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82
제382화. 서서히 흘리다
칠흑 속을 내달리는 마차와 그 뒤를 쫓는 바리엘군.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멈춤 없이 숲을 내달리고, 올랐으며, 내려갔다. 마차 바퀴 소리와 말들의 울음 그리고 공포에 질겁한 루스웨나 병사의 비명 따위를 길잡이 삼아서 말이다.
자신이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 이대로 계속 추격을 하는 게 맞을까? 장교 한 명이 제 동료를 바라보며 수신호를 보냈다.
“계속 붙어. 장관님 지시다.”
“괜히 말 힘만 뺄 것 같아서 말이지.”
타닥타닥!
버고스와 루스웨나의 보급지를 알아내기 위해 계속되는 마라톤. 덜거덕거리는 마차가 애처롭게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덧 경사가 있는 숲 등지를 지나칠 때였다.
촤아아악!
마차 앞을 가로지르며 나오는 한 무리의 병사들. 버고스군이었다.
반복적으로 뒤만 따르던 바리엘의 병사들이 단숨에 멈추었고, 루스웨나 마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곧 버고스군의 등장을 알아채곤 재빨리 고삐를 잡아 쥐었다.
“오른쪽 길로 나가면 아는 길이 나올 거요!”
“아, 알겠소!”
채앵!
보급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안 버고스 측에서 지원병을 보낸 것이었다.
오른쪽 길이라. 바리엘 장교들은 서로 눈짓했다. 한평생을 함께한 벗이라. 숨결만 들어도 그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으니.
장교 한 명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마차를 따라잡기 위해 나섰고, 나머지 병사들은 검을 뽑아 들었다.
“시커먼 것이, 죽은 땅에 사는 도적인가 보구나.”
어떠한 정치적 목적이 없다는 걸 이르는, 바리엘의 선전포고였다.
안 그래도 빛 한점 없는 곳에서 검은색 옷을 입고 있으니, 달빛에 반사되는 검날이 아니었다면 사람이 서 있는 줄도 몰랐을 게다.
버고스 병사들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바리엘과 맞섰다.
“수송 마차를 급습하는 것이야말로 도적이 하는 짓이니, 누가 누굴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우습다.”
“직책을 대라. 높은 자면 살려주겠다.”
“살려줘? 하하.”
버고스 병사는 진심으로 웃긴다는 듯 소리 내서 웃었다. 그와 함께 스산한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고 휘몰아쳤다. 이파리 하나 없는 것이라 잘못 들으면 사람이 웃는 것과 같은 소리다.
“오만한 발언이로다.”
검을 맞대기 전에도 살리느니 마느니 하는 수작이라, 참으로 건방지다.
그리고 버고스군은 모두가 같은 복장을 하고 있건만, 굳이 직책을 묻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여차했다가는 생포하여 정보를 캐내겠다는 뜻이다.
그는 혀를 차며 검을 다잡았고, 바리엘의 장교 역시 무기를 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저 마차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고서 쫓는 것인가?”
솨아아악.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지?
바리엘군 장교가 인상을 찌푸렸으나, 워낙에 어두워서 상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저들 중 누가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달빛이라도 조금 새어나오면 좋으련만.
“쫓을 것 없이 그쪽 나라 마법부 장관에게 가서 만들어달라 하면 될 것 아니겠는가?”
“무슨 헛소리.”
“어느 부분이 그대에게 헛소리로 들리는지 모르겠군. 아, 이드갈을 모르는가?”
이드갈. 들어본 적은 있다만, 실제로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다. 그저 이번 전쟁에 있어서 마법사와 마검사를 견제할 아주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 정도만 알 뿐.
“이드갈을 만들어낸 것이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이니, 이리 힘 쏟아 마차 쫓을 것이 아니라 그쪽에 가서 더 만들어달라 하면 될 일 아니던가.”
병사는 확신했다. 저 미친놈이 혀를 놀려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무슨 속내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절주절 떠드는 걸로 보아 자신이 귀담아 들을 내용은 아니었다.
타닥타닥!
채앵!
장교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어둠 속에서 오가는 검날과 그 끝이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생명줄을 건드렸다 물러섰다.
시각을 제외한 온몸의 감각이 새로 태어난 것처럼 곤두섰다. 상대에서 풍겨오는 기이한 냄새. 검날이 만드는 궤의 바람 소리. 호흡.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다음 공격 등등.
“젠장. 안 되겠다. 불을 켜라!”
장교의 명령에 병사들이 허겁지겁 횃불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밝아지는 주위. 장교는 자신과 맞붙었던 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흰자 하나 없이 온통 검은 자로만 이루어진 눈동자. 이걸 어디서 봤더라? 만질만질한 눈동자에는 자신의 얼굴이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채앵! 챙!
한껏 수월하게 합을 이어가는 공격. 그때, 숲에서 더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설마 버고스 측의 지원군인가? 긴장한 장교가 그쪽으로 고개를 트는 사이, 상대 병사가 빈틈을 노리며 목 쪽으로 검을 집어넣었다.
쉬이이익!
콰악!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날아오는 도끼.
정확히 상대측의 얼굴에 꽂혔고, 당황한 그가 비틀거리며 물러서길 몇 발자국, 이내 앞으로 고꾸라지며 안면이 반으로 틀어졌다.
그걸 기점으로 팽팽하게 대립하던 전투의 추가 기울었다. 바리엘 병사들은 하나둘씩 버고스 병사를 쓰러트렸으며, 이내 사상자 없이 작은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장교가 호흡을 고르며 도끼가 날아온 쪽을 쳐다봤다.
“…장관님.”
“어둠 속에서 괜히 힘을 빼고 있군.”
“송구합니다. 실력이 만만치 않은 자라.”
“마차는?”
“예. 계속 쫓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클리포포드 장벽으로 획득한 물건을 옮기고 잠시 휴식하라. 현재 루스웨나 보급 마차를 쫓는 추격대는 몇이나 되는가?”
“방금 체이스와 나뉘었으니 총 다섯 부대, 열 명씩 총원 오십 명입니다.”
“전원 복귀를 명한다. 다들 준비하여 클리포포드로 돌아가라. 저자의 시신도 살피고.”
“예. 그런데 장관님, 혹 이안 장관을 보셨습니까?”
“그래.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되려 문제는 클리포포드에 있었지. 자세한 것은 돌아가서 일러주마. 밤이 깊어. 마물이 나올 수도 있으니 서둘러서 퇴각해라.”
“그러면 이후 보급품 차단 작전은 중단하는 것입니까?”
“드래곤 각린 대부분을 회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쯤 하면 버고스에서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겠지. 곧 있으면 진 치고 틀어박힌 버고스 측에서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수도 수성전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병사들이 죽은 버고스 병사의 옷가지를 뒤지며 무언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트웰러가 말 머리를 돌리려고 하는 순간이다.
“이거, 이드갈 아닙니까?”
이드갈? 한낱 병사가 이드갈을 소지하고 있다니? 트웰러는 인상을 찌푸리며 사체 가까이 다가왔고, 눈을 부릅뜬 채 죽은 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눈동자가 하이만 공작과 닮아있군.”
“아아, 그러게 말입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렇습니다. 흰자가 없는 동공은 보기 힘드니까요.”
“소속을 밝히지 않던가?”
“예. 밝히라 했으나 묵살했습니다.”
“이자도 갖고 있습니다!”
잘그락.
죽은 자들 모두 이드갈을 소지하고 있다. 신분이 어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낱 병사들까지도 만약을 대비하여 이드갈을 가지고 있는 수준이라면…….
‘전쟁 전에 이미 유통이 된 것 같은데.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많이.’
물론 이드갈의 존재와 그 유통 가능성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 볼브 장관이 이와 관련된 사안을 회의장에서 논의했다고 전해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라면 바리엘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더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이안 경은 이걸 알고 있으려나?’
“저기 그런데 말입니다, 장관님.”
피를 닦아내던 장교가 사체의 까만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드갈의 출원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러더포드라는 상단으로 추측되고 있다만, 아직 자세한 것은 논의되지 않았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 한 탓도 있고.”
“이자가 이상한 소리를 했습니다. 개소리로 생각했는데 이리 주머니에서 이드갈이 나오니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닌 듯해 보고드립니다.”
“무슨?”
“이드갈을 이안 경이 제조하였다 합니다.”
트웰러의 인상이 더더욱 구겨졌다. 바보 같은 소리에 반응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한 표정이다. 장교는 멋쩍게 코를 훌쩍이며 사체를 길가로 옮기는 척했으나, 트웰러의 잔소리를 피할 순 없었다.
“전쟁에서는 정보가 중요하다. 무엇이 가짜고 진짜인지 판별하는 것은 수천, 수만의 병사와 대적할 만한 힘을 가지지. 지금 그대가 한 말 때문에 귀를 씻고 싶어졌다, 이 말이야.”
“죄송합니다. 저도 개소리라고 생각은 했는데, 예. 하핫.”
마법사가 마법사에게 독이 되는 물질을 만들어냈다니. 몇 번 보지는 않았지만, 이안 경이 그토록 무모하고 무지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옆의 아코렐라라면 연구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할 것 같긴 하다만.
아무튼,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제 목을 옭아 죄는 짓을 하진 않을 것이라. 트웰러는 도끼를 집어 든 다음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정리하고, 클리포포드로 들어간다.”
“예. 장관님.”
“길이 떴다. 곧 보마.”
희미하게 일렁이는 빛줄기. 밤이라 낮처럼 밝고 환하게 빛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마차의 행적을 좇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마법사가 창공에서 서두르자며 손짓하였고, 트웰러는 마차에 올라타 부하들과 함께 그 빛을 따라갔다.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쫓는 기분이다.
* * *
“그래서? 보급품은?”
“아직 들어온 게 없습니다.”
다몬은 치장을 받으며 부하의 보고를 받았다. 찰랑거리던 단발을 하나로 곧게 묶고, 더욱 화려하고 위엄 있게 고급 천을 덧대어 입었다.
거울 속 다몬의 모습은 무덤덤하니 어떠한 표정도 찾을 수 없었지만, 부하는 연신 불안하다는 듯 소매 속 손끝을 잡아 뜯었다.
“알겠다.”
“예?”
“물러나라. 내일이 출정일이니.”
“예. 전하.”
보급도 제대로 못 받아, 티모시는 바리엘로 도망가, 최악의 상황에서 앞둔 출정식. 다몬이 패악질을 할 거라 예상했거늘, 어쩐지 쉬이 넘어가는 기색이라 부하는 내심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큰 일정을 맞이할 것 아닌가. 아무리 다몬 전하라도 이런 날만큼은 성격을 죽이시는 게 맞지, 암. 부하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뒷걸음질 쳐 방을 나갔다.
“보급 지원군은?”
“예. 지금쯤 바리엘 측과 맞딱뜨렸을 것입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남자. 티모시를 몰아내고 다몬의 최측근을 차지한 자였다. 다몬은 피식 웃으며 옷깃을 손수 단정히 했다.
바리엘, 정확히는 마법부가 이번 전쟁에 개입한 것이 득과 실을 동시에 가져올 것이었다. 자신의 2회 차 비밀과 교환하였던 이안의 비밀과 더불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러더포드 그 작자는 그리도 귀한 얼굴이라던가?”
“송구합니다. 사정이 있으니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 달라고만 합니다. 답신을 다시 보내볼까요?”
“아니. 되었다. 원래 장사치들은 이리 시끄러울 때 숨어서 지켜보는 게 습성이거든. 한데 이드갈과 연관되어 있는 러더포드라. 더하면 더했지.”
다몬은 책상 위에 놓인 서신을 마지막으로 읽은 다음, 촛불에 태워 없애버렸다. 그 내용에는 이드갈 대중화와 전쟁 시 보급에 관한 약조 그리고 덧붙여서 이드갈의 시초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상세히 적혀있었다.
다몬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종이 조각을 가볍게 날려버리며 웃었다.
“다행이라니까, 정말. 이안이 황궁에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