 확인 가능한가?”
진은 보고서를 가볍게 내려놓으며 관료들을 돌아봤다. 그 누구라도 속 시원한 답을 내놓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 * *
타닥타닥!
히이잉!
노란색 인장을 찬 루스웨나의 병사들. 그들은 있는 힘껏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클리포포드의 장벽으로 내달렸다.
이미 흑갑옷으로 무장한 채 대치하고 있던 루스웨나 측의 병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깃발을 흔들며 신호하였고, 병사들은 말 속도를 천천히 늦추며 합류했다.
“문제는 없는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만-”
“다만?”
“어제부터 장벽 위의 클리포포드 병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밤에만 그런가 싶다가도 아직까지 털끝 하나 보이질 않습니다.”
“뭐?”
굳게 닫힌 국경문. 원래라면 그 위에서 경계 서는 병사들이 있어야 정상이거늘, 마치 버려진 곳처럼 텅 비어있었다. 그들은 인상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고 중얼거렸다.
“며칠 후면 에리포니 전하께서 직접 올 것이네.”
“네? 전하께서요?”
“그러니 미리 길을 터 두는 것이 좋아. 해가 중천을 지날 때 장벽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하라. 흑갑옷 입은 자들을 선두로 내세워서.”
“아, 예. 알겠습니다.”
병사는 급하게 진영으로 돌아가 상황을 알렸고, 이내 흑갑옷 입은 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여댔다. 부우우, 물소뿔 소리와 함께 경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클리포포드는 들으라. 루스웨나의 군용 마차가 기습당했다는 정보를 듣고 왔으니, 조사 차원에서 입국을 허가해주길 바란다. 응하지 않을 시 우리 또한 무력을 사용할 것이며, 이후 그대들의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은 그대들의 탓이라!”
하지만 들려오는 답이 없다. 마치 아무도 없는 곳에 대고 소리치는 기분이다.
병사들은 의아해하며 장벽에 갈고리를 던져댔고, 이내 사다리 따위를 동원하여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타앗!
“아…….”
“저게 다 뭐야?”
“그러니까 말입니다. 아무리 봐도 수상합니다.”
그리고 마주한 광경. 텅 비어버린 들판 곳곳에 박혀있는 의미 모를 나뭇가지들. 색색의 천에 묶여서 바람결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가도록 트인 길.
“야, 너! 너 앞으로 나서서 가봐.”
“제, 제가요?”
누가 봐도 수상한 길인데, 저보고 가라니. 젠장. 병사가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디뎠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퍼어엉! 퍼엉!
“으아아앗!”
가까이 있던 무언가가 폭발하여 땅이 흔들렸다. 병사들은 다시금 장벽 위로 올라갔고, 여전히 자신들을 맞이하는 천들과 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 X 됐네.”
에리포니 전하가 오시면 저들보고 먼저 통과하라 할 터인데, 아무리 봐도 마법사들의 함정 같았으니.
그들은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며 올랐던 벽을 천천히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