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384
제384화. 죽음 혹은 기회
“호외요! 호외!”
촤아악!
아침부터 시끄럽다.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던 상인들과 출근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 술에 덜 깬 자들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한 아이가 신문을 팔기 위해 소란 떠는 것만은 아닌 듯했다. 여럿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들려왔으니.
바리엘의 사람들은 어쩐지 묘하게 불안한 감정으로 동전을 들어 올렸고, 아이들은 여기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외쳤다.
“전쟁이랍니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뭐? 여기도 신문 한 장 줘봐.”
“메일리데일리 속보입니다! 전쟁입니다!”
“클리포포드에서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바리엘도 공식적으로 참전하는 것인가?”
“저번에 제국방위부에서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바리엘도 전쟁하는 거 맞지요.”
“인도적인 차원에서 보내는 거랑 직접 얽혀 들어가는 거랑 같아? 이봐! 나도 한 부 줘!”
“메일리데일리가 확실히 황궁 소식에 강해.”
“그러니까. 저번에 내란 이후로는 그쪽으로 길을 튼 것 같지? 돈 많이 벌었더구만. 건물 옮겼다는 소문이 있어.”
“보자, 흐음. 버고스와 클리포포드 사이에서 외교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이에 관하여 입장이 서로 첨예하다고 하는군. 사신이 죽었다는 게 사실인가?”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 전쟁이 났다는 게 중요하지. 버고스랑 루스웨나 무역도 제재 들어갔지. 징집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젠장.”
“그러면 바리엘과 클리포포드, 그리고 버고스와 루스웨나가 맞서겠군. 징집 걱정하지 말게. 우리한테는 마법사가 있는데, 뭘.”
“아, 이 사람아. 혼자 눈, 귀 막고 살았구먼. 마법부 빈 지 오래됐어!”
“으응?”
“마법부 멈춰서 황궁 업무 밀리는 것도 몰라?”
거리가 순식간에 멈췄다. 신문을 손에 든 자들이 심각하게 황궁 입장을 읽어내렸고, 전쟁의 여파를 걱정하는 잡음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곳은 수도인지라 사실상 상대의 직접적인 공격은 없겠으나, 지방에 연이 있는 자들이나 나라를 오가며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은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손 놓은 채 앞날을 그려볼 수밖에.
“메일리데일리 속보입니다! 황궁에서 입장문을 내었습니다! 전쟁입니다! 다국 간의 전쟁입니다!”
“여기도 한 부.”
“레이디, 감사합니다.”
알레나라는 마차에서 손만 내민 채 동전을 흔들었다. 그리고 신문을 받자마자 급히 내용을 읽어내렸다.
제국방위부가 전격으로 출전한 것은 오라비인 세르오를 통해 들었지만, 루스웨나까지 출전한다는 건 듣지 못했다. 그녀는 손톱 끝을 잘근댔다.
‘클리포포드에 이안 경을 비롯한 마법부가 있으니까, 버고스와 루스웨나는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말 본격적인 전쟁인데, 전하께서도 참전하시지 않을까?’
에리포니 왕이 직접 나설 확률.
아니, 이것은 확률을 따지기보다 시간문제라 보는 게 맞을 터였다.
중심을 지키고 있던 바리엘이 기우는 순간, 가이아의 정세가 크게 흔들리는 건 자명한 사실. 버고스와 루스웨나는 무조건 클리포포드를 함락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미 불붙어버린 폭약과도 같은 것이라.
꽈악.
알레나라는 드레스 자락을 붙잡으며 고개 숙였다. 혹여 속이 안 좋으신가, 시종이 걱정스레 힐끗거렸으나 그녀는 손등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불편함이라기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워 보였다.
‘에리포니 전하께서는 전언도 없으시고, 이리 가만있어도 되는 걸까? 왕께서 혹 이안 경을 만나거나 제국방위부 측과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면?’
서로를 죽이느라 정신없겠지만, 어디까지나 협상과 휴전의 여지는 남아있었다.
알레나라가 바리엘의 정보를 에리포니에게 넘겼다는 게 알려지면, 세르오 가문은 참수다. 7대 중앙 귀족과 같이 시체가 되어 거리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될 것이라.
그녀는 머리가 어질해질 정도로 생각이 복잡해졌다.
‘왕께서 확신만 주셔도 이러지는 않을 터.’
에리포니가 망명을 허하는 말만 내주었어도 이렇게 복잡해질 일이 아니었다. 잘못했다가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로 일이 복잡해진다.
보다 못한 하인이 알레나라를 불렀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오라버니는 어제 안 들어오셨지.”
“예. 친구댁에서 주무신다고 하여.”
말로는 학식을 위한 모임이라고 하지만, 알레나라는 알고 있다. 술판을 벌였겠지. 한번 정점을 맛봤던 오라비는 아직도 과거에 취해있는 듯했다. 깨지 않는 단맛에 정신을 놓아버린 것인지, 가면 갈수록 하는 짓이 한탄스럽다.
그녀는 이마를 가볍게 두드리며 머리를 굴렸다. 어찌하면 좋을까. 어찌하면 미래로부터 굴러오는 불안 요소를 제거할 수 있을까.
‘생각하자. 생각해.’
지금 고민되는 것은 에리포니의 의중 확인과 자신의 배반 행위가 발각될 것이냐는 점이다. 이를 잘라내려면 왕을 직접 만나는 게 제일 확실한데, 전쟁이 난 상황에서 그게 쉬울 리가…….
“아!”
“아가씨?”
“마차를 돌려. 오라버니를 데리러 가자.”
“아, 네네. 알겠습니다.”
알레나라는 서두르라며 마부를 재촉했다.
무릇 전쟁이 났을 때 앞장서서 나서는 게 귀족의 임무이자 명예 아니겠는가? 물론, 사병을 소유할 정도의 대귀족이거나 변경백에 한하는 것이지만, 어쨌거나 말이다.
세르오도 귀족은 귀족. 명예를 위해 참전한다고 하면 그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잘만 하면 황궁에서 병사를 받아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금 패를 쥐게 되는 것이다.
‘에리포니 전하에게는 바리엘 병사를 쥔 세르오 가문이 참으로 쓸 만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혹여 그쪽이 잘려나간다 한들, 세르오 가문은 조국을 위해 참전한 명예 귀족. 배반에 대한 싹을 밟아버릴 수 있어.’
여러모로 괜찮은 수였다. 자신에게 흥미가 떨어진 것 같은 에리포니를 자극할 수도 있고, 황궁의 환심도 살 수 있는.
타닥타닥!
히이잉!
마차가 한 저택 앞에서 멈췄다. 그녀도 자주 와본 적 있는 세르오 친우의 집이다. 시종이 그녀를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었고, 이내 성큼성큼 내달리는 손님을 따라붙듯이 안내했다.
“오라버니들은?”
“아, 그게 잠시 응접실에 계시면 전언하겠습니다.”
“됐고, 안내해. 홀딱 벗고 있는 거 아니면 상관없으니까. 지금 굉장히 급한 일이거든. 그렇게 보이지 않니?”
직접 모시는 귀족은 아니었으나, 시종은 알레나라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2층으로 안내하여 문을 두드리려 했다. 그 전에 알레나라가 손수 열어젖혔지만 말이다.
콰앙!
“……!”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세르오가 움찔거리며 일어났다. 밤새 얼마나 퍼마신 것인지, 안으로 들어서지도 않았건만 술 냄새가 엄청났다.
알레나라는 방 안을 한번 둘러봤다. 다들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꼴이, 바깥의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다.
“아, 알레나라?”
“오라버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서둘러 갑시다.”
“어, 어딜 가? 잠깐만. 흔들지 말아봐. 토할 것 같으니. 우웁.”
“알레나라? 오, 정말이네. 오랜만이구나. 너도 한잔하러 왔니? 어쩌지? 술이 다 떨어졌는데. 하하하.”
“떨어진 건 처신머리겠지요. 신경 끄고 계속 주무십시오. 저는 오라버니 데리러 온 거라서요.”
“하여간, 쟤도 여전해. 쯧.”
세르오가 입을 틀어막으며 비틀거렸지만, 알레나라는 봐주는 것 없이 그의 옷을 잡아 끌어냈다. 빨리 거들라는 눈빛에 시종들 또한 세르오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부축했다.
“전쟁이 났어요.”
“갑자기 그게 왜. 알고 있었잖아.”
“루스웨나도 정식으로 참전해요.”
“음? 거기도? 바리엘에 선전포고라도 했던가? 수입 금지 때문에?”
알레나라는 제 오라비의 목덜미를 내려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루스웨나가 수입 금지 때문에 어떻게 감히 바리엘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오라비의 멱살을 잡은 채로 속닥거렸다.
“클리포포드를 계단 삼아 바리엘에 오기 위해서요. 그래서 루스웨나도 참전하는 겁니다. 오라버니.”
“음. 아. 그렇지.”
“지금 당장 집으로 가서 씻은 다음 정복을 꺼내 입으세요. 그리고 황태자 전하를 알현하여 세르오 가문도 참전하겠다고 이르십시오.”
“참전? 내가? 싫다!”
세르오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알레나라의 손길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남의 집 시종들이 소곤거리며 힐끔대기 시작하자, 알레나라는 복화술 부리듯이 이를 꽉 깨물고 중얼거렸다.
“오라버니가 가기 싫으면 나라도 보내세요. ‘세르오 가문’이 참전한다는 뜻을 보이란 말입니다. 이대로 정말 끝까지 추락할 것입니까?”
“아니, 전쟁은 그래도 좀…. 그, 어차피 바리엘 제국방위부에서 알아서 하지 않겠니? 다른 귀족들도 참전한다는 소식은 없었다. 내 친구들도! 알레나라, 너는 나보다 더욱 잘 알 것 아니니.”
“그거야 당연히 수도에서는 사병 소유한 귀족들이 죄다 죽었으니까요. 중앙 귀족들이 절멸한 지 겨우 한 계절 지나갑니다. 나설 수 있는 자가 없고, 무엇보다 그들은 나설 필요가 없어요. 우리처럼 절벽 끄트머리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돈놀이 하는 귀족들은 전쟁에 참가하는 것보다 이 틈을 이용하여 수익을 내고자 할 것이고, 무역 금지로 인해 손해 본 자들은 그걸 만회하고자 정신 없을 터였다.
또한 세르오의 말처럼, 시중에서 떠들어대는 제국민들의 말처럼, 바리엘엔 마법사가 있었고 거대한 군단 또한 건재했다. 굳이 참전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게다.
거기다 황궁에서는 현재 황권 강화를 위해 귀족 견제가 심했다. 호출이 있다면 몰라도, 괜히 참전하여 힘 뺄 필요가 없을 터.
“오라버니. 잘 들으세요.”
알레나라가 눈을 날카롭게 떴다.
“누군가에게 전쟁은 비극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비극은 갈 데까지 갔으니, 이제 기회라 여길 수밖에 없어요.”
“하, 하지만 병사를 내어 받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쉬운 일이라고는 오라버니가 밤새 술 처먹는 것밖에 없어요.”
세르오가 울컥하여 대꾸하려 하자, 알레나라는 아예 등을 돌려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저택을 비롯하여 가문의 모든 것을 담보로 삼으십시오. 하여 자금을 댄다고 하든지, 아니면 용병을 구하든지 하란 말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전쟁터로 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죽습니다.”
세르오는 벽에 기대어 스르륵 주저앉았다. 동생의 결심이 단단하다는 걸 알아챈 터라, 물러설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찌든 머리칼을 쥐어짜며 한숨과 한탄 그리고 짜증스러운 신음을 내었다. 그러곤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알겠다! 하면 되잖아! 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동생의 태도가 나날이 발전해갔으니,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죽는 것보다 못할 터.
알레나라는 당연한 걸 말한다는 표정으로 고갯짓했다.
“뭐 해요? 타세요. 제국방위부 군대가 먼저 출발했으니, 서둘러야 합니다.”
“젠장, 젠장!”
“세르오! 오늘 밤에도 마신다며? 집에 가?”
“그래! 잘난 동생 덕분에 죽으러 간다!”
“하하하. 그래. 잘 죽어!”
위쪽 방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배웅 소리.
세르오는 마차에 올라탔고, 알레나라는 창문을 가볍게 열었다. 막상 가까이 하려 하니, 술 냄새가 너무 독하게 올라온 탓이었다.
* * *
휘이잉.
한편, 그 시각. 클리포포드의 장벽 위에는 마법사들이 서 있었다. 모두 한쪽 손에는 이드갈로 만든 검을 들고서 말이다.
바람에 따라 휘날리는 그들의 로브. 어느새 당도한 버고스의 거대 군단이 클리포포드를 잡아먹을 것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그리고 좌우, 옆으로 조금씩 보이는 합성 마물.
이안은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명령했다.
“다들 준비는 되었나.”
“예. 이안 님!”
“합성 마물을 먼저 제거할 것이다. 좌측은 베릭이, 우측은 바르사베가 함께한다.”
처억.
이안의 말에 바르사베가 검을 들어 올렸고, 베릭 또한 자신의 흑검을 쥐었다. 마법사들도 마찬가지.
모두가 검을 높이 드니, 호박빛 검날에 햇빛이 깃들었다.